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3)화 (3/76)

03. 

뛰다시피 하며 사무실 건물 앞에 도착하고 보니 시간은 새벽 다섯 시였다. 건물 1층에는 튀김을 파는 맥줏집과 코인 세탁소가 있고, 2층부터는 진한 용병 사무실이었다. 승강기 앞에 도착해 오름 버튼을 누르고 나니 뒤늦게 냄새가 걱정됐다. 열흘이 넘도록 괴수 잔해를 주우러 다녔으니 모르긴 몰라도 내 모공까지 악취가 꼈을 터였다. 씻고 오자니 시간이 없고 근방엔 장소도 마땅치 않아, 작업복 주머니에 꽂힌 500ml 생수 반병으로 손과 얼굴을 대충 헹궜다.

두 손과 운동화 앞코가 축축해진 채 승강기에 올라서는 2층과 5층을 연달아 눌렀다. 그러곤 2층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데스크 자리를 향해 목을 뻗었다.

“송모래 나왔습니다. 몇 호로 갈까요?”

데스크 직원이 나를 한 번,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를 한 번 바라보더니 말했다.

“501호로 올라가세요.”

대답 대신 닫힘 버튼을 꾹 눌렀다. 그리고 턱끝까지 채웠던 지퍼를 죽 내려 작업복을 벗었다. 다시 문이 열렸을 땐 반소매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조금 전과 달리 조명 빛이 어두침침한 복도가 드러났다. 긴 한숨을 쉬며 꿉꿉한 곰팡내가 나는 복도를 가로질렀다.

501호에 도착해 문을 열자마자 내 기분은 더욱 가라앉았다. 낮은 소파와 스탠드만 바닥에 덜렁 놓인 좁은 방의 중앙에, 한건은 다리를 다 내놓고 맨투맨에 팬티 한 장 차림으로 서 있었다.

변태 새끼가 또 지랄이다.

“안녕, 형?”

헐렁한 팬티 위로 제 중심부를 움켜쥐며 놈이 웃었다. 주물럭주물럭 손을 움직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걸음걸이가 어기적어기적했다. 마른 다리가 움직이는 모양이 꽃게 같다.

“우리 오랜만에 보는 건데… 표정 좆같이 지을 거야?”

그러면서 한건은 뻔뻔스럽게 자위를 이어 나갔다. 시선은 내 얼굴에 고정한 채였다. 잡스러운 손짓 몇 번 만에 놈의 앞섶이 불룩해졌다. 볼을 붉히며 실없이 웃는 낯짝에 흥분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놈의 행복도 잠시뿐이었다. 까치발을 하며 나와 눈높이를 맞추자마자 놈은 얼굴을 더럭 구겼다.

“아, 씨발…! 이게 무슨 냄새야?”

한 손으로 제 코를 틀어막으며 한건이 뒤로 물러났다.

이대로 왔던 길을 돌아가 버릴까 하는 고민이 내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가,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화를 눌러 참으며 등 뒤로 문을 닫았다. 도망치는 건 아무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닥다리 용병 사무실에서, 그나마 장래가 밝답시고 아끼는 뉴타입이 한건이다. 소속 용병 중 유일하게 C+급인 데다 나이가 어려 성장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늘, 아래턱이며 손목에 의료용 밴드가 덕지덕지 붙은 꼴을 보아 하니 큰 의뢰를 뛰고 온 모양인데, 그런 뉴타입 하나 진정시키지 못한다면 더는 사무실에서 나를 써 줄 이유가 없다.

특히나 용병 대장이 한건을 아주 귀여워했다.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보고 좋아하는 단계를 지나친 애정은 한건의 예쁘장한 외모에서 기인했다. 문제는 그런 한건이 얼굴값이라곤 할 줄을 모르는 추잡한 변태 새끼란 데에 있었다.

“아, 씨이…. 형, 목욕탕 좀 갔다 올래?”

보나 마나 용병 대장은 놈에게 더 나은 실력의, 급 높은 가이드를 붙여 주겠노라고 떵떵댔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건이 구태여 나를 고집하는 이유는 겸손을 떨어서도 의리를 지켜서도 아니다. 나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녀석은 나와 자고 싶어 했다.

