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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36화 (3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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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어두운 공간에 터벅터벅 발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산발이 되어 주저앉아 있던 여성은 그 소리에 번개처럼 튀어나와 철창을 붙잡았다. 요란한 소리가 들리고 그들은 그 철창 앞에 섰다. 매섭게 빛나는 여성의 눈앞에 제르펠과 세드릭, 이안이 다가왔다. 그녀의 몰골을 본 제르펠의 한쪽 눈이 확 치켜세워졌다. 그는 이안에게 물었다.

“상태가 왜 이렇지?”

전에 보았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녀에게 이 공간은 있기 버거운 공간이었다. 우아했던 자태를 뽐내던 때가 불과 몇 시간 전이었지만 현재 유모의 눈은 흉흉하게 충혈되어 있었고, 머리는 산발에 옷에 달린 장신구들은 뜯겨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반항이 심했다는 걸 보여 주었다. 이안은 치를 떨면서 말했다.

“얼마나 저항이 심하던지 기사들도 두 손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이 귀족이 버틸 만한 공간도 아니지 않습니까.”

확실히. 제르펠은 감옥 안을 둘러보고 혀를 찼다. 이곳은 중한 죄를 지은 자들이 오는 곳으로 환경이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황궁의 재산을 건들었기에 당연한 처사였다. 바닥에는 벌레가 기어 다니며 쥐들이 찍찍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귀족이 견디기 힘든 공간이었다.

이안은 바닥을 기어가는 벌레에 질색했다. 벌레가 다가오자 발을 요리 조리하며 피하기 바빴다. 그는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은지 상황에 대해 빠르게 설명했다.

“서류도 완벽했지만 방에서 나온 증거들도 만만치 않더군요. 따로 금고를 만들어 그 안에 비싼 보석이며 금덩이들도 보관했더군요. 증인들도 완벽합니다. 추방이 확실합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마마는, 마마께서는 무어라 하시더냐? 나를 이리 버리실 리가 없다.”

이안은 한결같이 황후마마를 부르는 유모를 질색하며 바라보았다. 답이 없는 사람을 보듯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보시다시피 말이 안 통합니다. 너 같은 자가 한둘인 줄 아냐? 쓸데없는 기대는 하지 말아라.”

이안은 그녀에게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 말에 유모가 눈을 부릅떴지만, 세 명 중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유모의 눈동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사정없이 떨렸다.

‘내가 투자한 세월이 10년이었는데!’

미끄러지듯 천천히 그녀의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그럴 리가…….”

유모는 정신이 나간 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에이든의 유모이기 전에 황후마마의 명을 받은 자였다. 자상한 어머니처럼 보이는 황후는 몸이 약하게 태어난 에이든을 못마땅해했다. 그런 황후 대신 자신은 에이든의 엄마 역할을 자처했다. 신관과 의원에게 에이든의 병에 대해 조언을 받았고, 에이든의 몸이 약했기에 항상 옆에서 간호해야 했다. 황후의 명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에이든이 훌륭한 황제가 될 수 있게 노력했다. 그리고 제르펠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 시종들을 이용해서 흉흉한 소문들을 퍼트리고 다녔다.

‘에이든 님이 훌륭하게 장성하게 된 게 누구 덕분인데!’

그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제르펠은 철창을 두 손으로 잡은 채 망연자실하게 굳어 있는 유모를 바라보았다. 한참 후, 그 손이 툭 떨어질 때 말했다.

“선처해 주지.”

그 소리에 유모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제르펠 일행의 태도로 보면 자신은 버림받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쯤 태연하게 차를 마시고 있을 황후를 생각하니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결국, 유모와 황후는 그 정도의 사이였다. 유모는 선처하겠다는 제르펠의 말에 홀라당 넘어갔다.

현실을 직시한 듯 유모는 쉬어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 조건이 있지 않습니까?”

“이제야 말이 통하겠네.”

이안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드디어 말이 통하는 그녀를 보며 이안은 한 장의 서류를 탁 쳤다. 이제 끝날 기미가 보였다.

“여기 보이지?”

이안의 손가락은 서류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 서류를 본 유모는 숨이 턱 막혔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서류가 그들에게 있었다. 그녀는 사정없이 떨리는 눈으로 그들을 번갈아 보았다. 제가 본 게 환상이길 바랐다.

