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36)화 (36/76)

36.

“송모래.” 

큰 손으로 내 왼쪽 뺨을 붙들며 재차의가 속닥거렸다. 저 혼자 동굴 안에 머무르는 듯 낮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보다도,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 한 방울에 소름이 오르고 손발이 저렸다. 뺨의 솜털이 오소소 일어나는 감각이 유독 날카롭게 느껴졌다. 재차의가 빛 없이 새카만 눈동자로 내 낯짝을 몰입하며 들여다보면 볼수록, 내 안에선 영문 모를 감정이 소용돌이치며 일렁거렸다.

“너는 정말 연약하구나. 이러니 파수꾼이고 가이드고 간에 건드리지 못해 안달인 거지.”

재차의를 만난 뒤로 인생에 처음이란 게 많다. 그와 같은 눈빛도 그가 벌이는 행위도 그의 말도 전부 내겐 새것이다. 낯설고 새롭고 도무지 내 것 같지 않다.

나를 약골 취급 하는 그의 속삭임에 납작한 자존심이 움직거렸다. 지금은 꼴이 우습게 됐지만, 대슈망에 오기 전에는 ‘사실 뉴타입이 아니냐’는 말도 심심찮게 들은 나였다. 흐물흐물하게 느껴지는 두 다리에 힘을 실으면서 나는 바삐 반박했다.

“오해를 받아서 그런 것뿐입니다.”

“오해? 무슨 오해.”

재차의가 픽 코웃음을 쳤다. 그 콧김이 내 이마에 닿자마자 나는 고개를 뒤로 빼며 몸을 비키려 했다. 그런 내 몸짓이 재차의에겐 달리 보인 모양이다.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린다고 오해한 듯,  재차의는 내 허리를 더욱 세게, 아주 빠르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말했다.

“송모래는 자기 과시적인 가이드다, 매뉴얼을 어겨 가며 다른 가이드들 대가리를 짓밟고 있다. 뭐, 그런 오해? 그게 아니면, 모든 파수꾼에게 가이딩을 해 줄 수 있으면서 방임하고 S급 파수꾼 재차의만 상대한다는 오해?”

신랄하게 내 처지를 분석하는 그의 말이 노래하는 듯했다.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환청으로 섞여 들릴 만큼 즐거운 목소리였다. 가이드 무리에도 낄 수 없고 파수꾼 집단에는 더더욱 낄 수 없는 내 형편이 그에겐 오락거리인 모양이다.

재차의의 왼손에 잡힌 옆구리가 저릿했다. 억지로라도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도로 세게 붙들릴 줄을 뻔히 알면서도 화가 나 그렇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재차의는 내 몸을 제 품 안으로 바짝 당겨 붙였다. 그와 내, 아랫배는 물론이고 샅까지 완전히 맞붙었다. 지끈거리는 몸도 탈탈 털려 버린 마음에도 아무런 여유가 없는 나는 창백한데, 재차의의 체온은 따끈따끈했다. 묵직하게 크고 더운 감각이 사타구니를 압박해 왔다. 그 즉시 내 속에 찬 성화가 색깔을 바꿨다.

‘발기한 거야…?’

이 와중에 성기를 세운 재차의의 심리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반면 내 감정은 분명했다. 더는 그의 말에 반박하거나 대들 생각이 들질 않고, 그의 품 밖으로 도망가고픈 충동도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재차의가 제 괴물 같은 물건을 내 입이나 뒤에 처박을까 봐 무서워서 그랬다.

온몸의 힘을 빼고 가만히 선 채 나는 재차의의 말을 고분고분 들었다.

“그깟 오해가 뭐가 어쨌다고, 응? 남들이 알아서들 대단하게 생각해 주는 게 뭐가 문제야?”

“…….”

그게 나를… 대단하게 생각해 ‘주는’ 건가? 콧대 높고 재수 없는 거짓말쟁이 취급이? …내게는 조금도 그렇게 느껴지질 않는다. 내 인성을 깎아내리고 입지를 좁게 하는 뒷담화라 생각될 뿐이다.

‘가뜩이나 버거워 죽겠는데….’

모든 게 화려하고 풍족한 대슈망 센터에는 시설의 격에 어울리게 예쁜 사람들만 가득했다. 속내는 차치하고 껍데기만 보자면 그랬다. 트레이닝복 상의를 허리에 묶고 땀 흘리며 지나는 어린 파수꾼들의 사전엔 어제는 없고 내일만이 존재할 것 같았다. 카페테리아의 창가 자리에 앉아 웃으며 수다를 떨던 가이드들은 가난이 뭔지 모를 거다. 팀원들 투정에 총대를 메고 내게 말을 붙여 오던 이상록도, 기절한 이이재의 옆자리에 나란히 눕던 그녀의 파트너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하나같이 깨끗하고 부지런한 분위기를 풍기며 이곳에 녹아들어 있었다.

화사하고 튼튼한 실내 정원인 이곳에, 나는 굴러 들어온 모난 돌이자 이름 없이 자란 잡초였다. 내게만 육하원칙이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나만이 몰랐다. 요즘은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게 됐다.

내 손에 분명하게 쥐어진 건 하필 자존심 하나다. 내 생활을 힘들게 하고 내 상처를 안 낫게 하는 빌어먹을 자존심. 수치심과 열등감, 자책을 생산해 내는 딱딱한 공장. 어리바리하고 모자란 내 모습을 최대한 숨기게 하는 동력. 전부 자존심이다.