“흠, 아냐! 어차피 더러워질 건데, 뭐. 나 급하니까 이리 와. 얼른.”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며 한건이 팔을 뻗어 왔다. 뉴타입을 마주할 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면 절대로 외모만 보고 근력을 평가해선 안 된단 것이다. 한건도 마찬가지다. 깡마른 녀석의 작은 손아귀를 뿌리치기 위해 나는 세게 주먹을 휘둘러야 했다.

“아야.”

고작해야 손등을 친 일로 한건은 엄살을 떨었다. 작은 거절에 심기가 상한 듯, 인상을 퍽 찡그리며 그는 비아냥댔다.

“형이 뭐, A급 가이드라도 돼? 손도 안 잡고 어떻게 가이딩을 해? 키스도 안 하고, 딸도 안 쳐 주고, 섹스도 안 하면, 씨발!”

불분명한 중얼거림이 버럭 내지른 욕설로 끝났다. 제 분을 못 이겨 날뛰는 그 앞에서 나는 언제나와 같이 행동했다. 놈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면서, 놈이 혼자 화를 식히고 안정되길 기다렸다.

한건의 단점은 나를 좋아한단 것이고, 장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원하기에 눈물 흘리며 징징거리면서도, 같은 이유로 단숨에 얌전해져서 배시시 눈웃음을 치는 식이었다.

“형. 모래 형…. 형은 나한테 고마워해야 돼. 그거 모르지? 대장이 송모래 더 허접된 거 같다고 자르자는 거 내가 말린 거. 그래도 부르면 똥개처럼 빨리 튀어 오는데 불쌍하지도 않냐니까 ‘그건 그렇지’. 그러던데.”

딱히 몰랐던 사실은 아니다. 알은체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을 뿐이지.

“사실 형의 최고 장점은, 하아…. 생긴 게 내 취향인 거야.”

얼빠진 소리를 가만히 들어 주고 나면 놈을 달랠 기회가 오곤 했다. 강아지나 고양이 다루듯 머리를 만져 주고, 구시렁거리는 말들에 고개나 끄덕거리고, 좁은 소파 자리로 데려가 품에 안아 주면 한건은 금세 얌전을 떨곤 했다. 그가 원하는 게 순 나와의 섹스뿐만은 아니라는 건 나에겐 비극이자 희극이었다. 그는 내게서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데, 누구를 향한 애정이란 감정 따위 나조차도 내 안에서 찾아낼 수 없으니 말이었다.

그런데 대뜸 퍽 소리가 들렸다. 내 고개가 홱 돌아가고 귀에서 이명이 울린다. 불붙은 듯 얼굴 반절이 화끈거렸다. 놈이 내 뺨을 주먹으로 갈긴 것이다. 제자리에 선 채 비틀거리는 날 올려다보며 한건은 히죽히죽 웃는 낯이었다. 상체 방향이 틀어지도록 세게 팔을 휘둘러 놓고도, 그는 자신이 주먹을 휘두른 줄도 모르는 눈치였다.

한 발 두 발 다가오는 놈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재차 날아드는 주먹을 빠르게 피할 따름이었다. 비껴간 주먹이 잘못 꽂힌 벽면에서 두웅… 둔한 진동이 울렸다.

이 새끼,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온 거지? 이렇게까지 흥분 상태라는 말은 못 들었는데.

“한건. 안 되겠다. 도와줄 다른 가이드를 불러.”

그렇게 말하면서 팔을 뒤로 뻗었다. 문고리를 움켜쥐고 안으로 당겨 열자마자, 한건은 내 허리 옆으로 다리를 쭉 뻗었다. 그러곤 발차기를 하듯 쾅 소리 나게 문을 닫아 버렸다.

이제 망설일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놈의 예쁜 얼굴에 주먹을 갈겨 넣었다.

“정신 차려.”

이성을 깨워 보려 세게 때려도, 한건은 안면 중앙이 빨개진 채 히히 웃었다. 미친놈처럼, 무어에 취한 이처럼 어깨를 흔들어 대더니, 금세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그리고 읊조렸다.

“형. 왜 나는 안 되는데?”

“뭐?”

“나, 다 알아. 다 들었다고. 나 맡기 전에는 뭔 늙다리 용병이랑 붙어먹었다며? 형이 그 용병을 ‘삼촌’, ‘삼촌’ 하면서 따랐다던데…. 설마 아저씨가 취향인 건 아니지?”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줄줄 뱉어 내는 헛소리에 기가 막혔다. 애써 없던 일인 척, 잊고 살던 일이었다. 힘들게 덮어 놓은 내 과거를 들먹이면서 놈은 그게 대단한 배신이라도 된다는 듯 굴었다. 그 태도는 몰지각한 데다 건방지기까지 했다.

