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1)화 (1/76)

01.

토르소 

눈 부릅뜨고 숨 꿋꿋이 쉬는 한, 폐허에도 위안은 있다.

발자취가 떠나간 자리, 한때 이름을 지녔던 물건들의 쓰레기장, 빛이 등진 그림자 면. 모두 나를 위로하는 것들이다. 누구나 싫어하는 곳을 혼자 찾아가 밤새도록 손발을 더럽히면서도 나는 괜찮다. 그저 그런 자위가 아니라 정말이다. 나는 괜찮다.

껌껌한 길목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괴상한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등 뒤에 동여맨 자루가 크게 출렁거린다. 앞뒤로 흔들리는 덩어리가 어찌나 무거운지 내 상체도 그에 따라 조용히 움직거렸다. 두 발에 힘을 세게 주고 버티자 가까스로 균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고개를 들고 소리가 난 방향을 내다보았다. 그래 봐야 암흑 물질을 바른 것처럼 시커먼 허공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을 뿐 보이는 형체는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금 전 들은 소리가 작은 들개나 길고양이 울음이었길 기도하는 게 전부다. 부디 바라건대 산 괴수가 아니기를.

사방이 충분히 조용해진 뒤에도 나는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 목숨 줄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신중해야 하는 때다. 그러나 더는 들려오는 소리가 없다. 긴 숨을 내쉬며 다시금 걸음을 옮기자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들린다. 작업복 안에서 흘러내린 땀이 고무 부츠 안에 몽땅 고여서는 웅덩이가 생긴 탓이다.

한차례 치열한 전투가 휩쓸고 지나간 이곳, 버려진 게이트에서 괴수를 맞닥뜨렸다간 맞이할 건 개죽음뿐이다. 애당초 출입 금지 구역인 땅을 돌보는 경찰도 없고 청소 작업을 함께 하는 동료도 없다. 사실 사전 신고도 없이 게이트에 출입한 것부터가 불법이지만,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법대로는 흘러가지 않는다.

시작은 탈세다. 시청에서는 게이트 뒷정리 명목으로 하달된 작업비의 3, 4할을 뒷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7에서 6할의 잔금은 관할 업체에 외주비로 들어간다. 관할 업체에서는 받은 외주비를 한 입 뚝 떼어 뒷구멍에 챙겨 넣고, 잔금으로 사설 업체에 하청부를 준다. 나로 말하자면 그 하청의 하청 사무소에서 자주 찾는, 1.5인분의 품삯으로 2인분의 일을 해치우는 아르바이트생이다.

그렇게 나선 현장에는 흡착기 대신 비닐장갑, 중기계 대신 빌린 트럭이 지급됐다. 인건비를 아끼게 된 시점부턴 사람 목숨 따위 장난이다. 그러니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 아무쪼록 현장에 살아남은 괴수가 없기를 바라면서, 죽은 괴수 조각을 집어다가 자루 안에 쑤셔 넣으면서.

묵직해진 자루를 접이식 카트에 싣고 트럭을 세워 둔 장소로 돌아갔다. 무너진 시가지로 채워진 이 게이트에 존재하는 불빛은 딱 하나였다. 사거리의 중심, 6층 건물 외벽에 삐뚜름하게 매달린 전광판이 홀로 눈부시게 환했다.

남은 힘을 쥐어짜 내어, 트럭 적재함에 마지막 자루를 실어 올렸다. 검은 피가 석유처럼 흐르는 자루는 도통 사체를 넣은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곪은 상처에서 풍길 법한 악취만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마저도 벌써 후각이 마비되어 버렸는지 맡을 수가 없지만….

“후우….”

팔꿈치까지 동여맨 작업 장갑을 벗자, 땀에 젖은 안쪽 면이 뒤집히며 드러났다. 두 시간 만에 바깥바람을 쐬는 손금은 목욕탕이라도 다녀온 사람처럼 쪼글쪼글하다. 물 대신 땀에 전 지문에서 소금에 찐 해산물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진땀으로 눅눅해진 이마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장갑만 벗었을 뿐인데 한결 살 것 같다. 굽혔던 허리를 곧게 펴면서 괜스레 전광판을 올려다봤다. ‘대슈망’에서 내놓은 가이드 모집 광고가 규칙적으로 번쩍번쩍 빛을 뿜었다.

현대인은 세 종류로 분류된다. 하나, 유별난 변이나 초능력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반인. 둘, 후천적 변이로 인해 초능력을 얻은 진화형 인간, ‘뉴타입’. 그중에서도 뛰어난 뉴타입은 게이트를 격파하고 괴수를 무찌르는 일을 해, 파수꾼이라 불린다. 그야말로 현세의 영웅인 셈이다. 모두의 선망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파수꾼에게도 문제는 있다. 도를 지나친 변이는 병증과 통증이 되고, 막강한 초능력은 파수꾼을 미치게 만들어 폭주하기 십상이란 점이다. 그럴 땐 또 다른 변종의 도움이 필요하다. 뉴타입을 진정시키고 변이를 멈추게 할 수 있는 처방약과 같은 존재, 그게 ‘가이드’다.

‘대슈망’은 뉴타입과 가이드를 분류하는 등급제를 만들어 낸 최초의 연구 센터이자, A-급 이상의 파수꾼과 가이드만을 취급, 관리하는 국제기구다. 언제나 화제의 중심인 대슈망이지만, 요즘은 특히나 어느 일터에서건 쉼 없이 화두에 올랐다. 대슈망에서 알려온 비보 때문이었다. ‘A0급 가이드가 게이트 내에서 실종됐다’는… 이야기 자체는 터무니없어 웃길 뿐 비극적이진 않았다. 문제는 그 실종자가 ‘재차의’의 파트너란 점에 있었다.

‘재차의.’

대슈망의 중추부를 서울에 우뚝 서게 한 장본인인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공표된 파수꾼이었다. 당장 내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전광판에 실린, 사람이라기보다 SD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낸 작품 같은 얼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가이드를 잃은 그의 건강 상태며 일과와 현 위치, 식단에 이르기까지 사사로운 정보를 사사건건 알려 왔다. 재차의는 괜찮다고, 건재하다고 말이었다. 그래도 세상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대중은 목줄을 잡아 줄 가이드를 잃은 재차의가 이성을 잃고 폭주할까 봐 그를 무서워했고, 그러면서도 작금에 어떠한 게이트 사고가 발생할까 봐 그의 부재를 무서워했다.

그렇게 세상이 시끄럽기를 벌써 닷새째다. 대슈망에서는 실종자를 찾길 포기한 듯했다.

‘이미 산 사람이 아니겠지, 뭐.’

아직도 시체 한 구 찾아내질 못한 걸 보면 뻔한 일이다. 그러니 저 잘난 센터에서 체면이 깎이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새 가이드를 찾겠답시고, 전광판 홍보까지 걸어 둔 게 아니겠는가.

자격·소속 불문, 신규 가이드 모집.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