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그건 이 상황을 녹화 중인 카메라가 있다는 소리였다. 어디에선가 다른 직원들이 생중계로 구경 중일 수도 있었다. 그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돋고 손발이 덜덜 떨렸다.
‘내가… 속은 건가?’
대슈망이라는 화려한 세트장, 그리고 직원들, 또… 재차의, 모두 합심하여 나를 놀리는 중은 아닐까? 애초에 이렇게 대단한 파수꾼이 내게서 무얼 기대한다는 전제 자체가 말이 안 됐다. 사람 하나 등신 만들어서, 가두어 놓고 가지고 놀다가 죽이려는 건지도 몰랐다. 말마따나 대슈망인데 나한테 무슨 짓을 못 할까.
불안한 생각이 병처럼 번졌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아팠다. 땀이 줄줄 흘렀다. 땀과 함께 내 몸도 주르륵 바닥 위로 흘러 내려갔다.
다리부터 허물어져 나는 최대한 납작해졌다. 푹신한 바닥에 이마를 붙이고 억지로 숨을 쉬는데, 허억… 허억…, 뱉어 내는 소리만 나올 뿐 도저히 공기를 빨아들일 수가 없었다.
“송모래. 뭐 해?”
그런 내 곁으로 재차의가 바짝 붙었다. 나를 따라 바닥에 엎드리면서 그는 커다란 등을 잠수함처럼 구부렸다. 그러곤 뺨이 바닥에 닿도록 고개를 모로 돌리더니, 내 두 눈을 가만히 살폈다.
나는 도무지, 그의 감정을 읽을 수가 없다. 그가 내게 왜 이런 짓을 하는 건지,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래도 편안하다.
그래도 편안해.
“하아….”
얼굴 근육이 느슨해지고 숨결이 정돈됐다.
나는 그와 맞춘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또한 내 눈을 직시할 뿐 눈동자에 미동이 없었다. 이내 그의 손이 내 시야를 일부 가렸다. 땀에 젖어 이마와 눈썹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내는 손짓이 여유로웠다.
“흐음….”
콧노래 부르듯 소리를 내더니, 재차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손아귀에 뒷머리를 붙잡혀 내 몸도 억지로 일으켜 세워졌다. 그가 서랍장을 뒤진 이유가 무언지 나는 금방 알아차렸다. 꺼내어 가져온 물건은 투명한 오일이 가득 든 튜브형 젤이었고, 뚜껑을 열자마자 내 볼기짝 사이에 와 닿았다.
비…문이, 차갑다. 딱딱하고 작은 튜브 입구가 느껴졌다. 이내 민망하게 퓹퓹거리는 소리와 함께 차갑고 미끌대는 감촉이 애먼 뒤로 밀려 들어왔다. 그는 튜브 안에 든 젤을 전부 내 안에 짜 넣으려 들었다. 낯선 감각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전처럼 괴롭지는 않았다. 죽을 것 같은 불안이 가신 자리엔 자포자기한 심정과 한껏 예민해진 촉감만이 남았다.
“…….”
그리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찬 기운에 어깨를 움츠린 것과 동시에 볼기짝 사이로 젤이 울컥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내 등 뒤에서 재차의가 웃음소리를 냈다.
“송모래…. 밀어 내는 것밖에 못 해? 요리조리 도망이나 다니더니, 구멍도 똑같이 굴고….”
그는 다시금 제, 발기한 살 기둥을 내 뒤에 가져다 댔다. 턱 하는 환청이 들리도록 커다랗고 무거운 물건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연신 웃었다.
“이럴수록 애타는데.”
이내 내 뒷머리를 움켜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왔다. 볼이 눌리도록 완전히 벽에 밀착해 선 채 나는 숨을 골랐다. 긴장감을 떨치기도 전에 두 번째, 재차의가 제 것을 내 뒷구멍에 쑤셔 박았다.
“아, 송모래.”
