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나는 퍼석퍼석한 혀를 재차 움직였다.
“저, …거울 좀.”
그러자 반가운 듯 화색이던 문소여의 낯빛이 금세 가라앉았다. 힐끔힐끔 내 얼굴을 살피길 한참, 그는 느리게 고개를 내저었다.
“저어, 그게…. 지금 거울은 보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좀 더 치료한 뒤에….”
“주세요.”
내 요청은 한결같았다.
매트리스에 상체를 기대어 붙인 그대로 문소여는 얼어 버렸다. 그는 감정을 숨기는 데엔 소질 없는 사람이다. 이리저리 바삐 오가는 눈길만 보아도 그가 나를 안타깝게 여길 만큼 내 모습이 변했단 걸 알 수 있었다.
“송모래 님….”
기습을 당한 건 나인데, 절망한 듯 마음 아파하는 건 어째 문소여다. 만난 지 하루도 못 넘긴 사이에 대단한 친화력이며 감수성이었다. 그의 눈시울이 다시금 붉어져서 나는 오히려 뻘쭘했다. 그도 그럴 게, 우리가 서로를 위해 울어 줄 만큼 두터운 사이는 아니지 않나….
한차례 코를 훌쩍이더니 문소여가 거울을 가져왔다. 탁상에 세워져 있던 것을 다리만 접어 건네기에, 나는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았다. 그러면서 살펴본 내 손가락에도 밴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게 ‘각오하라’는 경고 같아,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그리고 거울을 곧게 들었다.
‘…….’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었다. 이마부터 목까지 붕대가 칭칭 감겨 있어 정확히 살필 순 없었지만, 붕대가 빈 틈새로 비치는 눈과 입술의 모양만 봐도 비참했다. 한 가지 좋은 점도 있었다. 오늘만 해도 혈기가 너무 없어서 지적을 받았는데, 앞으론 어느 누구도 내 면전에 대고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툭, 이불 위에 던지듯 거울을 내려놓았다.
“송모래 님….”
그저 멍하다. 딱히 화가 나지 않고 억울하지도 않다. 분노도 없고 우울도 없다. 그저 멍하다. 이 순간의 모든 게 남의 것인 양 머나멀게 느껴진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제가 잘 지켜 드렸어야 하는 건데…. 잠깐 새 그런 일이 생길 줄 몰랐어요. 매칭 테스트 결과가 언제 새어 나갔는지….”
아래턱이 덜덜 떨리도록 울먹이며 문소여가 말했다. 나는 그의 귀여운 얼굴을 무표정하게 바라만 봤다. 사실 뭐, 문소여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에게 말 한마디 붙이는 게 무서웠던 내 등신 같은 성격이 잘못이지. 전부 내 잘못이다.
그는 쥐고 있던 종이를 침대 매트리스 위에 대고는 손바닥으로 다림질했다. 그리고 내 무릎 위로 내밀어 보였다.
“송모래 님, S급 파수꾼 재차의와의 매칭 최댓값 ‘산출 불가’, 가이딩에 대한 저항력 0%로 최종 매칭 결괏값 100% 확정입니다…. 두말할 것 없는 전속 가이드입니다. 내일부터, 아니… 재차의 님이 대슈망으로 복귀하는 시점부터 파트너로 일하게 되실 겁니다.”
도무지 버려지질 않던 불안을 억지로 덕지덕지 매달고서, 오전 내내 기다려 온 매칭 테스트 결괏값이었다. 관찰 카메라라도 촬영 중인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믿기지 않는, 나에게 온 현실이라기엔 어울리지 않는 점수, 백 점이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몰라 나는 가만히 멈추어 있기만 했다. 대슈망의 문양이 배경 무늬로 프린팅된 서류를 읽어 보고, 또 읽어 보았다. 그래프를 읽는 방법은 잘 모르지만, 표 밖으로 삐져 나가도록 죽 그인 대각선이 좋은 뜻이란 건 알 수 있었다. 표에 적힌 글자와 수치들도 0, 혹은 100이라 단순 명료했다.
얼떨떨해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하는 날 향해, 문소여는 연신 따듯한 말을 건넸다.
“송모래 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재차의 님의 파트너가 되셨으니 센터에서도 적극적으로 치료를 도울 거고요, 그, 금방… 훨씬 좋아질 거예요. 대슈망, 특히 한국 센터의 의술은 어디보다 뛰어나거든요. 당장 지금만 해도요, 좀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어요.”
마음 써 전해 온 위로는 그러나 나를 더욱 어리둥절하게 할 따름이었다. 거울을 통해 본 내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데, 지금 이 얼굴이 전보단 나아진 거라니. 그럼 원래는 얼마나 나빴다는 거지? 커다란 호텔 로비에 우르르 모여든 사람들이 전부 내 모습을 구경했는데…. 내가 그런 첫인상으로, 이런 꼴로 이곳에서 일할 수 있긴 할까?
정신이 아득한 와중에 문소여가 홱 뒤를 돌아보았다. 꽉 닫힌 의무실 문을 노려보는가 싶더니, 그는 눈썹 끝을 축 내리며 날 향해 말했다.
“누가 왔어요, 송모래 님.”
그 중얼거림이 무얼 뜻하는지 나는 쉽게 알아차렸다. 아마 문소여는 지금도 제 능력을 써 나와 그를 타인과 차단해 둔 모양이다. 그러니 ‘누가 왔다’는 말로 상대를 향한 차단막을 내려도 되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공손한 집사처럼 눈치 살피는 문소여를 향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문소여가 허공에 대고 제 오른손을 추켜들더니, 꽉 주먹을 쥐며 팔을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반대편의 데스크 자리에 앉은 의사가 둘 보였다. 의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보라색 타이를 맨 낯선 직원이 등장하는 것도 거의 동시였다.
