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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산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골목에 느긋한 걸음으로 어둠을 헤치는 두 인영이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검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익숙한 길인 듯 얽히고설킨 골목길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목적지를 찾아갔다. 그들은 곧 작은 문 앞에 섰다.
“여기가 확실합니까?”
“네. 의심된다면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될 일이죠.”
웃음을 작게 터트린 여성은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어둡고 좁은 골목이었는데 믿기지 않을 만큼 문이 열린 그곳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겉보기에는 작은 건물이지만 안쪽의 공간은 겉보기보다 큰 공간들이 펼쳐져 있었다. 어두운 골목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럼 갈까요?”
“…….”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문이 닫혔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후드를 벗었다. 여성과 남성은 카밀라와 카사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곳은 비밀스러운 장소. 신분을 숨기기 위해 다들 가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후드를 벗어서 옆에 대기하던 고용인에게 건네줬다. 그때 한 시종이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초대장을 보여 주십시오.”
카밀라는 익숙한 듯 품 안에서 초대장을 보여 주었다. 시종은 품 안에서 돋보기를 꺼내어 초대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검사가 끝났는지 돋보기를 다시 품 안에 넣은 시종은 초대장을 카밀라에게 주었다. 그리고 좋은 시간을 보내라며 뒤로 물러섰다.
시종이 물러서자 카밀라는 뒤에 서 있던 카사에게 조용히 말했다. 얼굴은 감추어도 목소리만은 감출 수 없기에 되도록 주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했다.
“저만 따라오세요.”
카밀라는 거침없는 걸음으로 걸어갔다. 난잡한 귀족들의 모습을 본 카사의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심지어 약까지 하는지 카사의 민감한 코에 반응이 왔다. 탁자 위에는 술병이 굴러다니고 돈을 걸면서 도박을 즐기는 귀족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발걸음 소리가 너무 조용하네요. 들키겠어요.”
카밀라는 카사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카사의 발걸음 소리는 일반인보다 많이 작은 편이었다. 그는 제르펠의 그림자로서 조용히 다니는 것이 임무였다. 단, 여기서는 그의 발걸음 소리는 충분히 의심받을 만했다. 조사하기 위해 침입을 했다는 사실을 들키면 곤란했다.
“알겠습니다.”
“조심해 주세요.”
어디에서 누가 지켜보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카밀라는 카사의 대답을 듣고는 싱긋 웃고 몸을 돌려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카지노는 두 분류로 나누어졌다. 돈을 따서 더 돈을 뿌리는 자들과 잃어버린 돈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참가하는 자들. 이들이 제국의 귀족들이라니. 전쟁에서 고생한 이유는 이런 귀족들을 더 배부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카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여기예요.”
카지노 구석에는 바가 존재했다. 카밀라는 태연하게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옆 의자에 손으로 툭툭 치며 카사에게 앉으라는 티를 내었다.
“무엇을 드릴까요?”
바텐더가 주문을 받기 위해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카밀라는 턱에 얼굴을 괴더니 능청스럽게 무언가를 건넸다. 그 물건을 본 바텐더의 눈에 이채가 띄었다.
“이쪽 관련된 손님이었군요.”
카밀라가 건넨 것은 아까 내민 초대장과 다르게 검은 초대장이었다. 바텐더는 그 초대장을 펼쳤고, 뒤를 향해서 눈짓했다. 어느새 뒤에 시종들이 공손히 인사를 하며 길을 안내해 주었다.
“제법이시군요.”
“별말씀을요.”
카사의 칭찬에 카밀라는 가볍게 대꾸했다.
“처음이신가요?”
곧 커다란 문이 보였다. 문을 열기 전, 질문한 시종의 말에 카밀라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좋은 상품을 얻기를 바랍니다.”
굳게 닫혀 있는 문이 열렸다. 누구나 서로 표지판을 들며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다. 아직은 각종 장신구나 장식품 등이 경매되고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한 탁자에 앉았다. 카밀라는 태연하게 준비된 차를 홀짝였다.
“아직은 본 상품이 나오지 않았나 보네요.”
“잘 작동되고 있습니까?”
“물론이죠.”
그녀의 목에는 큼직한 에메랄드 목걸이가 빛나고 있었다.
“전하의 곁에는 인재가 많네요. 검사기에 들키지 않을 정도라면 상당한 정밀도를 요구했을 텐데.”
“그런 편입니다.”
“어머. 낯이 두껍네요.”
카사는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카밀라를 힐끗 바라보았다. 진정으로 낯이 두꺼운 자가 누구인가. 그녀의 얼굴에서는 한시도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미소였다. 그 미소가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재주라면 재주였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에 그녀의 호위로 붙었지만 자신의 도움이 필요했을까 싶을 정도로 카밀라는 혼자서 척척 해냈다. 카밀라는 카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제 시작인가 봐요.”
