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10)화 (10/76)

10. 

한데 이제는 내 외모가 썩 자랑스럽지 않다. 시궁창에서 나 혼자 잘생기고 반듯해 봐야 똥파리만 꼬인다는 걸 지독하게 배운 덕이다. 올빼미 생활 하며 궂은일을 도맡느라 안색이 다 죽어 버려서, 요즘은 그다지 멋져 보이지도 않는다.

이달 들어서는 도통 푹 잔 날이 없다. 아니, 이달이 다 뭐냐. 올해 들어 편하게 쉰 날이 하루도 없다. 특히 오늘은 더욱 나쁘다. 새벽에 매칭 테스트를 한다는 명목으로 납치, 강간, 폭행, 협박을 당하고 지금 시간이, 아침 여덟 시 반. 그러니까 두 시간도 채 못 잤다.

‘피곤해서 기절하시겠네….’

한 번도 기절한 적은 없지만, 농담 삼아 그렇게 자조했다.

그리고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네.”

반사적으로 크게 대답한 뒤 제자리에서 주춤거렸다. 꽉 닫힌 방문 너머에서 ‘실례합니다’ 하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한 와중에도 그 음성이 재차의의 것이 아니라는 데에 안도감이 들었다.

흰 셔츠 밑단을 한 번, 전신 거울 속 내 모습을 한 번 바라봤다. 그러곤 두 손으로 쓱쓱 문지르며 셔츠 밑단을 바지 안에 집어넣었고, 문 앞으로 다가서며 도로 빼 버렸다. 치장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그랬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마자 내 시선은 절로 아래를 향했다. 나보다는 키가 조금 작고, 날씬한 체구의 직원 하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일순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렸다. 딱 그만큼 피부가 곱고 속눈썹이 긴 사람이었다.

제 성별을 알리려는 듯 그는 변성기가 지난 낮은 남자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송모래 님. 간밤에는 잘 주무셨어요?”

“…….”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어 나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센터 안내해 드리려고요! 신입 가이드는 정말 오랜만이에요. 반가워요! 인사 팀에서 열심히, 최대한 빨리 송모래 님 수속 처리를 마칠 텐데요. 그러자면 송모래 님이 오늘 안에 하셔야 할 일이 많거든요.”

“…신입이요?”

그렇게 되묻자마자 속으로 약간 후회했다. 목구멍이 다 헐어 빠진 노인처럼 쉰 음성이 나간 탓이었다.

내 목소리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는 듯, 직원은 활기차게 말을 이었다.

“네! 어제부로 대슈망에 입사하셨잖아요. 재차의 님의 새 가이드로 지원하셨고요.”

“…….”

그 말은 영 뜻밖이다. 어제 여러 서류에 이름 석 자를 쓰고 도장을 찍어 대긴 했지만, 어차피 불합격일 거라 확신했다. 괜한 기대를 품었다가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마음을 다잡느라 그랬고, 재차의라는 파수꾼을 통제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정말 요만큼도 들지 않아 그랬다. 매칭 테스트 결과가 나오고 나면 대슈망에서 쫓겨날 테고, 재차의의 실물이야 두 번 다신 볼 일 없이 살아갈 거라 상정했던 나였다.

한참 고민한 끝에 건넨 질문은 딱 하나였다.

“매칭 테스트 결과가 나왔습니까?”

그러자 직원이 웃었다. 만화에 등장하는 개구쟁이 캐릭터처럼, 웃음소리가 ‘아하하’ 했다.

“오후 중에 나올 거예요. 뭐, 결괏값은 아직이지만 그래도 성과 자체는 좋았잖아요?”

그런가…? 솔직히 말해 어제 테스트 룸에서 빠져나올 때 재차의가 어떤 상태였는지 기억에 남아 있질 않다. 수치심에 눈앞이 빨개져서는 허둥지둥 바지를 입고, 직원의 안내를 받아 도망치듯 방을 떠났었다.

성과가 좋았다는 건 그 뒤에 재차의의 컨디션이 호전됐다는 의미인가…?

“…그렇습니까?”

아리송한 궁금증을 담아 내가 물었다. 직원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죠!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이드 없이 지내 온 파수꾼이에요. 그것도 아시아 유일의 S급인 데다, 그야말로 폭주 직전! 그런 파수꾼과 대면하시고도 여전히 살아 계시잖아요?”

“…….”

그 말이 어째 내가 재차의 손에 찢겨 죽었어야 정상이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구속복도 수갑도 없이 테스트 치는 데에 서면 동의 하셨다면서요? 그 소식 듣고 다들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궁금해하기도 하고요. 그건 보여 주기식 배짱인가, 아니면 실력에 대한 자신감인가! 하고.”

“…….”

당연히 둘 중 뭣도 아니다. 구속복이라니…? 수갑은 또 뭐지…? 그런 물건이라면 실물도 본 적이 없고, 뉴타입에게 써 본 적은 더더욱 없다. 위험하건 말건 맨몸으로 부딪치고 보는 게 내가 해 온, 떨거지 용병들과의 가이딩이었으니까.

…아니, 그럼 애초에 나한테, 재차의에게 구속복을 입히고 수갑까지 채워 놓을 권리가 있었다는 말인가? 그걸 내가… 허둥지둥 빨리 사인하느라 거절한 거고?

“직접 뵈니까 알겠어요. 이유 있는 자신감이었던 거네요.”

“…….”

