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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85화 (8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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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코가 절로 씰룩거리며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머리가 어지러워 몸이 갸우뚱했다. 정신 차리기 위해 머리를 흔들자 시야가 점점 또렷해졌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 눌렸다.

“여긴 어디지?”

눈을 뜨니 보인 것은 창살이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싸한 기운과 습한 공기의 내음. 지하실이었다.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아 순간 멍을 때리고 있었다. 아까 여성분에게 길을 알려 주려다가…… 뒤에서 괴한이 덮쳤고, 그들은 내 입에 손수건을 물리더니 이상한 향을 맡으며 의식을 잃었다…… 납치??? 나를? 대체 누가? 한동안 공황 상태가 되었다.

“이, 이럴 때가 아니지.”

급하게 두리번거리니 나를 가두고 있는 철창이 보였고, 벌떡 일어나려고 했지만 덜거덕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각각 손과 발에는 수갑과 비슷한 족쇄가 착용 되어 있었다. 다행히 길게 늘어지는 사슬로 인해 손과 발을 움직이는 데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족쇄의 끝은 감옥 안을 벗어나지 못하게끔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손을 들자 드르륵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사슬이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혼란에 빠져 눈동자와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하……. 이곳이 대체 어디야??”

눈을 뜨니 어딘지 모르는 곳에 갇혀 있는 거로 모자라 족쇄까지 착용하고 있으니 그 누가 놀라지 않을까. 정신이 혼란스러워 일어나서 부산스럽게 뱅뱅 돌며 상황을 정리했다.

“분명 꽃집에서 꽃을 사고…… 난 잠시 밖에서 기다렸는데…….”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한마디. 카밀라와 헤어지기 전에 그녀가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요즘 행방불명되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마 그게 나일 줄이야!! 머리를 부여잡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좆됐다. 내 정체를 알고 납치한 건가? 잠깐 카밀라를 만나기 위해 후드를 벗었는데 그때 나를 발견한 사람이 있었나? 아무도 모르게 후드를 먼저 쓰고 마차에 올라탔는데……? 게다가 마법이잖아? 그게 쉽게 간파가 되냐?”

내 정체가 까발려져서 나를 인질로 제르펠에게 협박하려는 무리가 있는지도 걱정을 했다. 내 머릿속은 카오스 상태였다. 난 볼을 세게 치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그때 내 은발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부여잡고 오두방정을 떨 때 후드가 벗겨진 것 같았다. 나는 얼른 후드를 꼼꼼하게 입었다. 제르펠의 모습이 아련히 스쳐 지나갔다.

“걱정하겠네…….”

일단 제르펠이 화를 낸다는 건 확정이었다. 폴과 월에게……. 기절해 있었기에 시간이 얼마큼 흘렸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없어졌다는 건 파악하지 않았을까. 슬쩍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를 들어 보았다.

“왜 반응을 안 했지?”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았다고 판단한 거야 뭐야?? 직접적인 공격이 아닌 마취나 수면제 유도였기 때문에 발동하지 않았던 것 같다. 손을 뻗어오는 거로 발동한다면 그 누구도 손을 못 대지……. 아무리 그래도! 마법이라길래 믿고 있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꼴이었다.

목걸이에 한풀이를 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큰 한숨을 내쉬고 창살 가까이 다가갔다. 어두컴컴하여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귀를 기울이니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우는 소리와 큰 한숨 소리. 나뿐만 잡혀 온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납치는 아닌 듯했다.

“나를 노린 건 아닌가……?”

불특정한 사람들을 잡아들인 것 같았다. 나를 노린 납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치안이 어떻게 된 거야? 맞은편에는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훌쩍이면서 엄마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어린애의 울음이 내 심금을 울렸다. 내가 다 안쓰럽네.

한참을 불안하게 서성거린 것치고는 마음이 차분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딱히 큰 걱정이 되지 않았다. 물론 눈을 뜨니 감옥이고 족쇄도 있어서 당황은 했지만…….

“나에게는 이게 있잖아?”

말과 동시에 손가락 위에 물방울이 뽕 생겼다. 저번에 키르가 했던 것처럼 날카롭게 만들면 족쇄도 손쉽게 자를 수 있었다. 내가 행동을 시작하려는 찰나 어두웠던 공간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누구지……?”

당연히 내 철창으로 사이로 환한 빛이 새어 들어오고,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창살을 마구잡이로 흔드는 소리가 났다.

“너……! 잘 만났다. 당장 풀지 못해???”