“송모래 님. 재차의 님께서 복귀 중이십니다. 스티치를 직접 마치고 오시느라 흥분 상태입니다. 헬기장에서 대기해 주세요.”
안내에 따라 나는 기계처럼 움직였다. 침대 밖으로 발을 내리고, 회색 운동화를 찾아 신었다. 그리고 이를 꽉 악물고 손끝, 발끝에 힘을 줬다.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더럭 들어 그랬다. 눈을 질끈 감고 억지로 일어서는데, 문소여가 대뜸 내 팔뚝을 붙잡았다.
“형.”
그러더니 전과 다른, 친근한 호칭으로 나를 불렀다.
“잘 들어요.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해요. 파수꾼과 함께 다니다 보면 부상은 비일비재해요. 흉터는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지만, 첫인상은 영원해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재차의 님을 제대로 맞이하세요. 모두에게… 형이 그분의 파트너라는 걸 보여 주러 가요.”
그 말에 ‘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내 첫인상은 이미 글러 먹었으니까.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남들에게 더욱 강하게 기억될 내 모습은 재차의의 파트너로 자리한 지금일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래. 차라리 지금 이 모습을 첫인상으로 남기는 게 낫겠다.
문소여는 긴장감 가득한 얼굴로 나와 함께 걸었다. 다정한 조언을 남기면서 그는 알았을까 모르겠다. 모든 일이 너무 빠르게 일어나서, 소심한 굼벵이인 내 정신이 미처 이 상황을 따라잡질 못했다는 걸. 현실 감각이 미취학 아동 수준인 나에게 오늘 일은 어른들의 토론회였다. 사실 나는 그저 노력할 뿐이었다. 고개 끄덕이고, 발맞춰 움직이면서, 분위기에 맞추려고 무진장.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승강기에 올라 헬기장으로 향하는 짧은 시간 동안 두통이 엄습했다. 그래도 다친 얼굴은 마비된 상태라,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재차의의 파트너라 그런가, 꽤 좋은 진통제를 놔 준 모양이었다.
내 착잡한 기분을 무시하는 듯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특이하게도 분홍색 비행운이 허공을 아주 길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재차의를 실은 헬기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다만, 상하의를 모두 백의로 맞추어 입고 줄지어 선 일고여덟의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를 쳐다볼 따름이었다. 그들은 옷차림이 같을 뿐만 아니라 장신구도 똑같았다. 하나같이 한쪽 귀에 새카맣고 작은 귀걸이를 걸고 있었다.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였다.
본능적으로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전부 가이드겠지, 재차의를 위한 ‘대기조’….
그들 옆으로 다가가 한 팀인 양 붙어 서기가 최근 들어 보인 가장 뻔뻔한 행동이었다. 빤한 시선과 아주 작은 수군거림을 마주하자니 손바닥에 땀이 찼다. 그런 와중에도 내심, 웃겼다.
‘이래서는 재차의가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겠는데….’
이런 꼴을 한 내가 ‘그’ 재차의의 전속 가이드라니,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 뉴타입 최강자, 모두로부터 사랑받는 파수꾼인 재차의의 파트너가 된 날, 나는 미라 꼴이었다.
달라진 내 모습을 보면 재차의도 크게 비웃을 성싶다. 나를 한결 멸시하고 혐오할지도 모르겠다. 가이드는 뉴타입을 비추는 거울이라는데, 재차의의 그, 남을 우습게 여기는 콧대 높은 성격에 지금의 나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대중의 눈을 피하느라 어디 골방 같은 데에 나를 가두어 놓고, 필요한 가이딩만 받아 간다 해도 놀라지 말아야지. 다녀오겠다는 한가로운 인사도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포옹 따위도 전부 집어치울 테지. …그렇게 짐작하자니 왠지 마음이 아팠다.
애써 이를 악물고 차렷 자세를 유지했다. 그리고 돌풍이 불었다. 강한 바람을 쐬자니 붕대 감긴 안면이 크게 쓰라려서, 눈을 똑바로 뜰 수가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아픔을 꾹 삼켰다.
다시 머리를 추켜들자 헬기가 보였다. 큰 소음 없이 순식간에 착륙을 마친 헬기는 상상했던 것보다 컸고, 언뜻 투명해 보였다. 몸체의 재질이 꼭 거울 같아서, 헬기장 바닥의 경계선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었다. 하늘을 나는 순간에는 밤에도 아침에도, 게이트의 내부에서도 쉽게 눈에 띄지 않을 듯했다. 기다란 테일기어 너머로 별관 옥상에 내려앉은 다른 헬기가 한 대 더 보였다. 재차의는 다른 이들과 분리되어 따로 이동한 모양이었다.
이내 헬기의 문이 부드럽게 옆으로 밀렸다. 바깥을 비추던 거울 면에 검은 구멍이 뚫린 듯한 착각이 일었다. 시커먼 사각형 속에서 재차의가 걸어 나왔다.
“…….”
다른 이들은 빠른 목소리로 그를 향해 인사를 건네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멀찍이 선 재차의의 시선이 곧바로 나에게 와 꽂힌 탓이었다. 착각인가 하고 쳐다만 보는데, 그는 제 옆으로 다가와 붙는 직원들을 전부 무시하며 나를 향해 직진했다. 성큼성큼 걷는 속도가 무섭도록 빨라서 내 시야가 순식간에 그로 가득 찰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