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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35화 (3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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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를 데려온 가장 큰 이유였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 말에 뒤돌아 몸을 말고 있던 키르는 움직여 나를 보고는 말했다.

[우선 빠져나가는 힘을 잡아 두거라.]

“그걸 어떻게 하는데?”

키르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공중에 떠다니는 푸른빛은 보이나.]

“힘을 쓰려고 의식을 집중하면 보이더라고…….”

[그 빛이 수신님의 힘이지. 인간들의 말을 빌리자면…… 신성력이라고 하더군.]

신성력이면 신관들이 다루는 힘이네…… 하긴 수신을 믿고 있는 종교가 신전이었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 주자고 생각했다. 키르에게 물을 다루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내 손가락 위에 작은 물방울이 떠다니고 있었다. 손가락을 이동하니 물방울이 따라왔다.

“일단 이 정도?”

키르는 자신의 기준에 모자랐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어쩔? 이게 최선인데?

[……사용할 줄은 아는군. 보통 힘을 사용할 때 내부에서 밖으로 떠내는 연습을 했겠지?]

키르의 말이 맞았다. 내 힘이니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걸 떠내는 이미지를 상상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쉽지. 힘이 빠져나가고 있는데 내부의 힘을 끌어당겨 쓴 것도 재주다.]

“그냥 열심히 하니까 되던데?”

[칭찬 아니다. 그걸 반대로 해 보아라. 밖에서 내부로 끌어당겨. 힘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그걸 성공한다면 내부의 있는 힘이 충만하니 더욱 수월하게 힘을 사용할 수 있을 거다. 우선 힘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먼저 하도록.]

머쓱하게 볼을 긁적였다. 아무튼 반대로 생각하라는 말이지? 명상이라도 하면 되나? 예전에 배웠던 요가 자세를 떠올렸다. 가슴을 살짝 내밀고 허리는 올바르게 펴고 다리는 편안하게 모았다. 손은 무릎에 살짝 거쳤다. 깊은 호흡을 반복하며 의식을 집중했다.

음? 이건가?

계속 집중하니 무언가 보이는 것 같았다. 진짜 새어 나오고 있잖아?? 키르가 나를 보고 질색한 것도 이해가 됐다. 내 몸에서 푸른 오라가 엄청나게 나오고 있었다. 기겁하고 힘을 빨아 당겼다. 존재감을 사방으로 방출하고 있었네! 들어가! 기운이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걸 키르도 눈치챘다.

[이제 감을 잡은 것 같군. 그리하면 된다.]

“휴. 이제 어때?”

명상이라는 게 힘이 드네. 이마에 나온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키르는 꼼꼼히 내 몸 이곳저곳을 살피고 말했다.

[다시 새어 나온다……. 아무래도 습관처럼 힘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붙잡아야겠군.]

이게 은근히 까다로웠다. 해냈다는 생각에 마음을 놓고 있었더니 또다시 힘이 쓱 빠져나갔다.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키르의 깐깐한 눈에서 벗어났다.

[이제 다루는 게 훨씬 수월할 거다. 한번 해 봐라.]

이제 진짜 힘을 사용하는 건가? 힘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했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얼마나 힘들었던가…… 물 한 줌 다루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엄청난 에너지 소비를 통해서. 하기 전에 앞서 손을 풀어 주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하는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카사가 들어왔다. 큰 소리에 나와 키르의 이목이 카사에게 집중되었다. 카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나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숙이십시오!!”

불이 꺼지고, 창문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키르는 커다란 덩치에 비해 재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침대 사이로 쏙 숨었다. 검은 그림자들이 창문을 깨고 침입해 왔다.

여러 명의 발소리가 들리고 검은 복장을 한 자들이 흙발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왠지 그들은 나를 보고는 당황한 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 움직임이 정말 빨랐다. 잠깐 눈을 깜빡이는 사이 내 눈앞에 날카로운 칼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고, 움직일 틈새도 없었다.

