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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펠은 이안에게 아침까지 수리하라고 목걸이를 쥐여서 보냈다. 아침에 이안이 없는 것을 보고 아직도 목걸이를 수리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끝난 듯했다.
“수리 끝났어?”
“한나절이 지났으니 가지러 가야지.”
잠자코 그를 따라갔다. 세드릭은 우리를 배웅하고 숨을 헐떡이는 기사들을 일으키고 다시 수련하러 갔다. 당장 일어나라며 호통을 치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제르펠이 만족할 만한 기사들이 없었다는 것에 기사들의 훈련을 더욱 빡세게 굴리기로 다짐한 것 같았다. 벌써 기사들이 죽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연무장은 멀어지고 있지만 기사들의 기합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이안의 방은 생각 외로 가까웠다. 제르펠을 보좌하기 위해서 딱 제르펠의 방과 집무실 사이에 있었다. 중간 지점에 있어서 시종이나 시녀들을 관리하기에도 수월해 보였다. 제르펠은 노크를 하고는 들어갔다. 이안의 방은 지적인 이미지와 보좌관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책들과 서류들이 쌓여 있으며 깔끔하게 정리해 있을 거라는 내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곳은 무슨 골동품점 같았다.
알 수 없는 도구들과 함께 오래된 장식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며 들어갔다. 이안은 우리가 들어온 소리도 못 들었는지 외알 안경을 착용한 채로 열심히 목걸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직 멀었나?”
이안은 그제야 우리들의 존재를 눈치채고 안경을 벗었다.
“전하, 언제 오셨습니까.”
안경을 벗고 돌아본 이안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다크서클이 무슨……. 눈 밑 정도가 아니고 코에 닿을 정도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제 거의 다 되었습니다.”
“흠…… 괜찮나?”
제르펠도 양심에 찔렸는지 아니면 안색을 보고 걱정스러웠는지 말을 건넸다. 이안은 헛웃음만 지으며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제르펠을 향해서 이글거리는 눈은 분명 이를 갈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오늘은 쉬어도 좋다.”
“당연하지요.”
그 말이 내 귀에는 그럼 안 줄 생각이었냐? 라고 자동 번역이 되었다. 이 일만 끝나면 바로 쉴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안은 미소를 지었지만 절대 좋아서 짓는 미소는 아니었고 오히려 음산해 보였다. 이안은 잠을 못 자지 못해서 그런지 말을 신경조로 내뱉었다. 만약 나였다면 이미 튀었지.
목걸이가 완성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모양인지 이안은 우리를 소파로 안내했다. 난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신기한 물건들이 많아 가만히 눈으로 살핀다는 것이 엉덩이가 들썩였다.
일어서서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이안이 목걸이를 수리하는 데 집중을 하고 있는데 내가 돌아다니면 집중이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내 모습을 지켜보던 제르펠이 궁금하면 둘러보아도 된다고 말했다.
“괜찮아? 이안의 방해가 되지 않아?”
“괜찮다.”
그가 방의 주인인 듯 대답했다. 넓게 보면 제르펠의 부하가 이안이 아닌가. 주인의 말이니까 괜찮지. 난 벌떡 일어나 신기한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램프 같은 것도 있었고, 도자기, 오르골, 수정 구슬 등 많았다. 스크롤도 있었는데 알 수 없는 글자가 마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대목이 있었다.
“이게 뭔 글자야?”
지렁이 같은 글자가 거기에 있었다. 그래도 수신이 나름대로 보정이라고 언어 패치는 되어 있었는데 읽을 수가 없었다. 어느 구슬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고 어느 책은 딱 봐도 열어 봐서는 안 된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사슬에 칭칭 감겨 있었다.
곁으로 쓱 봐서는 골동품 집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물건들이 마법 도구라는 것이 티가 났다. 이안이 스스로 마법의 소양이 있다고 했지만, 설마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본격적이네?
내가 둘러보는 중 수리가 끝났는지 이안이 목걸이를 들고 서 있었다.
“무엇을 하십니까?”
난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신기한 물건들을 보며 말했다. 딱 봐도 귀중한 것들이 많았다. 알고 보면 이 자식도 대단한 놈이고 그런 거 아니야?
“이게 다 이안 거야?”
“음……. 굳이 표현한다면 지금은 제 것입니다.”
원래는 아니었다는 말이었다. 궁금하다는 내 눈빛에 이안은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젊은 시절의 혈기였죠. 이건 정확히 말하면 스승님의 물건입니다만 가지고 나왔습니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거겠죠?”
젊은 날의 혈기라니……. 가끔 제르펠에게 대드는 모습을 보고 성깔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전에는 더 심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뭐, 방 안에서 굴러다니는 거였습니다. 끝난 연구는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라서요. 구석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는 걸 들고 왔습니다. 어차피 곧 버릴 물건이었습니다. 그럴 바에는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쓰는 게 좋겠죠.”
“스승님이 마법 쪽?”
“네. 스승님이 제 재능을 보고 마탑으로 데려왔습니다. 하지만 전 마나가 그리 뛰어난 정도는 아니었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마법보다는 세공 쪽이었습니다. 일명 마법 도구를 만드는 거죠.”
