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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98화 (98/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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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 가는 그다지 먼 곳은 아니었다. 영지에 들어가려는 순간부터 저택에 도착하는 길까지 전부 황실 기사단이 쫙 깔려 있었다. 쥐새끼 한 마리도 들어오거나 도망가지 못한다는 식으로 빳빳하게 경계를 하고 있었다.

저택 입구에 도착해서야 기사단을 지휘하는 세드릭이 보였다. 세드릭은 그동안 후작을 수색하느라 제르펠을 보지 못했는지 격양된 목소리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무슨 주인 만난 강아지도 아니고, 참 충성심이 깊어…….

제르펠이 이안과 공작, 그리고 새로운 인물이 옆에 있자 설마 하면서 물었고, 그의 짐작이 맞았다.

“그래, 이안이 데려온 마법사다. 불편함이 없도록 대해라.”

“네!”

“세드릭, 수고 많았다.”

“아닙니다! 오히려 아직도 단서를 잡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안부 인사는 나중에 하시고 저택 안으로 들어가시죠.”

제르펠은 말에서 내리자 모두 말에서 내리고 저택으로 발을 들였다. 저택 안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기사들이 흙발로 다녔는지 깨끗해야 할 대리석은 지저분해지고 흙이 묻어 있었다.

내부는 썰렁함 그 자체였다. 가구들을 전부 회수를 해 갔는지 안쪽은 전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폐허나 마찬가지였고, 껍데기만 번지르르했다.

하긴…… 그 짓을 했는데 재산이 환수됐겠지. 그의 안내를 따라 쭉 긴 회랑을 걸어가던 중 화려한 문 앞에 베르트 공작이 멈추었고 그 문을 열었다. 그곳은 프란시아 후작이 마지막으로 들어간 장소인 그의 방이었다.

“이곳은 마지막으로 후작이 발견된 장소라 훼손 없이 보존해 두었습니다. 시녀의 말로는 방에 들어가는 것을 끝으로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마 마법사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때요? 감지할 수 있겠어요?”

“거참, 재촉이 심하구먼, 기다려 보게.”

이안이 반즈를 재촉하자 제 차례라는 걸 아는지 모두가 가만히 서 있을 때 마실 나온 한량처럼 방 안을 어기적어기적 돌아다녔다. 손을 허공에 저어 보기도 했고, 유심히 어느 구간을 뚫어지라 바라보기도 했다.

“흐음……?”

반즈가 내뱉은 탄식은 마치 가소롭다는 뜻과 비슷했다. 그가 멈춰 선 곳은 거울이었다.

“거울은 예로부터 이계를 이어 준다는 말이 존재하곤 했지.”

그의 말 한마디에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설마 저곳?? 반즈가 미소를 지으면서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다양하게 빛나는 색깔의 빛들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알록달록한 빛들이 모여 한 곳에서 빛을 내는 것은 장관이었다.

이게 바로 마법이구나……. 처음 보는 마법 시전에 난 두 눈을 떼지 못했다. 놀란 듯이 두 눈을 느리게 깜빡이던 반즈가 말했다.

“이곳은??”

반즈의 놀란 말투와 함께 빛이 감쪽같이 사그라들었다. 그는 흠…… 수염을 연신 쓰다듬었다. 말하기를 꺼리는 듯한 모양새였다. 마치 후작을 도와준 자를 아는 것 같은 뉘앙스였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뒤로 돌았고 우리를 마주 보았다.

“분명 수도에서 카지노와 노예 매매 건으로 죄인이라고 했지?”

“맞다.”

“허허…….”

반즈의 미묘한 미소에 의문점을 품고 있을 때 이안이 나섰다.

“스승님, 추적은 끝났습니까? 혹시……. 마법사가 아는 분입니까?”

이안은 반즈의 묘한 태도로 유추했는지 끝에 말을 덧붙였다.

“뭐, 안다면 알지…….”

얼떨떨하게 말하는 그의 말투로는 친분이 좀 있는 사이로 보였다. 제르펠은 추적을 끝냈다는 반즈의 말에 장소를 물었다.

“수도.”

“수도라.”

이야…… 등잔 밑이 어둡다니 수도에 떡하니 있을 줄은 누가 알았을까……. 제르펠도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자아냈다. 괜히 생고생만 했잖아……. 뻔뻔하게 수도에 있을 생각을 다 했네…….

세드릭과 베르트 공작도 깜짝 놀랐는지 제르펠을 향해서 죄송함을 표했다.

“전하, 저의 실책입니다.”

“아니다. 나조차 수도에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하였다.”

“당장 기사단을 대동하여 수도를 샅샅이 뒤지도록 하겠습니다!”

“수도에 가만히 숨어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나만 있다면 금방 찾을 수 있고말고. 수도에 도착한 즉시 주문을 외우면 된다. 오래 걸릴 일도 아니지.”

반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제르펠은 공작을 보며 말했다.

“후작의 방에서 나온 증거들은 모두 정리해 놓았겠지?”

“물론입니다.”

“프란시아 후작을 찾아서 황제에게 보고서를 올리도록 한다. 그리고 황후를 유폐시킬 계획이다.”

“마마를 말입니까?”

“그래, 교황을 머물게 한다는 게 계속 신경이 쓰이는군.”

상의 된 이야기가 아닌지 모두가 제르펠의 폭탄선언에 놀라워했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어리둥절하게 주위를 살폈다. 교황 때문에?

“물, 물론 그렇습니다만…….”

이안이 동의는 했지만, 후폭풍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의의는 받지 않겠다.”

