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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75화 (7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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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음식은 아닐까요? 슈이렌 님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는데 공기 말고도 음식을 다 같이 나눠서 먹었습니다. 나았던 자들도 다시 병의 증상이 보인다면 그게 식사 후가 아니었을까요?”

맹점이었다. 난 폴의 생각에 벌떡 일어나려다 풀썩 주저앉았다. 제르펠이 빠르게 나를 잡아 주었다. 난 잘했다는 의미로 손을 뻗어 그의 가슴을 툭툭 쳐 주었다. 제르펠도 그의 의견에 한 스푼 더했다.

“한번 확인해 볼 가치가 있군.”

“주인은 어제 밥 안 먹었어? 안 보이긴 하던데…….”

“그때 숲에 다녀왔다. 맨 처음에 독을 의심했기에 주변 숲을 돌아보며 독초를 찾았지. 그리고 숲에서 구한 음식으로 먹었다. 안 그래도 식량이 부족할 텐데 구할 수 있다면 스스로 구해 먹는 게 좋겠지.”

제르펠의 기특한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머리가 헝클어지는 데도 제르펠은 피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 수프를 먹을 때 찜찜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사실 어제 말이야. 수프를 먹는데 뭔가가 이상했어.”

“정확히 무엇이 말입니까?”

“글쎄? 그냥 느낌이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빵은 문제가 없었는데.”

세드릭이 내 발언에 의문을 표했다. 문득 어떤 이야기가 지나갔다. 역사를 공부할 때. 옛날에 물로 인해서 전염되었다는 병. 콜레라균이었다. 난 탁자를 치고 일어났다.

“콜레라!”

모두가 어리둥절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난 머쓱하게 자리에 주저앉았다. 콜레라균을 그들이 알 리가 없었다. 난 헛기침했다.

“슈이렌,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러니까 물이야.”

“물?”

“내 예상이긴 한데…… 빵은 문제가 없었던 것 같거든. 그럼 수프인데…… 수프는 기본으로 들어가는 게 물이잖아. 꼭 음식이 아니더라도 지금 집을 짓고 있다고 했지? 그럼 지치고 목이 마르겠지. 물을 마실 거 아니야?”

“물이 오염되었다는 말이냐?”

난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세드릭이 넌지시 말을 덧붙였다.

“전하. 그렇다면 옆 마을에 피해가 없다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이 마을에는 정중앙에 커다란 우물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 물로 공동생활을 하는 듯했습니다. 저희는 계곡에서 물을 마셨기에 문제가 없었던 것이고요.”

“……일리가 있군. 좋다. 지금 가 보도록 하지.”

우리는 이른 아침에 우물을 조사하기 위해 나왔다. 공중에서 흩어지는 새하얀 입김이 시간대를 짐작하게 해 주었다. 내가 팔을 비비며 추위에 떨고 있자 제르펠이 그의 겉옷을 걸쳐 주었다.

“고마워.”

우물은 마을 중앙에 있었고, 이른 시간부터 우물에 물을 긷는 사람들이 보였다. 난 사람들이 걱정되었지만 확인도 안 하고 물이 오염되었다고 소리치면 소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세드릭이 우물에서 물을 긷고 난 물을 손으로 살짝 떠서 마셔 보았다.

“음…….”

제르펠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나를 보았다. 난 말없이 엄지를 들었다. 정답이었다. 내 감이 속삭이고 있었다. 당첨이라고. 원인을 알았지만 제르펠의 표정은 썩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한숨은 안도의 한숨이 아닌 또 다른 시련이 닥친 한숨이었다. 내 고개는 살짝 기울어졌다.

“왜? 또 문제가 있어?”

“물이 오염되었다고 하면 더는 이 물은 먹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곳 사람들의 식수가 걱정되는군.”

아…… 작은 탄식이 나왔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물이 오염되었다고 하더라도 교황이 믿을지 의문입니다.”

확신이 아닌 그저 짐작일 뿐이었다. 그때 뒤에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난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로이테였다.

