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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76화 (7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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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이렌? 슈이렌!”

제르펠의 경악한 목소리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그 이름의 장본인은 잠든 것처럼 평온한 얼굴로 제르펠의 품 안에 안겨 있었다. 제르펠은 감각을 곤두세웠다. 다행히 슈이렌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렸다. 제르펠이 긴 한숨을 늘어뜨리며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것도 잠시 슈이렌의 몸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건…….”

제르펠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나왔다. 그리고 그의 품 안에는 슈이렌의 옷가지가 걸려 있었다.

“사, 사자님이!!”

비가 오는 중임에도 피신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슈이렌을 걱정했다. 제르펠은 옷 사이로 툭 떨어지는 새하얀 뱀을 재빨리 받아 냈다. 슈이렌은 뱀일 때 유독 추위에 약했다는 것을 기억한 그는 얼른 옷가지로 그를 꽁꽁 싸맸다.

“저, 전하 사자님께서는 괜찮으신가요? 혹시 너무 많은 힘을…….”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교황도 놀랐는지 커진 눈으로 물었다.

“다시 뱀으로 돌아간 것입니까?”

제르펠은 그를 곁눈질했다. 능청스러운 대답에 이가 빠드득 갈렸지만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는 게 급선무였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신경 쓰지 마라. 교황, 슈이렌이 이렇다 보니 먼저 들어가야겠군.”

“물론입니다. 뒷정리는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황급히 걸어가는 제르펠의 뒤를 세드릭 일행이 바짝 따랐다. 세드릭은 걱정스러운 기색이 연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전하. 슈이렌 님이…….”

“……저번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큰 걱정할 필요 없다.”

하지만 제르펠의 눈이 떨렸다. 힘을 다 써서 기절한 것은 기우제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때와 모습은 정반대지만 그 상황과 똑같이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추위에 떠는 건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정도가 어찌나 심하면 제르펠에게 전달됐다. 그는 입 안의 살을 잘근잘근 물었다.

‘좀 더 조사해야 했는데…….’

카지노에 집중되었기에 교황의 경계는 반대로 느슨해졌었다. 그는 이번 일이 제 탓인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렸다. 제르펠은 그에게 온기를 나눠주면서 곧장 숙소로 향했다.

* * *

창문을 통해 약간 서늘한 바람이 들어오는 방 안의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그림자는 하염없이 웅크린 뱀을 바라보고 있었다.

밖에는 끊임없이 비가 내리고 슈이렌의 몸의 떨림은 시간이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하필 건물도 매서운 바람을 완벽하게 막아 주지는 못했다. 비는 지붕을 매섭게 때렸다.

세드릭을 시켜 교황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지만 그 일 뒤로 교황은 교회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마치 볼 일은 다 끝났다는 태도였다. 신관이 슈이렌의 안부를 묻는 것이 전부였다.

제르펠이 슈이렌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슈이렌의 온도가 전해졌다.

“왜 이리 떠느냐…….”

슈이렌의 상태는 누가 봐도 확연히 나빠 보였다. 결국, 그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세드릭에게 통보했다.

“안 되겠군. 빨리 이곳을 떠난다.”

“제대로 된 사건 조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슈이렌의 상태가 심상치 않군. 여기는 추운 바람을 막기에는 허술한 곳이다.”

세드릭은 슈이렌을 쓰다듬는 제르펠을 보았다. 슈이렌은 동그란 구처럼 몸을 말고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제르펠은 주변을 살피고 최대한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했다.

“카사의 임무가 성공한다면 교황도 무사할 수는 없다. 그런데……. 슈이렌을 잃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 아닌가. 이러다 잘못될까 두렵군…….”

그는 소중하게 슈이렌을 가슴에 품었다. 제르펠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떠나도록 하죠.”

다음 날 아침, 제르펠은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교황은 제르펠이 떠난다는 급한 소식에 헐레벌떡 나와 그들을 배웅했다. 이때까지 그날 이후 얼굴도 비치지 않았던 교황이 제르펠 일행을 잡았다.

“벌써 가십니까? 조금 더 머무르고 가시지요.”

교황은 제르펠의 품에 안긴 슈이렌을 보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제르펠은 매서운 눈빛으로 교황을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다. 더는 폐를 끼칠 수는 없지. 교황은 마을 사람들의 안전에 유의하도록.”

“유의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물러선 교황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교황을 잠시 쳐다보던 제르펠은 마차 위로 올라탔고 이럇, 하는 소리와 함께 마차가 급히 떠났다.