눈꺼풀의 근육이 망가진 것 같다. 눈을 똑바로 뜨기가 힘들다. 팔을 휘젓는 일도, 발버둥을 치는 것도 할 수가 없다.
재차의의 성기가 내 배를 찢어 놓을 기세로 꾸역꾸역, 장기가 위로 쏠린다는 느낌이 들도록 퍽퍽 밀고 들어오는 내내,
“…끅, 윽….”
나는 입을 벌리고 그저 꺽꺽대기만 했다.
“하아, 음…. 하아….”
뒷구멍이 찢어지도록 아린 통증은 금세 잊혔다. 속을 쑤시는 낯선 감각이 그보다 몇 배는 더 아팠다. 음미하는 듯한 재차의의 신음을 들으며, 나는 연거푸 아랫배를 조여 댔다. 복근에 절로 힘이 들어가고 위장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 덥다. 무겁다. 아프다.
이내 찌걱거리는 소리가 좁은 방 전체에 울렸다. 찌걱, 찌걱… 점성 어린 소리에 또다시 살 붙는 소리가 섞였다. 내 엉덩이와 재차의의 샅의 피부가 서로 맞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끈적끈적했다.
나는 숨을 참고 이를 악물었다. 온몸의 열기가 오르기만 할 뿐 가라앉질 않았다. 속을 쑤시는 이물감이 나를 망쳐 놓았다. 재차의가 나를 부숴 놓았다. 아무 생각도, 저항도 할 수가 없다.
재차 찌걱, 찌걱, 소음과 함께 내 몸이 흔들거렸다. 재차의에게 붙잡힌 머리통만 제자리에 고정된 채 나는 속을 쑤시고 들어온 성기의 움직임에 시달렸다. 그가 성기를 뒤로 빼내면 주르륵 뒤로 딸려 갔고, 다시 허리를 쳐올리며 큰 좆을 쑤셔 박으면 아랫배가 벽에 파묻히도록 깊이 처박혔다.
“아, 아, 하아…. 힘, 좀 빼.”
재차의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힘을 빼는 대신에 나는 더욱이 이를 악물었다. 온몸에 힘을 주고 버텨야만, 목구멍을 긁으며 터져 나오려는 소리를 삼킬 수가 있었다.
“응? 긴장 풀어….”
징징거리는 신음만큼은 죽어도 내지 않으려, 쩔쩔매며 시달리는 내 귓가에 재차의는 날숨을 묻혔다.
“부탁할게?”
그가 가벼운 아양을 떨었다. 그와 동시에 거친 추삽질이 시작됐다. 대번에 눈앞이 컴컴해졌다.
“…윽.”
재차의가 퍽 소리가 나도록 내 볼기를 제 샅으로 때려 댈 때마다,
“윽!”
덜그럭 아래턱이 흔들리며 신음이 잇새로 빠져나갔다.
“…으, 윽, 끅, …윽…!”
“음, 아! 아아.”
아랫입술을 재갈 삼아 씹으며 시달린 끝에, 퍽퍽대던 소리가 색을 바꿨다. 철퍽철퍽, 두꺼운 고기를 패는 듯한 소리가 울리고, 아랫배를 뚫을 것처럼 성기가 밀려들 때마다 끈적한 액체가 사방으로 튀는 게 느껴졌다. 소름 끼치도록 따듯한 무어가 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젤이라기엔 양이 많고, 땀이라기엔 끈적끈적했다.
혹시 내 배 속이 찢어지며 흘러나온 피인가 싶어 고개를 숙였더니, 허여멀건 색이 시야를 채웠다. 온통 정액이었다. 내 속에다 대고 재차의가 토정해 낸, 아랫배가 더부룩하도록 많은 양의 정액이었다.
“…….”
기절할 것 같다. 아니, 차라리 기절하고 싶다.
“아….”
퉁, 퉁. 흥분을 못 이긴 재차의의 몸짓은 더욱 강해지기만 했다. 질척해진 전신이 벽면에 처박힌 채 나는 흔들거리는 것밖엔 하지 못했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이 눈가를 적셨다가, 콧잔등을 타고 주르륵 떨어졌다. 퉁, 퉁. 연신 내 몸이 벽면에 처박히며 덜렁거렸다.
