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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신물의 힘을 이용해서 비를 내렸다. 사람들은 교황의 말과 동시에 하늘에서 비가 내리자 교황을 향해서 찬양했다. 교황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신물이 수신의 힘을 빨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안 교황은 슈이렌을 불러일으켜 힘을 흡수하게 했고 신물은 짙은 푸른빛으로 빛났다.
그저 바닥을 젖히던 비가 달라진 건 신물이 슈이렌으로부터 원한을 흡수하면서였다. 교황은 신물이 손에서 벗어나자 당황했지만 눈에 띄게 진해진 빛에 비를 더 내리는 줄 알았지만 큰 착각이었다.
슈이렌이 흡수했던 힘들이 신물 안에 쏙 들어가면서 신물은 뱀들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비를 내리는 건 교황의 의지가 아닌, 뱀들의 의지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죽이고 이용한 인간들을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리는 비를 맞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아프다고 소리를 지렸다. 비는 피부를 타고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 비가 닿자 가시가 피부에 박히는 것처럼 콕콕 쑤셔 왔다. 사람들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아야!!”
“뭐야? 비가 왜 이래??”
“교황님 이게 어찌 된 건가요?”
사람들은 교황이 내린 비로 알았기에 의문의 화살이 교황에 가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교황은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당황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 이럴 리가 없을 텐데…….”
고서에 따르면 구슬이 푸른빛으로 차오르면 언제든지 비를 내릴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슈이렌이 신의 사자라는 명칭이 생긴 것은 비를 내리면서부터였다. 그렇기에 교황은 자신이 비를 내리면 슈이렌의 입지가 약해질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신물을 이용해 슈이렌의 힘을 계속 빨아들인다면 슈이렌은 비를 내릴 수 없을 것이고, 그때 신물을 받으면서 신탁을 받았다며 진정한 대리자라는 것을 선포할 계획이었다. 비를 내릴 수 없는 슈이렌을 본다면 사람들의 입지가 자연스럽게 교황에게 흘러갈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신물에 있던 뱀들이 슈이렌의 몸에서 잠들고 있던 뱀들을 깨웠고 그 여파로 모든 원한이 신물에 모였다.
제르펠은 축 늘어진 슈이렌도 슈이렌이었지만 혼란으로 가득한 이곳을 정리해야 했다. 그 비는 모든 사람을 덮쳤고 슈이렌의 매끈한 피부에도 비가 닿았다.
“겉모습을 중시하는 기사단의 복장이 도움이 될 줄은 몰랐군.”
기사단은 황실의 문양을 새긴 망토를 펄럭이고 있었다.
“어서 빨리 백성들을 대피시켜라!”
“네, 전하!”
그러자 기사단은 쏜살같이 움직여서 망토를 이용해 사람들의 피부에 비가 닿지 않게 했다. 제르펠과 전쟁터를 휩쓸었던 그들에게는 따가운 비는 간지러운 수준이었다.
다행히 비는 눈앞을 흐릴 정도로 폭우같이 내리는 비는 아니었다. 시작이라는 듯이 잔잔한 비가 내렸다. 제르펠은 교황에게 소리쳤다.
“교황! 이게 무슨 짓이지? 당장 멈춰라!”
“알고 있습니다!!”
교황이야말로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원래라면 비를 내리는 모습을 보이게 하고 자신도 수신님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 줄 참이었다. 신물에 손을 뻗었지만 이미 높이 올라가 있는 신물에 손이 닿을 리가 없었다.
제르펠은 묘하게 불길할 정도로 빛을 뿜어대는 신물을 보았다. 그는 여차하면 신물을 깨트리려고 했다. 그는 카사가 몸에 지니고 있던 검을 대신 뽑아 정확히 신물을 관통시키려 했으나 그때 품 안에 있던 슈이렌의 몸집이 이상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큰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무언가에 밀리듯이 제르펠이 뒤로 밀려났다. 빛이 사라지자 눈을 가렸던 팔을 내렸다.
“슈이렌?”
제르펠의 미간이 좁혀졌다. 슈이렌의 모습이 맞지만 평소처럼 작디작은 모습이 아닌 몸이 커진 뱀의 모습이었다. 작았던 송곳니는 사람을 위협할 정도로 날카로워 보였고 살벌하게 혀를 내밀었다. 슈이렌은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카사는 깜짝 놀라서 슈이렌을 보았다. 제르펠은 잠시 당황했지만 사태를 파악했다. 슈이렌이 이성을 잃은 건 확실하군. 하지만 제르펠은 슈이렌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힐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눈앞의 슈이렌은 집채만 한 크기였지만 제르펠에게는 언제나 작디작은 귀여운 뱀이었다.
검을 내려놓은 제르펠이 슈이렌을 향해서 고개를 들었다. 이름을 부르면 언제나 돌아보았던 슈이렌은 사람들을 한입에 꿀꺽이라도 할 생각인지 입을 쩍 벌리며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슈이렌의 의식은 밑바닥 깊은 곳에 잠식당했었고, 그를 움직이는 것은 뱀들의 원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슈이렌의 꼬리가 살랑거리자 사람들이 치였다.
교황은 이때라고 생각했는지 슈이렌을 향해서 소리쳤다.
“전하, 신의 사자님께서 어찌 사람들을 죽이려 하시는 겁니까?!”
“하?”
제르펠은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지만 사람들은 헷갈렸다. 실제로 슈이렌이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어떤 이는 신물이 잘못돼서 신께서 화가 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했다. 그 추측은 반은 틀리고 맞았다. 그런데도 평소의 행실이 있는지라 아무도 슈이렌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정말 그런가? 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교황은 주춤거렸지만 표정을 가다듬었다. 교황은 사람들 사이에 선동할 사람들을 같이 숨겨 두었었다.