“둘이 달라? 똑같은 마법 아니야?”
“조금 다릅니다. 물론 둘 다 잘하는 자가 있긴 합니다. 마나는 재능이죠. 마나를 담는 그릇은 노력한다고 늘어나는 게 아닙니다. 뭐, 사람마다 그릇 크기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주문에 따라 소비되는 마나는 천차만별입니다. 그러기에 마나를 담는 그릇의 크기가 중요하죠. 하지만 세공은 마나를 얼마나 잘 다룰 수 있는 게 중요합니다. 마나를 아주 작게 실처럼 모아서 글자를 새겨야 하니까요. 하지만 마탑에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찼다. 그때의 생활을 생각하는지 이안의 표정은 구겨져 있었다.
“마법 도구는 덜떨어진 자들만 사용하는 도구라 생각합니다. 아, 마탑이라는 건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정말 꽉 막힌 사람들뿐이었죠. 결국 때려치웠죠.”
“주인도 알고 있었어?”
“당연하죠. 심지어 첫 만남은 제 가게에서였습니다만?”
이 자식도 부자였네…… 가게를 누가 마음대로 차려. 그나저나 마탑이라……
“마탑이라는 데가 그렇게 쉽게 나올 수 있는 곳이야?”
“물론 빠져나가기도 들어가기도 힘듭니다. 그래도 마탑이라고 보안은 철저하거든요. 심심부름하러 간다 말하고 도망쳤습니다.”
“물건 가지고……?”
“네, 거기서 부려먹어진 세월이 있는데 이 정도는 당연한 성과금 아닙니까? 스승님 보좌하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대부분 잡일은 제 몫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야. 마법도 자신이 하는 걸 보고 스스로 공부하라고 하지……. 상냥하게 가르쳐 주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서 배울 게 더 이상 없겠다고 생각해서 나왔습니다.”
이안은 아주 신랄하게 대답했다. 다른 의미로 그릇이 큰 놈이었네. 괜히 머리가 검은 짐승을 거두지 말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지. 이안은 갈색 머리라서 아닌가……. 제르펠에게 시선이 갔다. 난 거둔 게 아니고 주어진 거지만…….
“그것보다 착용해 보시지요?”
이안은 목걸이를 내 손에 올려 주었다. 목걸이를 착용하고 살펴보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하지만 이안의 눈에는 달랐는지 잘 되었네요.라고 짤막한 감탄을 하더니 안경을 집어넣었다. 목걸이를 살펴보던 중 이 안에 정확하게 어떤 마법이 있는지 궁금해져 그에게 물었다.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면 2번까지 실드가 작동합니다. 횟수를 하나 늘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데…… 그걸 한나절 만에 완성하라고 하시니…….”
이안은 밤 동안의 자기의 고생이 떠올랐는지 미간을 잡으며 말했다.
“그 외에는 뭐가 있어? 실드뿐이야?”
그 말을 들은 이안의 반응이 미묘했다. 이안은 제르펠의 눈치를 보더니 이걸 말해야 해, 말아야 해 하는 표정이었다. 다른 마법도 있나 해서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 그의 태도를 보면 숨기는 것이 있었다. 난 게슴츠레 눈을 뜨고 이안을 보았다.
“다른 게 또 있어?”
“…….”
“잘 착용하고 있으렴. 다른 보조 장치가 있는 것뿐이다.”
제르펠이 이안 대신 답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이안의 표정은 어색함 그 자체였다. 제르펠은 물어도 답해 줄 의향이 없어 보였다. 역시나 다시 물어도 그들의 입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내 궁금증만 커졌다. 대체 왜 숨기는 거야??
내 외침은 소리 없이 퍼져만 갔다. 제르펠은 머뭇거리는 내 등을 떠밀었다. 그래, 뭐 나한테 좋은 거겠지. 실드뿐만 아니라 다른 안전장치도 있는 모양이었다.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는 게 좀 의심쩍었지만.
“카사 슈이렌을 방으로 데려가도록, 다시 한번 당부하지만 잘 지켜라.”
“네”
“네!”
새로 뽑힌 호위들은 제르펠의 말에 큰소리로 답했다. 이게 선임과 후임의 차이인가? 기합 소리에 실려 있는 힘이 달랐다. 제르펠은 이안과 할 이야기가 있는지 나를 문밖까지에만 안내해 주었다.
“금방 가마.”
“응.”
난 키르를 안고 태연하게 답했다. 그의 얼굴이 점점 다가왔다. 응? 하는 새에 볼에 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안의 방 위치는 중간 지점이다. 시중과 시녀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지점. 그의 기습 볼 뽀뽀에 입이 떡 벌어졌다.
“한동안 방에서 지내야 할 것 같구나. 괜찮지?”
제르펠은 내 혼을 쏙 빠지게 해놓고 말했다. 붉게 달아오른 볼을 키르를 방패로 삼아 숨겼다.
‘아씨…… 쪽팔린다. 진짜.’
주위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퍼뜩 정신을 차린 난 사정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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