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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40화 (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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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심지어 제르펠까지 잠든 시간에 유일하게 잠들지 못한 이들이 있었다. 황후는 불안하게 방 안을 돌아다니면서 오지 않는 이를 기다렸다.

“왜 이리 늦는 것이냐??”

“죄, 죄송합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싸늘한 황후의 말에 시녀만 죽어 나갔다.

“준비한 대로 한 것이 맞느냐?”

“물론입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시녀가 펄떡 뛰었다.

“그런데 어찌 말이 없어!”

황후는 답답했다. 가문에 연락하여 마법사를 동원해 마법을 제르펠의 궁 전체에 걸었다. 제르펠이 궁에 도착할 때 슬립 마법이 발동되도록 하였다. 심지어 그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암살자 길드에 의뢰를 요청했다. 황실 관련 일은 받지 않는다는 것을 높은 금액을 제시해 매수했다. 제르펠과 슈이렌만 죽는다면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아낌없는 투자를 했다. 손쉬운 일이었다.

그녀의 착오는 그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 정도라면 당연히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오만이었다. 그들은 죽지 않았다.

이안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보좌관이지만 사실 그는 마법의 소양을 지닌 자였다. 제르펠의 경각심 때문에 한순간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았고 기사단 복장에 간단한 술식을 새겼었다. 그의 방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황후는 실패했을 리가 없다며 확신했다.

“……궁은 어떻지?”

“급히 다녀와 보았지만 조용했습니다.”

황후의 궁은 제르펠의 궁과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그로 인한 시간을 고려해도 아직도 소식이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시녀는 황후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게 단조로운 어조로 말했다.

“세드릭 경이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마법은?”

쉽게 풀릴 마법이 아니었다. 시녀의 말은 즉 마법이 걸리지 않았다는 말과 동일했다. 시녀는 고개를 저었다.

“경계가 삼엄하여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다친 행색도 아니었습니다.”

“……그 분야에서 최고라더니.”

황후는 결국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마법이 통하지도 않았고, 암살자들이 역으로 당한 듯했다.

“마마!”

“……정말 생명줄이 길구나…….”

자신이 암살을 했다는 증거는 찾지 못하겠지만 제르펠이 요리조리 피하며 살아남는 꼴이 아니꼬웠다. 실패한 것은 확실했다. 얻은 것은 하나도 없는 완전한 패배였다. 황후는 분노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아침까지 기다렸지만 결국 성공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원하지 않던 내용의 서신이 날아왔다.

그 서신은 제르펠에게 뱀에 대한 일을 들킨 것 같다는 교황의 긴급 통보였다. 황후는 그 서신을 보고 실성한 듯 헛웃음만 지었다.

“이대로 내가 물러설 것 같으냐?”

어차피 에이든의 몸 상태는 좋아졌으니 들키면 곤란은 하겠지만 증거만 없으면 되었다. 황후는 손톱을 잘근잘근 물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 * *

세드릭은 어둡고 긴 복도를 날을 잔뜩 세운 채 걷고 있었다. 밤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오싹했다. 그 일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평화에 찌들어 있던 것은 자신이었다. 전하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미리 위험에 대비했어야 했다. 습격으로 애꿎은 기사들의 목숨을 버린 것 같아 가슴이 먹먹했다. 세드릭은 밤새 궁을 돌며 경비를 단단히 했다. 이번 일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가야 했다. 입단속을 꼼꼼히 시키고 경비를 더욱 강화했다.

‘전하에게 또 그런 표정을 짓게 했으니…… 나의 실책이다…….’

세드릭은 눈을 감았다. 그는 처음 제르펠을 만났던 때를 회상했다.

세드릭은 집안에서 떠밀다시피 해서 전쟁에 참여했다. 세드릭의 집안에서는 장남이 직위를 이었다. 자신은 차남으로 기사가 되어 영지민들을 지키려고 했다. 그 모습이 작위를 노리는 것으로 생각되었는지 전쟁터로 보내졌다. 배신감에 사무치는 감정을 누르고 기사로서 전쟁에 참여했다.

그때 세드릭 눈에 보인 어린아이가 있었다. 엄마의 품을 벗어나기에는 아직 이른 아이였지만 그 아이는 당당하게 병사로서 서 있었다. 황금빛 눈동자와 검은 머리카락, 그가 누군지는 금세 알았다. 황태자가 참가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황금빛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은 채로 흔들리고 있었지만 고개는 숙이지 않았고 정면을 똑바로 마주했다.