어느 한 남자가 분을 이기지 못해 마구 소리쳤다. 고요한 공간에 남자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분위기 파악을 위해 물방울을 집어넣고 창살에 가까이 갔다. 그 남자를 제외하고도 분노에 찬 목소리, 울음 섞인 목소리 등 다양했다. 하지만 그들은 익숙한 듯 태연하게 무시하더니 똑바로 걷었다. 나는 얼른 허공에 손을 저어 물방울들을 없앴다.

사태 파악 좀 할까?

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내 앞에서 멈추었다. 그들은 나를 관찰하듯 기분 나쁜 시선으로 위에서 아래로 흘겨보고 있었다. 옆에는 하인인지 한껏 몸을 낮추며 있었다. 그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방금 구해 온 물건입니다.”

‘물건? 내가?’

나를 잡아 온 사람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는 남자의 부하인 것 같았다. 나를 잡아 온 이유는 높아 보이는 옆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물건이라고 지칭한 이유는 의문이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둘을 번갈아 보면서 사태를 파악하려고 했다.

“평범하군.”

짤막한 대꾸에 옆에서 횡설수설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 그래도 말끔한 인상이니 귀부인들이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노예를 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수도에 처음으로 온 자로 구경을 목적으로 놀러 온 듯합니다.”

노예?? 나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그렇군. 상태를 보지. 열어라.”

옆에서 찰랑하는 소리와 함께 열쇠를 꺼내더니 굳게 닫혀 있던 철장 문이 끼익 하며 열렸다. 성큼 걸어오더니 놀라서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발로 차서 넘어지게 했다. 멘붕에 빠진 상태에서 갑자기 날아온 발차기를 피할 새가 없었다.

“악!”

“이제 노예가 될 것이니 이미 자세를 익혀야지.”

그의 말을 들은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확 저질러? 남자는 주저앉은 내 턱을 잡아채서 들게 하였다. 후드가 아슬아슬하게 벗겨지지 않았다.

“윽!”

“평범하지만…… 모난 곳도 없군. 이 정도면 나름의 값을 받겠어. 요즘은 불경기니 이런 노예도 제법 값이 나가겠군.”

억센 힘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감평을 했다. 이윽고 구경을 다 했는지 집어 던지듯이 내팽개쳤다. 난 고개를 푹 숙였다. 난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잘했다. 다음에도 잘 부탁하지.”

“물론입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거래가 성사되었는지 품에서 돈 자루를 꺼내 그에게 주었다. 묵직한 것이 딱 봐도 어마한 양의 돈이 들어 있어 보였다.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내가 노예?? 노예로 팔린다고?? 충격으로 시야가 흐릿해졌다. 어처구니가 없어 절로 말이 나왔다.

“이럴 수가…….”

그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을 듣고는 비웃었다. 고개를 드니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넌 이제 노예가 될 거다. 그러게 잡히지를 말았어야지? 근근이 생계를 이어 가는 것보다 안락한 귀족들의 노예가 되어 귀여움을 받으며 지내는 게 더 좋을 거다. 뭐, 외모는 평범하지만 재주껏 귀족들에게 귀여움을 받아 보라고. 오늘 출하할 건 정해졌으니 내일 출하하지. 상태도 좋으니 이대로 나가도 되겠어.”

“네. 알겠습니다.”

노예상인? 옆에 있는 남자는 사람들을 납치하고 그들에게 공급해 주는 브로커인 듯했다. 둘 다 똑같은 노예 상인이지.

참으로 꿈도 야무졌다. 누가 순순히 노예가 된대? 하, 참! 어이가 없어서.

내 의견과는 상관없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며 웃는 꼴이 같잖아 보였다. 그렇게 귀족들에게 귀여움을 받고 싶으면 너나 받으라며 눈을 한껏 부릅뜨고 비꼬고 싶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어설픈 자극은 하지 않는 게 좋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체념한 듯 것처럼 보이도록 유도하고 기회를 노렸다. 빠져나가는 건 방법이 있지만 막무가내로 나가다가 다시 잡혀 오면 그거야말로 답이 없었다. 내 연기에 속아 넘어간 남자가 끝까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노예는 그런 태도가 좋은 법이지.”

지랄하고 앉아 있네. 바닥에 구멍을 파고들 기세로 노려보았지만 그들은 보지 못했고, 유유히 떠났다. 시꺼먼 어둠이 찾아왔다. 내 앞에 있던 여자아이는 그들의 말에 처지를 파악한 건지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팔리긴 누가 팔려? 내가 팔려 나간다면 난리 칠 한 사람이 눈에 훤했다. 주인을 위해서라도 팔릴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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