사회자가 큼큼 헛기침을 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드디어 오래 기다리시던 시간이 왔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애피타이저에 불과하죠. 지금부터 본격적인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시작인가.”
“기다리다 지칠 뻔했다고!”
“이번에는 질이 좋겠지? 요즘은 통 글러먹었어.”
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과열된 분위기에 사회자는 그들을 진정시켰다.
“요즘에는 값 좋은 물건을 구하기 힘든 시점이신 걸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엄격히 고르고 골라 손님에게 좋은 물건을 제공하는 게 저희의 신념이 아니겠습니까? 다소 적더라도 품질만은 확실합니다.”
사회자는 불평스러운 말을 늘어놓는 귀족들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죠. 우선 첫 번째는…….”
그 뒤로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두려움에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사람들이 올라왔다. 어떤 이는 얼마나 저항을 했는지 재갈까지 물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자들, 울고 있는 자들, 체념한 자들 하나같이 짙은 좌절감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카밀라는 조용히 입가를 가리고 있었고 카사는 무덤덤하게 바라보았다. 노예들은 발버둥을 쳤지만 그들에게 길은 하나였다. 팔린 노예들은 귀족들 앞에 가더니 몸 어딘가에 낙인이 찍혔다.
“정말 악질이네요…… 설마 낙인까지.”
카밀라는 치를 떨면서 말했다. 그녀는 저 행위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했다. 카사는 그녀에게 낙인에 대해 물었다. 카밀라는 그를 슬쩍 보더니 부채를 쫙 펼치고 그의 귓가에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옛날의 안 좋은 관습이죠. 지금은 노예를 금하지만 예전에는 달랐습니다. 그때 주인에게 거스르지 못하도록 찍는 게 낙인이죠. 명령을 절대 무시하지 못하는…….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는 거죠. 오직 명령만 듣는…….”
그 모든 행위가 초록색으로 빛나는 에메랄드 보석에 비추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 그들은 썩은 내가 풍기는 그곳에서 나왔다.
“썩어빠진 놈들.”
과격한 말이 곱게 자란 아가씨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카사가 흠칫 놀랐다. 놀랐다고 해도 살짝 눈이 커지는 정도였다. 하지만 곧 인정했다. 피 냄새를 풍기는 곳에서 살다시피 한 자신도 그들의 행위에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카밀라는 물끄러미 바라보는 카사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왜 그러시죠?”
“아닙니다. 의외였기에…….”
“그런가요?”
다소 심술궂은 표정으로 카사를 올려다보았다.
“저라도 비속어는 써요. 잘 쓰지는 않지만요. 조금 전에 광경에 쓰지 않는다면 어디에 쓰겠어요.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말 아닌가요? 인간이기를 포기한 추악한 사람들이죠.”
“동의합니다.”
“우리에게도 저들에게도 소중한 증거를 잘 챙겨야겠죠.”
카밀라는 에메랄드 목걸이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카사의 눈에는 그 웃음이 지친 듯이 보였고 다른 의미로는 결의에 차 보이기도 했다. 카밀라는 목걸이를 흔들더니 카사에게 전달해 주었다. 카사는 목걸이는 분실하지 않게 잘 보관했다.
“그럼, 전하께 전달 잘 부탁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밀라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멀어졌다. 카사는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따라갔다.
* * *
이안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고, 거기에는 매 한 마리가 부리로 창문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이안은 서신을 읽고는 바로 제르펠의 방으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자 가벼운 옷차림을 한 제르펠이 나왔다.
“카사의 서신이 왔습니다.”
제르펠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알겠다.”
이안과 제르펠이 집무실에 도착하자 곧 말을 타고 온 카사가 도착했다. 카사는 성큼 걸어 들어오더니 곧장 증거물을 꺼냈다. 이안이 목걸이 접합부를 누르자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영상이 튀어나왔다. 영상이 끝나자 빛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긴 영상이 끝났다.
“……대단하네요.”
이안은 짤막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이곳의 현실이지. 하루빨리 썩은 근원을 잘라 내야지.”
“하지만 이걸로는 프란시아 후작이 운영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자기는 손님이라고 발을 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귀족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겠죠.”
“알고 있다.”
몇 번 전적이 있었다. 제르펠이 모를 리가 없었다. 프란시아 후작이 꼬리 자르기식으로 도망을 간다면 일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이 영상으로 공적인 명분을 얻었다. 그렇기에 신중히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발뺌하지 못할 증거를 얻을 때까지. 카지노를 무너뜨린다 해도 근원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제자리걸음이다. 지켜보던 카사가 입을 열었다.
“전하. 역시 마탑이 관련된 것 같습니다.”
