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7)화 (7/76)

07. 

날인을 마치고 나니 남자 직원들이 나를 반겼다. 내가 할 일이라곤 팔을 들어 달라 배를 걷어 보여 달라는 말에 순응하는 것뿐이었다. 3분 뒤에는 내 이마와 손목, 가슴과 아랫배에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었다. 중앙부에 차갑고 작은 금속 칩이 붙은 스티커는 아주 작은 데다 무선이었다.

‘신기하네….’

매칭 테스트라면 이전에도 해 본 적 있다. 가이드 등록증을 발급받을 때 공무원 뉴타입을 상대해 보았고, 삼촌… 과도, 또 진한 용병 사무실에서 한건과도 테스트를 쳤었다. 그때마다 내 몸엔 커다란 패치들과 오래된 진공청소기 호스 같은 줄이 대롱대롱 붙었었다.

납작한 태블릿PC를 각자 손에 들고서 직원들이 내게 손짓했다. 안내에 따르기에 앞서 나는 바삐 말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저는 이 테스트 비용을 내진 않을 겁니다.”

그러자 직원들의 눈이 커졌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그러세요.”

이내 복도 끝에 놓인 방문이 활짝 열렸다. 아주 짧고 좁은 복도와 두 개의 문이 이어지는 특이한 구조였다. 직원들은 두 번째 문을 열어 보이며 나를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뒤를 돌아보자 첫 번째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낯선 방의 풍경은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특이했다. 우선 창문이 하나도 없었고, 바닥과 벽, 천장까지 소파 등받이를 떼다가 붙인 것처럼 푹신푹신했다. 방 전체가 하나의 쿠션인 셈이다.

방의 중앙에 우두커니 선 채 나는 이어질 지시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재차의가 보였다.

직원은 문을 닫기 바빴고, 재차의는 내게로 직진하여 다가왔다. 나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대체로 매칭 테스트란 게 그런 식이기 때문이다. 피부 면적을 일부 맞대고 10분, 반경을 넓히며 또다시 10분…. 그렇게 접촉을 늘려 가며 천천히 반응을 살피는 게, 보통의 매칭 테스트였다.

내 시야를 전부 가리도록 가까이 서, 재차의는 내가 뻗어 보인 손바닥에 제 손바닥을 맞댔다. 과연 대단하신 파수꾼이라, 그 커다란 손에 맞댄 내 손이 드물게도 작아 보였다. 그야말로 솥뚜껑 같다….

그리고 재차의가 나를 던졌다.

“…….”

비명을 지를 겨를도 없었다. 내 손을 콱 움켜쥐더니 거칠게 팔을 휘둘러, 그는 나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크게 넘어진 내 몸은 쿠션 위를 마찰하며 미끄러졌다. 주르륵 쓸려 가서는 단숨에 벽면에 등이 닿았다. 당혹감에 눈앞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놀라 몸을 일으키자마자 재차의의 발이 보였다. 구두를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이내 굽힌 무릎이 보이고, 너른 가슴이 보이더니, 아래턱이 아팠다. 그가 내 하관을 콱 움켜쥔 것이었다.

내 얼굴 반절을 한 손에 움켜쥐고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아귀에 뺨이 눌린 채 나도 강제로 일어나야 했다. 등 뒤로 푹신한 벽면이 쓸리고 또 쓸렸다. 균형을 잡을 필요는 없었다. 두 발이 순식간에 허공에 붕 떴다.

컥… 뻐근한 기침이 잇새로 빠져나갔다. 그 밖에 내가 뱉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문제는 재차의의 눈빛이었다. 그의 시커먼 눈동자에 내 얼굴이 고스란히 담겼다. 뺨이 눌린 것이며 일그러진 눈가까지 전부 보였다. 그의 눈 안에 든 내 모습이 넘실넘실 흔들렸다. 딱 그만큼, 그의 눈길 또한 빠르게 일렁거렸다. 낯선 눈동자 안에 생소한 욕망이 끓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직감했다.

