44.
이내 재차의가 내게로 다가왔다. 한 발짝 만에 귀신처럼 빠르게 달려와 그는 내 품 안에서 아이를 뜯어 가듯 떼어 놓았다. 그대로 물건 다루듯 내려놓아도, 놀란 듯 ‘아’ 소리 지를 뿐 아이는 넘어지진 않았다. 다만 내 몸이 그 아이를 향해 크게 기우뚱거렸을 뿐이었다.
재차의는 그런 내 손목을 콱 붙잡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동자를 흔들며 나를, 내 손에 자진하여 채워 놓은 수갑을 번갈아 살폈다.
재차의의 거친 손에 붙들려 나는 망루의 쇠 울타리에 팔을 일자로 올려야 했다. 금색 쇠사슬이 내 손끝을 지나 바닥의 아이에게로 이어졌다.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재차의는 사슬 위에 제 손날을 댔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내리쳐 끊어 낼 듯 손을 움직거리다가, 한쪽 뺨을 일그러뜨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송모래.”
내 돌발 행동에 그가 놀랄 줄은 알았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대슈망에서 직접 발명한, 파수꾼 전용 수갑이었다. 본래 용도는 흥분 상태를 넘어서 패닉이 온 파수꾼을 억압하는 것으로, 전용 열쇠를 쓰지 않는 한 파수꾼의 힘으로는 절대로 끊어 낼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건 제아무리 재차의라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러니 그의 죽은 파트너인 윤도곤도 이 수갑을 챙겼던 거고, 내 귀에도 딱지가 앉도록 수갑을 챙기라는 잔소리가 날아든 것 아니겠는가.
내 예상대로 재차의는 수갑을 끊어 내려고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성화가 피어오른 얼굴을 모로 기울이며 빤한 눈길로 나를 노려보았다.
“왜 함부로 나대는 거야?”
재차의가 물었고,
“…….”
나는 침묵했다. 오래 침묵했다.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등줄기로 식은땀만 연신 흘릴 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왜냐고? 왜냐하면, 이 애는 미취학 아동이고 우리는 어른이니까? 인명 피해를 막고 세상을 지키기 위해 파견 나온 파수꾼과 가이드니까? 그게 인간적인 정의이고 도의적으로 옳은 일이니까…?
어떤 말을 하든 입에 침 발린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정의나 도덕 따위 엿과 바꿔 먹은 지 오래다. 사실은….
“…….”
사실은 나도 모른다.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러는지. 억지로 남편을 살리고 아이를 버려야 하는 임신부의 인생을 구제해 주려고? 아니다, 난 그렇게까지 착하진 못하니까…. 자식을 대신해서 저를 구해 달라고 매달린 남자가 겪게 될 트라우마를 걱정해서? 글쎄, 그딴 건 신경 쓸 겨를조차 없다. 내가 신경 쓰는 건 그저… 결국 선택받지 못할 어린애다. 이 상황을 이해하지도 못해서는 커다란 눈만 끔벅거리는 어린애. 아주 잠깐 내 체온을 나눠 가졌을 뿐인 이, 평생 만나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어린애가, 구명보트에 혼자 남아 떠나가는 로즈를 쳐다볼 순간이 두려웠다. 마침내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걸 깨닫게 될 그 순간이 무서웠다. 그 기분이 어떤지… 나는 안다.
알아서 그랬다.
‘송모래. 우리 모래…. 모래야.’
나를 두 팔로 꽉 끌어안고 주문을 외듯 말하던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기억난다. 바로 어제 일처럼 내 기억 속 모든 감각이 선명하다. 바람에 날려 연신 내 시야를 가리던 엄마의 스카프는 오렌지색이었다. 평소 골초이던 아빠에게선 숨구멍 깊이 찌든 담배 냄새가 풍겼다.
‘모래는 엄마 아빠랑 있자.’
새빨간 헬기에 형과 두 동생을 태워 보내면서, 두 사람은 그렇게 말했었다. 나를 달래는 부모님의 등을 나는 조용히 토닥거렸다. 세 사람만 더 태울 수 있다는 구조원의 말에 순응하며, 나를 배제하기로 한 아빠의 선택을 똑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랬다. 사랑이 아닌 미안함에 내 이름을 불러 대던 엄마의 마음을 몰라서 그리했다. 당시 내 관심은 헬기에 오르기 전 ‘이거 너 입어’ 하며 형이 건네준 멋진 점퍼에 쏠려 있었다.
형제들을 태운 헬기는 게이트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추락했다. 괴수의 습격으로 인해 부모님을 잃고, 나는 사흘 뒤에야 혼자서 구조됐다.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됐다. 엄마, 아빠가 희생을 해서라도 살리고 싶어 한 형제들은 전부 죽었다. 두 사람이 희생시키기로 마음먹은 버린 자식인 나는 괜히 살아남았다.
그날 이전으로는 죽어도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살아서, 살았기에 돌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랬을 뿐이다.