“전하, 폐하께서 어찌 나오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폐하께서는 황후님을 지극히 아끼시니까요…….”

하지만 황후 뒤에는 아무리 허수아비라도 굳건히 버티는 제국의 일인자가 있었다. 베르트는 그게 걱정이 되는지 황제를 언급했다. 그런데도 제르펠은 물러서지 않을 낌새였다.

“의의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황후조차 피해 가기는 힘들다. 황제가 날뛰어도 결국 물러나게 되어 있다. 겁에 질린 귀족들이 넘쳐나는 판이다.”

제르펠은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황제의 현 상태를 짚어 주었다. 제르펠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했다. 제르펠은 황태자에 자리에 있지만 황제와 황후가 방해했고, 귀족들이 거기에 동조했다.

그래서 귀족들의 입지를 얻기 위해 멀리 있는 길을 돌아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사건으로 황제파의 귀족은 물론 황제의 입지도 낮아졌으니 황제의 말에 힘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제르펠이라면 무력으로도 황제가 충분히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주인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피를 묻히는 건 싫어하게 됐으니.

황후가 유폐되든 황제가 반발을 하든 제르펠이 다치지만 않는다면야. 나는 그의 말을 지지해 준다는 뜻으로 그의 목에 얼굴을 비볐다. 그러자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고맙구나, 라는 말을 해 주었다. 나는 뿌듯해져서 웃음이 실실 나왔다.

후작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으니 다시 수도로 돌아가야 했다. 이럴 거면 왜 후작 가로 왔는지……. 어디 있는 걸 알아서는 좋다만.

공작은 따로 들고 올 자료가 있다고 영지로 돌아갔다.

바람을 쐬며 멀리서 보이는 수도를 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분위기였다. 아니, 느낌이 그랬다. 난 고개를 쭉 하늘을 향해 내밀었다. 내 감이 속삭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 터질 것이라고……. 그리고 이상하게 몸도 으스스했다.

그때 우리를 향해서 맹 돌진이라도 하는 듯이 달려오는 말 한 마리가 보였다. 주위에는 흙먼지를 잔뜩 일으키며 달려오던 말은 우리 앞에 급정거했다. 히이잉, 하는 말소리가 퍼지고 말을 타고 있던 이는 카사였다.

“전하. 큰일 났습니다.”

카사는 교황에게 붙였다는 감시였다.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마음도 있었는데 분위기가 심각했다.

“교황이 움직였습니다.”

제르펠은 짙은 탄식을 뱉고는 주변 기사들을 향해 지시했다.

“이안과 반즈는 기사단 일부를 대동하여 후작을 잡으러 가라. 세드릭 너도 따라가라.”

“네.”

“카사와 나머지 기사단은 나와 간다.”

정말이지 하루가 조용할 날이 없어요. 카사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제르펠과 기사단이 뒤를 따랐다. 교황은 수도에 있는 신전 앞에서 연설하는 중이었다.

백성들은 모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멀리서 달려오는 우리를 보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무언가를 치켜들었다. 내 눈에는 너무 멀어서 보이지 않았는데 제르펠의 눈에는 보였는지 구슬……? 이라는 말이 들렸다.

난 깜짝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졌다. 나와 제르펠의 눈이 마주치면서 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신이 말한 신물이 틀림없었다.

“쯧. 발 하나는 빠르군. 내가 궁을 비우자마자…….”

교황은 두 손으로 신물을 감싸 쥐면서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교황과 우리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고, 카사가 길을 비키라고 외쳤을 때, 당황한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교황이 폭탄선언을 했다.

“자, 비를 내려 보겠습니다.”

뭐라고? 난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쩍 하니 벌렸다. 자신만만하게 선언하는 교황의 말처럼 천둥이 우르르 치더니 먹구름이 몰려왔다.

저 신물은 수신이 사람에게 준 신물로 비를 내리게 하는 구슬은 맞았다. 교황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안 건지는 모르지만 내 눈에는 더러워진 신물이 비를 내려 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신물은 웅웅거리면서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먹구름을 모았다. 사람들이 성하님이라며 입을 모아 외치고 있었다. 신물이 떠오른 동시에 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부른다. 우리를 부르고 있어.]

몸속에서 격한 파동을 느낀 나는 제르펠의 목을 감싸 쥘 힘도 없어 그만 툭 떨어졌다. 제르펠이 다행히 나를 낚아채 품에 품었지만 난 몸을 부르르 떨며 피를 토해 냈다. 그 피는 선명한 붉은색이 아닌 탁한 검붉은 색이었다.

제르펠의 경악 섞인 표정으로 나를 불렀지만 나는 답을 해 줄 수 없었다. 몸이 뒤집어질 듯한 고통과 함께 거무스름한 무언가가 보였다.

잠깐……. 어디로 가……?

내가 에이든에게 빨아들인 저주가, 뱀들의 원한이 내 몸에서 검은 안개의 형태를 가지면서 빠져나오더니 태풍에 휩쓸리듯 신물로 빨려 들어갔다.

난 속으로 한탄을 금치 못했다. 하필 왜 교황의 손에 신물이 있는지 한탄을 하고 저주가 빨려 들어가는 것에 한탄했다. 안 그래도 불길한 신물이 내가 흡수했던 원한도 빨아들여서 더욱 검게 변했다.

교황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지 먹구름이 몰려오자 의기양양하게 사람들을 선동했다.

“비다, 성하님이 비를 내려 주셨어.”

난 비가 뚝뚝 떨어지는 땅바닥을 보며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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