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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알고는 있었겠지만 직접 아는 것과 차이가 크다.
“슈이렌.”
“응…….”
“스물여덟 살이라면…….”
올 것이 왔구나.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생각해도 나이 차이가 좀 심했다. 하지만 제르펠의 말은 예상외였다.
“저번에 키스가 왜 능숙하냐고 말했지. 그건 비교 대상이 있어서 그랬던 건가?”
입이 떡 벌어졌다. 내 표정을 본 제르펠의 기세가 스산해졌다. 주제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튀었다.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문 채 시선을 돌렸다.
“슈이렌?”
왜 그때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자책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제르펠의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표정은 살벌했다. 난 어설프게 주제를 돌렸다.
“나, 나이 차이는 신경 안 써?”
“뭐가 말이지?”
“8살 차이잖아! 은팔찌 정도 찰 수준이라고! 그리고…… 후계자는 필요하잖아……. 주인도 위치가 있을 텐데…… 너무 내 생각만 한 게 아닌가 싶어서…….”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 작은 소리도 충분히 제르펠의 귀에 들어갔는지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핏줄이니 후계자니 귀족 사회에서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제르펠은 침울한 내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말했다.
“슈이렌.”
“응?”
“난 그들과 똑같이 될 생각이 없다. 피 따위가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렇기에 후계자가 꼭 피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후계자를 위해 사랑하는 이를 버리지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내 첫 번째이자 마지막 사람일 거다. 맹세하지.”
“…….”
“그와 마찬가지로 나이도 상관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본질이 중요하지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네가 내 마음을 받아 준 그때부터 결정된 일이다.”
제르펠은 진지한 목소리로 담백하게 말했다. 좀…… 감동이었다. 불안하게 술렁이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제르펠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슈이렌.”
“어?”
“할 말은 끝났나? 그럼 내 대답은?”
“무슨 대답?”
“비교 대상이 있냐고 물었다.”
“어……. 그, 그냥 한두 명…… 정도……?”
아니? 넘어간 거 아니야?! 듣자마자 제르펠은 살짝 혀를 찼다. 내키지 않는 모양새였다. 그럴 수도 있지……. 28살이면 연애는 한두 번 정도 할 수 있잖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뭐?”
내가 생각한 말을 그대로 제르펠이 말해서 깜짝 놀랐다.
“그, 그렇지! 읏……!”
옳다구나 맞장구를 치는 순간 언제 손이 다가왔는지 옷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그의 온기에 팔을 붙잡았다. 손길이 닿은 부위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 누구도 안 된다. 알겠지?”
“그, 그…… 손! 손 빼!”
“야외가 싫다고 하여 여기까지 왔지 않느냐.”
그렇게 말하는 제르펠의 눈동자는 욕망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의도치 않은 힘 싸움을 하며 말했다. 이 자세와…… 이 상황, 그리고 이 묘한 손길까지…….
“주, 주인아? 설마 너…… 나랑?”
“성인이 될 때까지는 기다리려고 했지만 아니라면 상관없겠지. 그리고…… 처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황금색 안광이 서늘하게 번뜩였다. 식은땀으로 몸 전체가 으스스해졌다. 그의 의심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아니라고?”
“그…… 남자는 네가 처음이기는 한데…….”
“…….”
목소리가 바닥을 기어갈 듯이 낮고 작은 목소리로 나왔다. 난 부끄러워서 큼큼,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럼, 더 신경을 써야겠구나.”
어……? 이게 아닌데……. 그는 도통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다, 다음에…… 공부한 다음에. 응?”
난 그에게 아직 이르다며 칭얼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제르펠의 손이 쓱 빠져나갔고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르펠이 인정하고 물러난 줄 알았기 때문이다. 침대에 무언가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향유였다. 얼굴에 핏기가 싹 빠졌다.
“미리 공부해 두었다. 내가 너를 아프게 할 리가 없지 않으냐.”
“그…….”
“슈이렌 아까 동의하지 않았느냐?”
“확실하게 말하지 않았잖아!”
“내 손길…… 좋아하지 않느냐?”
어울리지 않게 처량하게 눈매를 늘어뜨리니 괜히 마음이 약해졌다. 그리고 그의 말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멍하니 바라보자 제르펠의 손이 뻗어 왔다. 주춤 뒤로 물러갔지만 다가오는 손에 겁에 질려 소리쳤다.
“꺼, 꺼져!”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내가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도망치는 내 팔을 잡아챈 제르펠은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다 꿰뚫어 보고 있었다. 뱀일 때부터 지금까지. 가늘게 떨고 있는 몸에 제르펠의 손과 입술이 닿자 열기가 끓어올랐다. 아무리 차가운 공기를 쐬었다지만 아직도 술기운에 몸이 뜨거웠다. 난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졌다.
* * *
귓가에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들렸다. 소설에서 보면 새소리를 듣고 일어난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아침인가? 커튼이 꼭꼭 쳐져 있어 낮인지 밤인지 헷갈렸다. 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불 킥을 할 타이밍이었지만 체력이 방전되고 없었다.
어젯밤에 제르펠은 내 허락을 꼭 받고 행동했다. 이거 해도 되겠지? 저거 해도 되겠지?
