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뱀생-58화 (58/103)

-58-

“읍……!”

아까만 해도 상냥하게 입술만 훑어 내리는 키스였다. 그는 재촉하지는 않았지만 틈을 보고 있었는지 내가 살짝 입술을 열자 바로 그의 말랑한 혀로 내 입술을 파고들어 왔다.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동시에 그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황금빛 눈동자가 똑바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의 작은 행동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의 표정은 내가 그를 거절하지 않기를 기원하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런 표정으로…….

부담스러워 살짝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더 몸을 붙여오는 그의 행동에 내 고개가 더 젖혀졌다. 손에 땀이 차오르고, 배가 간질간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말랑말랑한 혀가 입천장을 쓸었고 도망가지 못하게 내 허리를 팔로 감싸 안았다. 나는 이상한 기분에 몸이 부들 떨렸다. 그의 혀는 내 입 안을 이리저리 헤엄쳤다. 능숙하게 나를 리드했다.

“하, 읏…….”

이러다 정말 큰일 날 것 같아 입술을 떼고 고개를 살짝 돌렸지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다시 얼굴이 붙잡혔다.

“자, 잠깐…….”

더 강하게 그의 뜨거운 혀가 내 혀를 문지르고 혀뿌리를 휘감고 빨아 당겼다.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몸에 힘을 빼자 그의 키스가 조금 다정해졌다. 뜨거운 열기가 내 온몸을 지배했고, 방 안에는 타액이 얽히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울렸다.

‘기분 좋다.’

이게 진정한 키스라고 생각될 정도로. 물론 연애한 적이 있었고 키스도 여러 번 해 보았지만, 그와 하는 키스는 무언가 달랐다. 나를 원하고 있다고, 나를 바라보라고 호소하는 감정이 오가는 키스였다.

침대에 누워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일어서 있었다면 쪽팔리게 다리의 힘이 풀렸을 것이다. 정신없이 그에게 휘둘리기만 하다가 갑자기 번쩍 정신이 들었다. 나 이렇게 휘둘려도 되는 거야? 난 엄밀히 말하면 첫 키스도 아니잖아, 그래도 경험으로는 내가 더 많지 않겠어?

정신없이 나를 유린하는 키스에 정신이 나갈 것 같으면서도 그의 옷깃을 잡아 몸을 돌렸다. 제르펠이 당황한 것이 느껴졌다. 제르펠의 거친 숨소리는 내 거친 숨소리에 묻혔다. 난 제르펠의 몸 위에 올라탄 상태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내 손은 그의 팔을 꽉 잡았다.

“하…….”

제르펠은 입맞춤이 만족스러웠는지 화사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단정하게 세팅된 머리가 헝클어졌다.

“좋았나?”

“…….”

그 말에 어버버 거리며 아무 행동을 하지 못했다. 열기를 식힐 틈도 없이 얼굴이 달아올랐다. 쿵쿵거리는 심장으로 몸이 울렸다. 들리지 마라…….

제르펠은 눈꼬리를 곱게 접으면서 웃었다. 괜히 잘생겨서는…… 제르펠에게 정신없이 휘둘린 것이 쪽팔려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근데…… 너…… 첫 키스 맞아? 왜 이렇게 잘해?”

“네가 처음이다만?”

“처음은…… 무슨…….”

거짓말 아니야? 심통 맞은 얼굴로 구시렁댔다. 붉게 물든 제르펠의 입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내 고백은 받아들인 거로 생각하면 되겠나?”

난 입만 벙긋했다. 그래, 응, 말하기 쉬운 단어였다. 제르펠과 이야기 중에 많이 사용하던 단어기도 하였다. 이 순간에는 그 짧은 단어조차 나오지 않았다.

제르펠은 미적거리는 내 태도를 참지 못하겠는지 나에게 붙잡혔던 팔을 뺐다. 벗어난 팔이 나에게 뻗어 오더니, 머리카락을 헤치며 볼에 손이 닿았다.

“……대답은?”

“…….”

말로 전하는 것, 입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부끄러웠다. 난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의 얼굴이 내 쪽으로 확 다가왔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먼저 입술을 맞추었다.

이미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혀로 살살 핥았다. 눈을 마주하기에는 제르펠의 금색 눈동자에 도사리고 있는 뜨거운 열기에 잠식당할 것 같았다. 질끈 눈을 감고 키스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여유로웠다. 왠지 밀렸다는 생각이 들면서 입술을 떼었다.

“……이걸로 됐지?”

좋아한다는 말은 왠지 쑥스러웠기에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말했다. 피식 웃은 제르펠이 내 손목을 잡아채더니 자신의 옆에 눕게 했다. 예쁘게 눈가를 접으면서 웃는 제르펠의 얼굴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그 눈부심에 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걸로 충분하다.”

팔로 내 허리를 낚아채 자신의 품 안으로 쏙 들어오게 만들더니 내 목에 입술을 묻고는 작게 이름을 속삭였다. 감격스럽다는 듯이.

“슈이렌…… 슈이렌…….”