그렇기에 남들 눈에 띄는 일이라면 뭐가 됐든 싫다. 나는 그런 건 조금도 원치 않는다. 최대한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 식구들이라느니 우리 애들이라느니 하는 표현에 묶이길 꿈꾸는 건 아니다. 그저 적당히 잘 어울리며 묻어 있고 싶다. 파스타 코너 옆의 치아바타 빵 조각이나 바 자리에 앉으면 따라 주는 기본 커피처럼….

“송모래, 너는 별종이야.”

재차의는 내 소망을 쉽게 무너뜨렸다.

“별종이 눈에 띄는 건 당연한 거야. 넌 대슈망의 어떤 가이드와도 닮지 않았거든.”

그가 술술 뱉는 말이 내겐 일종의 판결 같았다. 송모래는 불합격이다, 너는 빵 조각이나 커피 따위는 될 수 없다…. 그건 아주 매정하고 현실적인 선고였다.

“네가 나에게만 통하는 가이드라는 건 이곳 사람들의 지능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야. 대다수 인간 새끼들은 너무 멍청해서 자기가 멍청하단 사실도 몰라.”

저는 이곳에도 속하지 않고 인간도 아니라는 듯, 도도하게 뇌까리는 태도가 재차의와 잘 어울렸다. 정말이지 끔찍하게 재수 없었다.

“그러니까 오해가 사실인 척해. 콧대 높은 가이드로 살아.”

그러면서 그는 검지로 내 코끝을 톡 건드렸다.

“네 능력이 아주 대단하고 귀해서, 이 재차의 님을 위해서만 쓰는 거라고 해. 떨거지 파수꾼한테 쓸 기력은 없다고 말이야.”

“…….”

몸을 바짝 맞붙이고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재차의와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게 주어진 난제에 해결책을 제멋대로 내놓는 그의 태도도, 그 해결책의 내용도 참 편리하고 나빴다. 아주 쉽고도 간단하면서도 꺼림칙한 게 나와는 정반대였다. 나는 너무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마음만은 켕기는 데 없이 정직한 게 좋았다.

잠깐의 침묵 끝에 재차의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눈을 굴려 그 고갯짓을 쳐다만 보는데, 그는 반듯한 미간을 아주 약간 구겼다. 새카맣고 긴 속눈썹이 일자로 뭉치도록 눈을 좁히며, 재차의가 말했다.

“송모래. 내 말이 이해가 잘 안 돼?”

“아….”

‘…맞다, 이거 대화였지…. 독백이 아니라, 대화….’

그러니 대답을 해야 한다.

나는 꾹 다문 입술을 움직거렸다. 입천장에 바짝 달라붙어 있던 혀를 둔하게 굴릴 시간이었다.

“그건… 모두를 속이며 사는 거잖습니까.”

천천히 내놓은 지적에,

“그래, 잘 이해했네.”

재차의의 대답은 가뿐했다.

“…아니요.”

나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잘 이해했다며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재차의는 그런 내가 싫은 모양이었다. 고까운 기색을 못 감추며 그는 내 어깨를 세게 붙들었다. 느닷없이 내려앉은 악력에 어깨뼈가 수축하고 키가 줄어들 것만 같았다.

“‘아니요’, 뭐?”

그보다 더 무거운 건 재차의의 낮은 목소리였다.

“송모래. 혓바닥에 병났어? 말 좀 똑바로 해.”

대뜸 내려앉은 힐난에 속이 울렁거렸다. 심장이 빨리 뛰고, 내심 아차 싶었다. 내, 괜한 단답이 재차의를 화나게 한 모양이었다.

큰 당혹감에 나는 얼른 입을 열었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는 변명 같은 말이라도 뱉고자 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 나보다는 재차의의 목소리가 더 빠르고 선명했다.

“그게 싫으면 네 입을 다른 용도로 사용해 줘? 말은 못 해도 좆은 아주 맛있게 잘 빨잖아.”

외국어 영화에 후시 녹음된 성우 같은 목소리였다. 누가 듣더라도 매력적이라고 칭찬할 만한 목소리로, 재차의는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눈앞이 흐려지는 착각마저 들었다. 할 말을 찾지 못해 묵음으로 어버버하는 내 한쪽 뺨을 재차의가 움켜쥐었다. 꼬집듯이 세게 잡더니 바깥쪽으로 당겨, 벌어진 입술 안으로 제 엄지를 집어넣었다.

“응? 목구멍 벌리는 솜씨 하며 쪽쪽거리면서 빨아 당기는 게 여기도 새건 아니던데?”

굵은 손가락 끝마디가 낚싯바늘처럼 입에 걸린 채 내 머리는 그가 움직이는 대로 위아래로 흔들거렸다.

“옷도 구제는 취급을 안 하는데 너는 못 참겠어…. 송모래. 걱정하지 마. 많이 써서 헐어 버려도, 내 손때가 묻은 건 빈티지잖아?”

눈앞이 탁해지고 뇌는 수치심에 절었다. 바로 조금 전, 낯선 파수꾼으로부터 나를 구해 준 재차의에 대한 고마움은 내 마음 밖으로 모래처럼 떨어져 내리고 없었다. 좋아하려 해도 좋아할 수가 없는 남자다. 사람 목숨을 구해 줘 놓고도 개새끼일 수 있는 인물은 세상에 재차의 하나뿐일 것이었다.

“아. 손때가 아니지….”

재차의가 속삭였다. 실소 섞인 혼잣말이었다.

나는 그 말의 속뜻을 몇 초 뒤에야 둔하게 깨달았다. 내 몸을 더럽히는 건 확실히, 재차의의 손보다는….

“…….”

부아가 치밀어 주먹이 꽉 말렸다. 나는 힘껏 그의 손을 쳐 냈다. 그리고 곧장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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