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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103화 (10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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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아이야.]

누가 계속 날 불러……. 꿀잠에 빠진 나를 누군가가 끊임없이 깨웠다. 하지만 몸에는 기력이 없어서 눈이 떠지지 않았다. 내 의식이 두둥실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오늘도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철근처럼 무거운 눈꺼풀은 딱 눈에 붙였는지 떨어질 생각은 하지 않고 잠결에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 하루가 계속됐다. 처음에는 흐릿했던 목소리가 점점 선명해졌다. 마치 곧 내가 일어날 때를 알려주듯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서 일어나 보렴. 꽤 잠꾸러기구나. 얼른 일어나렴. 돌아가지 않을 거니?]

돌아간다고? 어디로……!! 그 말에 한 사람의 얼굴이 퍼뜩 떠올랐다. 그리고 난 번쩍 눈을 떴다. 처음에 보인 것은 새하얀 구름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거센 콧김이 느껴졌다. 내가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자 안심을 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일어났구나. 아무래도 몸에 무리가 많이 간 모양이야. 오랫동안 잠에 빠져 있었다.]

아직도 멍한 머릿속에 머리를 파르르 떨며 잠기운을 몰아냈다. 그리고 수신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였다.

[수신?!]

[그래, 드디어 일어났구나.]

사방에 깔린 구름이 수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지 나를 쓰다듬어 주듯이 스쳐 지나갔다. 폭신폭신한 구름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잠시만……. 어떻게 된 거지? 수신이 내 몸을 장악한 뒤로는 전혀 기억에 없었다. 난 호들갑을 떨며 그 뒤로 어떻게 된 거냐고 해명하라고 수신을 닦달했다. 수신은 그런 나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물론, 모두 무사하다. 벌을 받을 자들은 벌을 받았고, 내 아이들은 모두 내 곁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났지. 이제 너만 남았단다.]

[나만? 뭘?]

수신은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너에게는 감사해도 모자랄 지경이지. 그래서 너의 선택을 존중하려 한다. 어디로 가고 싶으냐?]

[……?]

어디로 가다니? 내가 갈 곳은 한 곳일 텐데 선택권이 다양하다는 수신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고 싶으냐?]

[에……? 하지만……. 나는…….]

죽었었는데……. 그리고 이렇게 갑자기? 원래 있는 세계로 돌아가게 해 준다는 말에 마음이 요동쳤다. 그곳에는 오랫동안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쪽에도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자다 일어나서 갑자기 닥친 상황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 난 언제나 너의 의견을 지지하지.]

이건 천천히 생각해도 쉽게 결정이 날 문제가 아닌데……. 그것보다 내가 얼마나 여기에 있던 거지?

[주인은?]

걱정된 사람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제르펠이었다.

[그 아이 말인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훌륭하게 황제가 되었으니.]

[정말 다행이다. 무사히 황제가…….]

잠깐만……. 내 미간이 좁아졌다. 황제? 황제가 됐다고?? 내 상식상 황제라는 게 원한다고 아무렇게나 빨리 될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공식적인 절차라든가 즉위식이라든가 할 게 많지 않나?

난 떨리는 목소리로 수신에게 물어보았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내가 쓰러진 뒤로 얼마나 지났어?]

[1년 남짓이 되었군.]

그 말을 들은 난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일주일도 한 달도 아닌 1년?? 충격으로 사고가 정지됐다. 그리고 난 호들갑을 떨었다. 빨리 그의 곁으로 가야 했다.

[그래도 신을 몸에 담았으니…….]

[빨리 보내 줘!]

[……이곳에서 살겠다는 말이냐?]

어차피 저쪽에서 나는 죽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살아왔다고 돌아가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전생은 전생. 현재는 현재였다. 죽었다는 걸 안 순간 돌아가는 생각을 버렸다. 그리고 난 지나온 과거를 중시하지 않고 현재를 보는 타입이었다.

나를 누구보다 애타게 기다리는 곳으로 가야 했다.

[어, 당장 보내 줘! 주인이 기다리겠다!!]

내심 제르펠이 황제 즉위식을 보는 걸 기대하고 있었는데……. 내 노력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행사 아닌가. 안타까움에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 제르펠이 어떻게 지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난 안달이 나서 한 번 더 소리쳤다.

[처음에 보냈던 그 자리로 보내 줘!]

[너의 뜻이 확고하다면…….]

