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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64화 (6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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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 공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미모였다. 현생에서도 아름답거나, 예쁘게 생긴 연예인들을 보았고, 주위에도 아름다운 영애들이 있었지만 단연코 그녀가 가장 눈에 띄었다.

새하얀 피부에 약간 눈매가 올라간 고양이 상이었고 과하지 않고 보기 좋게 붉은 입술이 시선을 가로챘다. 보랏빛 머리카락과 밤하늘이 자수로 놓인 드레스는 조화롭게 어우러져 그녀의 미모를 충분히 돋보이게 했다.

그녀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내가 누군지 한 번에 알아보았는지 다가오는 중 눈인사를 하였다. 얼떨떨하게 그녀와 눈을 마주하며 같이 눈인사를 나누었다.

“슈이렌!”

제르펠의 큰소리에 깜짝 놀라 그를 돌아봤다. 약간 억누르면서도 분통이 터진 목소리였다.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흠칫 놀란 내가 어설프게 제르펠을 마주 보고 웃었지만 그의 미간은 좁아져 갔다.

제르펠은 두 손을 올려 내 볼에 딱 붙였다. 피부에 닿는 느낌이 조금 오싹했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위로 삐죽 솟아 있었다. 그런데도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제르펠이 어딘가 무서웠다.

“어딜 보는 거지? 베르트 공녀가 문제라도 있나?”

“아, 아니. 그냥. 좀 예뻐서…… 잠시…….”

제르펠은 내가 그녀에게 한눈을 팔았다는 사실을 못마땅해했다. 이마에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예쁜 사람을 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는 걸 어떡해? 어쩔 수 없잖아? 하지만 그의 반응에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제르펠과 그녀와의 약혼 소문은 헛소문이었구나 싶었다.

“……그렇군.”

나와 달리 그의 기분은 바닥으로 내리꽂힌 듯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고개만 돌려 공녀를 응시하는 제르펠에 발을 동동 굴렀다. 그의 기분을 배려하지 못했다. 나는 네가 제일이라고 말하기 위해 발끝을 세우고 그의 귓가에 속삭이려는 찰나 갑자기 제르펠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기울이던 몸을 어정쩡하게 세웠다.

“나보다 말인가?”

“어……?”

진정한 밤하늘은 거기에 있었다. 눈가를 예쁘게 접고 나에게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아름답게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가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날카롭게 빛나는 그의 눈빛에 살짝 움츠러들었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에서 말이 턱 막혔다. 그는 교묘하게 밀어 붙었다.

“전하. 제 딸아이를 데려왔습니다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베르트 공작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작게 제르펠의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시선과 손이 떨어지자 참고 있던 숨을 내쉬며 조용히 심장에 손을 올렸다. 심장 박동이 내 귓가에 울릴 만큼 큰소리로 요동치고 있었다.

그 얼굴로, 그 복장으로 그렇게 웃는 건 반칙이지! 아까 보았던 베르트 공녀의 모습은 어느새 지워지고 방금 제르펠의 모습으로 가득 찼다.

“소개하지.”

“어??”

제르펠은 내 허리를 잡아채더니 자신의 품 안으로 잡아당겼다. 놀란 듯 눈이 커져 있는 공작과 공녀가 보였다. 난 어색하게 웃으며 그들과 마주했다.

“슈이렌이다. 앞으로 성심껏 모시도록.”

“잘, 잘 부탁드립니다. 하, 하…….”

그의 팔에 힘이 좀 더 들어가면서 나를 바짝 끌어 앉았다. 제르펠은 심통한 얼굴로 공녀를 노려보았다. 난 공녀의 얼굴을 보기가 부끄러워 떨떠름하게 인사하고 고개를 돌렸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던 공녀는 자신의 드레스를 살짝 잡고는 나에게 인사를 했다. 물이 흐르듯 아름다운 자태였다.

“카밀라 베르트라고 합니다. 사자님. 부디 카밀라라고 불러 주세요.”

카밀라는 웃는 표정으로 인사를 했지만 그것조차 제르펠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눈썹을 꿈틀거렸다. 유능한 인재라고 생각했지만 순식간에 연적이 된 분위기에 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타이밍에 음악단이 멈추고 시종의 큰 호명 소리가 들렸다.

“황제 폐하, 황후 폐하 납십니다.”

그 말에 웃고 떠들던 모든 귀족이 고개를 숙였다. 제르펠이 나를 놓아주고 나도 덩달아 얼른 예를 갖추었다. 슬쩍 고개를 들어 황제와 황후를 바라보았다. 둘은 잘 어울리는 중년 부부였다. 황후는 저번처럼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고 황제는 근엄했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지.’

이미 황후의 성격을 경험했기에 나오는 말이었다. 그들의 의상은 이곳의 누구보다 화려했으며 수많은 장식품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정적이 감도는 중 그들은 천천히 걸어가며 가장 큰 상석에 앉았다. 털썩 주저앉는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렸다.

“다들 고개를 들어라.”

황제는 높은 곳에서 자신의 발밑에 있는 많은 귀족을 보았다. 그리고 제르펠에게 눈길이 향하자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황제는 누가 봐도 언짢은 표정이었다. 옆에 있는 황후의 상냥한 미소와 대비되는 표정이었다. 황제의 손짓은 귀찮아 보였고 말투는 날카로웠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은 기우제의 성공과 신의 사자께서 현세에 내려와 준 것에 감사함을 담아 개최한 연회이다. 짐의 제위에 신의 사자가 내려오다니 이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다 폐하의 노련한 정치와 훌륭한 인심 덕입니다.”

