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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울렁이던 호수에서 용 모양의 물기둥이 솟구쳤고, 동시에 슈이렌은 계시를 받은 듯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는 충분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제르펠은 슈이렌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고, 슈이렌은 호수 가운데로 향했다. 물기둥은 그를 반기듯이 주위를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마치 슈이렌이 그 물기둥을 다루는 듯이 보였다.
사람들은 그 신비한 모습에 숨조차 죽이며 지켜보았다. 한참을 돌던 물기둥으로 된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더니 먹구름이 다가왔다. 밝게 비추던 햇빛을 먹구름이 가렸고 어둠으로 휩싸였다.
폭우가 내렸다.
사람들은 자신의 시야조차 가리는 비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제르펠은 슈이렌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슈이렌의 주위에 푸른빛이 물결처럼 울렁이더니 그 빛들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고 동시에 슈이렌의 모습이 변했기 때문이다.
뱀이었던 슈이렌은 어디 가고 웅크린 자세로 둥둥 떠 있는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의 주위만 다른 공간이라는 듯이 비에 젖지도 않았다. 긴 은발 머리가 바람에 흔들리고, 소년의 작게 뜬 붉은 눈이 제르펠의 황금색 눈동자에 비추었다. 그 모습이 제르펠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는 자신의 시야를 가리는 비는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그의 모습을 새기듯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름답다.’
그는 딱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자가 슈이렌이라는 것쯤은 그리고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멀리 있음에도 서로를 마주 보았다. 제르펠과 눈이 마주친 붉은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제르펠은 전에 이안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이 났다. ‘홀리셨습니까?’ 그 말은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이리도 눈을 떼기가 어렵다니. 언제나 슈이렌은 자신이 모르는 감정을 일깨워 줬다.
“전하?”
옆에 있던 이안이 그를 불렀다. 제르펠은 이안을 힐끔 바라보았고, 시선을 뗀 찰나 풍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호수 쪽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있던 슈이렌이 보이지 않았다. 제르펠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는 당장 호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망토와 거치적거리는 장식품을 마구잡이로 떼어서 이안에게 던졌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그는 호수 속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외치는 소리를 무시하고 호수로 뛰어든 그는 밑으로 가라앉고 있는 슈이렌을 발견했다. 슈이렌은 하염없이 호수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편안한 모습으로. 수신이 슈이렌을 데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 마음대로. 그 모습에 제르펠은 절대 놓칠 수 없다며 손을 뻗었다. 슈이렌의 손을 낚아채 자신의 품에 안고 호수 밖으로 나갔다.
위에서는 전하가 물에 빠졌다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안은 호수 밖으로 나온 제르펠을 확인하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가 안고 있는 인물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이안의 눈에 나신인 채 제르펠에게 안겨 있는 슈이렌이 보였다. 제일 먼저 기다란 은발이 눈에 들어왔다.
“전하. 그자는…….”
“눈 돌려라.”
제르펠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말투에 이안이 움찔한 사이 망토를 낚아채 슈이렌의 몸을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게 꽁꽁 둘러쌌다.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겠다는 듯이. 제르펠의 기세에 눈을 돌렸다. 제르펠은 손등으로 가볍게 슈이렌의 볼을 두드렸다. 그는 의식을 완전히 잃은 것으로 보였다. 그때 뒤에서 카사가 다가왔다.
“혹시…… 그분은…….”
“보았느냐?”
카사 또한 변하는 슈이렌을 목격한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슈이렌에게서 눈을 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납게 빛나는 눈빛은 그렇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을 물어뜯을 것만 같았다.
“아니요. 호수에 빠진 자라면 슈이렌 님의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되어.”
“그렇군.”