‘소문이 사실이었나.’

그 당시의 세드릭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같은 귀족이었지만 자신은 지방 끄트머리의 귀족이라 황실과는 연이 없었다. 어린아이가 고생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었다. 아이는 나날이 이어지는 힘든 전투로 잊혀만 갔다.

하지만 그러던 중, 제르펠을 인지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오늘도 살아남았군…….”

세드릭은 검에 묻은 피를 씻으며 말했다.

“지휘관이 제일 먼저 도망가다니…… 이러다간 정말로 죽겠군…….”

벌써 전쟁은 승패를 반복하며 3년 동안 지속되고 있었다.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능한 지휘관과 작전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장교들, 도착하지 않는 보급품.

오늘은 매복으로 기습을 당했다. 그로 인해 죽은 병사들은 헤아릴 수 없었다. 지휘관은 가장 뒤에 있었고, 매복으로 지휘관이 가장 먼저 위협을 받았다. 당황한 지휘관이 병사에게 내린 명령은 기가 막혀 웃음도 나지 않았다.

“너, 너희는 내가 도망갈 시간을 벌어라. 후퇴하는 자들은 용서치 않겠다!!!”

말을 타고 있던 지휘관은 주위 기사와 함께 장소를 벗어났고 병사들만 죽어 나갔다. 죽음의 갈림길에서 살아남아 돌아온 병사들에게는 패배했다며 호통을 쳤다.

세드릭은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대체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

그런 그에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어두운 밤이었기에 그 소리는 무척이나 잘 들렸다. 퍽퍽 하는 소리는 구타하는 소리였다. 그는 검을 들고 소리를 향해서 뛰어갔다. 거기는 싸움판이었다. 정확히는 말하면 수련을 빙자한 싸움. 다수 대 일이었다. 하지만 다수의 쪽이 밀리고 있었다.

“야! 밟아!”

“윽…….”

소리친 목소리는 세드릭에게 낯설었다. 막 힘든 전투가 끝난 참이었다. 다른 병사들도 마찬가지였기에 호기롭게 싸움을 할 시간에 다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세드릭은 보지 못한 병사들이었다. 이번 병사들의 죽음으로 다른 쪽에서 지원을 왔다더니 그쪽 병사인 것 같았다.

홀로 서 있던 그는 다수에도 밀리지 않았다. 어둠을 틈타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상대방의 급소를 노려 일격에 쓰러뜨렸다. 애초에 저런 실력자가 있었다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만큼 그의 자세는 군더더기가 없고, 효율적으로 적을 쓰러트리고 있었다.

승패는 빨리 정해졌다.

“검 등으로 쳤다. 타박상으로 끝날 터이지. 너처럼 열등감에 찌들어 빠진 어리석은 것들이 있으니 언제까지도 전쟁이 끝나지 않는 거다.”

“웃기는 소리! 전쟁이 끝나지 않는 건 네놈 탓이지! 장교들이 너를 죽이려고 안달이 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야! 빨리 뒈져 버려!”

“……그런가.”

“너랑 같이 임무를 수행하지만 않았어도…… 동생은 너한테 잘해 주었는데……. 니놈이 내 동생을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야. 그만 가자……. 한풀이해도…… 동생은 돌아오지 않잖아……. 짜증 나게 실력은 좋아서…….”

그들은 호기롭게 덤볐지만 홀로 서 있던 자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비틀대며 일어난 그들은 울음을 터트린 한 사내의 등을 두드리며 떠났다. 세드릭은 들으면 안 되는 것을 들은 기분이었다. 그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느끼며 발걸음을 옮기려고 한순간이었다.

“누구냐?”

우둑하게 서 있던 자가 세드릭을 향해 물었다. 세드릭은 고개를 돌렸다. 최대한 인기척은 죽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자에게 들켰다. 어쩔 수 없이 세드릭은 그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구름에 가려진 달이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달빛에 본 그는 사내가 아닌 청년이라고 해야 할 앳된 얼굴이었다. 분명 세드릭보다 작았지만 위압감 탓인지 눈높이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커 보였다. 어둠과 거의 분별이 안 될 검은 머리에 피부는 시릴 만큼 하얗고, 황금빛 눈동자였다. 세드릭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그때 그…….’

