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보통 가이드도 아니고 단번에 S급으로 분류되신 분께서 그렇게 과중 업무를 해 버리시면 그 밑의 가이드들이 힘들어지거든요. 어, 물론 A-급 애들 투정까지 신경 써 주실 필요는 없긴 하지만, 혹시 잘 모르셔서 그런 걸까 해서요.”
“…….”
과중…, 과중 업무…? 그러니까 내가 재차의에게 가이딩을 해 주다가 넙죽 뻗어 버린 게, 프로 가이드의 세계에서는 ‘과중 업무’인가 보다. 처음 들어 보는 말이라 속으로 세 번 뇌까리며 외웠다.
“그게 다, 선배 가이드들이 힘들게 줄여 둔 업무 강도인 거거든요. 그래서… 이런 말씀 어떻게 들리실진 모르겠지만, 불필요한 과잉 진압은 삼가해 주시는 게 좋아요.”
과중 업무, 과잉 진압…. 듣고 보니 비슷한 표현이다. 아무튼 ‘과하다’는 건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불필요하단 뜻이니까.
“파트너에게 채울 구속복도, 수갑도 꼭 챙기시고요. 아무리 재차의 님이라도 매뉴얼은 매뉴얼이에요. 이전 파트너이신 윤도곤 님도 그러셨어요. 아! 물론 S급인 송모래 님을 함부로 남과 비교하는 건 아니고, 그게….”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여 가며 이상록이 속닥거리는 말들은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여태 몰랐고, 앞으로 알 길도 없었던 정보를 자진해서 알려 주는데 싫을 리 없다. 윤도곤은 재차의에게 구속복도 입히고 수갑도 채웠구나… 그저 그렇게 상상했다. 그러고 보면 재차의가 윤도곤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든가, 되게 좋아했다든가 그런 말도 들어 본 것 같다. A0급인데도 특별히 제 파트너로 삼을 정도였으니, 그가 챙겨 주는 대로 구속복도 얌전히 입고 수갑도 가만히 차 주었을까.
그런 윤도곤의 자리에 나를 대입해 보자니 쉽게 그림이 그려지질 않는다. 나를 함부로 들쑤시고, 두들기고, 곤죽으로 만들어 놓은 재차의다. 내게 벌인 짓거리들이, 평소 좋아하던 가이드에게 베푼 대우와 어떻게 같겠는가? 그러니 이상록의 말이 맞다. 그와 날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짓이다.
“가이드들이 현장에서 탈진해 가며 파수꾼 비위나 맞추던 시절은 이제 옛날이에요. 그리고 그 과정에선 보이지 않는 투쟁과 눈칫밥 싸움이 있었어요.”
“…….”
나는 이상록의 말을 묵묵히 곱씹었다.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입장 바꿔 내가 대슈망 소속 N년 차 가이드이고 이상록이 신입 가이드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치면, 나라도 그렇게 오해했을 것이었다. 떠들썩하게 입사해서 대단하신 파수꾼의 파트너 자리를 꿰찬 신입이 제 능력을 과시한다고. 그 파수꾼의 대기조에 속해 김칫국만 열 사발 들이켠 동료들은 전부 혼란에 빠뜨려 놓고, 보여 주기식으로 불필요한 일을 해 댄다고. 고래 비늘 자랑에 새우 껍질 터지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윤희수도 아주 약간, 쥐톨만큼은 이해가 됐다. 그에겐 내가 눈엣가시일 수 있겠구나 싶다. 나로 인해 그가 해내야 할 업무의 정도며 기대치가 자연스럽게 무거워질 테니까.
‘하지만….’
이 갈등에는 본원적인 오해가 한 줄 끼어 있었다. 입사 첫 주부터 불필요한 관심을 너무 많이 받아 온 나다. 이대로 시건방지고 요란스러운 신입 가이드로 각인되긴 원치 않아,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고백하고자 했다.
“저….”
“네. 말씀하세요.”
“…….”
내 입술을 바라보는 이상록의 눈길이 너무 초롱초롱했다. 너무 부담스러워서 먹지도 못한 파스타에 체하는 기분이다. 긴장으로 두 발이 딱딱하게 굳고 발가락 사이에 땀이 차는 게 느껴졌다.
“…….”
“…….”
그대로 한참 생각을 솎아 내는데, 이상록은 군소리 없이 눈을 깜빡이며 나를 기다려 주었다. 그 차분한 태도와 몇 초의 침묵이 고마운데, 그래서 또 부담스러웠다. 필시 제대로 된 말을 대단히 설득력 있게 꺼내야 할 성싶었다.
기나긴 고심 끝에 내가 말했다.
“몰라서 그런 겁니다.”
그러자 이상록이 고개를 살짝 뻗으며 눈썹을 추켜올렸다. 내 말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듯 보이는 그녀를 향해, 나 또한 아주 약간 머리를 기울였다. 그리고 머뭇머뭇, 뻣뻣하게 느껴지는 혀를 움직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적당히’. 저는 적당히 못 합니다.”
“네…?”
이상록은 내게로, 나는 그녀에게로 서로 고개를 뻗어 댄 끝에 거의 얼굴을 맞대고 속삭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게 내겐 그나마 덜 떨리는 상황이었다. 내 목소리를 듣고 판단할 사람이 불특정 다수인 것보다는 한 사람인 편이 훨씬 나았으니까.
“가이딩을 잘 알지도 못하고, 잘하지도 못해요.”
그러자 이상록의 고동색 눈이 좌우로 바쁘게 흔들렸다. 내 눈동자를 번갈아 살피는 듯하더니, 그녀는 몇 초 뒤에야 우리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고 생각했는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로 물렸다. 크게 기우뚱하는 바람에 스툴 자리에서 뒤로 넘어질 뻔할 정도였다.
