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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46화 (4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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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도 순간 당황했는지 시범을 보여 줬다. 키르가 시도를 하니 정말 허공에 물방울이 생겼다.

[……네가 그만큼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거다!]

오히려 키르의 잔소리만 얻었다. 그 뒤 다시 한번 더 힘든 수업이 시작됐다. 허공에 힘을 응축시키니 물이 끓어오른 것처럼 부글부글하다가 생성되었다. 나는 신기함에 손으로 건드려 보기도 했다. 손가락이 젖고 차가운 것이 실제 물이었다.

“오…… 개꿀.”

키르는 마치 나에게 힘을 내려 준 장본인이라도 되는 듯 기고만장해졌다.

[그래,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게 수신님의 힘이다.]

그 자리에서 바로 물을 속 내 입 안에 넣었다. 힘을 쓴다고 목이 말랐는데 마침 잘되었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생성하는 데 힘이 들었는데 없애기도 아쉬웠다. 내 몸의 일부가 되면 좋지 라는 생각이었다.

[뭐, 뭐, 뭐 하는 것이냐!]

내 돌발 행동에 옆에서 키르가 난리를 쳤지만 난 물이 전해 주는 시원함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는 물 먹으려고 일어날 필요도 없는 거 아니야?”

[그런 데 쓰라고 있는 힘이 아니다!]

이제는 물웅덩이를 만들어 내 입에 쏙 넣어 주면 목마름 해결 끝이었다. 키르가 경악했지만 귀를 후비며 무시했다. 편하면 좋은 거지. 겪어 보니 이게 의외로 쓸 만했다.

그 외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는 수신의 말이 상기됐다.

“치유는 어떻게 해?”

[상처 말이냐? 간단하다. 힘을 모아서 상대방에게 전해 주기만 해. 물을 다루는 건 나름 괜찮아졌으니 쉬울 거다. 요령은 같다.]

키르의 말을 들은 나는 지나가던 길에 다친 사람이나 상처를 입은 사람이 보이면 후다닥 달려가서 치료해 주었다. 난 내 힘을 시도해 보고 싶은 거였지만 받은 당사자는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다. 바늘로 가슴이 콕콕 찌르는 것 같았지만 뿌듯했다.

그리고 현재, 나는 힘을 최대한 압축하는 중이었다. 이전에는 물을 생성하기 위해 내부의 힘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반대였다. 그 이유는 뱀으로 변하기 위해서였다. 솔직히 뱀으로 변할 일이 뭐 있겠냐 싶었지만 키르는 뱀으로서의 긍지가 있는지 뱀으로 변하라고 닦달을 했다.

수신님과 가까운 모습이라며 신의 사자가 뱀으로 변할 수 없는 게 말이 되느냐! 라며 옆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키르의 고집에 두손 두발을 다 들었다. 결국 이렇게 뱀으로 변하는 연습을 하게 된 것이었다.

몸 그릇에 맞는 힘의 크기가 있다고 한다. 사람의 형태에 맞춰서 흐르는 힘의 기운을 작게 모아 뱀의 몸에 딱 맞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잘되지는 않았다. 내 원래의 뱀 몸이 좀 작아야지…….

[조금만 더 힘내거라!]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꾹꾹 눌렀지만, 이번에도 압축했던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키르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아쉽구먼.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 다시 한번 더 해 보자.]

키르는 보기 다르게 스파르타식이었다. 끊임없이 다시 한번을 외쳤다.

“아, 못해! 나 지쳤어. 내일 해!”

나는 침대에 드러눕고 흘린 땀을 식혔다. 키르는 내 등짝을 꼬리로 때렸지만 난 꿋꿋하게 무시했다. 조금은 아팠지만 다시 연습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무시하면 알아서 그만하겠지.

[시작한 지 별로 되지도 않았다!]

키르가 열불을 토했지만 나는 움직일 생각이 1도 없었다. 슬쩍 돌아보니 키르도 포기한 것 같았다. 결국 키르는 쯧쯧거리면서 옆에 몸을 말았다. 난 고개를 들어 시계를 바라보았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있었다. 그만큼 열중해 있었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시간이?

“늦었다!”

집무실에서 서류를 보고 있을 제르펠이 생각나 벌떡 일어났다. 내가 벌떡 일어나자 키르도 시계를 한번 흘끔 보더니 인사를 했다.

[다녀와라.]

“오냐.”

키르는 내 일과를 알고 있었기에 태연하게 인사를 했다. 난 제르펠의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시간을 맞추어서 집무실에 찾아갔다. 그런데 키르의 수업에 열중하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키르와 같이 수업을 하다 보니 제르펠과 지내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어 그가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집무실에 내가 늦게 가거나 찾아오지 않으면 그는 내색하지는 않지만 서운한 티가 났다. 방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키르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그의 스킨십을 거절하니 불퉁해져서는 입을 꾹 다물기도 했다. 색다른 그의 표정에 골려 주기 위해 일부러 피하기도 했다.

방문을 열고 나가자 그 앞에는 내 호위 기사가 된 월과 폴이 서 있었다. 그들은 내가 움직이자 알아서 따라붙었다. 난 제르펠의 집무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항상 그랬듯이 문을 벌컥 열려고 했다. 그런데 세드릭이 이상하게 나를 멈추게 했다.

“조금 있다 들어가시는 게 어떠십니까.”

