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37)화 (37/76)

37.

재차의의 읊조림과 몸짓, 그리고 내 육신이 각각 따로 노는 기분이다. 여유로운 음성과 달리 그의 손은 눈으로 좇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단숨에 내 목을 낚아채듯 붙잡았고, 거칠게 위로 추켜들었다. 

발뒤꿈치가 붕 뜨고 기도가 콱 막혀 눈이 절로 감겼다.

“켁….”

목이 조여 나는 형편없는 소리를 흘렸다. 아주 짧은 시간과 작은 손짓으로 나를 완전히 제압해 놓고, 재차의는 금세 내 목을 놓아주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떨어지자마자 나는 다리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 했다. 재차의는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퍼뜩 뻗어 온 그의 손에 내 두 뺨이 덥석 잡혔다.

“컥, 콜록….”

막혔던 기도가 아려 나는 쿨럭쿨럭 기침했다. 재차의는 그런 내 얼굴을 물끄러미 살폈다.

“…….”

사람 목을 함부로 졸라 놓고는, 나는 성대가 짓눌리고 뒷골이 뻐근할 지경인데 그는 ‘아차’하는 얼굴이었다. 마치 그렇게 아파할 줄 몰랐다는 듯, 잠자리 날개를 다 구겨 놓고 후회하는 어린애 같다.

이내 재차의가 팔을 아래로 휙 내렸다. 그의 손에 머리통이 단단히 잡혀, 나는 순식간에 바닥에 무릎을 꿇도록 주저앉았다. 그러면서도 상체까지 완전히 쓰러지진 못했다. 단지 당황하고 얼이 빠진 채, 내 머리통을 움켜쥔 재차의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내 코앞에 그의 정장 바지 버클이 놓였다. 재차의의 목소리마저 저 위, 머리꼭대기가 아닌 두둑한 사타구니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네 입, 지금 구멍으로 쓰고 싶으면 그렇게 해 줄게. 그걸 원해?”

어떻게든 버텨 보려 나는 목에 힘을 줬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치밀어서 그랬다. 이런 순간에는 꼭, 재차의는 내 예측대로 움직였다. 내 뒤통수를 잡아당겨 제 사타구니 바지춤에 얼굴이 처박히게 했다.

“…….”

눈을 질끈 감고 나는 최대한 숨을 참았다. 꾹꾹 짓눌리는 뒷머리가 아팠고 얼굴엔 열이 올랐다. 검은 바지의 왼쪽 허벅다리 위로 뚜렷한 윤곽을 자랑하는 재차의의 성기에, 뺨이며 뭉개진 콧등, 입술이 마구잡이로 문질렸다. 당혹감과 성화는 아무런 도움도 되질 않았다. 뜨거운 감정으로 인해 오히려 숨이 빨리 차올라, 억지로 그의 진한 체취를 들이마셔야 했다.

“좋아, 싫어? 응?”

꾹, 꾹 내 뒤통수를 연신 밀어 누르며 재차의가 말했다.

“왜 아직도 말이 없어?”

“…….”

씨근덕거리며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좌로, 우로 얼굴을 움직이느라 안면 전체에 재차의의 성기가 문질렸다. 그래도 말은 나오질 않았다.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뛰어 대고 혀는 돌처럼 굳어 버려서, 입술끼리 바싹 말라붙어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질 않았다.

솔직히 무서웠다. 무섭고… 서럽다. 서럽고, 억울하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토로하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벌받을 만큼… 잘못한 게 없지 않아요?’

재차의에게 굳이 전할 순 없는 말이다. 그의 반응이 불 보듯 뻔하니까. ‘하하’ 하고 신나게 비웃고는 다시금 내 탓을 하고, 못마땅한 말을 들은 대가로 어떤 행위든 강요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침묵했다. 주먹으로 꽉 말린 손으로 내 무릎 위를 콱 누르며, 이를 악물고 설움을 참았다.

“하….”

내 침묵은 또… 재차의를 화나게 했다.

“이러니 오해를 안 할 수가 있나. 남 탓할 것도 없어, 송모래. 네가 오해의 여지를 줄줄 흘리잖아.”

그러면서 그가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당겼다. 힘이 빠져 버린 고개가 위로 휙 들렸다. 슬슬 목이 저렸다.

“으음….”

재차의가 침음하며 중얼거렸다.

“내 눈엔 지금 네가 날 유혹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응? 그 예쁜 입을 말하는 용도로 쓰진 않겠다고, 뭐라도 빨아 주겠다고. …맞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제멋대로 늘어놓으면서 재차의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나는 더는 표정을 감출 수가 없게 됐다. 타는 듯한 모멸감, 창백한 수치심, 그리고 울분이 연거푸 밀려들었다. 분노와 공포가 한데 섞여 이마부터 일그러지고, 아래턱이 떨렸다.

“송모래.”

재차의가 나를 불렀다. 내 이름이 그토록 끔찍하게 들리기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떨리는 입을 억지로 열어야만 했다.

“아….”

아니요.

그렇게 말하려 힘주어 노력해도 도통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손도 발도 저릿했다. 얼굴은 물론이고 머리통 전체에서 느껴지는 핏기가 조금도 없었다.

“아. 정말 모르겠네.”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으면서 재차의가 중얼거렸다.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야?”

이따위 행위를 도대체 누가 원한다고. 나를 모욕하려고 뱉는 질문일 뿐이 분명하다. 나를 헐어 빠진 남창 취급 하느라, 남자의 성기에 욕정하는 미치광이 변태로 몰아세우느라, 나를, 나를….

아, 재차의는 그렇구나. 재차의의 눈에 보이는 나는, 마치 내가 보던 삼촌처럼….

