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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32화 (3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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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장소를 몰랐던 난 카사가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하지만 카사가 데려간 곳은 수신의 호수가 아닌 마구간이었다. 아…… 맞다. 가는데 좀 거리가 있지. 저번에도 가마를 타고 갔으니.

“말을 탈 줄 아십니까?”

“아니.”

제주도에 놀러 갔을 때 잠깐 올라탄 게 전부지. 그건 탈 수 있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었다. 카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아니면 마차를 타시겠습니까? 저번에 멀미가 심한 듯하여.”

이 자식…… 감동이네.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네? 카사에게 직접 한 이야기도 아니었기에 감동도 컸다. 저번에 교황과 이야기를 했을 때 멀미가 약하다고 언급을 했었다. 솔직히 마차는…… 어, 멀미 때문에 싫은데. 그렇다고 말을 타기에는……. 엉덩이 겁나 아픈데…… 일단 지금은 마차는 아니니 말로 간다.

“말 타자.”

“괜찮겠습니까?”

“뭐, 엉덩이가 아파도 참아야지.”

제주도에서처럼 옆에 고삐를 잡아 끌어준다면 문제가 없었다. 먼 거리를 걸어가는 거보다 말에서 가만히 올라타 있는 게 훨씬 나았다. 저번 기우제 때도 약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지 달려가지는 않았다. 난 카사가 옆에서 고삐를 잡아 줄 것으로 생각했다.

살짝 고민하는 듯했지만 카사는 걸음을 옮겼다. 난 길을 모르기에 그를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각종 말이 모여 있는 마구간이었다.

“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멀리서 마구간지기가 열심히 달려왔다. 그는 나를 보고 놀란 듯 말까지 더듬거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고 있었다. 카사가 마구간지기를 보며 이야기했다.

“말을 한 마리 데려가려고 한다.”

“네, 네. 이쪽으로 오시지요.”

안에는 수많은 말들이 모여 있었다. 딱 봐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 혈통이 좋은 말들만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마구간지기는 성격이 순한 말들을 몇 마리 소개해 줬다. 다양한 종류의 말이 있었다. 그중 새하얀 말이 있었는데 그 애의 눈동자가 말똥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젤 순해 보여.

“그럼 이 말로.”

“탁월한 선택입니다. 튼튼하고 말도 잘 듣는 순한 녀석입니다.”

“이름은 뭐야?”

“실베스트입니다.”

이름도 고급지네. 말과 눈을 마주치며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실베스트도 내가 싫지는 않았는지 얼굴을 비벼왔다. 마구간지기가 안장을 채우더니 고삐를 카사에게 넘겨주었다.

“슈이렌 님 이리로.”

카사는 나를 번쩍 들더니 말 위에 안착시켜 주었다. 그러더니 자신도 내 뒤에 올라탔다. 깜짝 놀라 뒤를 보며 물었다.

“자, 잠깐. 같이 타??”

“네.”

생각해 보면 당연한가…… 결국, 카사가 말을 몰아서 갔다.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호수로 향했다. 움직일 때마다 엉덩이랑 허리가 아팠다. 말도 만만치 않았다. 억, 윽, 하는 신음을 내었다. 카사가 잠시 고민한 이유가 있었다. 한쪽은 멀미 한쪽은 허리. 빨리 도착했으면 하고 몇 번을 되뇌었을까. 주변에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주위에 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기사들의 복장이 항상 집무실을 지키는 세드릭이나 다른 기사들과는 복장이 사뭇 달랐다.

“기사들 복장이 다른데?”

“저들은 성기사단입니다. 여긴 성기사들이 지키는 곳이죠.”

성기사가 성역을 지키고 결계도 신관들이 해지할 수 있으니 교황이 수작을 부리기 식은 죽 먹기네. 수신이 말한 사악한 자가 교황이라는 의심이 더욱 심해졌다. 어떤 방법으로 수신의 힘을 빼앗는지는 전혀 모른다. 기우제 때에는 비를 내리는 거에 급급했기에 자세한 사정을 듣지 못했다. 실마리가 잡히기만 해 봐라. 눈을 번뜩 빛냈다.

“기사들의 종류도 다양한가 봐?”

“당연합니다. 황궁 내에서도 3기사단까지 나누어져 있습니다.”

“3개나?”

황실 기사단은 그저 하나의 단체인 줄 알았던 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카사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저희는 3기사단입니다. 전하의 직속 친위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세드릭도 제3기사단의 단장이야?”

“네. 기사단도 정치적 성향이 강합니다. 제1기사단은 폐하, 제2기사단은 저하, 제3기사단은 전하 쪽이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근데 왜 세 번째야? 보통 2번째 아니야?”

황제, 황태자, 황자 순 아니야? 괜히 맨 뒤에 있으니까 못마땅했다. 이런 곳에서 차별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카사가 기사단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을 때 성역으로 다가오는 우리를 성기사가 눈치를 챘다. 그들은 살짝 놀란 듯 재빨리 앞으로 달려왔다. 아마 멀리서 내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만나 뵙게 뵈어서 영광입니다. 여기에는 무슨 일로…….”

성기사는 각 잡힌 인사를 하더니 나에게 방문의 목적을 물었다. 잠시 답변을 생각하고 말했다.

“수신님을 보러 왔어.”

