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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79화 (79/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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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뱀일 때 받았던 공물 주머니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관리를 하지 않고 남에게 맡겼기에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분명히 여기였는데…….”

방 안을 이 잡듯이 샅샅이 파헤쳤다. 공물 주머니를 챙긴 사람은 카사 아니면 제르펠이었다. 그렇다고 제르펠한테 물어보는 건 바로 티가 날 것 같았고, 카사는 현재 없었다.

“음…… 좀 더 찾아보자.”

서랍을 일일이 뒤지고 탁자를 쭉 살펴보아도 주머니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쿠션은 있는데…… 왜…….”

설마 제르펠이 처분을 했을 리가 없고, 그는 항상 내 공물 주머니를 맨 마지막 서랍에 상자에 담아 두었다. 몇 번을 열어서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서랍 안을 찾

으려고 굽혔던 허리를 펴고 방 안을 쭉 둘러보다가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뇌리에 과거에 내가 했던 행동이 떠올랐다. 아…… 맞다. 난 침대 밑에 몸을 쑤셔 넣었다.

공물 주머니는 내 비상금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야지, 라고 생각했다.

“아, 있다. 있어. 나도 참…….”

그때는 뱀 생활에 정말 잘 적응했었지…… 예전 내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그 당시에는 설마 내가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다. 침대 밑바닥 구석에 작은 주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저 주머니를 저곳에 옮겨 넣기 위해 고생했던 날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난 손을 쭉 뻗었다. 아슬아슬하게 주머니 끝을 스쳤다.

“으…… 조금만…….”

하필 침대가 더럽게 큰바람에 팔을 쭉 넣어도 닿지를 않았다. 결국 주위를 둘러보다가 벽면 한쪽에 장식된 검을 들어 보았다. 실제 검이 아니라서 날카롭지도 않고 가벼운 재질이었다. 난 검을 쑥 침대 밑으로 집어넣어 주머니들을 구출했다.

“오…… 닿는다.”

구출한 주머니를 챙겨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디 보자…….”

주머니를 펼치기 전에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좀 돈이 될 만한 것이 있기를……. 묶여 있는 주머니를 열었다. 찬란……한 보석까지는 아니었다. 빛이 좀 나네? 정도의 작은 보석과 대부분은 큐빅이었다. 솔직히 실망했다.

“……다른 것도 보자.”

다 똑같았다. 왜 나는 진작 귀족에서 아양을 떨지 않았던 것인가……. 시녀들과 시종에게서 받은 보석이 비싸면 얼마나 비싸다고……. 머리를 부여잡고 좌절을 했다.

“선물…… 살 수 있을까?”

그의 수준에 맞는 선물을 사고 싶었지만 돈이 한없이 부족해 보였다. 드레스 룸에 있는 보석들이 아련하게 지나갔지만 꾹 참았다. 그걸 팔아서 자금을 모으는 건 좀……. 앞길이 막막했다.

“그건 그런데 주인이 안 오네……?”

제르펠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다가 그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벌써 창문 사이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오늘은 빨리 온다고 했는데……. 오늘도 보나 마나 선물을 사 왔겠지……. 언제는 꼬박꼬박 나에게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어보던 그가 이제는 알아서 선물을 사 왔다.

제르펠이 제 마음을 표하기 위한 선물들이었다. 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지 외출을 나갔다 들어올 때면 꽃다발을 가지고 왔다. 그것도 여행 갔을 때 보았던 꽃을 생각나게 하는 분홍 꽃이었다. 지금도 꽃병에 장식된 꽃이 그가 나에게 선물을 준 것이다.

“……배웅이나 갈까…….”

내가 그에게 표할 수 있는 애정은 한정되었다. 난 창문을 내려다보았고 눈을 비볐다. 이안이 정문에 나와 있었다. 그가 나와 있다는 말은 곧 제르펠이 도착한다는 말이었다. 창문턱에 손을 짚고 몸을 쭉 내밀었다. 멀리서 보니 노을을 배경으로 삼고 달려오는 마차가 보였다.

“오고 있잖아??”

배웅을 위해서 제르펠이 도착하기 전에 내가 먼저 정문에 도착해야 했다. 문을 거칠게 연 나는 뒤에서 행선지를 물어보는 폴과 월의 말을 무시하고 계단을 두세 칸씩 성큼 뛰어갔다. 이안은 뒤가 소란스러워지자 고개를 돌렸고, 난 태연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주인 오고 있지?”

“네, 지금 오고 있다는 서신을 받고 기다리는 참입니다.”

이안은 차분하게 나에게 답했다. 주인도 참 고생이 많아……. 연회가 끝나면 황제파 귀족들이 더는 그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안일했다. 프란시아 후작의 등장으로 사태가 급변했다. 그가 외출을 밥 먹듯이 하고 늦게 돌아오는 이유였다.

제르펠은 가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미간을 부여잡았다. 창백해진 얼굴이 안쓰러워 보였다. 쓰러지면 어쩌지 하고 힘을 나누어 준 것도 여러 번이다. 그런데도 내 선물은 꼬박 챙기니…….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니까, 이런 행동이라도 보여 줘야지. 그는 내가 해 주는 사소한 것들조차 좋아하니까……. 정문 앞에서 돌멩이를 발로 툭툭 치며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마차가 매끄럽게 움직이며 정문 앞으로 멈추었다. 마부가 문을 열기도 전에 제르펠이 문을 열고 나왔다.