재차의가 나를 먹으려 한다.

어깨를 웅크리며 나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을 쳤다. 버둥버둥 그의 팔뚝을 치고, 긁고, 정강이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재차의의 반응은 단순했다. 그는 내 몸을 휙 돌리더니 벽면에 얼굴부터 처박았다. 코와 턱, 가슴과 배가 쿠션에 일자로 박히고 나니 발버둥도 의미가 없게 됐다.

“헉….”

숨을 몰아쉴 새도 없이, 재앙 같은 일이 닥쳐왔다. 잘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 바지와 팬티가 동시에 벗겨졌다. 아래로 쑥 끌려 내려가더니 발목에 걸렸다. 필사적으로 휘저은 양다리는 허공에서 흔들거리며 벽면을 찰 따름이었다.

이내 등 뒤에서 딸깍거리는 소음이 들렸다. 그리고 주먹이 아닌가 싶은 딱딱한 것이 맨엉덩이에 닿았다.

“…헉, 헉….”

눈앞이 껌껌해지고 숨이 가빴다. 당혹감과 겁에 질려 연신 입을 벙긋거리는데, 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내 목덜미를 움켜쥔 그의 손을 뜯어내려 힘껏 긁고, 때렸다. 내가 휘두른 주먹에 내 목이 다 아플 지경인데, 커다란 재차의의 손은 꿈쩍도 하질 않았다.

대신에 그는 낮은 날숨 소리를 내 귓가에 흘렸다…. 그러곤 다른 한 손으로 내 왼쪽 볼기를 움켜쥐고, 옆으로 벌렸다. 벽면에 바짝 붙은 내 몸이 딸려 갈 지경으로 센 손길이었다. 그리고,

“아, 악…!”

뻑뻑하고 마른 비문으로 들어와선 안 될 것이 쑤시고 들어왔다.

“아, 어, 어, 아악…!”

폭력. 나는 이 행위에 붙일 이름을 알았다. 이건 폭력이다. 나를 아주 찢어 죽여 놓으려는 폭력.

끅… 이상한 신음이 목을 긁고 빠져나갔다. 뒷구멍이 찢어질 듯 아팠다. 처음 겪어 보는 고통에 눈이 뜨거웠다. 머리 꼭대기에서 김이 나는 것 같다. 발끝이 절로 오므라든다. 어쩌면 쥐가 오른 것 같다.

꺽꺽거리며 바르작거리는 내 몸을 재차의는 벽면에 완전히 밀착시켰다. 좌우로 몸을 틀어 보아도 벗어날 재간이 없어, 나는 두 팔을 뒤로 뻗으며 허우적허우적 그를 말리려 했다. 찢어질 것처럼 뻑뻑한 내 뒤로, 재차의는 제 성기를 막무가내로 밀어 넣어 댔다. 볼기 살이 안으로 말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불가능한 삽입이었다.

‘아…파, 아파!’

꺽, 꺽… 비명 대신 이상한 숨소리가 새어 나갔고,

“으음….”

재차의의 목소리는 너무나 여상스러웠다.

“하, 이상하네….”

…이거 다, 꿈인가?

꾸역꾸역, 커다랗고 더운 이물감이 내 엉덩이를 벌리며 기어코 몸 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그가 내 볼기를 억지로 움켜쥐고 좆 머리를 더럭 밀어 넣은 순간, 나는 구역질을 해 버렸다. 그러나 뱉어 낼 음식이 없었다. 종일 굶은 탓에 시큼한 침 몇 방울이 턱을 타고 흐른 게 전부였다. 재차 콱, 콱… 두어 번 끊어 가며 재차의는 제 몸을 내게 밀어붙였다. 속이 터질 것 같은 아픔에 고개가 뒤로 넘어가고 머리 꼭대기까지 피가 빨갛게 솟구쳤다.

낯선 고통에 몸이 쪼개지는 것 같다.

