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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났다. 베일에 싸여 있던 신의 사자님에 관한 이야기가 밝혀진다! 자극적인 문구와 크게 다룬 신문을 보고 어디에 사는 연예인이냐고 생각했다.
철저하게 단속 중이었을 텐데 언제 찍은 것인지 가장 들키기 싫었던 제르펠이 나에게 공주님 안기를 한 사진이 있었다. 순간 놀라 자빠질 뻔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가 나에게 음식을 먹여 주는 사진, 제르펠과 춤추는 사진이 떡하니 기사화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기사의 제목은 사자님의 폭탄 발언! 하며 자극적인 제목이었다. 기자는 여러 귀족 영애를 대상으로 내 첫인상, 생김새, 제르펠과의 관계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비판할 줄 알았더니…… 예상외네.”
남자끼리의 관계는 당연히 안 좋은 눈으로 바라볼 거라는 인식이었다. 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자는 오히려 한편의 로맨스를 지어내며 응원을 했다. 모두가 그러지는 않을 테지만 기분이 좋아진 건 당연한 이치였다.
그리고…… 신문을 통해서 알았는데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가는 것은 그중에서도 약혼한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그 부문을 읽고 또 읽었다. 처음부터 작정했네, 했어. 또, 귀족들이 말했던 ‘그 소문’의 정체가 바로 나와의 관계라고 했다. 계속 ‘그 소문’이라고 했지 확실하게 말하지 않아서 궁금했단 말이지.
신문의 부문 중 하나였다. ‘의상실에서 접수한 바로는 황태자 전하와 신의 사자님이 같은 디자인의 옷을 주문했다고 한다. 마담의 말로는 심상치 않은 사이라고 전하는데…….’ 하며 그것이 사실이었다는 라는 말과 애초에 그 사실이 귀족 사이에서 진작에 퍼져 논란이 되었다고 했다.
확실치 않아 섣불리 말하지 않았을 뿐…….
“아니, 그럼 나랑 연인이라는 소문을 알고 있었는데 카밀라랑 엮어? 이것들이…….”
신문을 쥔 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것 때문에 속상해하고, 술 먹고, 그 난리를 쳤잖아! 갑자기 몰려오는 분노를 느끼는 한편, 못난 내 모습이 떠올라 자괴감을 느꼈다.
신문으로 얼굴을 덮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눈을 떴는데 신문 끝에 적힌 프란시아 후작의 복귀 선언 기사가 보였다.
연회 때 후작의 복귀 이야기에 제르펠이 이상했던 것을 기억하기에 얼른 자세를 똑바로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았다.
“이 새끼. 몹시 나쁜 놈이네. 갑자기 왜 튀어나와? 은퇴를 선언했으면 그냥 가만히 짜져 있어야지.”
황후의 아버지라는 글자가 내 눈에 콕 박혔다. 그는 황후의 외가로 2년 전에 정치에서 발을 뺐던 사람이었다. 안 봐도 훤했다.
“황후가 계획했겠지.”
얼굴만으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그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로 속이 시꺼메 보였다. 더구나 황후의 외가? 성역의 일에 관련이 없을 거라고 누가 장담해? 오히려 앞장섰을 가능성이 있다. 시기도 2년 전. 1년 전부터 뱀들을 잡아갔다고 한 시기보다는 빠르지만 준비가 필요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구먼……. 이제 그만 좀 나와라.”
또 다른 기사는 노골적으로 지금의 황제는 이제 지는 해인가? 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꼴 좋다.”
얼마나 그의 지위가 땅바닥으로 들어갔는지 보여 주었다. 아니면 제르펠이 수를 쓴 건가? 실제로 황제 쪽이 수를 썼구나 한 기사들도 있었다. 왜냐고? 노골적으로 나의 발언을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다수 기사와는 다르게. 아니면 이 기사를 쓴 기자의 애국심이 지극히 강하거나…… 둘 중 하나지.
“정말 사는 곳은 다 똑같아. 언론이 어느 쪽이 장악하는지가 문제지.”
다시 침대에 드러누워 신문을 마저 보고 있는데 제르펠이 들어왔다. 우뚝 서 있는 그를 보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난 시계를 보았다. 그는 집무실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보던 신문을 접고 그에게 다가갔다.
“뭐야? 벌써 일 끝난 거야?”
제르펠은 나를 가늠하듯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슈이렌 밖에 나가고 싶니?”
“……응? 갑자기? 왜.”
나를 떠보는 말투에 어색하게 목덜미를 만졌다. 웬 밖? 어디로? 제르펠은 내가 궁을 벗어나는 것을 싫어했다. 위험하다는 이유였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내가 그의 울타리 내에 존재하길 원했다. 한 번도 권유하지 않았던 그의 제안이 당황스러웠다. 내가 뭔가 잘못했나?
“너도 언제까지 궁에만 있으면 지루할 것 같아. 여행을 갈까 한다.”
“여행?”
나는 얼떨떨하게 물었다. 나도 그를 파악하기 위해 주시했지만 포커페이스였다. 뜬금없이 여행이지만 싫지는 않았다. 특히 여기는 이세계 아닌가. 생각해 보면 이세계에 왔는데 탐험을 한 적이 없었다.
“나야 너랑 여행 가면 좋지……. 한 번도 궁을 벗어난 적도 없으니까…… 괜찮은데?”
“그래, 가도록 하자. 가고 싶은…… 아니, 보고 싶은 건 있나?”
