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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숨소리조차 죽이고 발자국 소리의 주인이 오기를 기다렸다.
“요즘 왜 이리 뱀 새끼가 안 보여?”
“몰라, 의뢰자는 많이 잡아 오라고 닦달이지. 안 보이는 걸 어떡해? 오늘도 겨우 두 마리 잡았네.”
“이것도 굴 파서 잡은 거잖아.”
“뱀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아진 거 아니야?”
“설마.”
그들은 자기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농담 따먹기를 하며, 긴 막대기로 풀숲을 헤치며 돌아다니면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만면에 가득 차 있는 미소는 끔찍하게 보였다. 그 이유는 둘 중 한 명의 손에 자루가 있었는데 자루 밑 부분은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뱀들의 반응으로 무엇이 담겨 있는지 충분히 예상이 갔다.
[흐…… 흑…….]
[어떻게…….]
뱀들의 겁에 질린 목소리와 부들부들 떨리는 몸은 공포심을 잘 보여 주었다.
“슈이렌 님.”
카사는 어떻게 하냐는 듯이 내 이름을 물었다. 내 얼굴은 보지 않아도 딱딱하게 굳어져 있을 게 분명했다.
“……일단 잡아.”
카사는 눈 깜빡할 사이 내 눈앞에서 사라지고 그들을 덮쳤다. 짧은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고요해졌다. 카사가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밧줄로 그들을 꽁꽁 싸맨 채 질질 끌고 왔다. 머리에는 혹이 커다랗게 나 있었고 기절한 상태였다. 카사는 자루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건…….”
“뱀의 시체들입니다. 옷차림을 보았을 때는 사냥꾼인 것 같습니다.”
살짝 들려본 자루 안에는 이미 숨이 끊어진 뱀 두 마리가 이리저리 엉켜 있었다.
“심문해 볼까요? 아까 성기사의 태도로 보아 관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안 그래도 들어가기를 꺼릴 때부터 알아봤어. 신관이 결계를 해지하면 못 들어오는 곳 맞지?”
“네.”
“그럼 뻔하네. 신관이 결계를 풀어 줘서 들어왔겠지. 그런데 어떻게 심문하게? 기절한 상태 아니야?? 일어나겠어?”
카사는 아주 간단히 발로 명치를 때렸다. 컥 하는 신음과 그들은 거친 기침을 하면서 깨어났다. 두 남자는 두리번거리면서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이게 대체 뭐야? 안 풀어?”
“닥쳐라. 좋은 말로 할 때 말하지. 여기서 뭔 짓을 했는지는 안다. 대체 누가 시킨 거지. 여긴 불가침 영역. 침입하여 살해를 저지르다니 간덩이가 부었군.”
카사는 검으로 두 남자를 위협했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눈으로 카사를 쳐다봤다. 기절하고 일어났더니 제 눈앞에서 카사가 목숨을 위협하고 있으니 당황스러울 만했다. 하지만 동정심은 생겨나지 않았다. 카사의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과 검은 사냥꾼들을 채근했다. 말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카사는 검의 날을 더 들이댔고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냥꾼들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
“불, 불가침 영역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우, 우린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두 남자는 카사의 말에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어 댔다. 이상한 반응에 카사의 한쪽 눈이 치켜 올라갔다. 두 남자는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여긴 황궁 내의 숲이다. 그걸 몰랐다는 말인가?”
“황, 황궁이라고?”
두 남자는 나와 카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진정으로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내 얼굴은 영상구로 아주 단단히 퍼졌는지 사냥꾼들이 나를 알아보았다.
“사, 사자님?”
내 얼굴을 보자마자 머리를 숙였다. 그들은 횡설수설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기 시작했다.
“저, 저희는 몰랐습니다.”
“뱀을 잡아 달라는 말에 잡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여긴 숲이 아닙니까…… 황궁에 침입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내 얼굴을 알고 있다면 영상구를 가지고 있다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충분히 이곳이 어딘지 알았을 텐데?”
