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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은 총명하게 빛났고 수염도 가지런했다. 옆에 있던 이안이 제르펠을 향해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복장을 갖추고 만나 뵐까 싶었지만, 한시라도 급한 일이라 생각되어 최대한 손을 볼 만큼만 보고 데려왔습니다.”
“에구구……. 넌 스승한테 무슨 말버릇이냐? 내가 기껏 내 마법 도구를 가져간 걸 용서했더니…….”
노인은 이안을 향해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어차피 쳐다보지도 않지 않습니까? 제가 들고 간 걸 눈치는 채긴 했습니까?”
이안의 말에 찔린 구석이 있는 노인은 헛기침을 큼큼거렸다. 난 이안과 그 노인을 번갈아 보며 바라보았다. 보면서 느낀 건데…….
“스승이라고 하더니 사이가 좋군.”
어, 나도 그 생각 했는데. 툴툴거리는 말싸움이었지만 오히려 친분이 두터워 보였다. 이안은 제르펠을 눈앞에 두고 실례라고 생각했는지 허리를 숙였다.
“그런데…… 아이 펠트의 황태자라면 주변에 많은 인재가 있을 텐데…… 대체 이놈을 보좌관으로 두시는지?”
“아닙니다. 이안은 훌륭한 보좌관입니다.”
“전하…….”
감동한 이안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제르펠이 정중하게 나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만큼 마법사라는 인지와 그가 중요한 열쇠라는 뜻이었다.
“통성명이 아직이었군. 반즈라고 불러 주시게.”
“이안에게는 말을 전달해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있다는 뜻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뭐, 나도 마탑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소.”
그럼, 그럼. 나는 반즈의 말에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슬릴 정도로 박혀 버린 후작이라는 가시를 단번에 뽑아낼 핀셋 같은 존재였다.
“슈이렌 님이 깨어나셨습니까?”
“그래, 일어났지. 너에게도 할 이야기가 있지만……. 우선 후작부터 처리하지.”
이안은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는 눈이 커져서 물었다. 난 머쓱하게 꼬리로 머리를 긁적였다.
“넌 무슨 뱀에게 님자를 붙이지?”
아……. 반즈는 정말 어디 촌구석에서 지내다 왔는지 나라는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존댓말을 쓰며 그를 우대했던 제르펠의 미간이 좁혀진 것 내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이안도 깜짝 놀라서 어떻게 슈이렌 님의 존재를 모를 수 있냐며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안은 하나씩 나의 업적을 말하는데……. 거참 쑥스럽구먼.
“호오…….”
그러자 오히려 반즈는 나를 관심을 과하게 가진 듯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단 말이지? 변신도 하고? 예로부터 폴리모프라는 마법이 있지. 예전에는 인간이 아닌 자들이 변하는 마법이었지. 그런 원리로…….”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뺨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을 때 뒤에서 이안이 반즈의 옷을 잡아당기며 실례라고 말했다.
“이제 그만 하세요. 슈이렌이 부담스러워합니다.”
이안의 말을 입증하듯이 나는 제르펠의 목에 얼굴을 비볐다. 반즈도 제 잘못을 아는지 한 발자국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참 미안하군. 흐음…… 신은 믿지 않는다만……. 무척이나 흥미가 생기는 발언이라서 말이네. 아, 그리고 자네. 부담스럽게 존댓말은 필요 없구먼. 나도 편하게 말을 놓고 있으니. 혹시 황태자라 말을 높여 주기 바랄 수 있겠지만 난 편하게 말을 놓을 것이네.”
반즈의 말에 놀라서 나도 고개를 들었는데 옆에 있던 이안은 사색이 질렸다. 이안이 반즈의 옆구리를 대놓고 찔렀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왜 그러냐고 타박을 주었다.
제르펠은 유쾌한 듯이 피식 웃었다.
이안의 스승이라더니……. 이안의 강심장은 의외로 스승을 닮았나?
스스로는 부정할 수 있지만 이안도 가끔 겁을 상실하고 제르펠에게 대들 때가 종종 있다. 제르펠도 내심 그리 생각했는지 그의 입에서 이안의 이름이 나왔다.
“이안의 스승이라더니……. 좋다. 편하게 말을 놓도록 하지. 도움을 청하는 처지에 많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다. 편하게 말을 하도록.”
“말이 통해서 좋구먼. 귀족들은 말에 꼬치꼬치 토를 달아서 별로란 말이지……. 큼, 아무튼 의심이 가는 인물은 있다네. 우리는 대부분 연구라면 눈이 뒤집힐 사람들이 많지. 마탑의 마법사들은 많지만 모두 고유의 마나를 가지고 있고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지.”
제르펠은 어느새 반즈 건너편에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반즈는 허공에 손을 휘젓더니 마나를 형상으로 보여 줬다.
“힘의 근원인 마나만 본다면 사람을 찾는 일이야 손쉬운 일이지. 그리고 내가 꽤 대단한 마법사라오.”
반즈는 잘난 체하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안은 잘난 척하지 말라고 반즈를 향해서 말했지만 제르펠은 오히려 반즈의 자신만만한 모습이 마음이 들었는지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이 일에 관한 보답은 반드시 하지.”
“그거 기대하네.”
“전하, 그러면 후작 가로 가는 것입니까?”
