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15)화 (15/76)

15. 

툭, 툭.

바닥에 대고 잿가루를 털어 내는 그의 구둣발 두 짝이 내 운동화 앞에 멈췄다. 왠지 입술이 떨렸다.

모난 몰골로 부르르 떨며 마주 본, 재차의는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인 채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게이트에 다녀온 건 나인데….”

반나절 사이 그의 목소리는 다시금 힘을 되찾았다. 생경한 존재가 풍기는 매서운 기세가 느껴졌다. 그의 음성이 또 한 번, 난생처음 듣는 소리 같다.

“왜 다친 건 송모래지?”

그의 어깨 너머로 다가오는 직원들이 보였다. 안후이 부장을 필두로 정장을 차려입은 사내 둘이 함께였다. 안 부장은 두 눈이 휘둥그렇게 커져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 같았고, 사내들은 입을 꽉 다물어 턱이 딱딱하게 두드러져 보였다.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문소여도 그들 뒤를 따랐다. 일순 문소여와 시선이 마주쳤는데, 그의 눈동자 안에 든 걱정이 너무 커다래서 내가 다 두려울 정도였다.

재차의를 향해 원을 그리는 듯 우르르 다가오며 모두 바삐 말했다.

“재차의 님. 전부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자리 비우신 사이에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불찰로….”

와글와글 쏟아지는 목소리가 폭풍우 같다. 이어질 소란을 예감하며 나는 눈을 꾹 감았다. 타인의 숱한 시선이 재차의를 거쳐 내게 꽂히는 게 부담스럽고 따가웠다. 내 얼굴, 상처며 흉터, 후처치와 인생을 평가할 상황에 숨이 막혔다. 다닥다닥 달라붙는 눈짓엔 물리적인 힘이 실려 있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당장 도망칠 순 없으니 차라리 눈 감는 수밖에 없다. 귀를 움직여 닫을 수 있었더라면 그랬을 거다. 가진 등딱지라도 있었더라면 불쏘시개에 찔린 거북이처럼 숨어들었을 거다.

딱 그만큼, 나는 아웃사이더이고 싶었다. 이 필드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장에 깃발처럼 세워져서 남들 외침을 듣고 있느니….

그리고,

“…….”

사방이 고요해졌다.

잠시간 나는 바보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다. 내가 진짜로, 눈에 이어 귀를 닫는 데에 성공했나 싶었다. 그러나 주춤거리며 눈을 떴을 때 닫혀 있는 건 내 귀가 아니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입이었다.

안후이 부장도, 사내들도, 파수꾼인 문소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 입을 꽉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에서 당혹감과 약간의 공포, 낭패가 흘렀다.

“…….”

무어라 말하고자 노력하는 듯, 정장을 입은 직원이 윗입술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그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나도 그들을 따라 파란 하늘을 한 번 살폈다. 그러나 맑은 하늘에는 헬기가 남긴 거품 같은 비행운이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다시 시선을 내려 제대로 관찰해 보니, 모두들 고개는 높이 추켜들었되 눈동자는 정면을 향해 있었다. 정확히는 재차의를 향해 있었다.

이내 왼쪽에 선 직원이 팔과 다리를 꿈틀거렸다. 반항하듯 발로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침묵 속에 울렸다. 그와 동시에 안후이 부장이 질끈 눈을 감았다. 어떤 좌절을 예감한 듯한 그녀의 표정에 내 심장이 다 철렁했다.

그리고 픽, 그들 모두 밑동을 찍힌 나무처럼 옆으로 쓰러졌다. 당혹감에 나는 반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쓰러진 사람들을 도와줄 ‘대기조’는 없었다. 그들 또한 흰옷으로 남색 바닥을 뒤덮은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이었다.

이제 헬기장엔 아무런 소리도 남지 않았다. 모두에게 한 발의 총이 각각 쏴진 것만 같았다. 쓰러진 이들 모두 급사하기라도 한 듯 신음 한번 내질 않았다. 누구 하나 손가락 하나 미동이 없었다. 당혹감에 눈을 굴리는 내내 나는 그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전부 깨어 있다. 눈동자를 굴리고, 미간을 찡그리고, 식은땀을 흘리면서….

‘이게… 뭐야?’

섬뜩섬뜩한 느낌에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기현상의 원흉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내 앞에 무표정한 낯인 재차의만큼은 여전히, 기다란 그림자가 바닥을 덮도록 기립한 채였으므로.

도대체 무슨 능력을 어떻게 쓴 건지 모르겠다. 그 흔한 주문을 외는 말, 힘을 쓰는 움직임, 하다못해 손짓 하나 없었다. 이런 권능을 지닌 뉴타입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 없다. 속았다.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세간에 알려지기로 염력과 천리안, 괴력이라던 재차의의 능력은 그저 보여 주기식 일면에 불과했다.

나는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재차의의 손을 그저 쳐다만 봤다. 손끝 한번 구기지 않고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얌전히 굳어 있기만 했다. 내겐 아무런 외압도 주어지지 않았으나, 그냥 그렇게 했다. 숨 막히도록 느릿느릿한 손길로 재차의는 내 얼굴을 감싼 붕대를 풀었다. 놀라울 만큼 조심스러워서, 내 피부 위엔 그의 지문 한 줄 닿지 않았다. 내겐 갑주처럼 느껴지던 가벼운 붕대가 소리 없이 발치로 떨어졌다.