머쓱한 마음에 나도 앉은 자세를 고쳤다. 바 테이블에 두 손을 올려놓은 채 이상록은 들은 말을 곱씹는 듯 혼자 머리를 끄덕거렸다. 입 안으로 무어라 중얼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흠흠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네, 흠. 알겠습니다. 우리 애들한테도 오해하지 말라고 전달해 둘게요. 제가 괜한 소릴 했네요.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서는 이상록을 나는 잠시 바라봤고, 어색한 인사말을 건네려다 그만두었다. 내가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다른 가이드들이 이상록을 둘러싸고는 멀찍이 그녀를 데려간 탓이었다. 속닥속닥하는 모습이 나와의 대화 내용을 캐묻는 듯했다.
나를 대단한 S급 가이드 보듯 하는 이에게 아마추어 출신 티를 낸 게 민망해도 별수 없었다. 허풍으로 잘난 척을 해서 득 볼 것도 없는 데다, 평생 무지한 무능력자였음이 사실인 걸 어쩌겠냐 싶었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되고, 뭐가 어쨌든 오해를 풀었으면 됐다.
그렇게 생각하며 포크를 집어 드는데, 등 뒤에서 ‘거짓말’ 하는 윤희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는 그런 헛소리를 믿어요? 우릴 무시하는 거잖아요.”
“쉿, 희수야….”
“같이 파견 안 나가 봐서 몰라서 그래요. 게이트에선 얼마나 잘난 척을….”
오른손에 포크를 움켜쥔 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윤희수를 빠르게 찾아냈다. 곧장 달려가 잘잘못을 따져 볼 심산이었으나, 제자리에서 일어선 것만으로도 나를 보는 시선이 너무 많았다.
“…….”
윤희수는 가이드 동료들 팔 안에 둘러싸여 있는 반면, 나는 스툴 자리에 혼자 우뚝 선 채 모든 이들의 구경거리였다.
‘못된 악몽이라도 꾸는 거 같네.’
치미는 욕설을 애써 삼키며, 묵직한 접시를 집어 들고 바에서 물러났다. 무꺼풀 눈을 슬금슬금 굴리던 윤희수도 후다닥 동료들의 틈에 섞여 카페테리아를 떠났다. 그새 식어 버린 음식들은 곧장 반납대에 치워 버렸고, 뱃속에서는 포만감 대신 부아가 치밀었다.
윤희수 무리와 반대쪽 문을 찾아 카페테리아를 떠났다. 그러면서 내심 자책했다. 대체 무슨 오해를 어떻게 풀었다고 쉽게 생각했던 건지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이상록이 ‘우리 애’라 부르도록 가까운 동료인 윤희수가 침 바른 소문을, 내 몇 마디 둔해 빠진 말로 해독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건데. 이상록의 인상이 워낙 보들보들하고 착해 보이는 바람에, 그런 사람은 너무 오랜만에 보는지라 잠깐 나사가 빠졌었나 보다.
‘대체 뭘 기대한 거야, 송모래. 누가 됐든 자기들 무리에 나를 끼워 줄 리가 없잖아.’
낙담한 채 복도를 가로질러 걷는데,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웅 울렸다.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어 들었다가, 잠금 화면에 뜬 재차의 사진에 나도 모르게 놀랐다. 언제 봐도 적응이 안 되는 얼굴이었다. 보기 좋은 미소를 건 입매에선 이상하게 야릇한 분위기까지 풍겼다. 저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조롱 혹은 희롱뿐이지만….
액정 위, 재차의의 입술에 엄지를 대고 문지르자 휴대폰 잠금이 풀렸다. 그리고 보라색 알림 창이 화면을 채웠다. 휴대폰에 진작부터 설치되어 있던 프로그램의 기능 중 하나로, 현재 오픈된 게이트 및 파견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담당 파수꾼 혹은 가이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장 떠오른 알림 창은 ‘호출’로 시작했다. 사각형 화면 안에 대슈망 센터의 약도가 떴고, 나를 불러낸 파트너의 위치가 빨간 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호출, 별관 B동 B2 훈련실, 재차의.’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이상록이며 윤희수에 대한 생각이 자취를 감췄다. 대신에 다른 고민이 내 속을 채웠다. 재차의가 부른다니 바로 달려가긴 해야 하겠는데… 구름다리와 야외 산책로, 둘 중 어느 쪽 길로 가야 마주칠 사람이 하나라도 더 적을까?
약도를 손가락으로 확대했다가, 축소했다가 하며 눈을 좁히는데 다시금 진동이 웅 울렸다. 새로운 메시지와 함께 액정 너머 빨간 점의 위치가 변했다.
‘호출, 별관 A동 야외 산책로, 재차의.’
야외 산책로? 왜 장소가 바뀌었지? 눈을 끔벅거리며 생각하던 차, 다시금 진동이 웅웅 울렸다.
‘호출, 본관 1층 로비, 재차의.’
그제야 나도 모르게 큰 헛숨을 ‘하’ 뱉었다. 굳이 호출 기능을 써 나를 불러 놓고, 재차의는 내가 있는 곳으로 제 발로 다가오고 있는 듯했다. 복도 왼쪽과 중앙, 오른쪽 승강기 중 어느 걸 타고 올라오려나 의미 없이 추측하다가, 나는 우선 인파 많은 복도에서 벗어나고자 움직였다. 내가 어디로 향하든지 재차의가 내 위치를 알고 찾아오리라 확신이 있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