“네?? 아, 아닙니다. 영상구를 배포하긴 했지만 마법 도구는 비싼 물건입니다. 저희는 신문에 실린 사자님의 모습을 보았기에 알았습니다. 그리고 은발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는 사자님밖에 없지요.”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데…….”
여차하면 자신들을 죽일 것 같은 카사를 눈치챘는지 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그들은 절대 아니라며 흥분한 상태에서 말했다. 결백함을 믿어 달라는 듯이 아는 것을 뭐든지 말하겠다고 했다. 그 말에 카사가 그들에게 물었다.
“여기에는 어떻게 왔지?”
“그저 눈 감고 있으면 여기였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지만 주위는 숲이었고 할 일도 뱀을 잡는 것뿐이었습니다. 황궁이라고 생각했으면 절대 일을 받지 않았을 겁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 저희를 데리고 온 자가 있습니다. 그자에게 물어보신다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얼굴에 열이 오르면서까지 열심히 말했다. 당황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보아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것과 별개로 그들의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눈만 감고 있으면 여기라니…….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의뢰자는 누구…… 슈이렌 님!”
“어?”
카사는 갑자기 내 몸을 잡아당겨 나를 감싸고는 공중에 검을 휘둘렸다. 날카로운 것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절대 돌아보지 마십시오.”
“무슨 일인데?”
카사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위를 올려다본 카사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그 표정에 심각한 일이 발생한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보실 만한 것이 아닙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는 나에게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뒤에서 부스럭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카사가 보지 말라고 하는 거라면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카사가 돌아봐도 된다고 말했다. 묶여 있던 두 남자는 어디 가고 커다란 자루만이 있었다.
“카사…… 이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카사는 숨기려고 했지만 모를 리가 없었다. 자루 속에 있어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형태로 봐서 사람이 들어 있다는 것. 그리고 사냥꾼들이 사라졌다는 점.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럼…… 나 방금 죽을 뻔한 거야? 내 귓가에 울릴 만큼 큰 심장 박동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했다.
방금까지는 없었던 풀숲에 반짝이는 바늘 같은 것이 보였다. 그 바늘은 아까 카사가 튕겨낸 것이었다. 그들은 의뢰자가 데리러 온다고 했다. 그 의뢰자에게 죽임을 당했을 확률이 높았다. 대체 누가 꾸민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사람까지 죽이면서까지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카사가 나를 지켜 주지 않았다면 나도 똑같은 꼴을 당하게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불안한 감정이 들었다.
진정하자. 진정. 괜찮아. 아무 일 없었어. 카사는 그런 나를 보더니 기다리라며 자루를 들고 갔다. 아마 내가 보지 못하게 처리하러 간 게 아닐까……
[아이님. 그 사람들 죽은 건가요?]
“으악!”
옆을 보니 작은 뱀들이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나를 보고 있었다. 큰 소리로 깜짝 놀란 것이 부끄러워 헛기침했다.
“큼큼. 아직 안 갔어?”
[네. 아이님. 방금 저 사람들이 저희가 말한 자들이에요.]
[수신님께 벌을 받은 게 분명해!]
뱀들은 죽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가족들을 죽였으니 그렇게 따지면 맞는 말이긴 한데…… 머리를 박박 긁었다. 머리 아파. 그래 그런 곳인 거지. 주인 옆에 있으면 목숨을 위협받는 날이 분명히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좀 빨리 찾아온 것뿐이었다. 익숙해지자. 속으로 참담한 마음을 억눌렸다.
아…… 주인 보고 싶다.
“카사는 왜 안 와?”
“지금 도착했습니다.”
몸이 펄쩍 뛰었다. 인기척이라도 내라고!!
“슈이렌 님. 위험할 듯합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시죠.”
“그래…… 집에 가자.”
