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당황하여 상황을 살필 새도 없이, 나를 태운 릴리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커다란 릴리에 탄 사람이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종석이 텅 비어 있어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솔직히 말해 외로웠다.
“하….”
이, 불필요한 공간 낭비에도 다 뜻이 있고 이유가 있는 걸까? 윤희수 말로는 S급이라 모시는 거라는 둥 하지만, 왜 내가 불편해서 먼저 양보하는 일조차도 불가능한 건지 도통 이해가 안 됐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속은 답답했다.
나는 릴리의 뒷좌석에 등을 깊이 파묻었다.
‘재차의는…, 그럼 언제 돌아오는 거지?’
혹여 재차의의 모습이 보일까 싶어 나는 차창에 얼굴을 댔다. 내 걱정이 부질없게도 릴리는 곧장 게이트 밖으로 달려 나갔다. 전에 비해 현실적이고 익숙한 차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악몽 같고 진득한 덫 같던 게이트 밖으로 손쉽게 빠져나온 것이었다.
안도감에 한숨을 쉬면서도 나는 완전히 긴장을 풀진 못했다.
‘이런 건 이상해.’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재차의가 대단하고 강한 파수꾼이라 해도 그에게 모든 걸 다, 그야말로 전적으로 맡겨 버리곤 ‘우린 필요 없으니까’ 하며 곧바로 내빼는 건 좀…. 같은 인간으로서 비겁한 일이 아닌가… 하고.
신호를 무시하며 질주하는 릴리 안에 앉아, 대슈망 센터에 돌아갈 일을 생각하자 나는 빠르게 우울해졌다. 재차의와 함께일 때엔 그에게 온 신경이 집중되어 미처 몰랐는데, 혼자가 되어 그 큰 건물로 돌아가 인파투성이 복도를 가로지를 생각을 하니 ‘평범하게 걷는 거, 어떻게 하는 거더라’ 하는 얼빠진 고민마저 들었다.
내 사정을 봐줄 일 없는 릴리를 대신하여, 낯선 사막에 혼자 떨어질 각오를 얼른 마쳐야만 했다.
***
비몽사몽간에 보이는 것이라곤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검은 덩어리뿐이었다. 잠결에 나는 그것을 강아지라고 생각했다. 왜 강아지가 내 방에, 내 얼굴 옆에 있지? …그렇게 착각하며 손을 움직였다.
“아. 깼어?”
그러자 대뜸 강한 손길이 내 손을 낚아채 가져갔다. 그리고 여태껏 강아지라고 착각했던 덩어리에 가져가 붙였다. 손금 가득 축축하고 더운 살결이 닿는 느낌에 순식간에 잠기운이 달아났다. 눈앞이 대번에 선명해지고, 내 손안에 쥔 살 기둥이 뚜렷해졌다.
그리고 제 좆을 움켜쥐고는 쓱쓱 문지르며 자위 중인 재차의가 보였다.
“하아…. 송모래. 잘됐다. 내 것 좀 빨아 줘.”
재차의가 말했다.
그의 손아귀에 잡혀 억지로 앞뒤로 움직거리는 손이 남의 것 같다. 조금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그저 꿈 같았다. 이게 현실일 리가 없지 않나.
스티치가 필요하다던 게이트에 재차의만 내버려 둔 채 릴리를 타고 귀환한 게 벌써 사흘 전 일이다. 그가 부재하는 덕에 내게도 따로 떨어진 임무가 없었다. 안후이 부장이 말하기론 ‘적응 기간’이고 실질적으론 칩거 기간이었다. 방 밖으로 나설 때마다 오가는 시선이 부담스럽고, 때론 눈총 같기도 해서 쥐 죽은 듯 숨어 지냈다. 방문객이라곤 어제 오후, ‘드디어 게이트 핵을 발견했다더라’하고 스티치가 시작됐음을 알려 주러 온 문소여뿐이었다.
그 덕분에 이틀간의 불면증이 싹 가셨다. 끔찍한 괴수의 모습을 상상하고 재차의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추측하느라 날을 새 온 탓에 심리적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제부턴 훔쳐 온 에너지바도 다 떨어져서 깨어 있으면 배가 고팠다. 그래서 종일 잠만 잤다. 꿈도 꾸질 않고 잘 잤다.
그런 중에 내게 왜 재차의가 찾아오겠어…? 지금쯤 게이트에서 핵을 부수고 있어야 할 사람인데. 귀환한다는 소식도 못 들었는데….
무엇보다도, 사람의 성기가 이렇게 크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악몽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현실이 너무 지독해서 그 연장선으로 꾸는 악몽이라고.
“너 잘 때 몰래 물릴까 했는데, 그럼 네가 질식해도 내가 눈치챌 수가 없어서 참았어.”
나 잘했지? …재차의가 묻는다.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목이 아팠다. 흥분으로 두 귀가 붉어진 채 웃는 낯이 보기 좋았다. 빌어먹게 잘생긴 그 미모만큼은 지독하게 현실이었다.
‘꿈이 아니야.’
나는 잡혔던 손을 허둥지둥 뒤로 빼냈다. 그리고 물었다.
“어…, 어떻게 돌아오신 겁니까?”
“테라스로.”
재차의의 대답은 아주 빨랐다. 게이트에서 어떻게 귀환했냐는 질문이었는데, 내 방으로 어떻게 침입했냐는 소리로 잘못 들은 모양이었다. 그 말도 충격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여긴 8층인데, 어떻게….’