마차가 달리는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을 때쯤 교황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교회 쪽을 바라보았다.

“아쉽지만…… 충분하겠지…….”

교황은 빠른 걸음으로 교회로 돌아갔다.

* * *

난 번쩍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 나 쓰러졌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제르펠의 얼굴이 다가왔다.

“슈이렌, 괜찮나?”

그의 손이 뻗어 오는데 무척이나 켰다. 그는 조심스럽게 내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제르펠이 거대하게 느껴진다고 했더니 어느새 뱀으로 돌아와 있었다. 힘을 다 소진해서 돌아왔나? 눈을 감고 집중하니 몸 안에 힘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즉, 콩알만 한 힘이 남았다는 말이었다.

그는 내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뱀으로 돌아가서 걱정했는지 미세하게 눈썹이 찌푸려져 있었다. 또한 그의 낯빛도 어두웠다. 걱정…… 했겠지. 저번에도 일주일 동안 꼬박 기절해 있었다고 했으니까 이번에도 그와 비슷하겠지.

걱정이 만연한 제르펠의 표정을 보면 그보다 더 잠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머쓱해져서 꼬리 끝으로 그의 손을 두드렸다. 그에게 건강하다며 소식을 전했다.

‘괜찮아. 그것보다 비는 잘 오고 있어?’

내 행동에 희미한 미소를 지은 그는 내 궁금증을 알고 있는 듯이 말했다.

“다행히 일은 잘 마무리됐다. 지금도 비가 오고 있지.”

제르펠은 나를 지나쳐서 커튼을 짝 걷었다. 미처 귀 기울이지 못한 빗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우중충한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보슬보슬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제르펠이 침대에 걸터앉자 침대가 출렁거렸다. 그는 조곤조곤 다음의 일을 말해 주었다. 내가 비를 내리자 사람들은 기뻐하고 교황도 물러갔다고 한다. 그는 조심스럽게 나를 쓰다듬었다. 얼마나 조심스러우면 깃털로 나를 간질이는 느낌이었다.

‘아! 맞다!’

내가 쓰러지기 전에 교회의 종이 좀 이상했다. 내 힘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푸른 실이 쭉 늘어져 있었다. 난 몸을 날뛰며 교회의 종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제르펠의 어색한 미소를 보아하니 전혀 알아듣지 못한 기색이었다. 내 말은 그에게 쉭쉭으로 들릴 뿐이었다.

고심하던 난 최대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종을 표현했다. 하지만 제르펠은 애교로 받아들인 건지 손가락을 내밀더니 내 꼬리에 손가락을 감았다.

“이제 완전히 건강해졌구나.”

제르펠은 오히려 내가 활기찬 모습을 보여 줬다고 생각하는지 걱정스러운 낯이 사라지고 웃음이 피어났다. 그게 아니라고! 말이 통하지 않아 축 늘어져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꼬리로 교회를 가리키자! 하지만 어제 묵었던 방이 아니었다. 다른 마을인가? 난 곧바로 꼬리로 창문을 가리켰다.

“저기로 가고 싶나?”

제르펠은 복잡한 내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간단한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아직 힘이 덜 회복했는지 사람으로 변하지 않았다. 나중에 힘이 차면 사람으로 변해서 말해 줘야지. 제르펠은 나를 들어 올리더니 창가에 기대어 섰다.

“네가 잠들어 있는 동안 이동을 했다. 일어나 있으면 멀미에 고생할 테고 일이 끝났기에 빨리 출발을 했지. 일정이 예상과 달랐지만 비가 그친다면 예쁜 꽃을 볼 수 있을 거다.”

나는 몸을 쭉 내밀어서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내가 상당히 오래 자긴 했나 봐……. 어딘가 금이 가고 무너질 것 같은 집들은 없었다. 번듯한 건물들과 밖에는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 꽤 인구가 많은지 비가 오는 날에도 많은 사람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예정대로 우리가 올 관광지인 듯했다. 여행지로 유명한 도시라더니……. 제르펠이 고심하고 고심해서 정한 장소였다. 교회의 종이 거슬렸지만 이미 그곳을 떠나 버렸으니 어쩔 수 없었다. 살짝 한숨이 나왔지만 나를 걱정한 것이 뻔히 보이는 그를 탓할 수도 없었다.

일은 해결했잖아? 좋게 생각하자. 수고한 나에게 주는 상으로 비가 그치면 실컷 놀아야지!

