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11)화 (11/76)

11. 

미안한 마음이 들 만큼 어리바리한 나에게 문소여는 대슈망 센터 전체를 안내해 주었다. 별관의 카페테리아, 휴게실, 회의실, 도서관을 쭉 훑어본 뒤엔 구름다리 통로를 지나 본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파수꾼 훈련실, 교육실, 강의실, 장비 대여실까지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러는 내내 우리를 지나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왜 아무도 없지?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텅 빈 복도를 이리저리 훑어보며 내가 말했다.

“저, 그런데 여기는 왜….”

그러나 내 질문보다는 문소여의 변명이 더 빨랐다.

“좀 너저분하죠? 원랜 안 이래요! 이것보다 훨씬 멋져요. 저 조명들도 임시로 달아 둔 거고요. 아직 정리가 덜 돼서요. 얼마 전에 여기서, 음, 소란이 좀 있었거든요….”

그의 손짓을 따라 복도 이곳저곳을 훑어보았으나, 내 눈에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문소여는 나를 비품실로 데려갔다. 전용 카드 키를 지닌 가이드만 출입 가능하다는 설명을 들으며 들어선 ‘비품실’은 그 이름과 달리 박물관 같은 인상을 풍겼다. 보존을 목표로 화석이나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결벽증에 걸린 천재 과학자의 자기 과시용 전시장 같았다.

여러 겹의 두꺼운 방범 유리관 속에 여러 물건이 들었는데, 가짓수가 많지 않고 그 용도도 알 수 없었다. 함부로 돌아다녀선 안 될 것 같단 생각에 걸음을 멈춘 나를 문소여가 이끌었다.

그는 가장 먼저 비품실의 맨 끝, 중앙 장식장 앞에 나를 세웠다. 그러곤 손뼉을 짝 소리 나게 쳤는데, 소음에 반응한 듯 유리 벽이 단숨에 올라와 장식장과 우리 사이를 가로질렀다. 손이라도 잘못 뻗었다간 절단당하겠다 싶게 강력한 움직임이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잘 보관 중인 비품은 얼핏 음료수처럼 생겼다. 빨강, 보라, 파란색 용액이 작은 병에 든 채 나란했다.

“들어 본 적 있죠? ‘천사의 콧물’.”

“…콧물이 아니라 눈물이겠죠.”

“아하하, 여기선 아무도 그렇게 안 불러요! 너무 유치하잖아요, 이름이.”

‘콧물이 더 유치하지 않나?’

크게 입을 벌리고 웃는 문소여의 얼굴을 확인하고, 그 얼굴이 비치는 유리 전시장을 다시 살폈다.

그래, 들어 본 적 있다. 아주 옛날에 삼촌이 줄줄 외우던 불평이 있었다. ‘그 유치한 이름의 제약사 주식을 샀어야 했다’고. ‘천사의 눈물’은 하프엔젤이라는 제약사에서 발명한 궁극의 치료제였다. 비법은 기밀이고 재료는 게이트 부산물이라, 한 달에 100ml를 겨우 만들 수준인데 숨만 붙어 있으면 어떤 상처든 치료 가능하다고 명성이 자자했다.

실물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너무나 신기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파워에이드처럼 생겼구나.

“여기 있는 세 병, 제 연봉으로도 못 사요. 순수한 파랑에 가까울수록 더 비싸죠.”

그렇다면 나는 평생 꺼내어 쓸 일이 없겠다. 그러잖아도 빚더미에 파묻힌 인생인데, 실수로 남용이라도 해 값을 물어 주게 되었다가는 빚쟁이를 넘어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

“이외에 다른 것들은 다 아시죠? 뭐가 뭔지.”

주변을 휘둘러보며 문소여가 말했다. 나도 그를 따라 유리관 곳곳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대여섯 개쯤 줄을 지어 걸린 수갑 앞에서 시선을 멈췄다.

“저게… 방금 말씀하신 수갑입니까?”

그러자 문소여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커다란 눈이 더욱 커진 모습이 성난 치와와처럼 인상 깊었다.

“설마 처음 봐요? 송모래 님은 6년 차 가이드라던데, 수갑을 한 번도 안 써 봤어요?”

“네.”

이번엔 문소여의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수갑 옆에 뻔히 걸린 안내문이 있어서였다.

‘‘뉴타입의 능력 표출을 제한하여 폭주를 방지하기 위한 도구이니 함부로 사용은 금물’이라….’

그러는 동안 문소여는 혀를 내두르기 바빴다.

“와, 정말 대단하네요. 역시 송모래 님. 능력자라 그런가? 아니면, 지나온 뉴타입이 전부 착했나 봐요?”

“…….”

그 말에는 절로 코웃음이 났다. 픽 새는 콧김을 내쉬며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내 반응을 제 말에 대한 수긍으로 오해한 듯, 문소여는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럼 재차의 님 같은 뉴타입은 처음이시겠네요.”

‘재차의’ 세 글자에 내 귀가 바짝 섰다. 수갑을 향해 뻗었던 목을 뒤로 빼내며, 나는 문소여를 돌아봤다.

“무슨 의밉니까?”

조심스럽게 묻자,

“재차의 님은 사이코거든요.”

문소여가 씩 웃으며 속삭였다.

그 말이 어찌나 달가운지 발뒤꿈치가 제자리에서 꿈틀 들썩일 정도였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얼른 말했다.

“그 말을 진작 들었더라면 좋았을 겁니다.”

듣던 중 반가운 말에 반사적으로 뱉은 호응이었다. 내 대답에 문소여는 덩달아 신난 듯 긴긴 수다를 시작했다.