유모의 반응에 이안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일을 서두르는 전하 덕분에 그는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었고 눈 밑에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입을 벙긋하지 않고 황후를 찾는 유모 덕분에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렸다. 유모의 표정이 심증을 확신으로 만들어 주었다.

“브란트 가문. 백작가지만 빚더미에 앉아 거의 몰락한 수준의 가문이더군. 그런데 황자의 유모로 발탁. 횡령한 돈을 가문에게 줬지. 근데 돈 씀씀이가 대단한가 봐. 그래도 여전히 빚에 허덕이고 있었지. 그런데 1년 사이에 빚을 갚았네? 그리고 이상하게 행방불명 된 사람들이 많더라고, 빚을 갚았던 똑같은 시점에. 이상하지 않아? 영지에서 노예를 공급하고 있는 거 아니야? 조사한 바로는 괴한이 와서 사람들을 잡아간다는 항의를 깡그리 무시했던데?”

이안은 유모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했다. 살벌하게 빛내는 그의 눈빛에 유모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덜덜 떨리는 입술은 그녀의 심정을 말해 주었다.

“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예이. 다 아는 사이끼리 이러지 맙시다. 솔직히 핵심적인 정보는 기대도 안 하거든요? 버림받은 말이 대단한 정보를 알고 있을 턱이 없지. 작은 정보나 대략적이라도 말한다면 충분히 선처해 줄 거니까.”

이안의 말이 맞았다. 카지노 사업에는 황제파 가문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프란시아 후작은 노예 매매를 하고 있었다. 아는 가문들은 경매에 참여해서 노예를 사기도 했고, 후작에게 노예를 공급해 주어서 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가문의 일이었다. 그녀는 노예건과는 무관했다.

그녀는 이안을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몇 번이고 입이 열리고 닫히길 반복했다. 유모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가문들도 긴밀하게 얽혀 있는 사건이었다.

“노예 매매를 하고 있겠지.”

제르펠은 확실하게 말했다. 유모는 제르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 얼굴은 이미 확신하는 자의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어떤 정보를 기대하는 것인가?

“확, 확신하신다면 저에게 어떤 정보를 원하시는 겁니까?”

유모는 깜짝 놀라 자신의 입으로 노예 매매를 한다고 확인을 해 주었다. 보기 좋게 제르펠의 유도 신문에 넘어간 것이었다.

“너희 가문은 노예를 제공해 주었겠지. 그만큼 많은 돈을 벌어들인 것이고. 10년 넘게 빚에 허덕이던 너희 가문을 살릴 정도로 돈의 액수가 크다는 건 알겠다. 그럼 그들은 대체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쓰는 거지? 일부러 노예 매매라는 수단까지 쓰면서?”

제르펠은 좋은 정보를 얻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조금 전의 반응으로 목표는 달성했다. 노예 매매가 확실하다는 것만 증명하면 충분했다. 유모의 잔뜩 찌푸려진 미간과 한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은 그녀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는 걸 말해 주었다.

이안이 유모 몰래 제르펠에게 조용히 말했다.

“모르는 눈치입니다.”

“그래 보이는군.”

자금의 유통이 쉽게 밝혀질 거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제르펠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선처는 없겠군.”

“어, 어째서? 난…….”

제르펠의 말에 대꾸하려던 그녀의 말문이 막혔다. 자신의 입으로 확실히 노예 매매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속았다. 라고 생각한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모습을 본 제르펠은 비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분노로 떠는 그녀를 바라보던 제르펠은 말했다.

“목숨을 부지하고 싶었다면 사람을 골라 건드렸어야지.”

“무슨…….”

“모른다면 더욱 할 말은 없다. 시간이 늦었군.”

뒤에서 소리 지르는 유모의 말을 무시하며 그들은 떠났다. 이안은 속이 다 시원하다는 듯이 말했다.

“드디어 끝났네요. 전하. 추방할 것입니까?”

“……설마. 세드릭, 나중에 조용히 처리하도록. 입이 가벼운 자는 처리를 해야지. 황후에게 지금의 대화를 말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

“알겠습니다.”

제르펠은 살벌한 말을 태연하게 말했다. 세드릭은 그의 결정에 동의할 뿐이었다. 그리고 제르펠에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호위를 좀 더 늘리시는 게 어떠십니까?”