이안은 제르펠이 품에 안은 자를 곁눈질 하였다. 카사는 주위에 분위기의 쉽게 동조하는 이가 아니었고 끝까지 임무를 다하는 자였다. 아까 보았던 은발 머리…… 슈이렌 님도 은빛 비늘을 가지고 있었다. 눈동자를 본다면 확신할 수 있었지만, 제르펠의 태도를 봐도 짐작이 다능했다. 소중하다는 듯이 끌어안은 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제르펠은 가볍게 그의 볼을 툭툭 쳤음에도 슈이렌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르펠은 얼른 슈이렌의 입술에 귓가를 갖다 대었다. 낮은 숨소리가 전해졌다. 제르펠은 슈이렌을 안고 벌떡 일어났다. 허둥지둥하는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기우제는 끝이다! 돌아간다!”
제르펠은 다른 사람 따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말에 올라타 누구보다 빠르게 비를 헤치며 자신의 궁으로 달렸다.
* * *
이안은 제르펠에게 중요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그의 방으로 가는 길이었다. 기우제가 끝난 후로 황태자 전하께서 신의 사자에게 선택받았다고 소문이 자자해졌다. 기우제의 과정이 백성들에게 영상구로 생생히 전해졌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었다.
자신이 소문을 내기는 했다만 정말로 슈이렌 님이 신의 사자일 줄 과연 누가 알았을까…….
이안은 아무도 모르게 시종을 시켜 슈이렌이 신의 사자라는 말을 퍼트렸다. 하지만 소문은 잔잔하게 이어졌다. 그러던 중 주방장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기회라고 생각했던 이안은 시종을 시켰다. 시종은 슈이렌에게 가서 사정을 털어놓고 다른 자들에게 가서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그 뒤로는 이안이 꼼수를 쓰지 않아도 소문은 멀리 퍼져갔다.
비는 3일 동안 계속 내렸다. 이 제국에 있는 영토란 영토에 전부.
제르펠의 방문에 앞에 섰고, 그 앞에는 세드릭과 카사가 서 있었다. 방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안은 최대한 문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들어갔다. 제르펠의 침대에 은발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채로 슈이렌이 누워 있었다. 그 옆에는 의자에 앉은 채 서류를 검토하고 있는 제르펠이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이안은 제르펠이 서류를 보는 건지 슈이렌 님을 보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도 서류는 침대에 놓아두고 슈이렌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업무를 제대로 보지 않는 전하 덕분에 이안의 한숨이 끝이질 않았다. 전에는 휴식하기를 원했지만, 지금은 반대였다.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지?”
“다들 슈이렌 님을 보고 싶어 합니다. 전하께 알현을 요청하는 귀족들도 많이 늘어났고요. 저쪽은 이제 애가 타고 있겠죠.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라 장담했으니까요. 볼 만하겠는데요.”
“그렇군.”
기우제가 성공하자 찍소리 못하게 된 황제파 귀족들은 볼만했다. 오히려 이 계기로 제르펠에 대한 백성들의 민심을 얻고 귀족들 사이에서의 입지가 더욱 올라갔으니 배가 아플 것이다. 이안은 즐거운지 실실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제르펠은 돌아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슈이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안은 제르펠의 태도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일주일 동안 제르펠의 일과는 슈이렌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뱀일 때부터 소유욕이 남달랐으니 사람이 되었다 했을 때 예상은 했었다. 결국, 생각했던 상황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니, 더 심해졌다.
저 눈빛은 이미 자신의 감정을 눈치챈 자의 눈이었다. 그나마 대상이 사람이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쓴웃음이 나왔다.
이안은 자신이 들었던 제안을 그에게 말해도 좋은가 고민을 하게 되었다. 평소의 전하라면 승낙했을 말이지만…… 이 말을 듣고 심기가 불편해질 모습이 저절로 상상되었다. 그래도 전언은 전언. 전하는 게 옳았다.
“전하. 베르트 공작께서 약혼을 제시했습니다. 이로써 귀족들과의 연이 생기는데…….”
처져 있던 눈매가 순식간에 사나워졌다. 그는 마뜩잖은 얼굴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약혼?”
찌푸려진 눈살이 그의 심기를 짐작하게 했다. 확실히 베르트 공작이 스쳐 지나가듯이 말한 적이 있었다. 그게 진심이었을 줄은…… 베르트 공작의 생각은 짐작이 간다. 자신이 내건 제안을 생각한다면 정치적 동맹이 목적이겠지. 황후의 자리를 노린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에게는 좋은 제안이었다.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면 분명 고민하지 않고 승낙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정치적 동맹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옆에 그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서 있는 건 말도 안 됐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슈이렌 님은 신의 사자이십니다. 언젠가는…….”