“정말요? 그쵸? 가끔 보면 재차의 님은 감정을 못 느끼는 사람 같다니까요. 아니, 사람 같지도 않아요. 꼭 로봇 같아요.”

끄덕끄덕. 나는 빠른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착한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닌데… 뭐라고 그럴까요? 이기적이라고 해야 하나? 자기밖에 모른다고 해야 하나? 재수가 없기는 해요.”

끄덕끄덕. 맞아. 겪어 보고 나니 그 말이 백번 옳다. 정말 이기적이고 재수가 없는 뉴타입이다.

“남은 아파도 그러려니 죽어도 그러려니. 말씀은 또 얼마나 못되게 하시는데요. 듣는 사람 마음 아프게 해 놓고선 신경도 안 쓰세요.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없나 봐요.”

끄덕끄덕. 그럴 만도 하다. 크게 신기하지도 않다.

“그러니 파트너가 다 죽었죠.”

끄덕….

내 고갯짓은 거기에서 멈췄다.

재차의의 파트너가 모두 죽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가장 최근 파트너였던 윤도곤이 실종된 것이야 뉴스를 보아 알았지만, 그 이전의 파트너들은 전부 은퇴했다고 들었는데…. 가만, 센터에서는 그럼 윤도곤도 죽었을 거다 기정사실화한 건가? 조금 전에 말하기로는 ‘도곤이 형’이라면서, 재차의가 그를 마음에 들어 했다면서…. 그 죽음이 재차의 탓일 거라고?

‘왜?’

당혹감에 나는 문소여의 두 눈을 빠르게 살폈다. 그는 실언을 했다는 듯 입맛을 다시더니 얼른 표정을 고쳤다. 다시금 웃는 낯으로 돌아와서는 화두를 돌리려는 듯 내게 질문을 던져 댔다.

“그보다도, 송모래 님. 저번 파트너 이야기나 더 해 줘요. 어떤 뉴타입이었어요? 남자? 여자? 능력은 뭐였어요?”

“죽었어.”

대답은 내가 아닌, 비품실 문 너머에서 돌아왔다.

“송모래 저번 파트너. 죽었어.”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 등줄기가 쭈뼛했다. 괜스레 긴장되고 입술 안이 말랐다. 혓바늘이 단숨에 돋는 것 같다.

…재차의다.

그러잖아도 어색하고 무서워 속이 떨떠름한데, 한창 뒷담을 듣다가 발각된 꼴이라 오금이 저렸다. 문소여의 어깨 너머로 어렵사리 시선을 움직여,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 재차의의 발끝을 살폈다. 검은 구둣발을 시작으로 검은색 정장 바지, 바지 허리 밖으로 무심하게 빼 놓은 검은 셔츠 밑단, 손목시계와 소매를 접어 올린 팔뚝이 보였다.

남들은 검은 옷을 입으면 날씬하고 말라 보인다는데 재차의는 그렇지 않았다. 시커먼 복장은 그를 더욱 진해 보이게, 무거워 보이게, 그래서 더욱 커 보이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검은 물로 염색한 옷보다 더 시커먼 눈길로, 재차의는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 그는 조금도 위협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어제 사람의 머리통을 쥐고 창밖으로 집어 던진 무뢰배와는 껍데기만 같은 존재인 양 달랐다. 저승사자보다 더 시커멓게 옷을 차려입고 서서는, 재차의는 여상스럽다 못해 졸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긴 하품을 하며 그는 우리에게로 터벅터벅 다가왔다.

그리고 웃었다. 하얀 이가 보이고 눈매가 가늘어지도록 웃는, 그는 짐짓 다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송모래. 어떤 파수꾼이 가장 훌륭한 파수꾼인지 알아?”

재차의가 내게 물었다. 생각할 새도 없이 나는 고개부터 내젓고 보았다. 정답은 다시 그의 입에서 나왔다.

“살아남은 파수꾼이야.”

뜻 모를 질답을 마치며 재차의는 내가 아닌 문소여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아름다운 얼굴에 만연했던 미소를 단숨에 지워 버렸다. 이어져 나온 목소리는 전과 달리 감정 없는 로봇처럼 단조로웠다.

“남의 가이드에게 콩고물 기대하지 마. 그러다 제삿밥 먹는 수가 있어.”

내 시선이 휙휙 그와 문소여를 오갔다. 그때마다 고개를 위로 올렸다가 다시 숙여야만 했다. 재차의의 옆에 놓인 문소여는 전보다 훨씬 더 작고 깡말라 보였다.

거의 비굴해 보일 정도로 어깨를 움츠린, 문소여의 대답은 재빨랐다.

“어, 하하…. 제, 제가 뭘요…. 언제 콩고물을 기대했다고 그러세요…. 안 부장님이 부탁하셔서… 저도 귀한 시간 쪼개서 도와드리는 중인데요. 표현 참 섭섭하게 하시네요.”

그 말에는 재차의가 아닌 내가 반응했다.

“파수꾼이십니까?”

그러자 문소여가 얼굴을 휙 돌렸다. 재차의의 눈길이 부담스럽던 차, 시선을 돌릴 데가 생겨 기쁜 듯한 기색이었다.

“네, 송모래 님! 그걸 몰랐어요?”

그러다가도 뭔가 이상하다는 듯 표정이 아리송해졌다. 좌로, 우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소여는 내 눈코입을 느릿느릿 뜯어보았다.

“어? 이상하다…. 그게 안 느껴지세요? 왜죠? 저, 이래 봬도 A0급 뉴타입인데…. 이제까지 능력도 계속….”

문소여의 말은 한 차례 뚝 끊겼다. 그와 나 사이를 파고들듯 툭 놓인 재차의의 구둣발 하나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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