세드릭과는 발령지가 달라서 그 뒤로 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물기를 머금었던 황금빛 눈동자는 어느새 깊이 가라앉아 있었으며 차갑고 매섭게 세드릭을 노려보았다. 그의 시선이 검을 쥐고 있는 세드릭의 손으로 향했다.

“너도인가?”

청년은 시비가 한두 번이 아닌지 태연하게 자세를 잡았다. 세드릭은 전투의 의사는 없다는 듯이 검에서 손을 떼며 그에게 걸어갔다.

“아닙니다. 그저 싸우는 소리가 들려서 왔을 뿐입니다.”

청년은 말없이 세드릭을 노려보다가 스쳐 지나갔다. 그 뒤에 어렴풋이 알았다. 3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변하게 된 이유를. 장교와 지휘관은 노골적으로 혹독하게 제르펠을 대했다. 그가 있는 부대는 언제나 힘들었다. 그들은 정말 제르펠이 죽기를 바랐다. 멋모르는 자는 황태자라는 말에 접근했다가 끈 떨어진 황태자라는 말을 들으면 얼굴색을 바꾸고 뒤돌아갔고, 곁에 있던 자가 배신하는 경우도 여럿이었다. 그는 고립되어 갔다. 아니…… 스스로 벽을 쌓았다.

하지만 그는 어떤 임무에서도 살아남았고, 그 이상의 성과를 보여 주었다. 왠지 모르게 시선이 계속 갔다. 세드릭은 검을 손질하고 있는 제르펠에게 다가갔다.

“태자 전하.”

그 호칭에 단번에 제르펠의 눈매가 사나워지더니 세드릭을 힐끔 바라보고 말했다.

“그 호칭은 버린 지 오래다. 나에게 볼일이라도 있나?”

“일행이 없다면 저와 같이 가시죠.”

이번에는 기습이 목적. 임무를 행하기 위해서는 따로 무리를 지어 행동했지만 그 누구도 제르펠과 같이 임무를 행하려 하지 않았다. 세드릭은 그런 제르펠과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제르펠은 그런 세드릭을 무시하고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따라오는 걸 막지도 앉았다.

매복에는 침묵이 필수. 각자 자리에 대기하고 있었을 때 의도한 것처럼 제르펠과 세드릭에 있었던 자리에 돌멩이가 날아왔다. 제르펠과 세드릭 곧바로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지만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황급히 몸을 피했지만 적군은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대응했다.

“거기 누구냐!”

결국 적군에 들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세드릭은 숨이 끝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다. 포위되어 싸우는 도중 세드릭은 큰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도망가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제르펠은 절대 도망치지 않았다. 세드릭이 아무리 소리를 쳐도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제르펠은 세드릭에게 말했다.

“일어나. 죽더라도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죽어. 누군가가 내 눈앞에 죽으면 잠자리가 나빠서 잘 수가 없다.”

“…….”

“그리고…… 죽을 자리는 네가 정해라. 날 이용할 생각은 하지 말고.”

자신의 밑바닥을 들킨 기분이었다. 형에게 배신 받아, 가족에게 배신 받아 온 전쟁은 힘들었다.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무능한 지휘관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하지만 개죽음은 싫었다. 꼴에 기사라고 자신도 명예롭게 죽고 싶었다. 그래서 죽을 자리로 그의 곁을 선택한 것이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그때 결심했다. 어차피 죽으려고 한 목숨. 끝까지 그의 옆에 있겠다고.

세드릭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지식을 그에게 전수해 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제르펠이 장성해 진가를 발휘하자 점점 그를 따르는 자들이 늘어났다. 제르펠은 하나의 큰 부대를 이끌게 되었다. 마침내 전쟁이 끝났다. 세드릭은 가족 곁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성 따위는 버리고 그의 곁에 섰다. 후회 따위 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났지만 전하의 전쟁은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세드릭은 어느새 제르펠의 방문 앞까지 도착했다. 오는 도중 제르펠을 만나지 못했다.

“왜 전하께서 안 보이시지? 설마 먼저 가신 건가?”

제르펠의 행보를 생각하면 먼저 수련을 하러 간 것인지 의심이 갔지만 세드릭은 평소보다 배는 일찍 나온 상태였다. 아직 수련을 갈 시간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세드릭은 제르펠이 나올 동안 밖에서 기다렸다. 시간상으로는 슬슬 나올 때였지만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조용히 노크했다. 답이 없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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