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6)화 (6/76)

06. 

안 부장의 반응은 내 예상보다 훨씬 요란했다.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입을 벌리더니, 그녀는 자신의 두 손바닥을 책상 위에 올리고 흔들어 보였다. 황당한 마음과 자세한 설명에 대한 요구가 마구잡이로 섞인, 외국 영화 배우 같은 동작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그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헤드헌터라든가 매니저를 해 주겠다든가 뭐 그런…. 많이 와서요, 연락이.”

“…헤드헌터요.”

내 격에 안 맞는 말을 전하자니 창피하고 속이 간지러웠다. 반면 부장의 눈빛은 무척 심각했다.

“그렇지만 송모래 씨, 송모래 씨를 직접 모신 곳은 우리 대슈망이 처음이죠?”

불필요해서 낯부끄러운 질문이었다. 내게 있어 갈 곳이라곤 쓰레기촌 빌라뿐이다. 그 생각에 다시 멋쩍어,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안 부장은 제 셔츠의 맨 위 단추를 다급히 잠갔다. 길게 풀어 놓았던 넥타이도 순식간에 바로 묶었다. 큼큼 소리 내며 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그녀가 말했다.

“가타부타 따질 것 없이 우리 쪽 조건을 먼저 알려 드릴게요. 우리 대슈망에서는 송모래 씨를 재차의 님의 전속 가이드로 모시고자 합니다.”

그 태도며 목소리가 매우 당당했다. 과시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자부심 실린 제안이었다. 그러면서도 조금도 우스꽝스럽지 않았다. 가이드로 발현한 이상, 재차의의 파트너가 되는 것보다 더 멋진 일은 없을 것이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욱 비현실적이었다. 재차의의 지난 파트너, A0급 가이드 ‘윤도곤’이 실종된 이후 대슈망에선 공격적으로 새 가이드를 찾기 시작했다. 이례적으로 광고를 걸어 수만 명의 국내외 가이드를 상대로 매칭 테스트를 거쳤으나, 재차의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준의 가이드는 찾아내지 못했다.

그 때문에 사설 용병 및 범죄 집단에 소속된 가이드의 프로필을 전부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가이드 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한 필수 조건인 뇌파 기록을 기반으로, 특정 뉴타입과의 매칭률을 계산하는 것은 오직 대슈망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 설명을 들으면서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질 못했다. 나와 재차의의 예상 매칭률이 매우 높다는 말은 더더욱 알아듣기 어려웠다.

내가 낼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도대체 뭔 소리인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당신들이 틀렸다는 말.

“동명이인과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한국에 ‘송모래’라는 이름을 가진 26살의 남성 가이드가 흔하진 않아요. 정확히 말하자면 송모래 씨, 당신이 유일해요.”

“그럼 테스트 결과가 잘못됐나 봅니다.”

공연히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허리를 곧게 펴며 말했다.

“저는 E급 가이드입니다. 사설 용병이나 겨우 상대하는 수준이고, 그마저도 매칭률이 20%를 넘어 본 적 없습니다. 뭔가 착오가 있으신 게 틀림없습니다.”

“아뇨. 대슈망은 실수하지 않습니다. 착오가 있다면 가이드의 등급을 나누는 방식에 있겠죠.”

안 부장의 대답은 몹시 빨랐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녀는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뉴타입의 등급은 절대적이지만 가이드의 등급은 그렇지 않아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뉴타입의 등급, 그리고 매칭률에 따라 결정되니까요. 어떤 뉴타입이 파트너냐에 따라 가이드의 등급은 귀속된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으음….”

“송모래 씨가 E급으로 분류된 이유는 C+급 뉴타입과의 최대 매칭률이 19.7%이기 때문이죠. 고쳐 말하자면 현재 E급인 송모래 씨일지라도 S급 뉴타입인 재차의 님과의 매칭률이 높다면, 새 등급의 가이드로 변경된단 의미입니다.”

‘19.7’이라는 구체적인 수치엔 나도 모르게 귓불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안 부장은 내가 그 수치를 반올림하여 20으로 말했건 말건 그런 것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머릿속에 정해진 대본이 있는 사람처럼 그녀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웅변했다.

“송모래 씨. S급 뉴타입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이드는 흔치 않아요. 매칭률이 1%에 불과하더라도, 매칭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로 A-급일 수준이죠. 이미 알고 계실 테지만요.”

전혀 몰랐던 이야기다. 1%만 나오더라도 A-급이라니….

“우리 대슈망에서는 송모래 님을 A0급 이상의 가이드라 확신합니다.”

“…아닐 텐데요.”