이내 재차의가 내 머리통을 고쳐 잡았다. 쿠션에 파묻었던 이마를 손바닥으로 붙들어 쥐더니 뒤로, 뒤로 당겼다. 맥없이 젖혀진 고개가 그의 어깨에 기대어졌다. 가슴이며 배를 앞으로 내민 꼴이 된 순간, 내 속에서 치미는 감각이 색을 바꿨다. 순 통증이던 이물감이 단숨에 돌변했다. 장기가 꽉 꼬이고 양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싫어! 안 돼, 아, 안 돼….’
오묘한 성감이 전기 오르듯 속을 데웠다. 심장 박동이 혀 위에서 뛰어 댔다. 덜덜, 덜덜, 크게 경련하며 나는 허리를 두어 번 의미 없이 튕겼다. 재차의의 성기가 쑤셔 박힌 구멍이며 내벽의 근육이 세게 수축해 댔다.
“아아…!”
그러자 재차의가 기쁜 듯한 신음을 내질렀다. 또 한 번, 내 속이 더부룩해지고 구멍 밖으로 정액이 삐져나오도록 사정하며 그는 내 귀를 깨물었다. 아주 세게, 뜯어 버릴 것처럼 세게 깨물었다.
차라리 나는 고마웠다.
“아! 악, 으, 윽…!”
내 비명은 그저 아파서 내지른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었으니까.
재차의의 성기에 몸이 꽂힌 꼴로 허공에 들린 채, 나는 사정해 버렸다. 벌벌 떨며 토정한 정액은 그가 연신 싸 댄 정액에 섞여 잘 분간되지도 않았다. 후희에 몸이 약간 떨리는가 싶더니 이내 부르르 부르르 온몸이 경련했다. 주체할 새 없이 배가 조여들고 뒷구멍이 꽉 다물렸다. 재차의는 내 몸이 발악하듯 떨리는 것에 크게 쾌감을 느끼는 듯, 더욱 크게 신음했다. 그의 두 팔이 내 상체를 구겨 버릴 기세로 와락 끌어안았다.
“하아, 아!”
또 한 번, 재차의가 내 귀를 깨물었다. 약한 살갗을 피가 나도록 세게 짓씹으며 그는 제 몸을 뒤로 빼내었다가 아주 세게 처박았다.
“으음, 음…!”
퉁 흔들린 내 가슴이 벽면에 부딪쳤다. 몸이 양쪽으로 쪼개지는 듯한 감각에 나는 시달렸다. 같은 충격이 두 번, 세 번, 다시 연이어 반복됐다.
“…윽, …윽, 아, 흐윽!”
철퍽거리며 살 맞는 소리가 이제는 남의 것 같다. 볼기짝의 통증은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끝내 눈물이 났다. 슬퍼서도, 화가 나서도 아니었다. 이유 없이 흘러내린 눈물 한 방울이 뚝,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감각마저 둔하기 짝이 없다.
“흐으… 으, 흐으, 흐윽….”
움찔움찔, 허벅다리를 떨어 댄 끝에 나는 정신을 놔 버렸다. 손가락 하나 꼼짝조차 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젖은 빨래처럼, 물먹은 솜 인형처럼 추욱 늘어졌다.
재차의는 그런 내 몸을 끝까지 놓아주질 않았다. 바라던 행위를 마쳤다 해서 바닥에 내팽개치지도 않았고, 제 좆만 대충 닦아 내고 훌훌 떠나 버리지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나는 멍청하게 생각했다….
CCTV의 사각지대라는 벽면에 나를 바짝 붙여 놓고서, 그는 내 몸을 제 가슴 안에 욱여넣을 듯이 끌어안았다. 그리고 내 목덜미가 흡입되진 않을까 걱정이 되도록 세게 숨결을 들이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