그는 내가 무척이나 소중한 보물단지라도 되는 것처럼 한참 동안 나를 품 안에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정직한 고백이 이어졌다.

“좋아한다.”

“……뭐래…….”

제르펠은 내 대답에 작게 웃고 난 그가 풍기는 기분 좋은 향기에 취했다. 방 안에 작게 터지는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 * *

난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제르펠에게 머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제르펠은 옅은 웃음소리를 터트리며 내 뒤에서 느긋하게 머리를 빗어 내리고 있었다. 마치 지금의 기분을 만끽하는 것처럼. 제르펠은 머리를 빗어내는 중간마다 가벼운 입맞춤을 해 주었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손으로 막았지만 그러면 오히려 손바닥을 핥아왔다. 기겁해서 손을 빼면 곱게 눈가를 접으며 웃고 있는 제르펠이 보였다.

이러니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손을 저으면서 얼굴의 열기를 식혔다. 열심히 손을 휘적휘적 젓는 중 제르펠이 무척이나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작게 말해서 잘 들리지도 않았다. 낮게 잠긴 제르펠의 목소리가 거친 것만은 알았다.

“어서 빨리 시간이 지나야 할 텐데…… 아직 성인이 되려면 멀었나…….”

“어? 뭐라고?”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내가 되물었지만 그는 답해 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지?”

“그냥 평상시랑 똑같았지? 뭐…… 다른 점이 있다면…… 키르가 그러는데…….”

제르펠을 힐끔 쳐다보았다. 방금 일도 있고, ‘키르’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 그의 웃음이 사라지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에이든을 위해서 말해야 했다.

“에이든의 상태가 그렇게 좋지는 않아, 그래서 키르가 곁에 있겠다고…….”

“그래.”

“어?”

칼 같은 답이 이어졌다. 당황한 내가 보이지도 않는지 오히려 제르펠은 한술 더 떴다.

“오늘부터 바로 보내 버리면 되겠군.”

아…… 그렇구나. 방해물을 치워 버리게 되어서 좋구나……. 제르펠과 키르는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제르펠의 경우에는 제 침실에 침입한 불청객으로 여겼고 키르은 그냥 인간을 싫어했다. 서로 물과 기름 같은 존재였다. 거슬리는 가시를 빼내 버렸다는 듯이 제르펠의 즐거운 웃음소리에 난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갑자기 생각났는지 짧은 탄식을 뱉고는 말했다.

“내일 견본을 가지고 디자이너가 온다고 하더군. 같이 보러 가자.”

“벌써? 빠르네?”

분명 카탈로그를 본 지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맞춤복은 오래 걸리지 않았나? 뭐, 한 벌이니까 그럴 수 있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같이 보러 가자.”

제르펠은 슬쩍 내 손을 잡더니 깍지를 꼈다. 왜 그러지? 하며 올려 보았지만 제르펠이 내 눈가를 가렸다. 나머지 손으로는 내 긴 머리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쓸어 주더니 말했다. 시각적으로 제한되어 있으니 제르펠의 소리가 더 잘 들렸다.

“너의 이 머릿결에 맞는 흰 복장을 할까?”

그는 나긋하게 권유했다. 제르펠의 의도가 확 와 닿았다. 난 원래부터 흰 복장을 하기로 했었고, 그에게는 검은색 복장이 어울렸기에 이미 검은색 복장으로 정해져 있었다. 즉, 저 말은 그의 옷을 흰 복장으로 한다는 의미였다.

‘대놓고 광고를 해라…….’

노골적으로 모두에게 과시하겠다는 게 느껴졌다.

디자인에 색도 똑같으면…… 완전 서로 맞춘 게 티가 팍팍 나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디자인에 색까지 맞춘다는 건 웬만한 사이가 아니고서야 할 짓이 아닌데……. 딱 연인 같은…… 뭐, 연인……은 맞지만……. 거기에 항상 검은색 복장만 입는 제르펠이 흰 복장을 한다면 그것으로도 파격이 클 것 같았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삐죽 솟아올랐다. 왠지 모를 충족감이 들었다. 그가 천천히 손을 떼었고 내 머리끝에 입술을 문지르고 있었다. 난 아래에서 제르펠의 얼굴을 올려보았다. 제르펠의 외모는 딱 봐도 여자들이 꼬이는 외모였다.

나라고 질투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연인이라고 인정했는데 그에게 달라붙을 귀족 영애를 생각하면 질투가 났다. 그의 말은 내 심금을 울리기 충분했다. 서로가 서로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속으로는 흐뭇했지만,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무리 그래도…… 좀…… 마음은 기쁘긴 한데…… 입에 오르락내리락 신경이 쓰였다. 나는 대신 본심을 섞어서 다른 제안을 했다.

“아니야. 주인은 검은색 복장이 어울려. 대신 브로치를 달자. 주인은 붉은색 브로치를 달고 나는 황금색 브로치를 다는 거야. 색깔 맞춤으로. 어때?”

제르펠의 입가가 기분 좋게 호선을 그리더니 나를 번쩍 들더니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난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기 위해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너의 뜻대로.”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dfjjdfd----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