아무래도 이런 답변이 좋겠지? 틀린 말은 아니니까. 카사는 먼저 말에서 훌쩍 내리더니 나 또한 조심히 내려 주었다. 이제 들어가려고 하는 찰나 왠지 성기사는 곤란한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의아한 태도에 성기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지금 잠시 신관이 자리를 비워 결계를 해지할 수가 없습니다. 잠시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

이유는 있긴 했네. 난 그 숲을 바라보았다. 왠지 느낌이 나를 거부할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부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기다리려고 했지만, 통과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음…… 왠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한번 가 볼게.”

“아. 안됩니다! 혹시 사자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말은 막상 나를 걱정하는 말투였지만 그들은 곤란하다는 듯이 슬쩍 숲 쪽을 바라보았고 카사도 그 낌새를 눈치챘다. 카사는 내 앞길을 막는 기사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사자님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불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건가? 비켜라.”

움찔하는 성기사를 제치고 결계 앞에 섰다. 푸른 막이 일렁이며 숲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게 보였다. 조심히 손을 뻗으니 거부하기는커녕 나를 받아들이듯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들어갈 수 있겠는데. 카사 가자.”

“그…….”

성기사가 당황한 표정이었다.

‘요놈 봐라?’

그런 표정을 보니 더욱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기사의 말을 무시한 채 결계 안으로 들어왔다. 카사가 내 일행이라는 것이 숲이 알고 있는 듯이 카사도 스스럼없이 안쪽으로 들어왔다.

상쾌한 바람과 드넓은 숲이 우리를 맞이했다. 어김없이 나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깨끗한 공기에 크게 심호흡을 했다. 대체 무얼 숨기고 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샅샅이 파헤쳐 주겠다는 생각으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님이다. 그런데 인간이랑 같이 있어]

[인간은 무서운데…….]

[아이님이랑 같이 있는데 분명 착한 인간일 거야!]

[하지만…….]

들리는 목소리에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고, 예전에 숲에 왔을 때 들었던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들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슈이렌 님?”

“넌 목소리 안 들려?”

카사는 내가 가만히 멈춰 있자 내 이름을 불렀다. 카사에게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난 입에 손가락을 대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난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서 말했다.

“애들아.”

[아이님이 누굴 부른다!]

[누구를 찾는 거지?]

“너희 말이야. 너희.”

잠깐의 정적이 지나자 목소리들은 이리저리 난리를 쳤다

[우리한테 말한 건가 봐.]

[말을 걸어 주었어!]

신난 목소리로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조용했던 목소리가 커져서는 호들갑을 떨며 말하고 있었다. 카사를 보아선 정말 그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카사는 공중에 혼잣말하는 나를 한쪽 눈을 치켜세우면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잠시 나와 봐. 이야기 좀 하자.”

[어떡하지?]

[하지만 키르 님이 절대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아이님이…… 우리를 부르시는데…….]

키르? 그들은 누군가를 들먹이며 나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저희끼리 열심히 말을 주고받으며 토론했다. 잠시 후 풀숲을 헤치는 소리와 ‘쉬익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뱀들이 나타났다. 카사는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에 자연스럽게 검에 손이 갔다.

작은 뱀들은 한껏 움츠러든 자세로 더는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설마 싶었던 난 뒤에 있던 카사에게 눈치를 주었다. 시선을 눈치챈 카사는 더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작은 뱀들은 슬금슬금 나에게 기어 왔다. 난 그들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모습이 안 보이고 말만 들릴 때 설마설마했지만…… 뱀이랑 말도 통하네. 뭐, 당연한 건가. 예전 나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뱀 중 둘은 노란색의 얼룩덜룩한 무늬를 가지고 있었고 하나는 새까맸다. 어린 개체인지 몸집이 크지도 않았다.

카사를 보고 한껏 움츠리고 있던 몸이 그가 뒤로 물러서자 경계를 푸는가 했다. 하지만 주위에 대한 경계는 풀지 못했는지 목을 쭉 내밀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을 보고 확신했다.

“얘들아. 혹시 수상한 사람이 왔다 가니?”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져 있는 상태에서 내가 갑자기 말을 거니 뱀들은 놀란 듯 서로 의지하며 몸을 기대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행동에 괜스레 미안해졌다.

“미안, 놀랐어?”

[아, 아뇨…… 괜찮아요. 아이님은 괜찮으신가요?]

무척이나 걱정되는 말투로 말했다. 아이들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근데…… 어린애한테 아이님이라고 불리다니. 아이러니하구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난 괜찮아. 무슨 일이 있었어?”

내 말이 그들을 자극했는지 울먹이며 나에게 매달렸다.

[아이님, 인간은 정말 무서운 존재예요. 수신님에게 듣고 오신 거죠?]

[제 형제도 잡혀갔어요!]

[무서워요…….]

“한 마리씩 말해 줄래? 내 귀는 하나란다.”

서로 한 번에 말하니 제대로 들리는 게 없었다. 얘들을 달래면서 진정시켰다. 말을 조합해 보면 수상한 사람이 수시로 드나들며 뱀들을 잡아간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어린 개체로 성인 개체들은 대부분 잡혀갔다고 한다.

“대체 언제부터?”

[키르 님이 1년 전쯤부터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희같이 작은 애들은 아예 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요…… 저희가 나온 거 알면 혼날 거예요.]

1년 전부터? 상당히 오래전부터였다. 계속 키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대체 누구지?

그 이름에 대해 물으려고 한순간이었다. 또 풀숲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난 다른 뱀이 나타나는 줄로 생각했다. 하지만 물러서 있던 카사가 앞으로 와 내 앞을 지키고 서 있자 그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카사의 나른했던 눈이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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