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17)화 (17/76)

17. 

어린 개 다루듯 쓰담쓰담 움직이던 그 손길은 그러나 곧 변했다. 내가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그는 악동처럼 웃으며 내 볼살을 꽉 꼬집었다. 그러더니 빵 반죽하듯 주물럭대기 시작했다. 커다랗고 거센 손길에 볼이 양쪽으로 쭉 늘어났다.

“…….”

나는 미간을 구기며 그를 노려보는데, 그는 아주 재밌는 것 본다는 양 소리 내어 웃었다. 커다란 덩치에 나이조차 불분명한 남자의 눈동자가 악동처럼 반짝거렸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이 아직 새로운 어린애 같다.

“이… 어….”

입을 벙긋거리며 말을 하려는데, 볼이 늘어난 만큼 입술이 팽팽해져 쉽지 않았다. 이맛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잘게 흔든 뒤에야 재차의의 손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볼이 온통 홧홧했다.

“기억…. 정말 지워 주실 수 있는 겁니까?”

이왕 놀림당하는 김에 더 부끄러울 게 있겠는가. 나를 골려 줄 의도로 대충 던진 떡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물었다. 비단 오늘 당한 급습이 아니더라도, 내겐 지우고 싶은 기억이 아주 많았다.

그러자 재차의가 즉답했다.

“아니.”

그러더니 그는 침대 밖으로 훌쩍 뛰어나갔다. 너른 방 안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면서, 온통 커다랗고 화려한 가구들을 구경하는가 싶더니 와인 바가 놓인 자리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찾아온 것은 술이 아니었다. 보라색 파일철 하나를 집게손가락으로 대충 들고서, 재차의는 노래하듯 말했다.

“한번 해 볼까 했는데 지금 보니까 안 되겠어. 내가 건드리면 네 머릿속, 완전 녹아 버릴걸.”

“…제가 문제란 뜻입니까?”

“네가 나를 믿지 않는 게 문제라는 거지.”

이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헛소리지?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왜 내 탓을 해? 아니…, 그럼 재차의는, 내가 저를 철석같이 믿을 줄 알았나? 세상천지 믿을 놈이 따로 있지. 내가 미쳤다고 그런, …추잡스러운 짓을 당해 놓고도 재차의를 믿겠는가.

황당한 말로 내 탓을 하며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속닥거렸다.

“부수는 건 쉽지만 고치는 건 그렇지 않거든.”

이내 보라색 파일이 이불 위에 던져졌다. 나는 내 종아리 위로 툭 떨어진 파일을 서슴없이 열어 보았다. 파일 밖으로 삐져나온 사진부터가 이미 나의 중학교 졸업 사진이라, 그 내용물이 ‘송모래’에 관한 것이라면 내가 못 볼 것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너에 대해 좀 알아보라고 해 뒀더니, 그 자료를 자기들끼리 돌려 본 모양이야. 널 공격한 덜떨어진 가이드도 마찬가지고.”

재차의가 말했다. 충분하진 못한 설명이었지만, 이해하긴 어렵지 않았다. 내 출신이며 급을 따져 대던 가이드의 목소리를 생각하자면 그랬다.

‘그렇구나….’

파일 속에는 내 비루한 과거가 요약되어 담겨 있었다.

나는 증명서니 등록증이니 하는 것들이 싫다. 그것들은 모두 차가운 언어를 쓰며 사람을 압축시켜 놓는다. 특히나 송모래라는 사람은 압축하여 보았을 때 워낙 볼품이 없어 더욱 싫다.

그렇게나 험한 일을 겪고도 나는 그, 대기조 가이드가 이해됐다. 나조차도 구태여 찾아 보길 싫어하는, 내 보잘것없는 경력을 확인하였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싶었다. 그런들 용서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게이트 사고로 부모, 형 하나, 동생 둘을 잃었다고?”

재차의가 질문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듯한 목소리기에, 나는 ‘네’ 대답하고는 말았다.

그의 말대로다. 6년 전 더운 여름날, 빌어먹을 ‘게이트’가 대뜸 열려 수백 명의 사람을 집어삼켰다. 게이트 내부의 풍경이 꼭 시골 마을 같아서, 처음엔 그곳이 게이트 안인 줄도 몰랐다. 그저 길을 잃은 줄로만 알았지.

‘모래야. 모래는 엄마 아빠랑 있자.’

내 어깨를 단단히 붙잡던 부모님의 손이 이제는 오래된 꿈 같다. 과거인지 망상인지 분간되지 않을 만치 아주 희미하게 생각난다. 형과 두 동생을 떠나보내면서 부모님은 나만큼은 놓지 않고 꼭 끌어안았었다. 나도 그 포옹에 보답하여 어색하게 손을 뻗어 아버지의 등을 토닥거렸다.

결국에 나는 살아남았다. 나만 살아남았다. 살아남아서, 하찮은 등급의 덜떨어진 가이드가 됐다.

회상에 잠길 새도 없이 재차의가 새 질문을 툭 건넸다.

“가이드로 정식 등록 한 것도 스무 살인데, 발현도 이때 했나?”

“발현은 열여섯 살에 했습니다.”

당시 내가 가이드라는 걸 아는 사람은 가족들뿐이었다. 어차피 등급이 낮은 가이드여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니 급하게 등록증을 받으러 불려 다닐 필요가 없었다. 파트너는 암묵적으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평소 ‘모래가 가이드라면 참 좋을 텐데’ 노래를 부르던 아버지의 친구, ‘삼촌’이었다.