대화가 어느 정도 끝나자 이안이 넌지시 물었고 제르펠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침 서신을 보내서 공작이 여기로 오고 있다. 최소한의 기사단만 데려가서 후작을 잡도록 하지. 조력자가 있으니 많은 인원은 필요 없겠지.”
“네.”
아까 에이든의 궁에 가기 전의 서신을 말하는 건가? 난 당연히 세드릭에게 쓴 서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공작한테 보내는 거였어?
제르펠은 직접 자신이 나설 생각인지 시종을 시켜 말을 준비하라고 일렀다. 말이 준비되고 정문으로 걸어 나오려고 하자 보고 싶지 않은 인물이 떡 하니 서 있었다.
어디서 본 시녀가 종종걸음으로 제르펠에게 다가왔다. 덕분에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하던 제르펠과 이안의 입이 꾹 닫혔다. 제르펠은 냉소적으로 허리를 숙인 시녀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여기는 대체 무슨 일이지? 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만.”
“……마마님께서 전하를 뵙고 싶다고 합니다.”
“시간이 없다고 일러라.”
“에이든 님의 건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합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마마님께서 직접 걸음을 옮겼습니다.”
“하……. 그 무거운 발이 떨어졌다고? 이 시점에?”
나도 제르펠과 똑같이 시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허리가 아프지도 않은지 긴 시간 동안 깊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프란시아 후작을 잡으러 가는 시점에 황후가 불러 세운다면 시간을 끄는 상술로 느껴질 수 있었다. 실제로 제르펠은 그리 느꼈는지 도통 미간이 풀어질 기미가 없었다.
“태자. 제 시녀에게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정말로 사자님에게 고마움을 표하려 했던 것뿐입니다.”
시녀의 말이 맞았는지 제르펠의 궁 앞에까지 찾아온 황후가 보였다. 난 네리아를 물끄러미 보았다. 단지 바람이 거세서 머리가 헝클어졌다고 생각하면 될 텐데 머리가 삐져나온 것이 급히 달려온 모양새로 보였다.
네리아는 여전히 자상스러운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난 눈을 빛내며 네리아를 주시했다.
옆에서 반즈가 무어라 말하려는 것을 이안이 눈치 좋게 입을 막더니 뒤로 끌고 갔다.
네리아는 제르펠의 목에 둘려 있는 나를 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는 네리아의 모습은 놀랐지만 오히려 그런 태도 때문에 경계심이 한층 더 강해졌다.
“신관께 들었습니다. 에이든의 상태를 낫게 해 주셨다고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떤 말로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네리아는 눈물을 닦는 듯이 눈꼬리를 손가로 훑었다. 나나 제르펠은 대체 네리아가 무슨 말을 할는지 지켜보자는 심정으로 듣고만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끝인 줄 알았는데……. 사자님 덕분에 에이든은 조금 더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네리아의 말을 들은 내 심기는 삐뚤어졌다. 그랬다는 사람이 에이든의 곁에 있지 않고 무엇을 했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들은 기억이 있어.]
……? 게슴츠레 네리아를 보던 중 잠잠했던 목소리가 문득 들렸다. 하지만 그 뒤로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내 착각인가? 고개를 절로 갸우뚱거렸다. 내가 혼자 생각에 빠져 있었을 때 제르펠은 공작이 오기 전에 네리아를 보내 버릴 생각이었는지 말이 끝났다 싶어 보이자 말을 툭 내뱉었다.
“끝입니까?”
“……네.”
“그럼 저희는 바빠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나중에 볼일이 없다면 좋겠습니다.”
제르펠은 네리아를 스쳐 지나가고 네리아의 손이 부들거리면서 떨리는 게 보였다. 대체 왜 온 것인지. 난 혀를 쯧쯧 하며 네리아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제르펠이 지나가는 찰나 네리아가 묘한 말을 말했다.
“그런데……. 아직도 사자님이 뱀의 모습이네요. 에이든에게 힘을 나누어 준 듯하니 더 휴식이 필요하겠습니다.”
나를 걱정하는 말인 듯했지만 음산하게 웃는 네리아의 표정이 섬뜩하게 보였다. 제르펠이 어디에 가는지 뻔히 알고 있는 듯했지만 전혀 두려운 감정과 불안감은 없고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르펠도 의아해했지만 후작이 먼저였다.
“가지.”
우리가 말을 타고 황궁 밖으로 빠져나올 때쯤 공작 일행과 부딪쳤다. 베르트 공작은 제르펠을 향해서 서신의 내용에 관해서 물었지만 제르펠은 그의 입을 막았다.
“서신은 가면서 설명해 주지. 우선 이안이 마법사를 데리고 왔다. 기사단 일부만 데리고 후작 가로 간다. 나머지 기사단은 궁을 지키도록.”
기사단은 제르펠의 명령에 복종했고, 기껏 다시 온 베르트 공작은 후작가로 돌아가게 생겼지만 싫은 내색 없이 그의 말에 따랐다.
“가면 바로 찾을 수 있습니까?”
“당연하지. 흔적만 발견한다면 쉬운 일이다.”
베르트 공작도 합류하자 제르펠은 말을 재촉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내 마음처럼 황후가 말했던 말이 묘하게 신경이 쓰이는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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