차라리 그냥 했으면 수치라도 없었지 결국 그의 손길에 무너져 그냥 다 알아서 하라고 소리치고 말았다……. 그 후 내가 그만하라고 입 밖으로 내뱉으려고 하면 어찌나 그리 잘 아는지 제르펠은 자신의 입으로 내 입을 막았다. 진짜 죽겠다 싶을 정도까지 밀어붙였다. 결국 울다시피 매달려 겨우 끝났다.
그게 이 꼴이었다.
“씨발…….”
어차피 성격도 다 들통났다. 어제 욕하고 소리 지르고 난리 블루스를 췄다. 미친놈아! 라고 소리를 질렀는데도 제르펠은 실실 웃었다. 그때 얼마나 식겁했는지…… 아픈 허리를 부여잡으며 침대에 기대앉았다.
“이 자식은 대체 어디 간 거야.”
허리가 지끈거리는 고통에 말이 좋게 나오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제르펠이 들어왔다. 그는 쟁반을 들고 왔으며 위에는 음식이 있었다. 제르펠은 눈을 뜬 나를 보더니 싱긋 웃었다. 아이고,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네.
그를 본 순간 어젯밤의 일이 생각나 얼굴을 붉혔다. 화났다고 보여 주기 위해 이불 속으로 숨어서 머리카락조차 보여 주지 않았다. 그 반동으로 허리가 욱신욱신했다.
“어디 갔다 온 거야. 일어나니까 곁에 없고……. 그만해 달라고 했는데 계속하고…….”
화내는 말이었지만 쑥스러워 목소리를 줄이니 앙탈 부리는 것처럼 들렸다. 제르펠의 작게 웃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많이 힘들었니? 네가 너무 아름다워 주체하지 못했구나.”
“……뭐야 그게.”
“일어날 때까지 곁에 있으려 했지만 배가 고플 것 같아 식사를 가져왔다. 설마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일어날 줄은 몰랐구나.”
“이안 있잖아…….”
“내가 직접 챙겨 주고 싶었단다.”
나를 자상하게 달래는 어투에 이불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제르펠은 불쌍한 표정으로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런 표정이면 더는 화를 낼 수도 없잖아……. 난 헛기침을 하며 이불을 치웠다. 이불을 치우자 제르펠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선명하게 피어난 미소에 시선을 돌렸다.
쟁반을 잠시 탁자에 내려놓은 그는 내 옆으로 다가와 손을 뻗었다. 움찔했지만 도망갈 곳이 없었고 무엇보다 움직일 수도 없었다. 촉 하는 소리와 함께 제르펠의 입술이 붙었다 떨어졌다.
“몸은 괜찮나?”
“괜찮아 보이냐?”
찌릿하게 째려보아도 제르펠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는지 계속 웃었다. 짜증 나…….
“배고프지 않나? 밥 먹자.”
숟가락을 들고는 내 입을 두드렸다. 죄송하지만 손은 멀쩡합니다만. 하지만 몸 하나 까딱하기 싫었기에 장단에 맞췄다. 난 제르펠이 떠주는 대로 먹었다. 점점 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졌다.
먹는 동안 허리를 주무르는 손길이 느껴졌다. 적당한 완력으로 주무르는 손길에 근육통이 풀리는 것 같았지만 느낌뿐이었고 여전히 거동은 힘들었다.
잠깐, 이럴 때 쓰라고 있는 힘 아니야? 신성력을 쓰면 되잖아!
난 곧바로 떠오른 생각을 실행했다. 손에 힘을 끌어모아 허리에 갖다 대었다. 풀린다 풀려! 나아진 근육통에 허리를 쭉 펴고 기지개를 켰다. 쿡쿡 쑤시던 고통이 말끔히 나아졌다. 이제 살겠다! 역시 힘은 쓰라고 있는 거지. 가뿐하게 허리를 돌리자 의아한 제르펠이 괜찮냐고 물어봤다.
“응. 괜찮아. 이제 좀 살겠네…….”
지끈거리던 몸이 개운해져 기분이 좋아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리를 시원하게 주무르는 손이 바뀌었다. 지분거리는 손이었다. 설마…… 제르펠을 바라보니 눈이 이글거렸다. 어제 아프다고 사정사정해서 겨우 그만했었는데…… 성에 안 차냐? 체력이 얼마나 좋은 거야!!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 주고 싶었다.
“허리는 괜찮아졌나?”
“아니! 아직도 아파!”
거짓말 따위 통하지 않는다며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제르펠은 손은 손대로 움직이고 이빨로 목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글거리다 못해 붉게 눈이 충혈된 듯했다. 제르펠은 입술을 옮겨 내 귀를 잘근잘근 씹었다. 그리고 은밀하게 속삭였다.
“한 번 더 할까?”
기겁했다. 한번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절대 한번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또 휩쓸릴 분위기였다. 품 안에 갇힌 나는 빠져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연회…… 참석해야…….”
“괜찮다. 안 가도 돼.”
“그만, 나 힘들…….”
그냥 어딘가에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갑자기 시야가 낮아지는 느낌이 들더니 주위가 어둠이었다. 뭐야? 몸을 움직였지만 시원찮았다. 내 몸을 무언가가 짓누르고 있었다.
“슈이렌?”
당황한 제르펠의 목소리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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