그렇게 말한 수신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내가 처음부터 어떤 선택을 할지 알고 있던 사람처럼. 수신은 망설이지 않고 입으로 입김을 불었다. 난 그 입김에 휩싸여 어디론가 떠내려갔다.

멀어지는 수신에게서 언제나 지켜보겠냐는 둥,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둥. 의미 모를 말을 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주인한테 가야지!

바람에 떠내려가던 난 어딘가로 툭 떨어졌다. 그 떨어진 장소는 무척이나 익숙한 곳이었다. 그리운 감정이 들기도 전에 어디로 향했는지 기억을 더듬대며 기어갔다. 난 뱀의 몸으로 열심히 기어갔다.

저번 일의 영향으로 말도 할 수 있게 되었기에 열심히 주인을 부르며 기어 다녔지만 고요했고, 내 목소리만 울렸다. 그리고 곧 익숙한 궁이 보였다. 난 조금 더 속도를 내며 기어갔다.

그런데 묘하게 이상했다. 분명 사람이 많아야 할 궁에 개미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것. 시중인들은 대체 어디 갔는지 텅 비어 있었고, 누구 한 사람쯤은 내 말을 들을 것 같기도 한데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난 불안감에 휩싸였다. 설마…… 다른 데로 갔나? 황제가 되었다면 황제가 사는 궁을 곳으로 갔다고 생각해야 했는데…….

난 기운이 쭉 빠져서 고개를 툭 떨구었다.

[주인아……. 어디 있어.]

설마 내가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벌써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쓸데없는 불안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황제 궁을 가 본 적도 없는 내가 찾아갈 방도는 없고 그저 제르펠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이 걷는 소리가 들렸다. 제법 사람이 많은지 걸음 소리가 다양했다. 나는 혹시 몰라 풀숲에 황급히 숨었다. 풀잎이 시야를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용이 그려진 황금색 망토를 두른 남자와 그 주위를 많은 사람이 에워싸고 있었다.

한눈에 알아보았다.

수신의 말이 맞았네. 정말 황제가 되어 있었어. 내 상상 이상으로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고 나도 모르게 멍하니 감상하기 바빴다. 제르펠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피곤한가? 그러고 보니 안색도 좋지 않았고, 무표정인 얼굴은 의욕을 잃은 듯 보였다.

난 바로 풀숲을 헤치고 뛰쳐나갔다. 파스슥 하는 소리가 들리고 제르펠 일행이 우뚝 멈춰 섰다.

“이곳에는 그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던가?”

얼음장 같은 제르펠의 말에 순간 내 몸이 움찔거렸지만 풀숲을 빠져나왔다. 나를 본 사람들은 홉, 하고 숨을 죽였다. 그런데도 제르펠은 묵묵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그의 모습에 난 조용히 말했다.

[주인아……?]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제르펠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난 어제만 해도 본 얼굴이었지만 1년이라는 시간은 허투루 지나지 않는지 다소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많이 변해 버린 모습에 씁쓸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이 미안했다.

제르펠은 제가 보고 있는 게 진실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듯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제르펠의 곁에는 여전히 세드릭이 옆에 서 있었고 그는 웃으면서 길을 터 주었다. 사람들이 물러서자 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색하게 그를 향해 기어갔다.

내가 발치에 기어가면 허리를 숙여 나를 들어 주었던 제르펠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하긴……. 1년이 짧은 시간은 아녔다. 죄책감이 들어서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미안……. 빨리 오려고 했는데…….]

그때 내 머리 위에 물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응? 내가 고개를 들어 보니 나에게 고개를 숙인 그가 울고 있었다. 난 허둥지둥했다.

[울, 울지 마. 왜, 왜 그래?]

딱 한 번 그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은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직접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그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나를 보고 울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눈을 껌뻑거렸다.

제르펠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지고 있지만, 그의 눈꼬리는 곱게 휘어서 미소를 만들었다.

“……어서 오렴.”

감정을 꾹꾹 담은 말이었다. 왠지 나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주인아. 무척 잘 어울린다. 그 복장.]

“다행이구나.”

그제야 나를 들어 올린 제르펠은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부대꼈다. 나는 제르펠의 불에 타고 흐르는 눈물을 싹싹 핥아 주었다. 그게 간지러웠는지 그의 가슴이 울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았다.

[이제 계속 같이 있자.]

나를 데려다준 바람이 우리를 축복하듯이 주위를 맴돌다가 사라져 갔다. 왠지 저 멀리서 수신의 목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뱀생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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