뻔뻔스럽게 본질을 흐리는 말이었다. 기우제의 성공과 나의 출현을 아주 자기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옆에서 황후는 웃는 낯으로 황제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난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대체 어디에 있는 성인군자야? 기우제의 성공과 사자님의 출현은 제르펠의 덕이라고 소문과 기사에 이미 쫙 퍼졌고 이 연회를 개최하는 초대장에도 명시된 사항이었다. 그런데 그걸 태연하게 제 공로로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현 제국의 권력자는 황제였다. 여기저기서 귀족들이 옳다고 하는 말들이 울려 퍼졌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황제는 거만하게 우리에게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모두에게 태자와 사자를 소개해 주도록 하지.”

‘아이고, 아주 잘났어요.’

거만하게 말하는 황제의 꼴은 보기 싫었지만 내 손을 제르펠이 잡고 이끌었다. 우리는 귀족들이 보는 와중에 그들의 앞에 섰고 인사를 했다.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인사를 마치고 올려다본 황후의 눈이 언짢은 듯 가느다랗게 좁혀졌다. 뭐, 예상했지. 오히려 내 예법이 그들의 눈에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었다.

‘이 각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어머, 예법이 완벽하네요.”

“큼. 나름 괜찮군.”

주위 귀족들도 완벽한 예법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난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중 몇은 아니꼽다는 식으로 본 자들도 있었다.

황제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제르펠과 내 복장이 눈에 들어왔는지 인상이 노골적으로 험악해졌다. 그러더니 나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 복장은……. 큼.”

황제는 헛기침했다. 그도 모르게 나온 본심이었다. 몇 번 헛기침을 하던 황제가 말했다.

“흐음. 짐의 제국에 온 걸 환영하네. 제국을 위해 비를 내려 주어 백성들의 삶이 풍족해진 것도 그대의 덕이다. 혹시 태자와 지내며 부족한 점이 있다면 꺼림 없이 말하도록. 내 다 들어주지.”

황제는 거만하게 턱을 들어 올렸다. 얼마든지 말해 보라는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황제에게 원하는 거라…… 딱히 없는데?

“음…… 괜찮은데.”

황제는 잘못 들었다 생각했는지 다른 말로 풀어서 다시 말했다.

“제국의 큰 흉년을 해소해 준 그대에게 큰 상을 주려 한다. 원하는 보상이 있는가?”

“별로.”

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황제는 호의에 내가 무덤덤한 태도에 짜증이 났는지 말투가 삐딱해졌다. 진짜 원하는 게 없는걸?

“……태자가 상당히 잘해 주는 것 같군. 수고가 많다.”

“아닙니다. 제 역할을 하는 것뿐입니다.”

내가 요지부동이자 황제는 화살을 돌려 제르펠에게 언짢게 말했다. 제르펠은 시비조인 황제의 말을 가볍게 받아쳤다. 황제는 그 꼴이 더 보기 싫었는지 혀를 차고 나에게 말했다.

“앞으로도 제국을 위해 봉사하도록.”

‘나한테 뭐 맡겨 놨어? 봉사는 무슨. 애초에 비가 안 오게 된 것도 너희들 때문이면서…….’

귀족들이 전부 우리에게 집중하고 있다. 제르펠은 내 옆에 반듯한 자세로 서 있다. 그를 지지해 주겠다고 했고, 마치 내가 온 게 자신의 업적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으니까…….

“주인이 원한다면.”

내 말에 놀란 건 황제, 황후, 귀족들뿐만이 아니라 제르펠도 놀랐는지 약간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사방 곳곳에서 박히는 시선이 따가웠지만 표정을 관리했다. 지금 선전 포고를 하는 거야. 그렇게 쳐다보지 말라고. 내가 언제까지 너한테 보호받을 수는 없지.

“지금…… 뭐라고? ……누가 원한다면?”

황제는 자신이 들은 말이 의심스러운지 다시 곱씹으면서 물었다. 왜 잘 들었네? 귀찮게 또 말해 줘?

“응? 주인이 원한다면, 이라고 말했는데? 문제라도 있어?”

난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들 기가 막힌다는 얼굴이었다.

주인이라니……. 제국의 수호가 아니라 전하를 두둔하겠다는 말인가요? 전하께서 황위에 오른다면 맞는 말이긴 하지만…… 아니, 주인이라는 단어는…… 저 복장을 봤을 때부터 의심했지만……

내 발언이 폭탄선언이기는 했는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떠들어댔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황제는 눈을 부라리며 제르펠에게 말했다.

“주인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된 거지?”

“주인을 주인이라고 부르는 데 문제가 될 건 없잖아?”

제르펠이 말하기 전에 내가 황제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어이가 없었는지 잠시 말이 없던 황제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 말은 그대의 주인이 제르펠이다. 이 말인가?”

“응.”

해맑은 내 표정에 주위는 더욱더 시끄러워졌고 황제의 미간은 잔뜩 찌푸려졌다. 이 상황에 미소를 유지하고 있는 황후가 더 이상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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