카사가 조심스레 밝힌 견해를 들은 제르펠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더니 작게 혀를 찼다. 이안은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면서 그 인간들이 대체 왜…… 한탄했다. 제르펠은 카사에게 질문했다.
“이유는.”
“우선 첫 번째는 진짜 초대장인지 구별할 수 있도록 마법을 걸어 놓았습니다. 두 번째로는 몇 가지의 문과 다른 공간을 연결하여 운행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주기마다 장소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는 영상에서 나온 것처럼 낙인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역에서 일까지 포함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마탑은 독립적입니다. 마탑이 아닌 개인이 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
탁탁.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충분히 납득 가는 이유였다. 하필 마탑이라……. 마탑은 국가가 관여할 수 없는 독립적 기구였다. 애초에 마탑이 문제를 잘 일으키지도 않았다. 그들은 마탑에서 생활을 하며 잘 나오지도 않았으며 말이 통하지 않는 거로 유명한 족속들이었다.
겨우 돈을 위해 거기까지 하는가……. 아니면 권력인가……. 어느 쪽이든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제르펠의 모든 노력은 살기 위해, 황제가 되기 위한 것이었다. 살짝 눈치를 살핀 이안이 넌지시 말했다.
“잠깐 눈을 돌린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베르트 공작의 등장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각종 모임에 참석한다고 하더군요.”
“그래…… 모임 때마다 지겨워 죽겠군. 덕분에 궁에 들어오는 시간조차 늦어지니…….”
매서운 말투였다. 제르펠은 그를 만나 생긴 스트레스가 생각나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고개를 든 제르펠은 이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안은 지그시 보는 시선에 저절로 몸이 긴장되었다. 제르펠의 시선의 의미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참다가 못해 이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실 말씀이라도…….”
흠…… 하는 제르펠의 고민스러운 말에 적막이 흘렀다. 이안은 좋지 않은 기운을 느꼈다.
“마탑 쪽은 너에게 맡기지.”
“네?”
제르펠은 놀란 듯 대꾸한 이안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제르펠의 말에 이안은 입을 떡 하니 벌렸다.
“그나마 마탑에 친분이 있는 자는 너뿐이다. 개인이라고 확정 난다면 마탑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물론 반론은 받지 않는다.”
확고하게 쏘아붙이는 말에 이안은 입이 벌리며 멍한 시선으로 제르펠을 보았다. 제르펠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너의 걱정은 안다. 혹시 모를 사건을 대비해서 기사를 붙여 주지. 그럼 안심이겠지. 보상은 두둑이 챙겨 주마.”
“……알겠습니다.”
설마 뛰쳐나온 그곳을 다시 찾아가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이안은 침음을 삼키며 마지못해 말했다.
“그럼 자금의 유통은 신전과 마탑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확실하겠지.”
“신전 쪽은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제르펠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민심으로 유지되는 것이 신전이다. 그는 모래로 성을 쌓은 것이나 마찬가지지. 진실을 알게 되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겠지.”
민심으로 유지되는 신전은 민심을 잃게 되면 존재해야 할 명분이 사라진다. 그 신전의 지도자가 성역을 더럽혔다면 말할 것도 없다.
“슈이렌이 말한다면 더 설득력이 있겠지.”
“슈이렌 님에게 부탁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안의 눈이 커졌다. 그는 항상 슈이렌에게 들키지 않게, 그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했다.
“내 투정임을 알았을 뿐이다. 결국,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도 나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지.”
이안은 다른 자를 통해 교황을 만났던 일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었다. 그 일로 통해 그에게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전하, 교황을 은밀히 조사했습니다.”
“무슨 일을 꾸미고 있더냐?”
“조용합니다. 전하께서 영지를 떠난 얼마 뒤 교황 일행도 떠났다고 합니다.”
“종은?”
“교회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종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어두운 새벽에 교회를 가는 도중에 종까지 올라가 있던 신관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종은 교회의 꼭대기에 존재했고, 그 높이는 상당했다.
“그 높은 곳까지 말이더냐?”
“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슴푸레한 그림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복장이 새하얗기에 신관님 같았다고 언급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전에 돌아온 그 이후로는 활동도 없고, 신전 안에만 존재하여 경비가 삼엄합니다. 하지만 서신은 꾸준히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황후랑 말이지……. 필요할 때만 손을 내미는 얄팍한 관계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군.”
제르펠은 눈을 번뜩이며 이안에게 당부했다.
“카지노의 일도 중요하지만 교황과 황후의 감시도 소홀히 하지 마라. 카사, 수고했다.”
“네.”
“밤이 늦었으니 이만 들어가 보지.”
이제 교황과 황후를 잡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카사를 보낸 제르펠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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