옛날에 무얼 했고 누구와 어울렸건, 내 과거는 오롯이 내 일일 뿐이었다. 어디까지나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내가 갚아 나가야 할 빚이었다.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나의 생존에 한 톨의 도움조차도 건넨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 구닥다리 용병 사무소에서 뉴타입과 가이드로서 만난 사이에, 한건은 내 인생에 제가 끼어들 자격이라도 있다는 듯 굴었다.

“그 ‘삼촌’한테는 어떻게 박아 줬어?”

한건이 내게 물었다. 입 안에 침이 고인 모양이다. 쩝쩝대는 목소리였다.

“똑같은 짓, 나한테도 해 주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워?”

그러면서 녀석이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가 내 허리에 제 두 팔을 두르고,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도록 나는 내버려 두었다. 놈이 좋아서도 아니고 놈에게 박아 줄 마음이 생겨서도 아니다. 다소 허망하고 아주 화가 나서, 이러다 정말 살인을 저지를지도 모르겠단 경각심이 들어 그랬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화를 삭이려는데, 한건은 눈치가 없었다. 주춤주춤 내 샅에 제 몸을 바짝 붙이는가 싶던 놈은 고개를 휙 들고 나를 봤다. 허여멀건 놈의 손이 내 중심부를 더듬어 댔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어? 생각보다 더 크다, 형….”

말끝에 한건은 ‘으어억’ 소리를 내며 나자빠졌다. 내 주먹에선 불이 올랐다. 예쁘장한 콧잔등에 주먹을 갈긴 데에 연이어 나는 놈의 다리를 힘껏 걷어찼다.

“씨, 씨이…!”

뭉개진 발음으로 어리숙한 소리를 내며, 한건이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다가도 허둥지둥 팔을 뻗으며 내 허벅다리를 끌어안고 매달렸다.

“왜! 왜!”

뒷말은 불분명해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웅얼웅얼 불만을 토로하며 내게 애원하는가 싶더니, 놈은 내 목을 조르며 달려들었다. 더는 봐줄 수가 없게 되어 나는 한건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고, 내게 매달리는 녀석을 억지로 떼어 내 집어 던졌다. 그 바람에 한건은 좁아터진 바닥 위를 나뒹굴었고 내 목에는 손톱에 긁힌 세 줄짜리 상처가 남았다.

“허억, 씨….”

포기를 모르고 달려드는 뉴타입을 뿌리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놈과의 육탄전은 한 대를 패고 한 대를 내주는 일대일 교환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내 힘이 센 편이라 망정이지, 보통의 일반인이었더라면 벌써 나가떨어졌을 터였다.

“악, 씨…, 씨이! 형 진짜 가이드 맞아? 사실 뉴타입 아니냐고…!”

바락 소리지르며 한건이 내게 달려들었다. 무식한 몸통 박치기에 나는 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놈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 허리를 부둥켜안았다.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흥분한 숨을 씨근덕거리는데, 눈물인지 침인지 모를 습기에 옷이 젖는 게 느껴졌다. 혹시 정신을 차린 건가 싶어 나는 놈을 달래려 했다.

“건아.”

그러자 한건이 내 허리를 들어 소파로 옮겨놓았다. 딱딱한 쿠션에 등이 닿자마자 혐오감이 멀미가 되어 치밀었다. 불안한 예상은 한 치도 빗나가질 않았다. 한건이 내 몸 위에 올라타며 제 팬티를 허둥지둥 벗었다.

‘이 애새끼가!’

내 중심부에 비비적대는 놈의 엉덩이는 너무 깡말라 오히려 뾰족한 느낌마저 들었다. 서슴없이 내놓은 양물은 이미 축축했다. 분홍색 성기를 반쯤 세워 놓고 놈은 내 바지 버클을 허둥지둥 움켜쥐었다. 머리통이며 가슴, 어깨를 맞으면서도 고집스럽게 바지를 벗기는 데에 집중하는 게, 못 먹어 뒈진 귀신 같다.

골반을 타고 바지가 벗겨지며 울리는, ‘직’ 하는 지퍼 소리가 유독 날카롭게 느껴졌다. 머릿속을 칼로 긁히는 것만 같다.

“하아, 빨리…. 넣어 줘요.”