“일찍 일어나셨군요. 여기서 다들 무엇을 하십니까?”

그는 딱 봐도 우물에 볼일이 있는지 두 손에 양동이를 들고 왔다.

“아…… 그게…….”

난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옆을 쓱 보니 제르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도 된다는 신호였다. 난 알아낸 사실을 그에게 간략히 말했다.

“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답했다. 어제 그가 사람들을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간호했던 것이 기억났다. 무리도 아니지.

“근데…….”

“성하께 말씀드리고 오겠습니다!”

텅. 하는 소리와 로이테가 들고 있던 양동이가 데구루루 굴러갔다. 내가 손을 뻗었지만 이미 그는 저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얼떨떨하게 멀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난 뒤를 보며 그가 간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도 갈까?”

우리는 교회로 걸어갔다. 들어가니 이미 로이테가 상황을 설명했는지 교황이 나오고 있었다. 뒤에서 서두르는 로이테와 달리 그의 발걸음은 느긋하기만 했다.

“전하. 신관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물이 오염되었다고 하는데 정말인가요?”

“그건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일이지.”

“사자님께서 직접 확인하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그럼 확실하겠지요.”

너무 섣부른 확신인 것 같았지만 교황은 더 말이 없었다. 제르펠은 교황의 미심쩍은 태도가 이상한지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확답하기에는 이르다. 어떤 경로로 오염이 되었는지 확실히 해야 다음과 같은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의 병세 완화가 우선이지 않겠습니까? 오염된 물이 문제라면 버리면 그만이죠.”

“물은 귀중하다.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뼈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교황은 제르펠의 말은 쉬이 넘겨 버렸다.

“그렇다면 사자님께서 비를 내려 주심이 어떻습니까? 기우제 당일을 제외하고 비가 내린 적이 없지 않습니까? 이참에 비를 내리는 것도 좋겠지요.”

교황은 인자한 미소는 어디 갔는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 눈은 오기로 똘똘 뭉친 것처럼 보였다. 내가 비를 못 내리는 줄 아는 건가? 교황의 말도 맞았다. 힘을 다루는 연습하랴, 연회 준비하랴. 비를 내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게 노림이었나?”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제르펠은 비꼬듯 말했다. 교황과 제르펠 사이에서 신경전이 벌어졌다. 아무 대화도 오가지 않은 상태로 우물에 도착했다. 그가 살짝 내 손을 잡아왔다.

“슈이렌 괜찮겠나?”

“아니…… 뭐, 비를 내려 주는 건 이제 나밖에 없는 건 사실이고. 마을 사람들을 위해 비를 내려 주는 거야…….”

난 제르펠에 어깨에 팔을 걸친 채 그의 귀에 속삭였다. 교황은 들리지 않게 손으로 가리면서.

“근데…… 아무래도 교황이 꾸민 짓 같은데…… 증거물 찾아야 하지 않아?”

“……이미 증거를 제거했을 가능성이 크다. 우선 상황을 지켜보자. 교황이 짜 둔 판에 끼어든 꼴이니…….”

어제 내가 노력한 덕분인지 안색이 좋은 사람들이 곧바로 달려왔다. 하지만 이미 섭취한 물 덕분에 잔기침을 달고 있었다. 나중에 병이 심화하는 것은 눈에 훤했다. 마을 중 촌장으로 보이는 자가 나와서 말했다.

“저, 정말 물이 오염이 되었습니까?”

마을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물이 오염되었다는 것은 생계에 치명타였다. 그 심리를 잘 알았던 교황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자님이 있지 않으십니까?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겁니다.”

“…….”

내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교황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서는 그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군요!”

“사자님. 저희를 구원해 주십시오.”

항상 이렇게 연설을 했던 걸까? 누구나 할 것 없이 두 손을 모아 나를 향해서 고개를 숙였다. 욕을 퍼부어 줄 수도 없고 언짢게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르펠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해? 지금 비를 내려?”

“하…….”

작은 한숨을 내쉬던 제르펠이 한 걸음 나섰다. 교황의 태도에 의아한 점은 많았지만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었다.

