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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옆에서 조잘거리는 에이든을 하염없이 보았다. 그러던 중 키르가 뜬금없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넌 저 아이가 살기를 원하는 것이냐?]
“내가 항상 말했잖아. 누군가가 죽는 걸 보기는 싫다고.”
[내가 힘을 써 보지.]
“뭐?”
[내가 감시하겠다는 말이다. 사태가 더 악화되지 않게 더는 못 먹도록 해야지.]
“그건 맞지만…….”
난 키르의 덩치를 대충 눈대중으로 살폈다. 키르와 에이든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지만 과연 그가 에이든을 따라 궁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키르는 느긋하게 에이든에게 기어갔다.
“키르?”
항상 멀리서 지켜보았던 키르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에이든은 놀란 눈치였다. 에이든은 키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평소에도 키르를 만지고 싶어 했던 아이지만 도통 키르가 옆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에이든은 커다란 키르를 자신의 무릎 위에 올리더니 한참을 비늘을 쓸어 보았다.
“촉감 이상해…….”
에이든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난 조마조마하는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키르 대체 뭘……?”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키르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에이든은 자신에게 건네는 말로 착각했다. 키르는 나를 슬쩍 보고는 말했다.
[애초에 내가 나온 이유도 이 때문이었었다. 너도 이제 능숙하게 힘을 사용하게 되었으니 안심이고 난 내 할 일을 해야지 않겠느냐. 저번에 말했듯이. 너의 힘에 반응하는 걸 봐서는 희망이 없는 게 아니다. 나와 너는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내가 옆에서 아이들의 원통함을 낮추어 주도록 하지. 그럼 그나마 나을 거다.]
키르는 이때까지 도도하게 행동한 것이 무색하게 에이든에게 몸을 치댔다.
[하지만 명심해라. 결국 잠깐뿐이다. 그 전에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아니? 네가 어떻게…….”
난 키르를 위아래 훑어보았다. 그냥 뱀이었다. 약을 먹는 걸 어떻게 방해할 수 있다는 건지. 에이든은 나와 키르를 고개를 갸웃거리며 번갈아 바라보았다. 에이든은 내 시선이 자신이 아닌 키르에게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형, 혹시 뱀이랑 말하고 있는 거예요?”
키르의 폭탄선언에 소리를 죽이는 것도 잊은 채 키르와의 대화에 열중했다. 에이든은 키르와 말을 주고받는 나를 보고 말했다. 에이든도 내가 뱀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아…… 사실 나 뱀이랑 소통이 가능하거든…….”
“정말요? 대단하다! 키르가 갑자기 왜 이래요? 그동안 절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나는 머쓱하게 시선을 회피했고, 에이든은 눈을 빛내며 나를 보았다. 그동안 키르가 에이든에게 싸늘하게 대하기는 했지……. 키르는 뱀들에게 영향을 받아 에이든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키르는 항상 내 옆. 에이든의 반대쪽에 몸을 말고는 에이든을 빤히 주시했다.
옆을 보다가 내가 오히려 식겁했지. 에이든이 웃으며 인사를 하면 키르는 슬그머니 에이든을 피했다.
난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사실 키르가 너랑 같이 가고 싶다는 거 같은데…….”
점점 말이 작아지고 에이든을 슬쩍 보았다. 에이든은 말이 없었고 나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쯧. 속으로 혀를 찼다. 물 건너간 듯싶었다.
“역시 좀…… 아니…….”
“괜찮아요.”
“뭐?”
“상관없을 것 같긴 한데…… 아마 새로 오신 유모가 어떨지는 모르겠어요……. 키르가 좀 크다 보니…….”
에이든은 상관이 없는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가 너무 깊게 생각했나. 하지만 에이든도 키르의 덩치가 걱정은 되는 것 같았다. 그 말을 키르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음…… 뱀으로는 문제가 되겠군. 인간은 서로 공동생활을 하니. 잠시만 기다려 보거라.]
뭘 기다리라는 건지 모르지만, 난 정말로 에이든에게 키르를 데리고 가도 괜찮냐고 물었고, 에이든은 괜찮다고 했다. 그 말에 안심이 되었다. 난 제르펠의 곁에서 떨어질 수는 없으니 그나마 키르가 에이든의 곁에 있으면 안심이었다.
“정말 괜찮아?”
“네. 당당하게 말해 볼게요! 저도 키르랑 같이 있고 싶어요.”
에이든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무척이나 기뻐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긴 넓은 궁에서 에이든과 대화를 나눌 만한 상대는 거의 없을 테니까.
“내가 그럼 잘됐다. 키르를 잘 부탁해.”
난 살짝 허리를 숙여 에이든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그런데 내 눈앞에 희미한 물체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와 에이든 사이에 있던 것은 에이든을 지그시 바라보던,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던 키르였다. 에이든의 어깨에 올렸던 손이 그 물체에 의해 떼어졌고, 나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키…… 키르??”