더 큰 미스터리에 잠긴 내 코앞에,
“자, 얼른.”
재차의는 제 급한 용무를 들이밀었다.
순간 그의 성기가 내 턱과 뺨에 닿았다. 무서운 마음이 들 만큼 큰 것도 문제였지만 생김새도 문제였다. 재차의의 얼굴은 미운 구석을 찾아 볼 수 없게 아름다운데, 그의 성기는 흉악스럽다는 인상을 풍길 정도로 사나웠다. 귀두의 굴곡이 크게 울퉁불퉁한 데다 기둥에 돋은 핏줄이 성난 식물 뿌리 같았다. 저걸 강아지라고 착각했다니, 지나가던 개가 억울해 울겠다.
일순 지난번 매칭 테스트가 떠올랐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 미처 몰랐다. 이렇게 끔찍한 물건이 내 몸 안에 들어왔을 줄이야…. 주먹을 처박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도, 정말 주먹만 한 물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날을 떠올리자니 몸이 찢겨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게 이상했다. 그리고 오늘, 저런 물건을 입에 처넣었다간 목이 찢겨 죽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
“…….”
섬뜩한 마음에 나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내 옷의 상태가 이상했다. 잠옷 상의가 가슴팍에 끈적하게 들러붙은 게 유독 무겁고 축축했다. 고개 숙여 살피자 어슴푸레한 빛에 탁한 백색 액체가 번져 보였다. 내가 잠든 새에… 재차의가 내 몸에 대고 자위한 흔적이었다.
“욱….”
토기가 치밀어 입을 벌리는데, 대뜸 머리 가죽이 벗겨질 것처럼 세게 당겨져 아팠다. 내 머리채를 움켜쥠과 동시에 재차의는 내 입에 제 귀두를 밀어 넣었다.
“…읍!”
제자리에서 펄쩍 뛰도록 놀라, 나는 그의 허벅지며 배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투닥투닥 두들기는 수준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처박다시피 휘두른 주먹이었다. 약간의 분노와 큰 짜증, 공포감이 섞인 반항이었다.
그러나 재차의는 꿈쩍도 않았다. 퍽, 퍽… 단단한 허벅지를 연신 치는 소리가 울려도 그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
“으음.”
만족스러운 소리를 냈다. 그와 함께 내 잇새로 밀려들어 온 그의 단단한 귀두가 혓바닥에 문질러졌다.
“…우, 우윽…!”
짙은 살냄새에 화약 냄새 같은 것이 섞여 기분은 역하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내가 흘린 침과 재차의의 성기에서 나온 체액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내 내 입 안에서 쓱쓱 문질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가 제 성기 끝을 내 혓바닥이며 안쪽 볼에 대고 마찰시키며 자위하는 소리였다.
“욱, 흐…읍!”
무기력한 감각에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화가 났다.
뺨을 맞아 죽을 것을 각오하고 나는 입을 다물려고 노력했다. 이를 악물어 그의 성기를 씹어 버릴 작정이었다. 콱 깨물어 잇자국을 내면 그도 이건 못 쓸 입이구나 하고 나를 내버려 두겠지 소망했다.
내가 힘주어 앞니를 콱 다물자마자, 재차의가 놀란 듯 소리 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아파하는 비명도 화를 내는 욕설도 아니었다.
“아! 송모래.”
감탄사. 그저 감탄사였다.
‘…….’
온 힘을 실어 허벅지며 배를 쳐 대도 꿈쩍 않은 것처럼, 그는 성기를 깨물리고도 조금도 아파하질 않았다. 오히려 기분 좋은 자극에 열과 흥분이 오른 듯 볼을 붉혔다.
머릿속이 파랗게 질린 내 턱을, 재차의가 콱 움켜쥐었다.
“윽!”
단숨에 내 머리통은 그의 커다란 손안에 든 공이 됐다. 사태 파악이 잘되지 않아 나는 벌벌 떠는데, 재차의는 웃었다. 웃는 얼굴로 그는 내 뒤통수를 아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내 머리통을 제 샅에 대고 처박다시피 세게 당겼다.
“왜 이제야 내 눈에 띈 거야? 응?”
“컥…!”
굵은 성기가 내 목젖을 치며 목구멍 안으로 단숨에 밀려 들어왔다. 턱이 빠질 것 같다. 자진해서 입을 크게 벌리는데도 더, 더 크게 벌려야만 했다. 눈을 바로 뜰 수가 없고 코가 꽉 막혔다. 숨이 막혔다.
“찾아내느라 고생했잖아.”
“흐으, 욱, 욱…!”
재차의가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앞뒤로 흔들어 댔다. 커다란 성기가 내 목구멍을 강제로 채우며 치밀어 들어왔다가 빠져나갈 때마다, 목젖이 튀어나오는 게 느껴지고 침이 물처럼 줄줄 흘렀다. 피가 쏠린 머릿속을 포함하여 얼굴 전체가 다 아팠다.
“…으, 컥, 커헉….”
팔다리를 바르작거리며 그를 치고, 차고, 꼬집어 댔다. 눈도 똑바로 뜨지 못하고 허둥지둥 반항해 댄 끝에 나는 침대 위에 널브러졌다. 종국에 내 열 손가락은 재차의의 허리 위를 미끄러지듯 긁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