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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저기 가 보자!’
유독 내 눈에 띈 장신구 가게가 있었다. 난 그곳을 향해 꼬리를 안테나처럼 꼿꼿하게 가리켰다.
“저기 가고 싶나?”
나는 꼬리를 파닥이며 그의 걸음을 재촉했다. 그곳은 꽃으로 만든 장신구들도 있었지만 내 눈에 띈 것은 다른 것이었다. 이게 대체 뭐야? 그건 나를 본떠서 만든 조각상처럼 보였다. 새하얀 돌로 깎은 다음 눈에는 붉은 큐빅이, 이마에는 푸른 큐빅이 박혀 있었다.
제르펠도 그 조각상을 봤는지 작게 쿡쿡 웃었다. 웃지 마! 내가 항의하면서 그를 콕콕 찔렸지만, 그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상인은 우리가 다가오자 물건을 팔기 위해 조잘조잘 떠들어 댔다.
“잘생긴 총각이 보는 눈이 있구먼. 이 조각상은 우리 사자님을 본떠서 만든 거지.”
우, 우리 사자님? 역시 내 조각상이었구나……. 그런 것 같더라. 대체 누가 만든 건지. 내가 원래 뱀이었다는 건 공연히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 이상하게 주변에 뱀 모형이 많더라. 수신 때문인 줄 알았더니 나 때문이었구나. 난 창피함에 꼬리로 얼굴을 가렸다.
“우리?”
제르펠은 상인의 말이 약간 거슬린 듯했다. 조각상을 만지는 제르펠의 손이 삐끗했고 살벌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상인은 눈치 빠르게 말을 돌렸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설마 사자님을 우리라고 칭하겠습니까. 허허. 아무튼 인기가 좋아서 많이 팔리는 조각상입니다. 아니면 연인에게 예쁜 꽃 장신구라도 선물이라도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가판대를 슬쩍 보니 예쁜 장신구들은 많았다. 딱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나는 아니고. 나는 이제 관심이 없어져서 심드렁해졌는데 제르펠은 아니었다. 그는 고심하며 장신구를 골랐다. 결국 하나를 집어 내 머리에 대는 행각까지 하기 시작했다.
정녕 이게 나에게 어울린다고 들이대는 것이냐? 난 그의 손을 꼬리로 팍 쳤다. 분홍 꽃이 옹기종기 피어 있는 머리핀이었다. 예쁘긴 하지만 내가 할 건 아니야! 제르펠은 장난을 다 친 건지 아니면 내 불퉁한 얼굴을 보았는지 머리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잡고는 입맞춤을 했다.
“이거 하나는 좋군.”
뭐시라! 그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의 목에 돌돌 둘려져 있으니 피할 곳도 없었기에 그가 원할 때마다 입맞춤을 당했다. 입맞춤이 지속할수록 새하얀 비늘이 붉게 달아올랐다. 결국, 꼬리로 그의 입술을 막았지만 꼬리 끝에 입맞춤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서로 티격태격하는 사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배에서 배가 고프다고 난리였다. 주인아. 나 배고프다. 난 그를 얼굴로 툭툭 쳤다. 이쪽 라인에는 전부 물건뿐이라 간식거리가 보이지 않았다. 제르펠은 내가 혀를 날름거리고 입을 쩍 벌리며 입 안을 가리키자 내가 배가 고프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제 대충 둘러보았으니. 밥을 먹으러 가지.”
간식거리를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 몸이 들썩였다. 밥아. 어딨니? 조금 더 걷다 보니 먹거리가 보였다. 사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후각을 곤두세워 공중에 퍼져 가는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이 냄새는? 닭꼬치였다. 씁…… 침이 절로 나왔다. 원래 밖에서 먹는 고기는 또 다른 맛이 아니겠는가. 나, 저거 사 줘! 꼬리로 어느 가게를 가리키자 제르펠의 눈동자가 그곳을 향했고 뒤를 따르던 세드릭에게 턱짓했다.
역시 주인은 척척 내 말을 잘 알아듣는단 말이지.
그는 바로 내 눈앞에 닭꼬치를 대령했다. 뜨거운 김이 풀풀 나는 맛있어 보이는 닭꼬치였다. 그는 끝을 살짝 떼어 내고는 입김을 불어 식히고 있었다. 난 안달이 나서 덥석 먹으려고 했지만 고기는 없고 공기만 먹었다.
“잠시만 기다리렴. 입 덴다.”
그는 꿋꿋이 닭고기를 식히고 주었다. 난 그가 건네주는 고기를 꿀꺽 삼켜 먹었다. 주변에 묻은 소스까지 혀로 싹 핥아먹었다. 뱀은 먹이를 꿀꺽 삼켜서 맛을 느끼기가 좀 힘든 구조란 말이지. 그는 꼬치가 다 없어질 때까지 조금씩 떼어서 나에게 먹여 주었다. 마지막 한 점까지 다 먹고 그의 손가락에 묻어 있는 소스까지 챱챱 핥아먹었다.