그 물체는 점점 사람의 형체를 띄었다. 몸을 일으키는 것처럼. 거기에는 어느새 한 남자가 있었다. 피부는 구릿빛에 덩치는 어찌나 큰지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려야 했다.
햇빛에 반사되어 내 눈앞에 세심하게 쪼개진 등 근육이 드러나 있었다. 근육이 꿈틀거리는 것이 눈앞에 생생하게 보였다. 잠깐? 등 근육? 거기에…… 알몸?!
남자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떡 하니 서 있었다. 난 벌떡 일어나 반사적으로 그 남자의 팔을 잡아당겨 몸을 돌리게 했다.
“야! 너 진짜 키르 맞아?”
“그렇다만?”
나는 놀란 마음에 언성이 커졌다. 키르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목소리는 그가 맞았다. 입을 떡 하니 벌리고 위에서 아래까지 훑어보았다.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건 알았다. 내가 보여 달라고 하면 싫다고 잡아떼지를 않나 사람인 모습은 어색하다며 칠색 팔색을 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난 고개를 떨구었다. 그에게는 당당히 자기 존재를 과시하고 있는…… 씨발…… 얼굴이 저절로 썩어 들어갔다. 키르는 인간으로 잘 변했는지 팔을 들어 자신의 몸을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에이든에게 못 볼 꼴을 보여 준 것 같아 미안해졌다.
“음. 괜찮군.”
짤막한 감탄사가 들리고, 키르는 내 표정을 보았는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말했다.
“왜 그런 표정이지? 무언가 문제가 있느냐?”
응. 존재의 악이다. 감히 순수한 아이에게 그런 못 볼 꼴을 보여 주다니. 얼른 키르의 옆구리를 발로 퍽 차 버렸다. 키르는 갑작스러운 나의 공격에 주춤하며 옆으로 밀려갔다.
키르를 치우자 에이든의 입은 멍하니 벌어져 있으며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키르의 모습에 놀란 건지……. 난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든 정말 미안해. 방금 본 거는 당장 잊어버려. 알았지. 내가 당장 저놈을 치울게? 응?”
“지금 뭐 하는 짓이냐?”
“닥쳐! 넌 수치심도 없어?”
에이든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거렸고 그 와중에 아프다고 징징대는 키르에게 따끔하게 한마디를 해 주었다. 난 에이든의 눈을 가린 채 내 뒤에 허울 좋게 서 있던 녀석들을 향해 소리쳤다.
“너희들도 가만히 보고 있지 말고! 알아서 움직여! 저놈한테 옷 좀 줘봐. 에이든은 대피시켜 주고!”
뒤에 있던 호위 기사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빨리 사태를 정리하라고 했다. 폴은 아예 입을 떡 하니 벌리고 눈을 둘 데가 없어 이리저리 눈을 돌리는 중이었다.
“저하, 실례하겠습니다.”
내 신호에 퍼뜩 정신이 든 월이 재빨리 에이든을 번쩍 들어 변태를 만난 것처럼 멀찍이 떨어졌다. 나라도 그러겠다…… 카사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키르에게 던졌다. 정확히 그 옷은 키르의 얼굴에 맞았다. 키르는 제 시야를 가리는 옷을 손가락으로 들었다.
“이건 무엇이냐?”
“옷이지!”
“누가 그걸 모르냐? 왜 나에게 주는 것이냐?”
“잔말 말고 입어! 아니면 뱀으로 돌아가!”
태연한 키르의 말에 오히려 내가 더 부끄러웠다.
“뱀이라서 문제가 된다고 하여 사람으로 변해 줬더니 더 난리구먼…….”
“내가 언제?? 네가 알아서 해석한 거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무튼 잔말 말고 당장 입어!!”
“하여튼 인간이란 왜 겉모습을 중요시하는 건지. 이해를 할 수 없구먼.”
“부끄럽지도 않냐…….”
“뭐가 부끄럽다는 거지?”
키르는 나를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주 당당해서 좋으시겠어? 어? 한숨이 절로 나와 손을 턱 이마에 올리고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사이 저 망측한 것을 가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마른세수를 하고 키르를 보니 어설프지만 다행스럽게도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하필 덩치가 커서 옷이 좀 작았다. 위에만 입으면 뭐 하냐고……
결국 내가 옷을 낚아채 애써 시선을 돌리며 허리에 옷을 돌려 묶어 주었다. 카사가 뒤에서 자신이 하겠다고 했지만 내 손으로 처리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좀 나이에 맞게 삽시다. 무슨 손이 이리 많이 가는지…….”
나는 말을 하다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등줄기가 파르르 떨렸다. 뭐지? 이 차가운 한기는……. 하고 고개를 돌렸다. 난 입을 떡 하니 벌렸다. 내 눈에 보이는 게 환상이기를…… 그곳에는 살벌하게 어두운 기운이 흘러나오는 제르펠과 그 뒤에는 눈이 커진 세드릭이 있었다.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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