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30)화 (30/76)

30. 

재차의가 내 머리칼을 헤집듯이 쓰다듬었다. 속을 쑤시는 큰 이물감에 연신 배가 불렀다. 보지 않으면 무섭지도 않아지는지, 가까이 놓인 재차의의 어깨만 보고 있자니 그렇게 아프지도 않다.

아, 좋아. 좋아….

“흐으…, 으, 으윽….”

…나 또 이상해졌나 보다. 결연인지 무언지 모를… 재차의가 주는, 그 이상한 효과에 또 취해 버렸나 보다. 그의 손길이 싫지 않다. 오히려 달갑다. 그가 나를 더 만져 줬으면 좋겠다. 매번 이렇게 다정하게만 굴어 주면 매일매일이 고민 없이 행복할 것 같다. 그가 세게 안아 주니까 좋다. 착하게 달래 주니까 기쁘다. 좀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좀 더… 살아 있는 느낌이다.

“송모래….”

재차의가 나를 불렀다. 그러나 대답은 할 수 없었다. 그의 입술에 내 입이 틀어막혔다. 조금 전 그의 성기를 처박았던 입인데, 정액인지 프리컴인지 모를 역겨운 것을 싸 댄 입인데, 그런 더러운 입에 대고 그는 혀를 밀어 넣는다.

하긴, 흉터를 뒤집어쓴 내 입술도 핥고 빨던 사람이 재차의다.

“으, 흡….”

꿈틀꿈틀, 배 속에 작은 경련이 물결치듯 일었다. 내 울음을 달래는 보드라운 입맞춤은 눈속임에 불과했다. 다정하던 포옹도, 느릿느릿한 몸짓도 잠시였다. 재차의가 제 샅을 나로부터 뒤로, 뒤로 떨어뜨렸다. 그의 성기가 거의 빠질 것처럼 내 몸 밖으로 밀려 나갔다. 쭉 밖으로 당기는 느낌마저 고통스러운 좁은 뒷구멍에, 굵은 귀두가 걸리는 느낌이 선명하게 들었다. 낯설고도 끔찍한 감각에 나는 눈가를 움찔 구겼다. 불안감이 먼저 엄습하며 내 어깨를 조였고, 이내 퍽 소리와 함께 처박혀 들어온 성기에 배 속이 온통 구겨졌다.

“으읍…!”

입술이 가로막힌 채 나는 답답한 비명을 내질렀다. 재차의는 그런 내 혀를 게걸스럽게 빨며 연신 추삽질을 연이었다.

“으, 윽, 읍!”

살 맞는 소리가 폭력적으로 빨랐다. 배 속으로 처박히는 성기가 전보다 더 흉포하게 느껴졌다. 몸뚱어리가 반으로 쪼개지고, 장기가 다 위로 구겨지고, 열기에 성기가 타다 못해 녹을 것 같다.

위도, 아래도 모두 침범당했다. 바르작바르작 의미 없이 꿈틀대는 것밖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내,

“끅….”

내 허리가 위로 들썩 움직였다. 두 눈이 절로 꽉 감기고 입술이 구겨졌다. 부르르, 부르르… 주체할 수 없는 떨림에 온몸이 경직됐다. 낯설고도 충만한 감각에 이성이 잡아먹힌 순간이었다.

“으, 흐읍, 윽….”

성기 밖으로 뱉어 낸 정액이 후드득 나와 재차의의 아랫배에 튀었다.

쾌감은 이내 고통이 됐다. 사정 중인 내 뒤에 대고 재차의는 더욱 거칠게 제 좆을 박아 댔다.

“하하….”

기쁜 사람처럼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는 거칠게 나를 몰아붙였다. 그에게 아랫입술이 물린 통에 그 웃음의 숨결마저 내 인중에 묻었다. 끅, 끅… 꽉 막힌 입 밖으로 신음을 토해 내며 나는 뜨문뜨문 사정했다. 정액을 싸고, 싸고, 또 싸 댔다. 나중에는 밖으로 흘러나오는 정액은 두어 방울에 지나지 않게 됐다.

그러나 경련은 더욱 커졌다. 쾌감도 더, 더욱 커지기만 했다.

덜덜 떨며 나는 흐으, 흐으 하고 울었다. 내가 원해서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내 것 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아아….”

재차의는 내 사타구니가 온통 젖은 뒤에야 추삽질을 그쳤다. 그가 하체를 뒤로 천천히 빼내자 내 몸이 그를 따라 주르륵… 딸려 내려갔다. 그러자 재차의는 큰 유혹이라도 느끼는 사람처럼 입맛을 쩝 소리 나게 다셨다.

“송모래…. 조르지 마.”

그러더니 내 볼기짝을 움켜쥐고, 위로 떠밀며 성기를 완전히 빼냈다. 내 몸 안의 근육까지 딸려 나가는 느낌이 들어 나는 그것마저 무서웠다. 한참 몸을 섞고 연거푸 토정을 해 놓고도 그의 성기는 아직도 벌겋게 발기한 채였다.

“흑….”

섬뜩한 마음이 들어 나는 최대한 얌전히 굴었다. 전신을 축 늘어뜨린 채 되도록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재차의가 내 볼기짝을 움켜쥐고 주물럭거려도, 허벅다리를 붙잡아 한데 모아 쥐고 위로 들어 올려도, 얼얼한 구멍 밖으로 제 정액이 흘러나오는 꼴을 구경해도….

“…….”