직원이 무어라 말 같지도 않은 오해를 하건 말건, 내 머릿속은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과포화 상태다. 덤덤한 척 표정 관리에 열중하며, 두 발과 허리에 힘을 줬다.

그러자니 눈앞의 직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는 게 조금도 없는 나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술술 알려 주는 그였다. 전부터 나는 말 많은 사람을 좋아했다. 말주변이 모자라 누구에게 정보를 구걸하기가 쉽지 않은데, 남이 나서서 부려 주는 오지랖이 내게는 천금이었다.

“송모래 님이야 뭐, 지금 매칭률이 문제가 되겠어요? 무조건 합격이라 봐야죠. 못해도 대기조에 드실 거고요.”

‘대기조.’

역시 ‘재차의’는 ‘재차의’다. 대다수 뉴타입은 평생에 잘 맞는 가이드를 한 번 얻는 데에도 천운을 빌어야 할 정도인데, 재차의에겐 ‘완벽하게 맞지는 않는’ 가이드를 묶어 놓은 대기조까지 있는 모양이다. 그들 모두 최소한 A-급이겠지? 그 귀한 인력을, 재차의가 아니라면 세상 어느 파수꾼에게 달아 둘까 싶었다.

들은 말을 곱씹기 바쁜 내게 직원은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얼른 방문자 자격증이 든 목걸이를 챙기고 운동화를 구겨 신었다. 새하얗게 차려입은 복장과 대비되도록 앞창이 다 해진 회색 운동화였다. 직원의 시선이 잠시 내 발에 닿았다가, 빠르게 복도로 향했다.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움직이며 그는 속사포 쏘듯 말했다.

“송모래 님이 혜성처럼 등장하신 덕분에요, 대기조 가이드들이 불만이 많아요. 기다리기만 하면 자기들이 재차의 님의 진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줄 안 모양이더라고요. 가당치도 않은 희망이죠, 대슈망에서 재차의 님의 파트너로 A-짜리 가이드를 붙일 리 없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E급 가이드 꼬리표가 내 발치에 칭칭 감긴 느낌이다. A-급은커녕 D-급이라도 되어 봤으면 하고 바라며 살아온 나로서는 그 신세에 불만을 품었다는 이들이 철부지처럼 느껴졌다.

“뭐, 재차의 님의 전 파트너였던 도곤이 형이 A0급이었으니 어찌어찌 비벼 볼 만하다고 착각하는 거도 알만은 해요. 그 형도 솔직히 등급으론 미달이었는데, 워낙 일을 잘했고 또 재차의 님이 마음에 들어 하셔서요. A0급도 그래서 겨우 붙은 걸….”

그가 종알종알 알려 주는 이야기를 나는 딴 나라 소식 전해 듣듯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런 내게, 직원은 더욱 터무니없는 말을 명랑하게 뱉었다.

“뭐 그런 고로, 오늘은 제가 송모래 님을 지켜 드려고요.”

“…….”

재게 움직이던 걸음을 멈추고 나는 그를 물끄러미 살폈다. 그도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키는 170cm 조금 넘을까? 그는 나보다 10cm는 더 작아 보인다. 이목구비는 어려 보일 뿐만 아니라 예쁘장해서 연약한 인상을 풍겼다. 꽃사슴처럼 뻗은 목이 가느다랗고, 머리칼과 눈동자는 맑은 갈색에,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자세는 삐뚜름했다. 그는 조금도 누구를 지켜 줄 만큼 세 보이지 않았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묻는다면, 그를 아이돌 가수로 보고 나를 경호원이라 부를 것이었다.

어차피 길 가는 사람 자체가 없지만 말이다. 방에서 빠져나와 걷는 내내, 이 큰 복도를 오가는 사람이라곤 그와 나뿐이었다.

‘누가 누구를, 누구로부터 지킨다는 거야?’

빤한 시선에 부담을 느낀 듯 그가 먼저 눈길을 피했다. 그리고 한쪽 팔뚝을 문질문질 만지면서 말했다.

“통성명을 깜빡했네요. 저는 스무 살이고요, 이름은 문소여예요. 소여라고 불러 주세요.”

처음 든 생각은 아주 특이한 이름이란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막내와 동갑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에 매몰되어 혀가 굳어 버렸다.

“…….”

동갑이라니,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이야? 정신 차려, 송모래…. 머릿속으로 그렇게 뇌까렸다. 막내가 세상을 떠난 게 벌써 6년 전 일이다. 근래 들어서는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을 만큼 기억에서 흐려진 채였다. 내가 그 애에 대해 똑바로 외우는 것이라곤 기일뿐이었다. 부모님과 형, 셋째와 막내의 기일이 전부 같은 날이라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대뜸, 문소여의 자기소개 앞에서 막내를 떠올리고야 말았다. 이럴 때 보면 죽음이란 느낌표 부호 같다. 죽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소한 속성의 존재감이 대단해지고야 만다. 문소여의 자기소개를 듣자마자, 막내가 아직 살아 있었더라면 그와 동갑이란 생각부터 해 버렸다. 생년이 같다는 흔해 빠진 공통점 하나만으로 그랬다.

문득 ‘으음’ 하는 침음성이 내 정신을 깨웠다. 눈을 번쩍 뜨자 의아한 듯 갸웃갸웃 고갯짓하는 문소여가 보였다.

“…송모래입니다. 나이는 스물여섯.”

얼른 그렇게 말했다. 얼빠진 나를 향해 문소여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더니 다시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가 내민 손을 맞잡고 나니 악수가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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