“물이 오염되었다는 증거가 확실하게 없다. 그러니…….”

제르펠이 말을 하는 도중 모여 있던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불쑥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 본 것 같습니다! 병이 퍼지기 전날. 외부인이 저희 마을에 찾아와서 우물에 무언가를 넣는 것을요!”

그 남자는 당당하게 말했다.

“왜 그걸 말하지 않았지?”

“물이 오염되었다고 누가 알았겠습니까……. 얘기를 듣고 생각난 겁니다.”

교황은 안쓰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물의 오염은 확실한 것 같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이 부족한 마당에 하필 물이 오염됐다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네요. 사자님, 이분들을 위해 비를 내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기승 전 비였다. 왜 계속 비에 집착하는 건지 영문을 몰랐다. 교황이 수를 쓴 것은 확실했지만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샅샅이 파헤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도 이유를 밝히는 것보다 당장 병을 물리치고 물의 확보가 중요한 것 같았다. 둘 다 죽음에 직결되는 문제니 이해는 갔다. 온 지 하루가 안 돼서 병의 원인을 알아낸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했다.

“어제도 오늘도 무리했는데 괜찮겠나?”

“빨리 해결하고 가자. 딱 봐도 비를 내리는 게 목적인 것 같은데…… 저번에 황후도 그랬잖아. 비에 대해서 어쩌고저쩌고했잖아. 진짜 내가 비를 내릴 수 있는지 궁금한 거겠지. 그날 후로 비도 안 내렸잖아. 여기 이상하게 좀 찜찜하다고 하나? 힘도 빨리 안 차고…… 빨리 해결하고 가자.”

교황의 횡포는 짜증 났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자에게 말을 해도 내 입만 아팠다. 빨리 해결하고 떠나는 게 인지상정이지. 제르펠은 내가 대견한지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무리는 하지 말고. 일이 끝나면 푹 쉬자.”

“응. 후딱 해치우고 데이트나 하러 가자.”

제르펠의 말을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사람들을 선동해서 나에게 비를 강요하는 교황의 꼴도 보기 싫었다. 거기에 이상하게 힘이 회복되지도 않아서 몸이 축 처졌다. 성역에서 멀어져서 수신의 힘이 닿는 범위에서 멀어져서 그런가? 라는 생각도 했다. 내가 손을 들고 비를 내린다고 하자 일사천리로 상황이 정리됐다. 먼저 오염된 물을 전부 버려야 했다.

별다른 장치가 있지 않아 일일이 손으로 물을 퍼내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렸다. 사람들은 협력해서 물을 퍼내었고, 우물 안은 텅텅 비었다.

“준비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교회가 멀쩡하더니 애초에 이곳은 신에 대한 신앙심이 깊은 마을이었던 것 같았다. 신관, 마을 사람들 모두가 무릎을 꿇으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마치 내가 교회에 있는 큰 석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어찌하겠는가.

이래서 내가 신의 사자니 뭐라는 게 싫었어. 난 눈을 감고 힘을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비를 내릴 수 있는지 고민한 게 무색하게 속으로 비야, 비야, 내리거라. 하며 계속 중얼거리자 내 볼에 빗방울이 톡 떨어졌다. 마음 사람들의 환호성도 뚜렷하게 들렸다.

하지만 나는 눈을 뜰 수 없었다. 힘이 이상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몸에서 기다란 실이 나오더니 어디론가 향했다. 그곳은 교회였다. 마치 내 힘이 빨려 들어가듯이 얇은 실들이 교회를 휘감고 있었다.

나아가기 위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머리가 팽팽 돌았다. 그리고 옆으로 쓰러지는 것까지 느껴졌다. 옆에서 제르펠의 얼굴이 굳다 못해 차가운 표정으로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이다음에 의식이 끊어질 것이라고 직감했다.

‘아…… 이번에도 잠에 빠지겠네……. 너무 걱정하지 마. 금방 일어날 거야…….’

제르펠의 격양된 목소리를 끝으로 의식이 툭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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