아직 먹지 못한 먹거리가 산더미인데 작은 몸은 금방 배가 부르다고 신호를 보내왔다. 벌써 배가 부르면 안 되는데……. 내가 더 달라고 주장했지만 배탈이 난다며 제르펠이 거절했다. 난 아쉬운 마음으로 거리를 떠났다. 배도 부르고 이제 잠이 솔솔 오는 것 같아 몸이 축 늘어졌다.
“피곤한가? 아직은 자지 말렴.”
응? 내 잠을 방해하는 그가 이상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꽃을 구경해야지.”
아, 맞다. 중요한 걸 빼먹을 뻔했다. 여관 창문으로도 멀리서 많은 꽃잎이 흩날리는 것이 제법 아름다웠다. 가까이서 보면 어떨까? 난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장을 벗어나자 코끝에 꽃잎이 하나가 내려앉았다. 난 고개를 푸드덕 저어 꽃잎을 떨쳐냈다. 멀리서 흩날리던 꽃잎이 여기까지 날려 왔다. 절경이 코앞이었다.
“네가 말한 꽃나무가 없었다. 하지만 꽃은 있더군. 마침 피는 시기라 다행이었지, 이런 꽃이 있는 줄은 나도 처음 알았다.”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에게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감탄사가 나올 틈이 없이 그저 눈앞에 펼쳐진 절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혹시 꽃이 다 지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괜한 우려였지. 마음에 드니?”
커다란 나무는 없었다. 하지만 드넓게 꽃이 피었고 바람에 의해 꽃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본 적도 없는 꽃이었다. 굳이 명칭 한다면 민들레와 비슷했다. 새하얀 씨가 아닌 연분홍색 씨가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응. 예쁘네…….’
내가 하릴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그가 뿌듯했는지 목울대가 울렁였다.
“예쁘구나.”
그렇지? 하고 옆을 돌아보았는데 그가 따스한 미소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 동공이 사정없이 떨렸다. 예쁘다는 말은 꽃이 아닌 나에게 한 말이었다. 쑥스러움에,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얼굴을 그의 목에 비볐다. 유쾌한 그의 웃음이 울려 퍼졌다.
“다음에도 오자구나.”
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곧 여관으로 도착했다. 난 침대 이불 사이로 기어들어 갔다. 제르펠의 다정한 목소리를 자장가로 삼으면서 잠에 빠졌다.
* * *
[……싫어…… 사라…….]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잘 안 들려? 마치 여러 명이 동시에 속삭이는 느낌이었다. 멀어지는 목소리에 손을 뻗었지만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추락했다.
“윽…….”
난 등이 아파 벌떡 일어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난 침대 위가 아닌 침대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그로 인해 아픈 등을 매만졌다.
“사람으로 돌아왔잖아.”
이번에도 나신인 게 문제였지만 옷을 입으면 그만이었다. 다행히 방 안이었다. 난 얼른 옷을 입고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지는 않았다. 아직 밖에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잠결에 희한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분명 말을 들었는데 무슨 말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힘이 돌아와서 그런가? 저번처럼 수신의 말……? 몰라, 기억 안 나……. 그건 그렇고 주인은 어디 갔어.”
옷을 대충 껴입고 문을 벌컥 열자 제르펠이 문 앞에 떡 서 있었다. 깜짝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갔다. 그도 놀란 듯 눈이 커지다가 주변을 살피고는 나를 밀치다시피 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의 태도에 기분이 상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왜?”
“미안하다. 주위에 사람이 많았다. 사자라는 걸 들키면 소란이 일어난다.”
아…… 아무 생각 없이 나갔네. 그의 태도가 이해됐다. 난 머쓱하게 목덜미를 만졌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나갔어…….”
“힘이 돌아왔나.”
변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그는 듣지도 않았고 내가 사람으로 돌아오자 기쁜 티를 팍팍 냈다. 나도 모르게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제야 말이 통하겠다. 근데…… 어디 갔다 와?”
“잠깐 밖에 갔다 왔다.”
“혼자서? 나를 두고?”
그가 할 행동이 아니었다.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보았지만 말해 줄 생각이 도통 없었다.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침대에 다시 누우려는 순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배고프네……. 아까 별로 먹지도 못했고……. 잠시 고민한 나는 그를 보며 미안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주인아…… 우리 다시 밖에 나가면 안 돼?”
별로 먹지 못한 음식들이 눈에 어슴푸레 지나갔다. 제르펠도 내 속셈을 알았는지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아싸! 역시 주인뿐이야. 원래 야시장도 볼만해.”
“이럴 때만 그런 게 아니고?”
얘가 왜 이러냐? 보통 넘어가 주는데? 위를 올려다보니 뭔가 기대를 하는 듯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그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하긴…… 뱀으로 있은 지가 얼마냐……. 에라이. 난 선심 쓰듯 제르펠의 입에 뽀뽀를 해 주었다.
“됐냐?”
만족스럽다는 듯이 쿡쿡 웃었다. 그는 옆에 걸어 두었던 후드를 나에게 뒤집어씌워 주었다.
“먹고 싶은 것은 다 사 주마.”
쉴 준비를 하던 세드릭 일행에게는 미안했지만 난 제르펠의 손을 끌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제 발로 걸어갔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내 걸음에 맞춰서 뒤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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