문득 낯선 가이드의 표독스러운 외침이 귓가로 메아리쳤다. 잘난 얼굴이 없어졌으니 대기조에도 들기 힘들 거라 그랬던가. 몸이나 파는, 고깃덩이라던가….

재차의가 내게 입 맞췄다.

떨리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리고 재차의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내 턱이 천천히 벌어지고, 재차의의 혀가 입 안으로 침입해 들어왔다. 입술이 단단히 마비된 탓에 그 감각은 내 입천장을 훑어 내릴 때에서야 선명해졌다.

단순히 가이드가 필요한 것뿐이라고, 필요에 의해 나누는 입맞춤일 뿐 사적인 감정은 없다고 쉬운 오해를 하고 싶었다. 그래도 그럴 수 없었다. 내 시선을 빤히 가져가는 재차의의 두 눈동자가 너무나 이지적이었다. 그의 컨디션은 한 치의 구김 없이 아주 좋았다. 흥분 상태라던 말은 다 틀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재차의는 누구보다도 안정된 상태였다. 파수꾼을 포함한 수많은 인원을 상대로, 정확히 조절된 힘을 쓸 정도였다.

한참의 입맞춤 끝에 그는 내 입술을 핥았다. 나조차도 직시하기 힘들도록 변해 버린 내 입술을, 그는 사탕 빨듯이 핥아 올렸다. 그리고 웃었다.

이내 머리 위에서 ‘딱’ 소리가 울렸다. 낯선 소리를 쫓아 고개를 들자, 어느새 내 정수리 위에 자리한 재차의의 손이 보였다. ‘딱’ 소리는 한 손으로 유리병의 뚜껑을 따느라 낸 소음이었다. 조그맣고 하얀 뚜껑이 뚝 떨어져 내 이마에 한 번 부딪친 뒤 튕겨 나갔다. 뒤이어 쏟아져 내리는 건 하늘보다 더 푸른 액체였다.

놀란 눈을 크게 뜬 채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시야가 새파랗게 물들고 얼굴 전체가 흥건하게 젖었다. 머리 꼭대기부터 셔츠 안이 다 젖도록 많은 액체가, 콸콸 쏟아지며 나를 훑었다. 마비되었던 감각이 곧바로 예리해졌다. 눈꺼풀, 볼, 입술과 턱, 목울대가 소름 끼치게 간지러웠다. 아직 흉터조차 되지 못한 깊은 상처가 단숨에 낫는 감각은 피부에서 꽃이 피는 느낌과 비슷했다.

“아….”

놀란 탄성을 내지르며 나는 입술을 벙긋거렸다.

그리고,

‘이, 이 비싼 걸….’

안면으로 받아 낸 치료제의 값어치에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숨 들이켜는 법을 잊은 내게로 재차의가 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리고, 방긋.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이며 속삭였다.

“고마워?”

“…….”

“별로 안 고마워? 왜지?”

“…하.”

당혹감에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됐다. 혀를 어떻게 움직이는 건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연거푸 헛숨만 내뱉을 따름이었다.

“하, 하아….”

턱을 떨어 가며 힘겹게 내뱉은 내 한숨에, 재차의는 기쁜 듯 안색을 밝혔다. 아주 행복한 사람처럼 웃으며 그는 고개를 서서히 옆으로 기울였다. 그 움직임이 사람이 아닌 동물 같다. 눈앞에 놓인 낯선 먹잇감의 가치를 재 보는, 포식자 같다.

“얼…마.”

한참 숨을 고른 끝에, 내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빈약했다.

“…얼맙니까? 지금 써 버린, 약….”

그러자 잇새로 스며드는 용액의 맛이 달콤했다. 평생 맛본 적 없는, 무어라고도 형용할 수 없을 만치 달고도 단맛이었다. 과연 천사의 눈물이라 불릴 만했다. 맛있다…. 무서울 만큼 맛있다. 사채업자 형님의 협박처럼, 내 장기를 다 꺼내어 팔고 눈알까지 팔아 치운다 한들 이 맛의 가치는 지불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값어치를 인정할 만한 맛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술 새를 한 번 더 핥았다. 그러나 더는 혓바닥에 묻어나는 액체가 없었다. 대신에 내 아랫입술이 전보다 더 불룩하게 느껴졌다. 치료제는 전부 내 안으로 스며들어, 코가 되고 뺨이 되고, 입술이 된 지 오래였다.

“‘얼마’? 글쎄.”

복잡한 충격에 빠진 나에게 재차의가 속삭였다.

“송모래가 평생 금연하는 대가.”

그와 동시에 내 몸이 크게 기우뚱했다. 온몸의 기운이 충만해지고 발끝까지 혈기가 팽팽 도는 감각이, 졸음과 함께 닥쳐왔다. 몸이 무너지기 전에 시야부터 암전됐다. 마지막으로 느낀 감각은 내 가슴팍 위를 가로로 받쳐 붙드는 강한 팔 힘이었다.

‘아, 안 돼….’

그리고 생각했다. 금연하기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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