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12)화 (12/76)

12. 

잽싸게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문소여가 종알거렸다.

“아, 아하하…. 하긴, 재차의 님처럼 강한 뉴타입을 먼저 만나셨으니 제가 눈에나 차겠어요? 아하하….”

눈에 띄게 기가 죽은 탓에 그 목소리가 작위적으로 들렸다. 애를 써 짓는 가짜 웃음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좋진 않았다. 어중이떠중이 용병 무리에서도 뉴타입끼리의 서열은 존재했다. 대슈망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저 상냥한 직원인 줄 알았던 문소여가 대단한 뉴타입이라니…. 그를 향한 심리적인 거리가 더럭 멀어졌다. 그러면서도 재차의의 기운에 눌려 흠칫거리는 모양새가 별수 없이 가여웠다.

어리숙한 문소여의 표정에 나는 위로라도 해 주고 싶은데, 재차의는 차가운 말을 침 뱉듯이 던져 놓았다.

“송모래가 너 같은 약골 새끼를 왜 알아봐야 하지? 실전 파견도 못 가는 무능력자를 파수꾼이라 할 수 있나? 쓸 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쓰레기가 뉴타입인지 일반인인지 무슨 수로 구분해.”

“…….”

“차라리 가이드로 이직하지 그래? 대슈망보단 싸구려 여행지가 더 잘 어울리겠어. 이제 보니 관광 안내가 체질인 것 같으니까.”

“…….”

…아니, 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뼈를 때리다 못해 분지르고 갈아 버려 황천길에 소금 치는 독설이었다. 어째선지 문소여보다도 내가 더 시무룩해졌다. 욕만 안 했을 뿐이지 사람 뺨 치는 소리를 아무렇게나 뱉는 그는 어제와 똑같이 나빴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걱정이 무색하게끔 문소여는 쾌활한 남자였다. 그는 얼른 표정을 밝히더니, 새로운 말을 속사포로 쏟아 냈다.

“그치만 재차의 님. 다이브 가시는 길 아니에요? 스티치까지 도맡으신다면서요. ‘재차의는 건재하다’는 걸 보여 주어야 한다고 기자들도 불렀다던데….”

‘다이브’. 입구를 막 벌리기 시작한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기 전에, 먼저 게이트 안으로 뛰어들어 괴수를 처리하는 일을 말했다. 게이트의 심장이라 불리는 핵을 파괴하면 아예 게이트 자체를 닫아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 걸 ‘스티치’라고 불렀다. 영단어 그대로, 게이트 입구를 아예 꿰매 버린단 뜻이다.

나야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괴수가 활개 치는 게이트로는 자진하여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대슈망의 ‘기밀 사유’를 이유로 스티치 없이 남겨진 게이트가 늘어나길 바라 온 나였다. 그래야 청소 일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 피 냄새를 뒤집어쓰고 잔해를 끌고 다니며 죽은 땅을 밟는 게 내 일과였으니까. 그런 나로서는 아주 대단한 일을 별것 아닌 일과처럼 논하는 파수꾼들이 그저 신기했다.

“흠흠! 송모래 님을 궁금해하는 가이드가 아주 많아요. 파수꾼의 수는 그보다 더 많고요. 자제력 없고 콧대 높은 재수탱이 파수꾼들 말이에요. 그런 놈들이 함부로 접근하는 것보다야 제가 붙어 있는 게 낫지 않겠어요?”

나는 내심 문소여를 굉장한 수다쟁이로 인정했다. 재차의 앞에서, 그렇게 독한 폭언을 들어 놓고도 종알종알 쉼 없이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그랬다. 귀여운 얼굴의 볼살이 가만있을 새가 없다. 잡아당겨 보면 찹쌀떡처럼 유연하게 늘어날 게 틀림없었다.

라디오 청취하듯 그들 대화를 듣던 여유는 거기까지였다. 대뜸 몸을 돌린 재차의가 내 시야를 확 뒤덮었다. 두 팔을 뻗어 나를 제 품 안에 끌어안은 것이었다. 너른 가슴팍에 눈앞이 가려지고, 등에는 그의 두 손이 척 들러붙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커다란 그의 품에, 조그만 개라도 된 것처럼 안기자 소름이 올랐다.

자세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나는 주먹만 움켜쥐었다. 우두커니 차렷 자세로 굳은 내 등허리를 재차의는 한참 어루만졌다. 그러다가도 내 귓가며 목덜미, 뺨에 제 높은 콧대를 뭉개며 킁킁거렸다.

“이건 무슨 냄새지?”

“…….”

익히 들어 온 질문에는 나도 모르게 손이 움찔거렸다. 그러다가도 아침의 샤워가 생각나 다시금 마음이 안정됐다. 진한 장미 냄새가 풍기는 보디 워시 한 통을 다 쏟아부은 덕에, 내 몸에선 더 이상 폐허가 된 게이트의 더러운 잔해 냄새가 나지 않았다.

재차의가 맡은 냄새의 정체는 따로 있었다.

“송모래. 담배 피워?”

“네.”

“끊지 그래.”

“…….”

싫은데요?

그런 의미를 담아 침묵했다. 내가 그 귀한 돗대를 여태껏 아끼다가, 누구 때문에 피웠는데 그딴 소리를 해? 당장 재차의의 포옹을 받으며 귓속말에 떨고 있자니 다시금 담배가 고파 온다. 오늘 둘러본 별관에도 본관에도 흡연실이나 담배 자판기가 없는 게 한이 될 지경이다.