“아니, 그래도 우리를 죽이려 한다는 건 변함이 없잖아.”
“지금 우리 사자님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애초에 신물이 이상한 거 아니야?”
“그건 그래.”
괜히 오랫동안 수신을 믿어 온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슈이렌을 욕하던 사람을 향해 비판하기 시작하자 그 사람은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는 슬쩍 교황의 눈치를 살폈다.
하필 그 시선을 본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성하님께서 신물을 들고 오셔서 비를 내릴 수 있다고 했는데……. 비가 좀 이상하지 않아?”
“맞아. 왜 비가 따가워? 설마 신물이 잘못된 건가?”
“수신님이 노하셨나?”
그 의심이 증폭된 이유는 슈이렌의 시선이 향한 곳이 교황인 탓이 컸다. 슈이렌의 몸집이 커져서 주변 사람들이 휘말린 것이지 직접적인 공격은 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뱀들은 본능적으로 누가 죽였고 이용했는지 알고 있다는 듯이 교황을 향해서만 눈을 빛냈다.
교황은 주위를 지키는 성기사들을 향해 외쳤다.
“사자님이 이성을 잃고 날뛰고 있다. 제압해라!”
“네!!”
성기사들은 하나같이 검을 빼 들고 슈이렌을 위협했다. 슈이렌은 날카롭게 빛나는 검날을 보고 쉭쉭거리는 위협적인 소리를 내었다.
그 꼴을 슈이렌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은 인물이 떡 하니 뒤에서 지켜보고 있음에도.
“감히 누구에게 검을 들이대는 것이냐?”
성기사들은 등에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존재만으로 위협적인 것은 슈이렌이었지만 그 뒤에서 차가운 한기를 잔뜩 머금은 눈동자로 매섭게 성기사들을 노려보는 제르펠의 기세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제르펠은 성기사들의 검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하, 하지만 사자님께서…….”
성기사 한 명이 덜덜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제르펠은 칼같이 무시했다. 성기사는 제르펠의 눈빛만으로 목에 검이 닿는 기분이 들었고 검의 날들이 점점 땅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내 눈앞에서 슈이렌에게 검을 들이댔다는 것이냐? 너희가 검을 뽑는다면 나도 검을 뽑을 준비는 되어 있다.”
제르펠의 말에 너 나 할 것 없이 제르펠 일행 전부가 검에 손을 대자 성기사들은 입을 꾹 다물면서 침묵을 지켰고, 눈치를 보다가 주춤거리며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제르펠은 슈이렌을 보았다. 아득하게 위에 있는 얼굴에 고개를 위로 치켜세워야 했다.
“슈이렌.”
제르펠은 다정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들리지 않는지 시선은 오로지 교황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슈이렌은 당장이라도 교황을 덮칠 것 같았다.
“그런 거 먹으면 탈 난다. 배가 고프다면 다른 걸 준비해 주마.”
황당한 제르펠의 말은 주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그는 거대한 슈이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지 귀여운 장난으로 치부했다. 제르펠의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슈이렌의 고개가 제르펠을 향해서 돌아갔다. 태연한 제르펠의 말에 슈이렌에게 겁을 먹고 움찔거렸던 교황은 수치스러운지 얼굴이 붉어져서는 소리쳤다.
“전하!”
그 덕에 제르펠을 향해서 시선을 집중하던 슈이렌이 교황을 향해서 캬~하는 소리와 함께 꿈틀거렸다. 그의 꼬리에 의해 신전은 부서지고 사람들은 대피할 곳을 찾기 바빴다.
슈이렌은 꼬리로 교황 쪽으로 뻗더니 단번에 낚아챘다. 당황한 성기사들이 저도 모르게 검을 뽑아서 휘둘렸고 슈이렌의 비늘에 상처가 생겼다.
상처로 인해 따가운지 꼬리로 땅을 마구잡이로 치기 시작했다. 꼬리에 꼼짝을 못 하던 교황은 숨이 턱턱 막히는지 슈이렌의 꼬리를 쳤지만 놓아줄 리가 없었다.
흙먼지가 뿌옇게 일었고 작은 돌조각이 제르펠의 볼을 스쳐 지나갔다.
“전하. 위험합니다.”
“…….”
카사가 손수건을 건네면서 넌지시 말했다. 하지만 제르펠은 손가락으로 볼을 타고 흐르는 핏방울을 훔쳐내고 털었을 뿐이었다.
“슈이렌이 많이 화가 났나 보군.”
“…….”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카사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제르펠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더니 슈이렌을 향해서 걸어갔다. 슈이렌의 꼬리에 깔릴 가능성도 농후해 보였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다가갔다. 오히려 제르펠은 이성을 잃고 날뛰는 슈이렌을 걱정했다.
“쉬. 진정하렴. 몸에 상처 난다. 그만 화내고, 응? 벌써 자잘한 상처가 생겼지 않느냐?”
주위의 경악 섞인 표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정하게 슈이렌에게 말했다. 슈이렌의 붉은 눈동자와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마주쳤다. 하지만 슈이렌은 확 고개를 돌렸고 제르펠의 입매가 삐뚜름하게 굳었다. 제르펠은 날카롭게 황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속삭였다.
“슈이렌. 눈을 돌리면 안 되지?”
왠지 슈이렌의 몸이 움찔하더니 슬그머니 고개를 다시 제르펠에게 돌렸다. 아까만 해도 붉은 눈동자에는 살기가 가득했는데 당황스러움이 엿보였다. 제르펠은 웃으며 “이리 온.” 하며 손을 뻗었다. 서로의 눈동자가 마음을 읽는 것처럼 눈빛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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