난 그의 품에 다이빙하듯이 뛰어들었다.

“오늘도 고생했어!”

그는 놀란 듯 눈이 살짝 커지다가 이내 웃으며 나를 반겼다.

“얇은 카디건이라도 걸치고 나와야지. 아무리 봄이라지만 날이 어두워지면 쌀쌀하다.”

“이제 막 노을이 지고 있거든?”

분명 오늘 베르트 공작에게 간다고 했던 제르펠이었다. 연회를 가기 위한 복장이 아니었기에 빨리 올 줄 알았다.

“가서 뭐했어? 공작이 안 놓아줘? 연회 참석은 아니라며? 회의했어?”

공작 저에는 공녀도 있었을 거 아냐? 게슴츠레한 눈으로 흘겨보자 제르펠이 웃음을 지었다. 난 분명 추궁한다고 한 말이었지만 그는 가볍게 넘겼다. 오히려 나를 떼어 낸 제르펠은 겉옷을 벗어 내 몸에 걸쳐 주었다. 가벼운 복장이라 추워 보였는지 꼼꼼히 단추까지 채워 주었다.

“감기 걸린다. 들어가자. 그리고, 선물이다.”

더 말하려던 입이 선물이라는 말에 닫혔다. 제르펠은 마부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부가 그의 손 위에 재빨리 봉투를 올렸다. 알 수 없는 봉투였다. 봉투 사이로 달콤한 냄새가 뿜어져 나왔기에 높은 확률로 간식일 확률이 있었다. 달콤한 냄새가 내 식욕을 자극했다. 이러면 봐주도록 하지. 내가 바로 먹으려 하자 제르펠은 방 안에서 먹자고 못을 막았다.

“치사하긴…….”

“들어가서 대화를 나누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안이 추운 곳에서 떠드는 우리를 방 안으로 보냈다. 방으로 들어오자 제르펠은 목욕을 하러 들어갔다. 그가 씻는 동안 들고 온 봉투를 꺼내 들었다. 달달한 냄새가 계속 코끝을 간질였고 침샘이 분비됐다. 양심상 같이 먹으려고 했지만 달콤한 향이 간질이다 못해 찌르고 있었다.

“주인은……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먼저 먹어야지.”

난 콧노래를 부르며 봉투 안을 뒤적거렸다. 폭신폭신한 슈크림이 잡혔다. 눈이 반짝 빛났다. 빵빵하게 들어간 크림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크게 입을 열고 한입 베어 먹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당히 맛있었다. 우리 주방장은 고기 요리 실력은 좋지만 다과 쪽은 별로란 말이지……. 주인이 디저트를 먹지 않는 것도 내가 평소에 디저트를 먹지 못한 데에 한몫했다.

나머지를 입에 다 넣고 또 다른 하나를 집어 먹고, 또 봉투에 손을 넣은 순간에 달칵하는 소리와 제르펠이 나왔다. 시선을 슬쩍 주고는 손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내 입꼬리에 하얀 가루가 묻어 있었는지 제르펠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털어 주었다. 들고 온 선물을 기쁘게 먹고 있으니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먹고 양치하렴.”

“그 정도는 알거든? 내가 애 아니라고 했지.”

말투가 곱게 나오지 않았다. 이미 그는 내 나이를 알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속에서 삼키고 작게 투덜댔지만 이제는 달랐다. 과거를 탈탈 털었지 않은가? 한동안 그 이야기로 하얗게 불태웠을 정도였다. 그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살짝 미소 짓는 것이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한동안 바빠질 것 같구나.”

“또??”

이제 대체 몇 번째의 반복이야? 일이 끝났다 하면 다른 일이 닥쳐. 또 한 건 해결하면 다른 일이 닥쳐. 하여간 내버려 두지를 않아요. 물론 나 말고 주인. 슈크림이 손아귀에서 흉하게 뭉개졌다. 아차. 크림이 새어 나오는 걸 황급히 입속에 넣고 오물거리며 침대 옆을 내리쳤다. 제르펠이 내 행동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옆에 앉았다.

“도움 필요해?”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장난기 없는 표정으로 정색하며 제르펠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필요하다면 필요하다고 말해.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제르펠은 입이 무거운 사람이었다. 쉽게 말을 입에 담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온종일 같이 있다 보니 눈치로 알아보는 것뿐이었다. 제르펠은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손을 뻗어왔다. 나에게 다가오는 줄 알았던 손이 살짝 방향을 틀더니 봉투를 집어 들고 안에 있던 슈크림을 꺼내 내 입에 넣었다.

“너의 도움은 충분히 받았다. 하지만…… 명심하지.”

제르펠은 옅게 웃었다.

“알면 됐어. 이리 내놔.”

그가 들고 간 봉투를 다시 잡아채 갔다. 나한테는 기대지 않는 그가 야속하게 보였다. 너무 입이 무거운 것도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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