이상한 반응이었다. 잘만 들어갔는데, 갑자기? 의심스러웠지만 손님이 왔을 수도 있고, 중요한 회의를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럼, 밖에서 기다릴게.”

난 방문 옆 벽에 기대었다. 벽에 기대 뻘쭘하게 서 있기 그랬는데 월이 센스 좋게 의자 하나를 가져왔다. 난 거기에 앉아서 제르펠을 기다렸다. 왜 내가 들어가는 걸 막은 걸까 하는 마음에 살짝 귀를 쫑긋 세웠다. 귀중한 이야기가 오가는 집무실이라서 방음이 철저했다. 나는 제르펠이 언제 나오나 하며 멍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이안이 나왔다. 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안이 서류를 품에 안고 집무실에서 나오고 제르펠에게 허리를 숙이며 문을 닫으려는 찰나 제르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든은 어떻지?”

“아, 저하께서는…….”

“에이든이 왜?”

이안이 대답하려는 순간 나도 에이든에 대해 물었다. 에이든이 왜 제르펠의 입에서 나온 건지 궁금했다. 그때 목소리를 들은 이안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휙 뒤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문 옆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슈이렌 님?? 여기에는 어쩐 일로……. 아닙니다.”

이안은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그가 나의 일과를 알지 못했을 리는 없고 당혹감에 말이 툭 튀어나온 것 같았다. 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다시 물었다.

“에이든은 왜?”

“아…… 그것이…….”

머뭇거리는 이안의 태도에 난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았다. 슈이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제르펠이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들어오라는 듯이. 이안은 내가 들어갈 수 있게 비켜주었고 그 틈으로 집무실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래서 에이든은 요즘 어떻지?”

살짝 눈치를 보던 이안은 제르펠의 말에 집무실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마저 보고했다.

“황후 측에서 새로운 유모를 뽑았습니다. 이제 저하의 나이도 있으니 유모라기보다는 전담 시녀에 가깝겠네요.”

“흠……. 유모 쪽의 가문 쪽은 어떻지?”

“이번에는 꼬투리를 못 잡도록 단단히 손을 썼는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황후 세력 쪽 가문끼리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예의에 깐깐하고 교육열이 빡센 부인입니다.”

“그렇군. 수상한 움직임이 보이면 보고하도록.”

“네.”

소파에 앉아 쿠키를 오독오독 먹으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나에게 이를 갈며 앙칼지게 말하던 에이든의 유모가 떠올랐다. 재수가 없었던 아줌마가 잘린 것 같은데……. 이번에는 좋은 사람이기를 바랐다.

이안이 문을 닫고 나가자 제르펠에게 물었다.

“주인아. 저번 유모는 잘린 거야?”

“그래, 에이든 궁의 자금을 횡령해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더군. 그래서 수도에서 추방되었다. 앞으로 영지를 벗어나지 못하겠지.”

“뭐야? 진짜 나쁜 사람이었잖아. 잘됐다!”

제르펠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한 그녀였기에 속이 시원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살짝 가라앉아 있었다.

“왜 그래?”

역시 에이든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고민이 되는 걸까? 그는 황위 쟁탈을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의 입지가 좋아질수록 에이든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약해지게 마련이었다.

“역시 주인한테 에이든은…… 동생보다는…….”

“슈이렌.”

턱을 괴며 고민하고 있던 제르펠은 내 말을 듣자 고개를 들었다. 내 말을 들은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에이든이 좋은가?”

“싫지는 않아.”

내가 에이든을 만난 횟수는 별로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저 해맑은 아이를 싫어할 이유도 없었다. 나랑 똑같이 제르펠을 좋아하는 가끔 생각나는 아이였다.

“내가 황제에 오르기 위해서는 현 황제와 황후를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니, 필연적으로 그러겠지. 그러다 보면 싫든 좋든 에이든과는 부딪칠 수밖에 없지. 지금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날 증오하게 될지도 모르지…….”

“…….”

“세상엔 불합리한 일 천지다. 이 일도 그중에 하나일 뿐이지. 원망한다면 그것 또한 감수할 일이다.”

“그 사람들이 나쁜 건데…… 에이든에게는 좋은 부모이겠지?”

“……글쎄. 그건 어쩔지. 만약 네가 에이든과 친해지고 싶다면 그래도 된다. 오히려 그게 좋겠지……. 에이든도 너를 잘 따르는 것 같고, 에이든도 어찌 본다면 나와 같은 피해자지……. 황궁에 정을 붙일 사람이 그리울 수 있지. 그 아이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면 막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넌 신경 쓰지 말거라.”

남에게는 피해를 주지만 자신에게는 좋은 사람이라면 편을 들게 되어 있다. 나도 마찬가지고……. 제르펠의 말은 그의 어릴 적에는 정을 붙일 사람이 없었다고 들렸다. 제르펠은 의자에서 일어났고, 나에게 다가오면서 말했다. 그리고 내 뺨에 손을 대었다. 내 대답을 종용하듯이 볼을 살살 쓸었다. 풀이 죽은 나를 달래는 것도 같았다.

“그치만 고민하고 있었잖아…….”

“난 괜찮다.”

“맨날 괜찮대…….”

나는 칭얼거리며 말했다. 조금 전까지 곤란한 내색이 없던 그가 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단지…… 하나만 지켜 준다면 좋겠군.”

“뭔데?”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준다는 것.”

내 눈이 살짝 커졌다. 내가 한 말이었다.

“그것이면 된다. 그러면 괜찮다.”

난 알겠다고 작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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