그때 목에 있던 목걸이가 빛났다. 붉은빛에 팔로 얼굴을 가렸고, 챙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단검이 장벽에 막혔고, 공중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이건…….”

복면을 쓰고 있던 사람은 당황했다. 키사는 한순간의 방심을 놓치지 않았다. 복면을 쓴 남자는 카사의 검을 미처 다 피하지 못하고 등에 자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도 만만치 않은 솜씨였는지 피를 흘리고도 이어지는 공격을 가벼운 몸놀림으로 피했다.

내 눈앞에서 피가 튀었다. 입 한마디 벙끗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카사는 내 앞을 가로막았다. 새하얗던 침대 시트가 습격자의 피로 붉은색으로 물들어 갔다. 그는 최대한 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카사와 습격자들의 몸싸움에 주위는 난장판이 됐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 눈에는 그들의 움직임이 잘 포착되지 않았다. 카사도 만만치 않게 날렵해 서로 검이 부딪치고 서로 튕겨져 갔다. 검은 후드와 검은 복면에 작은 단검을 다루고 가벼운 몸놀림까지. 암살자가 분명했다.

주인이 유능하다고 붙여 준 이유가 드디어 이해가 갔다. 카사는 한 명이었고, 암살자들은 많았지만 수적으로 불리했음에도 쉽게 당하지 않았다.

“몸을 피하십시오!”

“어…… 어.”

몸을 피하라고 말하지만 숨을 곳이 어디 있을 리가 없었다. 어두운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그들은 내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매서운 공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국 카사의 등 뒤에 딱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난 두려움에 몸을 떠는 채로 카사의 뒤에서 숨는 것이 전부였다.

가만히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건가? 조금 전까지 힘을 다루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었다. 하지만 몸이 덜덜 떨리고 긴장감에 푸른빛은 고사하고 집중도 되지 않았다. 속으로 자신에게 욕을 퍼부었다. 이런 한심한……. 내가 다짐한 결심은 이게 아니었는데……. 뒤에서 지킴을 받는 게 싫어서 나름대로 노력을 해 보기로 했었다.

수적으로 밀리다 보니 카사는 날아오는 검들을 막고만 있었고, 반격의 타이밍은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나라는 짐까지 있었다.

그들은 내가 목적인지. 틈만 보이면 나에게 단검을 날렸다. 결국, 카사의 어깨에 작은 단검이 스쳤다. 눈앞에서 그가 상처 입는 것을 목격했다. 손이 달달 떨렸다. 내 목소리 또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윽…….”

“야…… 괜찮아?”

카사도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슬쩍 보더니 주위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점점 뒤로 밀려났고 나에게 말했다.

“제 말 잘 들으십시오. 신호하면 바로 방 밖으로 나가는 겁니다.”

그에 말에 고개를 돌렸다. 활짝 열려 있는 방문이 보였다. 방에 접근하는 걸 싫어했던 제르펠은 최소한의 인원들을 배치했다. 그래도 방을 지키는 기사들과 시중을 들기 위한 시중 인들이 있었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사람이 있었다. 항상 돌아올 때 인사를 해 주었던 기사였다. 죽음조차 인지하지 못했는지 기사는 눈을 뜬 채로 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

“신호가 갔으니 곧 전하가 올 겁니다.”

무슨 신호를 보냈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르펠이 오고 있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다. 그저 기다리고 지킴을 받는 자신의 무력함에 화가 났지만 그럴 때가 아니었다. 내가 여기에 있다면 그의 짐이 된다는 건 확실했다. 카사가 힘겹게 한 명을 베어 쓰러트렸다.

“지금입니다!”

카사의 신호에 맞춰서 재빨리 뛰었다. 절로 욕이 나왔다. 씨발…… 최대한 빨리 뛰었다. 가까운 거리일 텐데 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멀어 보이는지. 카사는 나를 쫓아오려고 하는 암살자들을 막고 있었다. 아까부터 카사의 몸이 휘청거리는 게 불안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카사의 포위망에서 한 명이 탈출했는지 카사가 목청을 높이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 살짝 뒤를 돌아본 순간 발에 무언가가 걸렸다. 카사와 암살자들의 난리 통에 깨어져 있던 도자기였다. 주위가 깜깜해서 시야를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난 다리에 스치는 도자기 조각과 얽힌 발에 의해 몸이 기울어졌다.