“…….”

재차의의 손에 잡힌 머리칼 때문에 두피가 심하게 아팠다. 상체의 균형마저 잃어버리고 완전히 축 늘어지고야 만 탓이었다. 너무 크고, 너무 많은 감정의 소모 끝에 나는 허탈해졌다. 허탈하고 허무해서 그냥 축 늘어졌다.

재차의는 잠시간 그런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의 까만 눈이 나를 아주 깔본다. 그리고 내 팔뚝을 다시금 움켜쥐어, 번쩍 들어 올리더니 회의용 원탁에 던지다시피 내려놓았다. 고동색 탁자 위에 쿵 소리를 내며 나는 나동그라졌다. 이제 어깨를 부딪히는 정도의 고통은 느껴지질 않았다.

내 잇새로 흑, 흣, 하는 이상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숨소리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소음이었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공기를 내쉬기만 할 뿐, 빨아들일 수가 없어 나는 가슴이며 어깨를 다 들썩대며 요란하게 헐떡거렸다.

“…흐, …흐으….”

그렇게 한참을 널브러져 있었던 것 같다. 의식이 불명확해서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불분명했다. 그 시간 동안 재차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팔을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가 뭘 하는지, 어떤 표정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지금 내 뒤에서, 그는 또 후회하고 있을까? 이렇게 아파할 줄은 몰랐다고 능청을 떨고, 네가 너무 약한 탓이라며 나를 욕할까?

“…컥! 콜록….”

한참을 헐떡거린 끝에 나는 기침하며 호흡하는 법을 다시 익혔다. 흐려졌던 정신은 아지랑이와 함께 돌아왔고, 남은 건 구차한 심정을 떨치며 억지로 몸을 세우는 일뿐이었다. 그런데 재차의가 나를 가로막았다. 그의 손바닥에 채인 상체가 다시금 탁자 위에 넘어졌다.

재차의의 표정은 전보다 더 나빠 보였다. 잘생긴 눈썹은 와그작 소리를 낼 것처럼 일그러졌고 입매에선 짜증까지 느껴졌다. 그의 관자놀이에 솟아오른 핏줄의 구불구불한 길이 미로처럼 느껴졌다.

나는 완전히 진이 빠져 버렸다. 그 눈빛이 무섭고, 표정이 불가해했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화가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그는 오른팔을 길게 뻗어 내 이마를 만졌다. 재차의의 손바닥이 내겐 너무나 차갑게 느껴졌다. 열 오른 이마가 땀이 배도록 뜨거워서였다. 그의 왼손은 곧 내 가슴 중앙에 닿았다. 무얼 읽어 내려는 사람처럼 더듬거리며 가슴을 만지는 손길에 나는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안 돼. 여기선 안 돼.’

머리며 흉통을 단단히 붙들려, 누운 채 꼼짝조차 못하고서 나는 시선만 돌려 주위를 살폈다. 저 멀리, 벽면에 등을 댄 파수꾼이 하나, 바닥에 납작하게 널브러진 다른 파수꾼이 둘 있었다. 그들 모두 기이하게도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있었다.

‘안 돼….’

남들 앞에선 싫었다. 아무리 재차의가 나를, 제 성기를 수납하는 구멍 뚫린 상자 취급을 한다고 해도, 남들 앞에서 그런 짓을 당할 수는 없었다.

“재….”

나는 억지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납작하게 흘렸다.

“재차의 님.”

그러자 재차의가 고개를 한쪽으로 크게 기울였다. 커다란 손바닥으론 내 왼쪽 가슴을 단단히 덮은 채였다. 마저 말해 보라는 듯 그가 턱을 까딱거리기에, 나는 갈라진 입술을 벙긋거렸다.

“제가….”

나는 억지로 목소리를 냈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대답하질 않으면, 재차의의 말마따나 위건 아래건 그의 물건을 받아야 할까 봐 두려워 조바심이 났다.

“제, 제가…. 제가 조금 전에, 아까 하려던 말은….”

재차의의 고개는 아주 이상한 소리를 들은 고양이처럼 움직였다. 한 음절을 뱉을 때마다 한 번 갸웃거리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감정을 읽어 내지 못했다. 입체적인 눈썹뼈가 자아낸 그림자가 짙고 찌푸린 눈살은 워낙 좁아, 내게 아무 눈빛도 보여 주지 않았다.

“…거짓말하면서, 남을 다 속이면서 편하게 살 순 없어서…, 그래서, ‘아니요’. 그래서 그렇게…, 그렇게 말한 겁니다.”

내 ‘말’이란 건 형편없는 목소리를 줄줄 흘리는 데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편하게 살 수 있어. 아주 잘 살 수 있지. 손해 볼 것 없는 오해쯤이야 받으면 뭐 어때서?”

반면 재차의는 달변가다. 대체로 듣기 싫은 못된 말을 해서 그렇지, 말하는 데에 막힘이 없고 모든 답이 능숙하고도 빠르다.

그런데도 나는 속이 답답했다.

“대답은?”

재차의가 꼬집듯이 내게 물었다. 어깨가 절로 흠칫 떨렸다. 습관적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려다, 나는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네…. 맞아요. 그렇죠.”

사실 거짓말이었다. 재차의의 입장에, 그가 손쉽게 뱉어 놓은 말에 동의하긴 어렵다. 그래도 알았다고 대답하질 않으면 또 ‘똑바로 말해’ 하는 타박을 들을까 봐 겁이 났다. 기껏 말로써 생각을 전달해 봤자, 내 생각이나 의도 따위를 똑바로 볼 마음조차 없을 거란 확신도 들었다.

그러니 납작 엎드리자. 그의 말이 다 옳다고 하고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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