제르펠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질문했다. 난 살짝 당황했지만 약간 들떴다. 전생에서도 여행은 별로 가지 못했다. 그는 내가 즐거워하자 뿌듯해 보였다. 여행이라…… 약간 데이트 같네. 그와 사귀게 됐지만 데이트다운 걸 하지 못했다. 항상 집무실 아님 방이니 말 다 했지.
그의 말에 고민했다. 난 제국의 지리를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막상 보고 싶은 거라고 물으면 대답하기 막막했다. 난 말없이 창문 밖을 보았다. 진작에 날은 따스해졌지만 어딘가 봄이라기엔 허전했다. 내가 봄이라는 걸 느끼는 순간은 정해져 있었다. 길을 가다가 보이는 흩날리는 벚꽃 잎을 보면 봄이 왔다고 느꼈다.
“음…… 보고 싶은 거…… 아무거나 상관없기는 한데……. 꽃나무? 혹시 여긴 벚꽃 없어?”
“벚꽃?”
제르펠은 처음 듣는 단어인지 의아하게 물었다. 이곳에는 벚꽃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좀 아쉽네……. 난 손짓을 동원하며 그에게 벚꽃을 설명했다.
“나무인데 작은 분홍색 꽃들이 흩날리는 건데…… 없으면 괜찮아.”
“아니, 네가 보고 싶어 하는데 같이 보러 가지.”
“없는 거 아니야? 무리 안 해도 되는데. 그냥 여행이라면 다 괜찮아.”
“그 꽃이 보고 싶다는 거 아니었나?”
“그렇긴 한데…….”
“아름다운 꽃이 피는 곳을 알아보지. 네가 나에게 처음으로 가고 싶다고 한 곳이다. 허투루 들을 수는 없지.”
“……마음대로 해.”
하여튼 사람 감동하게 만드는데 도가 텄어요. 제르펠은 내 말을 쉽게 넘기지 않았다. 그는 꼭 내가 말한 풍경을 보여 주고 싶은지 확고하게 말했다. 난 흐물흐물해지는 표정을 가다듬고 말했다.
“여행 가면 맛있는 것도 먹고, 재미있는 것도 보고 그러자. 여행 진짜 오랜만이다. 예전에도 바빠서 여행은 꿈도 못 꿨거든. 이번에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하겠다.”
“데이트?”
“솔직히 장소가 집무실 아니면 방, 정원이니까. 사귀기 전이나 후나 똑같아서 좀 불만이었단 말이지.”
과연 궁 밖은 어떨지 궁금했다. 난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제르펠은 나를 비스듬하게 바라보더니 입맞춤을 해 주었다.
“진작에 데이트할 것 그랬구나.”
제르펠의 입술이 유려한 호선을 그렸다.
“그런데…… 여행을 가기 전에 들를 곳이 있다.”
그는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다. 대체 뭐가? 난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기울였다.
“음…… 사실 교황이 너를 부르더구나.”
“……교황이?”
“그래, 서신이 왔다.”
“줘봐.”
요즘 안 보여서 좋았더니……. 난 냉큼 서신을 요구했고 쭉 읽어 보았다. 교황의 서신을 보고 여행이 겸사겸사 이루어진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이 물밑처럼 들어왔다. 내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을 때 제르펠이 치고 들어왔다.
“절대 그런 것이 아니다.”
“……나 아무 말 안 했는데?”
“삐졌지 않느냐? 넌 속이 상하는 일이 있을 때 입술이 나온다.”
그의 말에 힐끗 바라보며 삐죽 튀어나온 입술을 쑥 집어넣었다. 그는 유쾌하게 웃었다.
“뭐야? 왜 웃어.”
“나만큼이나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아 기뻐서 나온 웃음이다.”
“핑계는……. 여행을 가자고 했을 때부터 이상했어. 교황이 오라고 했구나. 겉포장하지 말고 확실하게 말하면 되는데…….”
놀러 간다며 들떴던 내가 한심스러워졌다. 난 그가 일부로 여행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저번 교황을 만났을 때 일하는 건 싫다고 딱 잘라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제르펠이 수를 썼다 생각했다. 제르펠은 나를 돌려세웠다.
“그럴 리가. 나에겐 네가 제일 중요하다. 교황의 서신을 보고 생각 난 것은 맞지만…….”
그는 작게 내 귓가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느껴지는 숨소리에 몸이 움찔거렸다.
“나도 너와 둘만 있는 시간이 갖고 싶었다. 반복되는 일상이 아닌 색다른 광경도 너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지.”
“진짜지?”
제르펠의 거짓 없는 미소에 마음이 싹 풀리고 있었다. 그는 말을 돌릴지언정 나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난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그럼 용서해 줄게. 여행은 일부터 처리하고 즐기자. 괜히 찜찜해. 홀가분하게 털어 내고 노는 게 나아.”
교황이 순순한 의도로 부른 것 같지도 않았다. 난 서신을 멀리 던져 버렸다. 노는데 잡생각이 끼어들면 안 되지. 제르펠도 내 말에 동의하는지 공감을 했다.
여행 일정은 전부 제르펠에게 맡겼다. 처음에는 나도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제르펠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직접 준비하고 싶은 그의 표정에 알아서 하라며 손짓했다. 그래서 궁을 떠나는 날이 내일임에도 일정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여행 준비는 잘 되어 가? 사람은 최소한으로 뽑는다며? 누구랑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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