결국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날아오는 단검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야!]

다가올 고통에 대비했지만 느껴지는 건 없었다. 단검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살짝 뜨니 옆에 떨어진 단검이 보였다. 내 얼굴에 단검을 막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아마 키르가 작은 물의 칼날을 날려 암살자가 던진 단검을 맞혀 반대편으로 튕겨낸 것 같았다. 암살자는 당황하지 않고 즉시 품 안에서 다른 단검을 꺼내어 나를 찌르려고 했다. 달려드는 암살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자의 눈은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암살자의 살기로 인해 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검이 정확하게 암살자의 어깨에 박혔다. 그는 뒤로 물러갔다. 그의 피가 정확하게 내 얼굴에 튀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손길이 느껴지고 내 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생겼다. 주인이었다. 그의 등은 분노에 휩싸여 있었고, 무척이나 든든해 보였다.

“슈이렌을 부탁한다.”

제르펠의 분위기는 지독하게 차가웠다. 서리가 내리 앉은 것처럼 목소리도 차가웠다. 암살자들도 제르펠의 기세를 느꼈는지 한 걸음 주춤 물러서고 긴장한 것이 티가 났다.

저벅.

제르펠은 암살자에 박힌 검을 뽑아 들더니 바로 목을 쳤다. 머리가 바닥을 굴러다녔다. 그 모습에 바짝 내 몸이 굳었다. 세드릭도 합세하자. 그들은 언제 밀렸다는 듯이 차례차례 암살자들을 정리해갔다.

“일어나시지요. 여긴 전하께 맡깁시다.”

이안이 내 귀 옆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날 생각도 없었다. 그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멍하니 생각했다. 제르펠이 검을 휘두르자 상대방은 상처를 입었고 그 순간 피가 튀었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상대가 쓰러졌다. 그는 먹잇감을 사냥하는 맹수처럼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베어 버렸다. 제르펠은 눈 하나 꼼짝하지 않고, 그 피를 고스란히 맞으며 인정사정없이 검을 휘둘렀다.

내가 알던 그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다정한 웃음을 짓던 그도 아니었고, 평소처럼 무표정한 그도 아니었다. 섬뜩하게 눈을 빛내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암살자들이 그의 기세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동료들이 쓰러져 가자 안 되겠다 싶은 몇 명의 암살자들이 도망을 시도했다. 제르펠은 그런 자들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세드릭이 뒤에서 배후를 캐야 합니다! 라고 외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지 모두 처리했다. 이윽고 그들 중에 숨을 쉬는 자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상황이 종료되자 카사는 암울하게 무릎을 꿇으며 제르펠에게 고했다. 제르펠의 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방 안은 피 냄새로 가득했다.

“아니다…… 나의 실수다.”

제르펠의 목소리는 깊게,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검을 쥔 손에는 힘이 꽉 들어가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렸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주저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한쪽 무릎을 꿇고 나에게 손을 뻗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구나…… 다친 데는…….”

잠시 나가 있던 불이 확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던 풍경은 생생하게 내 눈에 박혔다.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시체들과 피범벅이 된 제르펠. 그도 갑자기 들어온 불에 눈이 부셨는지 눈을 찡그렸다.

피로 범벅이 된 손이 나에게로 뻗어졌다.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였다. 제르펠의 눈에는 나의 행동이 똑똑하게 보였고 손은 갈 곳을 잃었다.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가 싸해졌다. 옆에 있던 이안도 목격했고, 세드릭, 카사 또한 목격했다. 제르펠의 손이 허공을 배회했다.

내가 방금 피한 거야?? 주인을?? 고개를 번쩍 들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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