“첫 뉴타입은 장건표. 그때부터 이놈이랑 파트너였고?”

재차의의 물음에,

“네.”

입 안이 떨떠름해졌다.

평생 삼촌이라 불러 온 사람을 장건표라는 이름으로 지칭하려니 퍽 낯설다. 그는 아버지의 대학 동기이자 C0급 뉴타입으로, 용병대장이었다. 덜 자란 내 눈으로 보기에도 그가 용병대장이라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체구가 그리 크지도 않고 몸매도 근육질과는 거리가 멀어서, 외모만 보아서는 교수나 선생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는 진작부터 내가 가이드임을 알았던 것 같다. 형제들 가운데 나만을 유난히 예뻐하며 ‘가이드가 되면’을 전제로 한 칭찬이며 미래 계획 따위를 건넨 걸 보면 뻔한 일이다. 내 가이드 등록을 유야무야 미룬 데에도 그의 입김이 작용했다.

그렇게 열여섯 살 시절부터 간간이 그에게만 가이딩이라는 걸 해 줬다. 매칭률이 얼만지, 효과가 있기는 한지, 가이딩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했다. 당시에야 그 ‘가이딩’이란 게 삼촌이 부탁하며 시키는 대로, 내 방에서 그의 손을 잡아 주거나 포옹을 하며 몇 분을 보내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섹스도 했고?”

“…….”

부모님과 형제들을 모두 잃은 그날부터 삼촌은 변했다. 하필이면 장례식장에서부터 변해 버렸다. 향냄새가 나는 조그마한 방 안에서, 삼촌은 내게 약을 먹이고 주사를 놨다. 나는 내 이상의 원인이 그저 슬픔 때문인 줄 알았다. 슬픔에 절어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많이 울었기에 열이 오르고, 오래 못 잤기에 이성이 거뭇거뭇한 줄 착각했다.

삼촌은 내 몸 위에 올라타 제 바지를 벗었다. 그날 이후 4년 동안, 그가 내게 준 것이라곤 추잡스러운 기억과 사채 보증으로 떠밀려 온 빚더미뿐이었다.

지난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날 향해, 재차의는 불똥을 꽂은 화살 같은 말을 쏘았다.

“그런데도 좆 받기가 수줍어?”

황당한 소리에 얼굴로 열이 확 올랐다. 들은 말을 이해할 새도 없이 폭언이 이어졌다.

“가랑이야 많이 벌려 봤을 거 아냐. 장건표가 죽은 게 2년 전인데, 이 2년 동안 너한테 가이딩 받은 용병만 서른 명이 넘던데.”

“아…니, 꼭… 꼭 섹스를 해야만 가이딩이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E급 주제에 섹스도 안 하면, 가이딩의 의미가 없잖아.”

머릿속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 말에는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에 그랬다. 표현이 아주 재수 없을 뿐이지.

“그리고….”

불쑥, 재차의가 침대 위로 올라왔다. 네발로 기다시피 하며 그는 내게로 다가오더니 말릴 새도 없이 손을 뻗었다. 커다란 손이 곧바로 내 바지 중심부를 움켜쥐었다. 흰 바지와 팬티 속에 숨겨진 성기를 찾아 쥐는 손이 뜨겁고 무거웠다.

“네가 이렇게 꼴리게 생겼는데 왜 안 해? 다들 했겠지. 어디 박기만 했겠어? 네 생각에 다음 날까지 딸을 쳤을걸. 반응도 귀엽고 속도 꽉꽉 조이는 게… 매번 그렇게 처음인 척 아양을 떨었을 텐데.”

…지금 누구 이야길 하는 거지? 그따위 헛소리는 정말이지 처음 듣는다. 머릿속이 빨개졌다가, 까맣게 타 버렸다가, 파랗게 질리길 반복했다. 수치심이 더럭 들어 부끄러웠고, 왜 내가 부끄러워야 하느냐는 반발심에 화가 났다.

“…….”

그런데 입이 열리질 않는다. 입술이 꽉 닫히고 윗니와 아랫니가 딱 달라붙어서는, 속에서 차오른 억울한 열불을 토해 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오히려 몸에서 힘이 쭉 빠지려고 했다.

눈을 질끈 감고 팔을 휘둘러, 나는 사타구니에 들러붙은 재차의의 손을 떼어 내려 했다. 그런데 꿈쩍도 하질 않는다. 오히려 그는 내 두 손을 제 손등에 얹어 놓고서 자위하듯 손을 움직여 댔다. 구깃구깃해진 바지 위로 성기의 윤곽이 얼핏 보였다. 그 위를 재차의가 손바닥으로 쓸어 댔다. 귀가 뜨겁다. 속이 다 타 버릴 것 같다.

대체 이… 추잡스러운 착각이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모르겠다. 내가 누구 앞에서 가랑이를 벌리고 아, 아양을 떨었다고…. 처음인 척 연기한 적은 추호도 없었다. 애초에, 애초에 그런 일은 내게 일어난 적이 없었으니까.

여태껏 만나 온 뉴타입이라는 놈들이 나와 하지 못해서 안달인 건 사실이다. 재차의가 언급한 서른 명의 용병 모두 섹스를 거절하자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투덜대기 바빴었다. 하지만 입장이 반대다. 하나같이 제 엉덩이를 까고 달려들었다는 말이다.

‘재차의는 눈이 삐었나?’

지난 새벽에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한건 그 어린 새끼를 창문 밖으로 집어 던지기 직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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