흥분으로 발기하기는커녕 역겨워서 토하기 직전인 나를 깔고 앉아, 한건은 불가능한 부탁을 했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솜털까지 삐죽 서는 분노에 나는 치를 떠는데, 놈은 내 가슴과 배의 근육을 연신 더듬거렸다.

“형….”

그리고 ‘쾅’ 소리가 울렸다. 일순 폭탄이 터졌다고 착각할 만큼 큰 소리였다. 놀라 입이 열리고 몸은 굳었다. 천장만이 올려다보이는 시야 가득, 문을 향해 고개를 돌린 한건이 보였다. 두 손을 내 아랫배에 올려놓은 놈의 옆얼굴에 복도의 불빛이 직선으로 끼얹혔다. 다음 순간, 한건의 얼굴이 커다란 손아귀에 붙들렸다. 대뜸 걸어 들어온 불청객의 생김새를 나는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가 너무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이라곤 그의 손아귀에 머리통이 잡혀 더미 인형처럼 휙 허공에 뜬 채 덜렁거리는 한건의 모습, 그리고 좁은 방에 하나뿐인 창문 앞으로 가 바깥으로 한건을 던져 버리는 남자의 뒷모습. 그게 전부였다.

5층 높이에서 추락한 한건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2초의 침묵 뒤에 그저 삐, 삐, 삐… 어느 차량의 도난 방지 경보음이 삐, 삐, 삐… 카랑카랑하게 울려올 뿐이었다.

나는 놀라지도 못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귓가가 벙벙했다. 내 몸 위에 올라타 있던 한건의 무게감조차 아직 가시지 않은 채였다. 세 발짝 떨어진 거리, 좁은 방 중앙에 선 낯선 남자의 뒷모습은 지독히 비현실적이었다. 그림자가 천장에 질 정도로 큰 사람이었다. 키도 컸고, 덩치는 더욱 컸다. 허공에 대고 가볍게 털어 내는 손도 컸고, 시커먼 구두를 신은 발도 컸다.

그가 휙 뒤돌아 나를 봤다.

“저게 네 파트너지?”

창문 밖을 턱짓하며 그가 말했다. 목소리마저 꿈결 같다. 순 몽환적이고 예쁜 꿈이 아니다. 땅거미 끝에서 재앙이 올라오는 악몽이다. 그런 생각이 절로 들도록, 무서울 만치 낮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방금 죽어 버렸어. 이제 새 파트너를 맞을 차례네?”

두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아도 그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유일한 불빛인 스탠드가 바닥에 덜렁 놓인 탓에, 아래턱에만 빛이 만든 곡선이 생겼을 뿐 안면은 순 암흑이었다. 검은 가면을 쓴 듯 시커먼 표정으로 그는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그를 쳐다만 볼 뿐, 나는 일어설 수 없었다. 오히려 입을 꽉 다물고 소파에 등을 깊이 파묻었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했다. 거의 죽은 척에 가까운 침묵이었다.

이내 내 몸이 좌로, 우로 삐그덕 소리와 함께 흔들렸다. 낯선 사내가 소파 위에 올라선 것이었다. 그의 구둣발이 내 옆구리 옆에 놓였다. 천장에 닿도록 높은 머리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시간을 들여 나를 향해, 90도를 지나쳐 깊이 허리를 숙였다.

마침내 그의 얼굴이 보였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의 코가 너무 날카로워서 내 얼굴을 찌를 것 같다는 멍청한 걱정이었다. 다음으로는 긴 속눈썹을 늘어뜨린 눈매가 유독 깊다고 감탄했고, 싸구려 스탠드 불빛의 타원형 테를 고스란히 머금은 검은 눈은 사람의 탈을 쓴 괴수의 것이리라 확신했고, 아무 감정도 표정도 보이지 않는 눈과 코와 입매에 위화감이 들었다. 그리고 나를 점령하던 무지에 의한 공포가 싹 가셨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앎에 의한 공포로 손발이 차가워졌다.

내 위에 우뚝 선 채, 내 얼굴을 수평으로 내려다보면서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웃었다. 폐허가 된 게이트에서 묻혀 온 괴수 냄새, 피와 땀이 뒤엉킨 체취, 굴욕의 향기를 덮어쓴 나를 코앞에 두고도, 그는 웃었다.

“네 냄새…. 아주 마음에 들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맴도는 말이라곤 세 글자,

재차의.

그의 이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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