재차의가 무섭고 이 상황이 끔찍하지만, 내가 조금만 나선다면… 목소리를 내고 돌발 행동을 딱 한 번만 벌인다면 이 아이를 살릴 수 있다. 그러니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나에겐 내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해 낼 언변도, 용기도 없었다. 내 구차한 과거 따위를 재차의에게 알려 주고 싶지 않았다. 죽으라고 걸러진 자식임을 어떻게 자기소개로 읊어 놓을까. 너무 비참하고 또 창피해서 막막했다.
애써 입을 열어, 나는 다른 말을 했다.
“이 아이도 데려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 주세요. 어차피 이 게이트엔 괴수도 보이지 않는데 왜 급하게 사람을 버려야 합니까. 제 보호구, 꽤 무겁습니다. 제가 장비를 다 벗겠습니다. 다 합하면 10kg은 족히 나갈 겁니다. 그래도 불안하면 산소통도 로즈에서 내리고요. 그럼…. 그렇게 하면 이 아이 하나를 실을 여유는 확실히 날 겁니다.”
“여태 네가 한 말 중에 제일 길다, 송모래?”
“…….”
“근데 하필 이렇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해?”
“…….”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긴장한 탓에 땀을 흘려 그런지 빠르게 식은 몸이 뼛속까지 차가워졌다. 손발이 가렵다. 혈기가 미처 돌지 못하는 느낌이다.
추운 날씨며 바닷바람 때문인지, 재차의의 반응이 걱정되어 겁을 먹어선지 모르겠지만 으슬으슬 몸이 떨렸다.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나는 억지로 표정을 굳혔다. 턱을 꽉 악물어 떨림도 참아 냈다.
그런 내게 재차의가 말했다.
“이 게이트에 괴수가 없다고? 송모래. 네 눈엔 저게 안 보여?”
그가 손가락질하는 방향을 따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괴수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커다랗고 봉긋한 섬 하나가 떠 있을 따름이었다.
‘…설마. 저게…, 저게 괴수라고? 저… 저 커다란 게?’
설마, 아니겠지, 설마 하며 멍하니 바라보기를 한참, ‘섬’이 아래로 아주 가볍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도로 위로 크게 부풀어 올랐다.
“…….”
당황해 고개를 돌린 후엔 재차의의 차가운 눈을 직시해야 했다. 가이드랍시고 파견에 따라 나서서는, 괴수의 형체조차 알아보지 못한 내게 남은 건 핀잔을 듣는 일뿐이었다.
“아직 살아 있어. 저게 숨을 쉴 때마다 파도가 여기까지 밀려오잖아. 안 느껴져?”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생존자를 구하는 일에 급급해서 파도가 치는 이유 따위를 알아챌 새가 없었다.
“지금은 잠든 것 같지만 네 낌새를 눈치채면 바로 이쪽으로 달려들 거야.”
그 말에 나는 등줄기가 섬찟했다. 어째서 ‘우리’나 ‘로즈’가 아닌 ‘네 낌새’라고 나를 짚어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지금은 그따위 사사로운 표현을 지적할 때가 아니었다.
제대로 실수했다는 후회가 내 속에 빗발쳤다. 괴수가 없으니 괜찮지 않느냐고 함부로 떵떵거린 이상, 프로 파수꾼인 재차의가 나를 무어라 힐난하고 꾸중하더라도 전부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재차의가 속삭였다.
“그러다가 일이 잘못돼서 송모래, 네가 죽기라도 하면?”
나는 내심 놀라고야 말았다. 그 밖의 문제를 지적할 줄 알았는데, 재차의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가 나로 인해 애를 태울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절로 속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였다.
그러나 재차의는 매정했다.
“나더러 널 대신할 다른 가이드를 어떻게 찾으라고?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야?”
이어진 말에 나는 ‘아’ 하고 정신을 차렸다. 차가운 말끝에 재차의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나를 강하게 노려봤다. 그러더니 제 오른팔을 휙 들었다.
‘아, 결국 맞겠구나.’
그가 곧바로 내 머리통을 칠 것 같아, 나는 본능적으로 이를 꽉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바람 소리를 내며 휙 휘두른 재차의의 주먹이 내 정수리에 떨어졌다.
콩….
약한 꿀밤이었다.
“…….”
나는 감았던 두 눈을 천천히 떴다. 잠깐 사이 재차의는 벌써 저 멀리 뒷모습만 보였다. 끝도 없이 떠내려가는 중인 구명보트를 향해 그가 가볍게 손짓했다. 검지를 한 번 까딱이는 것만으로도 파도에 쓸려 떠내려가던 주황색 보트를 끌어당기긴 충분했다. 마법 같은 염력에 의해 울상이 된 부부가 서서히 로즈와 가까워졌다.
수갑을 차지 않은 손을 들어 나는 재차의의 꿀밤이 닿은 정수리에 손을 댔다. 그리고 아주 얼떨떨했다. 머리에 남은 통증은 전혀 없고 오히려 간지럽기만 했다.
역삼각형을 그리듯 떡 벌어진 재차의의 등이 전과 부쩍 달라 보였다. 멍하니 선 나를 향해 턱을 까딱이며, 그가 말했다.
“장비 벗지 마. 허튼짓하거나 까불지 말고, 지금부턴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