아무 말 없이 나는 기다렸다. 혹여 버둥거리며 반항을 했다가 엉덩이를 맞을까 봐… 허튼수작질을 제멋대로 이해하고서 그가 ‘꼴렸다’고 가까스로 멈춘 섹스를 다시 이어 갈까 봐 무서워서 참았다.

시큰시큰한 열기로 따끔거리는 뒷구멍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천천히 조여들었다. 울컥, 울컥… 엉덩이 골을 타고 덩어리진 정액이 빠져나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시트 위로 점성 어린 액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투둑투둑 했다. 그리고 재차의가 고개를 숙이더니, 내 엉덩이를 깨물었다.

이를 악물고 나는 비명을 참았다. 남의 엉덩이에 잇자국을 새겨 놓고선, 재차의는 그 위를 쪽 소리 나게 빨기까지 했다. 경악으로 물들어 나는 그를 쳐다만 볼 뿐인데, 그는 도리어 나에게 실망했다는 듯 아래로 축 내려간 입꼬리를 보여 줬다.

“보기보단 맛이 없네.”

“…….”

…이게 뭔, 무슨… 미치광이세요?

그래도 참자. 참아야 한다. 괜히 자극해서 하등 좋을 게 없다. 내 힘으로는 뭘 어떻게 해도 막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당장 지금도 구둣발로 배를 스무 대쯤 차인 것처럼 몸이 아팠다. 사지가 지끈거리고, 아랫배에 열이 오르고, 목구멍은 침을 삼키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더는 뭣도… 할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다.

‘제발 그만…. 그만해요, 제발….’

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나를 재차의는 순순히 놓아주었다. 정액으로 더러워진 시트 위에 나를 곱게 눕혀 놓더니, 한 팔로 제 턱을 괴며 바로 옆자리에 자리했다. 그러더니 그는 내 몸을 구경했다. 피부는 철갑 같고 근육은 돌덩이 같고, 팔다리는 쭉쭉 뻗고 손과 발까지 온통 우아한 그 옆에서 나는 눈사람이라도 된 것 같다. 보통 눈사람이 아니라 행인의 발에 차이고 주먹곤죽이 된 눈사람이다. 몸도 마음도 처참하게 박살 나서 그저 허여멀겋게 퍼져 버렸다.

그런 내 몰골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재차의는 연신 코웃음 소리를 냈다. 이런 남자를 혼자 두고 온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니, 이런 작자를 함부로 걱정하느라 밤을 새웠다니…. 나는 그보다도 내가 미웠다.

입술을 꾹 다물고 후회를 삼키는 내 곁에서, 재차의는 오른손으로 이리저리 내 무릎을 만지고, 허벅지 위를 거니는가 싶더니, 배꼽 아래에 엄지손가락을 대고는 꾹 눌렀다.

“아깐 아주 배불렀어서 그런가? 지금은 너무 홀쭉해 보이네. 송모래. 거식증이야?”

“…….”

그 질문엔 황당해서 대꾸할 말이 없었다. ‘말랐다’는 말조차 평생 들어 본 적이 없는 나다. 거식증이라는 의심을 받을 몸은 더더욱 아니었다. 새벽부터 일용직 사무소에 줄을 설 때면 ‘무슨 일이든 잘하겠다’며 남들보다 빨리 배정을 받았고, 청소 업체에서는 ‘신체 건장하고 힘 잘 쓰게 생겼다’며 칭찬만 듣던 몸이었다.

그래도 재차의의 의중을 이해하기 어렵진 않았다. 며칠간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한 탓에 복부만 유독 꺼져 있긴 했다. 이게, 내가 섹스를 싫어하는 무수한 이유들 중 하나였다. 체격이 아무리 좋은 남자라 해도 굶주림의 단계까지 쳐들어온 가난을 숨길 순 없어서….

한숨을 눌러 삼키며 나는 입을 열었다.

“여기….”

그리고 다시 다물었다. 성대가 북북 찢기기라도 한 듯 말소리 대신 쇳소리가 나와 그랬다. 목을 축일 겸 마른침이라도 삼키려는데, 몸에 남은 수분이 없어 공기만 삼킨 꼴이 됐다. 그것만으로도 목구멍이 쓰라려 인상을 찌푸렸다가, 표정이 나쁘다고 지적이라도 당할까 봐 애써 폈다.

별수 없이 비루한 목소리를 내어, 내가 말했다.

“여기 음식은 전부… 비쌉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거지처럼 살아와서요.”

재차의의 대답은 늘 그렇듯 빨랐다.

“그래. 그런데 뭐. 어차피 네가 계산하는 것도 아닌데 그게 왜?”

“…….”

그 말에 내 머릿속이 표백됐다. 조약돌에 정수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배신감이 더럭 들어, 나는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제가 계산하는 게 아닙니까?”

“네가 계산해야 하는 줄 알았어?”

아니, 그게, 아니…. 아니…. ‘아니’ 하는 매가리 없는 메아리만이 내 안에서 울렸다.

‘난 정말 그런 줄로 알고… 사흘 내내 에너지바로 배를 채웠는데….’

이제야 하는 투정이지만 그 에너지바는 대슈망의 최대 실수이자 최악의 단점이었다. 그따위 음식은 감히 비상식량이라고 불릴 가치가 없다. 양도 적고 열량도 부족한 그 에너지바는 못 만든 쿠키나 다름없었다. 빌어먹을 건포도는 왜 패키지마다 랜덤으로 들어 있는 건지, 기습 공격도 아니고 뭔…. 그까짓,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보라색 포장지 외엔 예쁜 점이 하나도 없는 에너지바를 먹느니 알사탕 없는 건빵을 먹는 게 천배 만배 나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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