“그건 맞습니다. 이제 대놓고 목숨을 위협받는 일이 생길 겁니다.”

“카사를 슈이렌 님에게 붙이시지 않았습니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야 합니다.”

이안도 세드릭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제르펠은 아무 말 없이 걸어갈 뿐이었다. 그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사항이다. 중요한 건 카사의 뒤를 맡길 사람이 없다는 것뿐이었다.

“내 걸림돌이 되지 않던 기사가 있던가.”

세드릭의 말문이 막혔다. 그의 표정에 제르펠은 그럴 줄 알았다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머릿속에 슈이렌의 모습이 지나갔다. 최대한 궁 안에서 안전하게 지키고 싶지만 교황처럼 틈을 노리는 자가 없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한다. 자신이 항상 그와 같이 붙어 있을 수도 없었다.

“너희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너로 충분하다.”

“전하…….”

감동한 세드릭에게 이안은 얼씨구 하며 아니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번에도 호위 건은 물 건너간 듯싶었다.

“슈이렌의 호위를 뽑도록 하지. 나와 다르게 슈이렌은 스스로 몸을 지킬 수가 없다. 세드릭, 유능한 자로 인원을 추려 봐라. 심의를 기울이도록.”

“네. 맡겨 두십시오.”

제르펠의 말에 세드릭이 화색을 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각자 앞으로의 생각으로 고심하며 궁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이안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발걸음이 멈췄다는 걸 안 것은 옆에서 걸어가던 세드릭이었다.

“이안?”

이안은 세드릭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큰일입니다.”

이안은 시선은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곳은 제르펠의 방이었다. 그의 갈색 눈이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본 듯 잔뜩 커져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제르펠에게 말했다.

“목걸이의 마법이 발동되었습니다.”

그의 말은 많은 뜻을 담고 있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슈이렌이 위험하다는 것. 이성이 인지하기 전에 그는 자신의 방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세드릭과 이안도 헐레벌떡 그를 따랐다. 어두운 밤이지만 궁 안은 조용했다. 사람 하나 없이 음산하게. 다들 잠이 들 시간이었지만 최소한의 인원은 경계를 위해 돌아다녔다. 그런 시중 인조차 보이지 않았다.

“전하! 저기…….”

세드릭은 복도에 쓰러져 있는 시종을 발견했다. 시종에게 다가가 목에 살짝 손가락을 대어 보았다. 숨은 붙어 있었다. 규칙적으로 내뱉는 숨소리에는 딱히 문제도 없었다.

“그저…… 잠에 든 것 같습니다.”

이안은 숨을 헐떡이며 왔다. 그는 체력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이안이 다가와 시종을 살펴보았다. 희미한 마나의 기류가 보였다. 이안이 제르펠에게 고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시종을 지나친 뒤였다. 제르펠에 머릿속에는 슈이렌뿐이었다. 오늘만큼이나 넓은 궁이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멀리 보이는 방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앞에 기사들이 쓰러져 있었다.

공기 중으로 희미하게 느껴지는 피 냄새에 제르펠의 기세는 더욱더 날카로워졌고, 눈빛은 싸늘해졌다.

도착한 제르펠에게 보인 방 안은 난장판이었다. 물건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카사가 힘겹게 암살자를 상대하고 있는 게 보였다. 입술이 보랏빛으로 물든 것이 그가 독에 중독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주저앉은 슈이렌과 그를 향해 검을 들고 있는 암살자가 제르펠의 두 눈에 띄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시선이 슈이렌 쪽으로 향하면서 손은 재빠르게 검을 뽑아 암살자에게 날렸다. 그의 시야에 슈이렌의 다리에서 흐르는 피가 보였다.

제르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슈이렌의 피 냄새가 온 세상을 감도는 것 같았다.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다른 자에 대한 분노가 아닌 자신에 대한 분노로 참을 수가 없었다. 겨우 찾은 안식처였다. 안전하게 지키리라 맹세했다. 안전할 것이라고 장담했던 공간에 침입자가 들어왔다. 이곳은 나와 슈이렌의 장소였다. 그 안식처를 침입한 것조차 모자라 슈이렌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다.

감히…….

분노로 눈앞이 새빨개졌다. 망설임 없이 가로막은 자들을 베어 갔다. 이빨을 들이대는 것들은 없도록, 자신의 것을 빼앗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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