그리 다짐한 지 어느덧 닷새. 뱀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르펠도 같이 구경을 못 해서 섭섭한 티가 보였다. 나를 만지작거리면서 언제 사람으로 변하는지 계속 물어봤다. 나도 알고 싶다!

기껏 왔는데 의도치 않는 방콕행이었다. 잠깐 나가자고 아우성을 쳐도 제르펠은 혹시 모를 위험에 절대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격한 반응에 내가 움찔할 정도였다. 아니…… 너도 나랑 구경하러 가고 싶었잖아……. 놀란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혀를 날름거렸다.

억울했지만 그의 반응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절한 후 내 상태가 많이 심각했다는 것은 주변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제르펠도 회복하기 전에는 방심은 금물이라고 하고, 세드릭도 괜찮냐고 안부를 물어볼 정도였다.

그래도 창문 밖으로 보이는 꽃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까 이러다가 다 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떨어지는 꽃들만 바라보며 풀이 확 죽은 티를 내자 결국, 그가 한 수 물러났다.

“어쩔 수 없군……. 혹시 어디가 아프면 바로 말해야 한다.”

눈이 번뜩였다. 그럼, 당연하지! 드디어 밖으로 나가게 됐다.

나가기 전 제르펠은 물론 호위 기사들 전부 허름한 후드를 걸치고 있었다. 장롱 구석에서 발견될 만한 오래되어 색이 바랜 후드였다.

제일 먼저 제르펠이 후드 모자를 뒤집어썼는데 그러자 그가 아니었다. 내가 알던 제르펠은 어디 가고 길을 가다 보면 어딘가 한 명쯤은 있을 만한 평범한 인상을 가진 남자가 보였다.

제르펠이 나에게 손을 뻗었지만 달라진 인상에 화들짝 놀라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 그러자 그는 충격을 받은 듯 움찔거렸다. 세상이 무너진 듯한 눈빛에 바로 그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후다닥 기어가서 혀로 손을 싹싹 핥아 주자 마음을 진정했다.

“이딴 후드…….”

하며 벗어 던지려는 것을 누군가가 막았다. 또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 눈이 놀라서 튀어나올 지경이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세드릭입니다, 라고 말했다. 어리둥절하여 여전히 눈을 휘둥그레 뜨고 멍하니 지켜보자 제르펠이 설명을 해 주었다.

그의 말을 종합하면 이안에게서 받은 마법 도구라고 한다. 우리들의 얼굴은 잘 알려졌고, 혹시나 하는 위험을 대비해서 챙겨온 도구였다. 원래라면 나도 써야 했을 테지만 지금은 뱀의 몸이었다. 제르펠의 설명으로는 이 후드에는 인식 장애 마법이 걸려 있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제르펠을 못 알아보지. 아니 전혀 다른 사람이었는걸?

하지만 이상한 것은 자신이 누군지 밝히면 아, 그렇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식을 방해하지만, 머릿속으로 저 사람이 제르펠이다. 라고 생각하면 그 마법은 통하지 않는 듯했다. 복잡하지만 그게 마법이라는 거겠지. 밖을 나서니 그 누구도 제르펠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무튼 우리는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데이트를 즐겼다. 단지 사람과 뱀이라는 게 문제지만.

사람이 아니라서 처음에는 불퉁한 얼굴로 제르펠의 목에 둘려서 구경했지만 문득 깨달았다. 걷지 않아서 편했다는 것을. 제르펠의 목에 돌돌 말려서 있으니 따뜻하고 전망 좋고, 걷지 않아서 다리가 아프지도 않았다. 가고 싶은 곳을 꼬리로 가리키면 제르펠은 퍼뜩 방향을 돌렸다. 거기에 사람이 북적북적해서 사람의 모습이었다면 인파에 치여 꽤 고생했을 것이다.

여관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것을 들었는데 우리가 황궁에서 연회를 했던 것처럼 지금이 축제 기간이라고 했다. 비가 내린 것은 좋았지만, 비 때문에 꽃이 많이 지는 바람에 꽃들을 구경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중얼거리는 여행객을 볼 때면 뜨끔하기도 했다.

지금은 화창한 날씨로 비로 인해 구경하지 못한 여행객들이 우르르 나와 구경하고 있었다.

축제 기간이라서 그런지 상인이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꽃이 메인이라 물품 중에 꽃이 많았다. 그것을 제외하고도 큐빅으로 만든 장신구, 짐승을 잡아서 만든 장신구, 조개나 예쁜 돌을 이용하여 만든 것, 정말 가지각색의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그중에 계속 내 눈에 걸리는 물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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