내 대답은 여전히 비관적이었다. 가이드의 등급이라는 게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휙휙 바뀌는 게 아님을 알기에 그랬다. 이건 안 부장도 아는 내용일 것이다. B급 뉴타입에게 능력을 못 쓰는 가이드는 A급에게도 먹히지 않는다. C급, D급, 하다못해 E급도 마찬가지다. 우리 이름 앞의 등급이라는 게 괜히 점수 제도로 매겨진 게 아니란 의미다.

입술을 비틀며 나는 앉은 자세를 고쳤다. 이제야 손발에 피가 돌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송모래 씨는… 높은 등급을 받는 데에 별로 관심이 없으시군요?”

안 부장이 중얼거렸다. 그 말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관심이 없다기보단 진작에 포기했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그럼 혹시… 일부러….”

혼란스러운 듯 눈동자를 흔들며 혼잣말하더니,

“…이전에도 고등급 뉴타입을 상대로 매칭 테스트해 보신 적 있나요? 어디의 누구죠?”

건네 온 질문은 그야말로 터무니없었다.

‘대체 내 뭘 보고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일부러 꼽 주는 건가?’

황당함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한건과의 매칭률을 소수점까지 꿰고 있는 안 부장이다. 쓰레기촌에 사는 E급 가이드인 내 사정이야 뻔히 알 터였다. 그런데 왜 굳이 이상한 질문을 건네겠는가. 감히 S급 뉴타입과 매칭 테스트할 기회를 거절하느냐고, 네 주제를 알라며 기를 죽이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그 태도에 실망감이 더럭 들었다.

‘상냥한 분인 줄 알았는데…, 그럼 그렇지.’

세상살이 내 편 없고 돈도 없는 개똥벌레라고 해서 자존심도 없진 않았다. 입을 다물고 빤히 쳐다만 볼 뿐, 나는 다른 반응은 보여 주지 않고자 애썼다.

긴 눈싸움 끝에 안 부장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뭐, 흠…. 그래요. 이 자리에서 전부 대답하실 필욘 없기는 하죠.”

안 부장은 표정 변화가 빠른 편이었다. 시무룩해진 척 고개를 숙이다가도, 얼른 턱을 들고 눈을 반짝이는 식이었다. ‘시체인지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욕을 자주 들어 온 나로서는 부러울 정도의 생동감이었다.

“그래도, 송모래 님?”

어느새 내 이름 뒤에 ‘씨’가 아닌 ‘님’이 붙었다.

“송모래 님과 이전에 파트너십을 맺은 뉴타입이 누구건 간에 재차의 님보다 뛰어나진 못했을 겁니다. 재차의 님께서는 지금 당장 송모래 님과의 매칭 테스트를 원합니다. 우리 대슈망에서도 그러길 원하고요.”

‘서로 이야기가 전혀 안 통하는 느낌인데, 이거….’

어리둥절하니 나는 안 부장의 말을 듣기만 했다. 안 부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책상을 빙 둘러 걸었다. 불쑥 가까이 다가온 그녀를 피하느라 나는 의자 등받이에 완전히 몸을 붙였다. 내게서 풍기는 괴수 냄새가 불쾌할까 봐 못내 신경 쓰였다.

그러나 안 부장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더니 내 두 팔에 제 두 손을 가지런히 올렸다.

“송모래 님.”

얼떨떨한 채 나는 ‘네’ 하고 소심한 대답을 건넸다.

“…이제 세금 내는 일 하며 사셔야죠. 안 그래요?”

그 말이 내 마음을 깊이 파고들었다. 세금 내는 일…. 할 수 있다면 좋기야 하겠지. 밤새도록 뼈가 빠지게 고생하며 검은 잔해나 주우면서는, 모르긴 몰라도 장수하기 힘들 테니까. 사대 보험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종에 머무르며 세금을 낸다는 건 나로서는 기쁜 일이다.

결국 내게 남은 건 약간의 미심쩍음, 그리고 속 간지러운 희망이었다. 젊어 보이는 안후이가 어떻게 인사부장의 직급을 달았는지 충분히 알 만했다. 그녀가 불어넣은 바람이 내 속에서 풍풍 불어 댔다.

어차피 이대로는 용병 사무소로 돌아갈 수 없다. 그 대단하신 재차의와 매칭 테스트를 해 보라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정말 1%라도 매칭이 되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인생 역전 대하드라마의 시작이다. 0%의 결괏값에 안 부장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실망, 좌절, 한탄하며 날 내쫓을 미래가 훤하긴 하지만, 아무튼 재차의와 매칭 테스트를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마추어 가이드로서 내 가치는 올라갈 터였다.

긴 고민 끝에 내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자 일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안 부장은 가져온 서류철의 곳곳에 나의 서명을 받아 갔다. 도대체 언제 만든 건지 ‘송모래’ 세 글자가 박힌 도장까지 가져와서는 여기 찍어라 저기 찍어라 하며 서류 위에 손가락질을 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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