온몸의 힘이 쫙 빠졌다. 빨리 침대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뱀들을 죽이는 자와 그 사실을 절대 들키려 하지 않는 자가 있다. 그리고 성역에 자유로이 들어 올 수도 있었다. 신관을 통해 결계를 해지하지 않고, 내 머리로는 도저히 통하지 않는 무언가의 방법으로 들락거리고 있었다.
[벌써 가시나요? 키르 님을 만나고 가요.]
[그래요. 다른 분들도 아이님을 직접 보고 싶을 거예요.]
[부르지 않아도 왔다. 악한 기운이 사라져서 왔더니 누가 마음대로 나오라고 했지?]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리고 작은 뱀들을 화들짝 놀라면서 잘못했다고 빌었다. 풀숲 사이로 커다란 뱀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기어 왔다.
[네가 신의 아이인가? 만나서 반갑다. 키르라고 한다. 수신님을 대신해서 이 숲을 돌보고 있다고 생각하거라.]
자신을 키르라고 밝힌 뱀은 갈색 무늬가 얼룩한 것이 황구렁이로 보였다. 진짜 크네…… 목을 쭉 내미는 데 길이가 어찌나 길던지 내 키만큼 길어 보였다. 어쩌다 보니 집에 갈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키르는 뱀들을 혼내고 있었다. 작은 뱀들은 고개를 푹 숙이며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엄마에게 혼나는 아이 같았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
[네…….]
[아이님 다음에 또 봬요…….]
작은 뱀들은 나에게 인사를 하며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키르가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을 묻어 주어 고맙구나. 그 아이들은 편히 쉴 수 있겠어.]
키르는 하늘을 향해 목을 쭉 뻗었다. 하늘을 주시하는 그 행동은 죽은 뱀들을 애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말에 카사를 힐끔 바라보았다. 어느새 사라진 뱀 자루도 같이 들고 갔는지 카사가 땅에 묻어 둔 것 같았다. 말을 걸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조용히 하고 있었다.
[아이야. 너는 무슨 일로 여기에 왔지?]
애도가 끝났는지 키르가 말을 걸어왔다. 숲을 다스린다고 했으니 지금의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빨리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이왕 만나게 된 거 무시하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키르라고 했지. 넌 지금의 상황에 대해 잘 알아?”
[알고 말고, 우리 종족들이 잡혀가고 있지. 아이들의 원한이 느껴질 정도로…….]
그리고 나를 똑바로 주시하더니 말했다.
[수신님을 보러 온 건가?]
“그것도 있고, 수신이 나한테 한 말이 있어서 확인하러 왔지. 근데 이런 일이…… 설마 뱀들이 죽어서 수신의 힘이 약해진 거야?”
[그렇다. 수신님의 힘은 제약을 받고 있지. 우리들의 힘을 보태서 인간들에게 베풀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 놈들은……. 우리들을 죽였지.]
“어째서??”
[그걸 안 다면 고생은 안 하지. 애초에 이런 일이 처음이다. 배은망덕한 놈들…… 이유를 생각한다면…… 그래, 우린 평범한 뱀이 아니다. 수신의 가호를 받고 태어난 자들. 그렇기에 힘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지. 그 힘이 탐났겠지. 처음에는 한둘이 사라졌다. 내가 다스린다고 하지만 모든 아이를 볼 수도 없는 일. 끊임없이 아이들이 사라진다는 걸 알았지. 수신님의 힘은 줄어들고, 그래서 수신님께서 마지막 힘을 짜내 너를 데리고 온 것이다. 그로 인해 잠에 빠졌지. 지금도 주무시고 계신다. 언제 일어날지는 누구도 모른다.]
암울하게 말하던 키르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가 우리들의 희망이란 말이다. 그런데……. 쯧.]
나를 위아래 훑어보더니 혀를 날름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기분 나쁜 태도에 내 눈살이 찌푸려졌다. 내가 항의를 하기 전에 키르가 대답했다.
[기껏 주신 수신님의 힘을 공중으로 분산시키고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