재차의는 아주 길고 무거운 눈치를 내게 줬다. 숨결이 닿도록 가까운 거리에서 옆얼굴을 빤히 보는 눈총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버텼다. 그러자 탐탁지 않다는 듯 내쉰 콧김이 뺨의 털에 닿았다. 오싹해져 어깨를 부르르 떠는데, 그는 두 팔로 나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같은 포옹을 두 번 당했다간 송모래 착즙 주스가 될 것만 같다.

숨이 막혀 컥컥거리는 내 귀에 대고 재차의가 속삭였다.

“다녀올게.”

대뜸 건네 온 인사말이 짐짓 다정했다. 불행하게도 나는 ‘다녀올게’ 하는 가족의 인사를 들어 본 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 말에 어울리는 대답이 뭔지 떠올리지 못했다. 딱딱하게 닫힌 입안에서 혓바닥이 입천장에 들러붙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재차의는 내 침묵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곧바로 고개를 틀어 문소여를 향해 명령했다.

“송모래 잘 지켜.”

재차의는 왔던 것처럼 휙 떠났다. 그가 있던 자리에 남은 것이라곤 미소가 조금은 어색해진 문소여와 전신이 얼얼한 나, 둘뿐이었다.

파수꾼이라는 정체를 알게 되고 나니 더는 문소여의 안내가 편하지만은 않았다. 재차의야 그를 약골 새끼, 무능력자, 쓰레기라 일컬었지만 아무튼 A0급 뉴타입이 아닌가. 귀중한 인력을 괜히 나에게 허비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다른 한편으론 그가 뭘 하며 시간을 보내든 내가 이래라저래라 입을 댈 일은 아니라 생각되어, 가자는 대로 가고 하자는 대로 하며 말이나 잘 듣기로 다짐했다.

문소여는 그런 나를 호텔로 데려갔다. 대슈망의 본관 바로 뒤편에 우뚝 선 고층 건물이었는데, 나는 건물 안에 들어서자마자 호텔 특유의 분위기에 몸이 얼어 버렸다. 팔각 소반 형태의 나무 의자와 기와를 철갑처럼 두른 호랑이 조각상이 놓인 로비에 멈추어 서, 당혹감에 문소여를 힐끔 살폈다.

‘왜 호텔에 왔지…?’

힘차게 앞장서 걷던 문소여는 금세 내 미심쩍은 기색을 알아챈 듯했다. 특유의 웃음소리를 ‘아하하’ 내면서 그가 말했다.

“3층부터는 파수꾼과 가이드 숙소로 제공되고요, 1층엔 스튜디오가 있거든요. 기자들 불러 모을 때나 사진 촬영할 땐 거길 주로 써요.”

‘아아….’

그제야 내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한편으론 미안하고 또 부끄러웠다. 굴러 본 게 똥 밭이면 똥 냄새만 맡을 줄 안다더니, 내 꼴이 딱 그랬다. 평생 만나 본 뉴타입이라곤 가랑이 벌리고 달려드는 놈들뿐이라, 문소여가 알아차렸더라면 내 뺨을 치고 화를 낼 걱정을 해 버리고야 말았다.

아. 다시 생각해 보니 모든 뉴타입이 그러지는 않았다…. 재차의는 그와 반대였으니까.

“이리 와 앉으세요.”

문소여를 따라 도착한 스튜디오에는 다행히 사진사가 존재했다. 하얀 배경지를 내려 둔 자리 중앙에 높다란 바 체어가 하나 놓여 있었다. 안내에 따라 나는 그 앞으로 가 앉았고, 눈치껏 셔츠 단추를 맨 위까지 채웠다.

“대슈망 소속으로 송모래 님 새 신분증이 발급될 거라서요. 거기 들어갈 프로필 사진 찍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인생이 불신 지옥이라 그런가, 문소여의 말도 재차의의 태도도 내가 이곳에 발붙일 가이드임을 확신하는 듯한데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새 신분증이니 전속 가이드이니 하는 말들이 영 내 것 같지 않았다. 믿을 건 매칭 테스트 결괏값뿐이었다. 그 값이 1% 이상임을 전해 들어야만 안심이 될 것 같다.

굉장히 값나 보이는 카메라를 두 손에 받쳐 들고, 사진사가 말했다.

“흠…. 안색이 너무 창백하시네. 블러셔라도 좀 발라 드릴까요?”

“싫습니다.”

“그래요? 그럼 다 찍고 보정해 줄게요.”

그것도 싫다. 그래도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는 ‘찰칵’이라기 보단 ‘철컥’ 하는 셔터음의 연속이었다. 눈 시리도록 밝은 조명이며 반사판에 시달리며 나는 애써 인상을 굳혔다. 내 표정도, 안색은 원래 이 모양 이 꼴이었다. 어릴 때부터 핏줄이 다 보이도록 흰 편이었는데, 다 커서는 해 떠 있을 때 자고 해 꺼졌을 때 일하고, 죽은 괴수 만지는 일이나 하다 보니 더욱 나빠졌다.

낯빛이 죽은 사람처럼 파리하다는 게 어떻게 보면 나쁜 일만은 아니다. 나는 이 낯빛 덕분에 한 번 목숨을 구했었다. 산 괴수가 돌아다니는 위험한 게이트에, 잘못된 정보를 집어 먹고 들어간 날의 일이었다. 그날은 삼촌의 기일이자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었다. 그 게이트 한복판에서, 온몸이 찢겨 개죽음을 당한 삼촌과 그의 부하들의 시신 옆에 누워서 나는 밤을 새웠다. 이리저리 쿵쿵거리며 돌아다니는 괴수들조차 내 외모를 시체로 오해한 듯 건드리지 않았다. 거의 기적 같은 생존이었다. 그 경험담을 들려줄 친구나 가족이 없어 유감스러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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