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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83화 (8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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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했습니다. 여기면 되겠습니까?”

“어디든지 상관은 없었는데…….”

투명한 전시장 사이로 장신구들의 보석이 하나같이 큼직하고 세공이 잘 되어 있었다. 들어가기가 껄끄러울 정도였다.

솔직히 이런 휘황찬란한 데로 데려올 줄 몰랐다. 주머니 속 사정을 보았으면서 이곳으로 데려온 거야? 음……. 내 주머니에 있는 얘들이랑 천지 차이인데…… 받아 주려나? 살짝 의구심이 들었다.

그냥 잡화점 정도로 괜찮았는데…… 몇 개는 귀족들에게 받은 것도 있다지만 대부분 시종이나 시녀에게 받은 물건이었다. 변변치 않은 물건인 건 확실했다.

하지만 마차는 이미 정차했고, 내려야만 했다. 딸랑. 방울 소리가 울리자 종업원이 다가왔다. 후드로 인해 귀족이 아닌 평민으로 보였는지 종업원의 눈이 살짝 좁아졌다. 보석은 귀족들의 물품으로 평민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 평범한 복장에 마차에도 가문의 문장이 보이지 않으니 종업원의 심기가 불편한 것은 당연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종업원은 우리를 가게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종업원이 한 말로 인해 난 주춤했다. 그는 용건이 뭐냐고 물었다. 깔아보는 시선에서 우리의 평범한 의상을 보고 돈이 있는지 의심하는 것이 느껴졌다. 화가 나려 했지만 값만 지급해 주면 상관이 없었다. 난 주머니를 꺼내서 보여 주었다.

“보석을 처분하러 왔습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주머니를 건넸다. 종업원은 말없이 내가 건넨 주머니를 풀고 안을 보았다. 그는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어 보석들을 들었고 손을 기울였다. 그러자 보석들이 모습을 보이며 다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그는 주머니의 끈을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종업원은 기가 찬 웃음을 지었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이 보석을 취급…….”

이럴 줄 알았다. 하긴 너무 질이 별로였지. 솔직히 주머니가 더 비싸 보였다. 다른 데로 가야지. 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주머니는 내 손 위에 안착하지 않았다. 이상해서 고개를 들자 사정없이 요동치는 종업원의 눈동자가 보였다. 요동치다 못해 두려움이 가득한 눈동자였다.

왜 저래? 그의 눈동자를 따라가니 보석이 아니라 주머니 쪽이었다. 그 주머니는 제르펠이 준 주머니로 아주 웅장한 용의 자수가…… 응? 잠시만…… 뭔가 이상한데……? 난 고개를 들었다.

종업원은 나를 한번 보고 뒤에 서 있던 월과 폴을 보았다. 월은 능청스럽게 제3 황실기사단을 증명하는 배지를 은근슬쩍 보여 주었다. 종업원은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90도 인사를 하면서 소리쳤다. 그 여파로 내 앞머리가 휘날렸다. 허리를 너무 숙여 바닥에 닿은 게 아닌지 의문을 품었을 정도였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귀한 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어서 들어오십시오.”

제 행동을 되돌아보는지 얼굴이 새하얗다 못해 새파랗게 질려가는 중이었다. 그는 계속 허리를 숙이며 사죄했다. 나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고 뒤에서 월이 나를 밀었다.

‘들어가시지요.’

월이 입 모양으로 벙긋벙긋 말했다. 종업원은 나를 소파에 앉히더니 차를 내었다. 오들오들 떠는 다람쥐처럼 내미는 찻잔이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있는 힘껏 웃으며 주머니를 챙겼다.

“차를 마시면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점주님을 불러오겠습니다.”

다소…… 아니 많이 기가 죽은 종업원은 끝까지 허리를 깊숙이 숙이면서 뒷걸음질 쳤다. 내 앞에는 향긋한 차만이 놓였다. 고운 빛깔을 내는 차를 보니 내 양심이 쿡쿡 찔렸다.

“이거…… 사기 아냐?”

종업원의 태도에 의도치 않게 그를 협박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월은 능글맞게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저희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까.”

“……틀린 말은 아닌데…….”

마차에서 이상한 반응을 보였던 월과 폴이 이해가 됐다. 안의 내용물이 아니라 주머니가 문제였다. 어떤 미친놈이 황가의 증표를 새긴 주머니를 들고 다녀? 그리고 그 확신에 쐐기를 박듯이 월이 황실기사단의 배지를 보여 줬다. 종업원이 화들짝 놀라는 것도 이해가 됐다.

곧 종업원이 점주를 대동하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존, 존귀한 분을 뵙습니다.”

“어…… 음…… 그러니까 보석을 처분할 건데.”

“아이고. 물론입니다. 저희 가게만큼 후하게 치러 주는 곳이 없습니다.”

점주는 종업원에게 눈짓을 주더니 아까와 다르게 무직해진 내 주머니를 돌려주었다. 난 주머니 안을 열어 보았고, 안에는 번쩍번쩍한 금화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게 맞는 금액 측정이야? 아무래도 아닌데? 내가 말을 하려고 입을 벙긋하려고 하자 바로 점주가 말했다.

“아이고, 받으세요. 대신 저희 가게를 꼭 좀 이용해 주십시오.”

“아니, 나는…….”

“이만 가시죠.”