“송모래. 좆 받을 줄 몰라?”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맴 돌았다. 이명이 삐삐 울린다.

“처음도 아닌 주제에 왜 이래, 응? 힘 좀 빼.”

“…헉, 윽!”

“밀어 내는 게 아니라 빨아 먹어야지.”

말끝에 재차의가 혀를 찼다. 그러곤 내 등 중앙에 제 손바닥을 대더니, 억지로 쑤셔 박았던 성기를 뒤로 빼내었다.

“악….”

좁아터진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성기가 주는 마찰조차 고통스러웠다. 가까스로 자유를 되찾은 볼기가 쩔쩔 끓고 아랫배의 근육이 세게 뭉쳤다. 기회를 놓칠까 봐, 나는 재차 안간힘을 써 몸부림을 쳤다.

재차의는 쉽게 나를 놓아주었다. 허공을 휘젓던 내 두 발이 마침내 바닥에 떨어졌다.

“헉…, 헉, 허윽….”

허둥지둥하며 나는 바닥 위를 네발로 기었다. 다리의 힘이 풀리고 손발이 덜덜 떨려서 차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굳게 닫힌 방의 문이 전보다 훨씬 크고 무거워 보였다. 문을 향해 벌벌 기며 도망치려는데, 곧바로 목덜미가 잡혔다.

‘악!’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나는 두 팔을 크게 휘적거렸다. 그러나 재차의는 달랐다. 그는 내가 만나 본 어떤 뉴타입과도 달랐다. 그야말로, 진짜 파수꾼이다. 사람이 아닐 것이다. 사실은 괴수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혼신의 힘을 다한 반항이 무색하게도 내 몸은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바지가 떨어진 구석에 다시금 내던져져, 철푸덕 소리가 나도록 쓰러졌다. 좌절감에 눈앞이 탁해졌다. 이렇게 괴물 같아서야 도저히, 반항할 수가 없다. 쥐덫에 걸린 생쥐가 된 것 같다. 펄쩍거리며 날뛰고 왜 이러냐고 소리를 치고 싶은데, 도통 움찔조차 하기 힘들다.

구석 자리에 나를 던져둔 채 재차의는 등을 보였다. 그때가 내겐 기회였다. 그가 방 한편에 구비된 서랍장을 열어 보는 틈을 노려, 나는 다시 바닥을 기었다. 허둥지둥 움직이며 흰 문을 향해 다가갔다.

벌써 여러 번째, 재차의가 내 목을 낚아챘다. 순식간에 내 곁으로 돌아온 그는 내 목을 콱 움켜쥐더니 벽면에 밀어붙였다. 다시금 발이 허공에 뜨고 온몸이 진땀으로 축축해졌다. 짜증스러운 듯 구겨진 재차의의 이마가 보인다. 관자놀이에 선을 그리는 핏줄도, 흥분한 듯 퉁퉁 뛰는 박동도….

절망감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이성이 빠르게 흐릿해진다.

눈앞이 어둑어둑하다….

“아! 제기랄.”

문득 재차의가 중얼거렸다. 영화배우 같은 목소리며 말투였다.

“미안. 미안해, 송모래. 목이 졸렸어?”

“허억!”

그와 동시에 나는 크게 기침했다. 재차의의 손에 콱 조였던 숨통이 날숨으로 인해 벌어지고, 짓눌려 마비됐던 핏줄로 혈기가 팽팽 오갔다.

“헉, 허윽, 허억…!”

부드러운 벽면에 기대어 붙은 채 나는 모자란 공기를 허둥지둥 집어삼켰다. 고통으로 헐떡거리는 나를 내려다보며 재차의는 상냥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게 왜 도망을 쳐? 얌전히 붙어 서. 다 널 위해 하는 소리야.”

고개 숙인 그의 인영이 커다란 이불 같다. 그는 내 전신을 가뿐한 포옹으로 뒤덮었다. 내 뺨에 제 입술을 문지르며, 연신 속삭였다.

“이 방에서 여기만 사각지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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