월은 볼일이 끝났으니 내 등 뒤를 밀었다. 난 반항하듯이 뒤를 돌아보았고 불법 거래의 정황을 목격했다. 폴이 태연하게 주인장에게 웬 무언가를 건네고 있었다.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보니 종이였다. 수표?? 주인장은 손사래 치면서 받지 않으려 했지만 폴은 막무가내로 그의 손에 쥐여 줬다.

“야…… 너희가 그러면 내가 뭐가 되느냐?”

“저희의 역할입니다.”

“……됐다.”

난 분명 스스로 하려고 했다고, 근데 쟤네들이 방해한 거야.

“어찌 됐든, 돈으로 바꿨으니 선물을 사러 가 볼까?”

난 돈이 잔뜩 들어 있는 주머니를 번쩍 들면서 기운 좋게 말했다. 결과만 좋으면 됐지. 하지만 그전에…….

“주머니부터 바꾸자.”

종업원은 내가 준 주머니에 그대로 돈을 넣어서 주었다. 더군다나 빵빵해진 주머니로 인해 커다란 용의 모양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곧바로 보이는 잡화점에서 주머니를 바꿨다. 이제 좀 안심이네.

“혹시 선물로 정하신 물품은 있으신가요?”

“만년필. 주인은 서류 작성할 때 만년필을 쓰잖아. 실용적인 걸로 준비했지.”

“무척이나 기뻐하실 겁니다.”

“그렇지? 일부러 자주 쓰는 거로 준비했지.”

“……과연 쓰실까요?”

“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만년필 류라면…… 저쪽으로 가시지요.”

월의 미묘한 대답이 신경 쓰였지만 코너를 돌자 보인 만년필 가게에 그의 선물을 고르는 데 집중했다. 만년필의 길이와 두께, 그리고 펜촉이 어떤지. 주인장에게 물어보고 직접 써서 부드럽게 적어 내려가는지 등을 알아보면서 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쇼핑의 결과물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촉도 너무 날카롭지 않고 만년필 표면에 새겨진 은은한 문양까지 마음에 드는 물건이었다. 게다가 덤으로 잉크도 받았다. 덕분에 빵빵 했던 주머니가 홀쭉해졌지만 기분 좋게 첫 쇼핑이 끝났다.

“이제 가자.”

고개를 돌리자 문득,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어라?”

마차를 타려던 발이 멈추고 몸을 뒤로 쭉 뺐다. 역시나 내가 알던 사람이 맞았다.

“카사랑…… 공녀?”

카사가 카밀라와 같이 행동하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둘이 종종 제르펠의 집무실에 찾아오기도 했다. 공적인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디저트 가게에 들어가서는 케이크를 고르고 있었다. 분명 임무를 수행한다고 했는데?

“……카사네요.”

월도 그를 발견하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렇지?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지? 잠깐 가 보자.”

“네? 잠시…….”

오랜만에 보는 인물에 반가웠다. 인사나 하고 가자는 마음에 디저트 가게를 향해서 갔다. 뒤에서 폴이 뭐라고 말했지만 마차가 다니는 소리에 묻혔고, 난 가게 문을 열었다.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달달한 향기가 뿜어져 왔다. 멀리서 봤을 때는 서로 같이 붙어 있는 듯했는데 카사는 카밀라의 등 뒤를 지키고 있었다.

카밀라는 유심히 디저트를 살펴보다 신중하게 쟁반에 올리고 있었다.

“뭐 해?”

난 카사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또, 무시하나 싶었지만 뒤에서 달려오는 월과 폴을 보고 생각났다. 아…… 내 모습이 다르지? 카사의 싸늘한 눈초리가 이해됐다. 난 머쓱하게 얼굴을 긁적이면서 발길을 돌리려고 했지만 카사가 턱 내 어깨를 잡았다.

“……설마…… 슈…….”

그도 말하려다 멈칫하면서 손을 뗐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용케도 알아봤네?”

“……행동만 봐도 압니다. 게다가 발걸음 소리가 비슷하더군요.”

호위는 다 이런가? 무슨 발걸음 소리로 상대방을 알아봐?

“무슨 일인가요?”

카밀라가 디저트가 잔뜩 든 쟁반을 들고 다가왔다. 나를 의아한 눈으로 보는 그녀의 시선에 난 슬쩍 시선을 피했다. 음…… 어차피 선물은 다 샀고, 이제 돌아가는 일만 남았으니까.

난 조심스럽게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내 모습이 드러났다.

“안녕……?”

손을 들어 인사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내 모습에 많이 당황했는지 카밀라는 말을 잇지 못했다. 깜짝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던 카밀라는 이내 상황을 파악한 듯이 고개를 숙였다.

“슈이렌 님, 오랜만에 인사를 올립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치마를 잡고 우아하게 인사했고 한 손에 들린 쟁반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했다. 그녀는 화사하게 웃었고, 나도 그녀에게 웃어 주었다.

난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내가 카밀라와 마주 보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냥 카사에게 인사만 하려 했는데 내 발걸음을 잡은 것은 카밀라였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같이 차를 한잔만 하시자고 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전하께서 슈이렌 님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듣고 싶은가요?”라는 말을 던졌고 난 그녀가 던진 미끼를 덥석 물어 버렸다.

그리고 디저트를 눈앞에 두고 동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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