“알고 있다.”
제르펠은 이안의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가차 없이 잘라 버렸다. 이안은 그런 제르펠의 눈치를 보았다. 얼굴은 심각했고, 눈동자는 열기로 가득했다. 이거 글렸네. 이안이 그런 생각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는 그저 빨리 슈이렌 님이 일어나기를 기도했다.
* * *
여전히 일어나지 않는 이를 기다리며 옆에서 제르펠은 서류를 보고 있었다. 그런 그를 이안이 보좌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조용했던 방 안에 갑자기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씨발. 아프다면 아프다고 이야기해야 할 거 아니야…… 졸라 아프네. 이거 사기당한 거 아냐…… 비가 안 오기만 해 봐라…….”
결코,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의 주인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조용했던 침실에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침대 위에 누워 있던 슈이렌이었다. 슈이렌은 정신을 차린 듯 천창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만상을 찡그리며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 모습에 이안은 놀랐다. 거기에 톡톡 쏘아붙이는 험악한 말투에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말투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희열에 차 있는 제르펠의 얼굴이 보였다. 7일 동안 잠도 안 자고 기다렸으니 얼마나 기쁠까 싶어 이안은 헛웃음이 나왔다.
제르펠은 작게 그 이름의 주인을 불렀다.
“슈이렌?”
“누구야? 응? 주인아! 비는 왔어?? 내가 수신한테…….”
슈이렌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찡그려졌던 표정은 부른 이를 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미소가 피었다. 신경질 난 목소리도 애교를 떠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슈이렌은 그에게 조잘조잘 말하고 있었다.
이안의 입에서 어이없다는 듯이 작은 탄식이 새어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제르펠이 부르자 아주 노골적으로 표정과 억양, 목소리까지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나워 보였던 표정은 어디로 가고 순수한 표정만이 거기에 있었다.
제르펠도 물론 똑똑히 보았다. 오히려 그에겐 그 극명한 변화 차이가 더 사랑스러워 보였다. 자신은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대한다는 뜻 아닌가. 그의 새빨간 루비와 같이 아름다운 눈동자는 제르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행동은 뱀일 때의 그와 다름이 없었다. 평소에도 자신에게 저리 말을 걸었던 것일까 생각이 들자, 제르펠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의 반응이 이상해 슈이렌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제르펠에게 다가오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아직 자신이 사람이 된 걸 몰랐지만 슈이렌은 침대를 손으로 짚고 몸을 일으켰다. 당연했다. 한동안 뱀으로 있었다고 하지만 사람으로서 28년을 있었다.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슈이렌은 이상하단 걸 눈치챘는지 자신의 손을 앞으로 내밀어서 이리저리 보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슈이렌?”
슈이렌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일어났고, 급작스러운 상황에 발이 엉켰다. 균형을 잡기도 전에 그의 몸이 기울어지며 옆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어, 어 거리는 모습에 제르펠은 의자가 넘어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빠르게 일어났다. 슈이렌의 팔을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슈이렌은 딱 그의 품에 알맞게 들어왔다. 의자가 요란하게 넘어지는 소리와 슈이렌의 심장 박동 소리가 제르펠에게 전해졌다.
심히 놀란 듯 쉴 새 없이 슈이렌의 심장이 뛰었다.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슈이렌의 머리를 제르펠이 쓰다듬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제르펠의 손에서 스르륵 흘러내렸다. 그 부드러운 머릿결처럼 제르펠의 표정도 부드러워졌다.
“괜찮니?”
“사, 사람이야?”
“많이 혼란스럽겠지만 진정하렴.”
슈이렌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는 한참 동안 슈이렌을 진정시키기 위해 속삭이듯 ‘괜찮아. 착하지.’라는 말을 반복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갑자기 뱀에서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넌 걱정할 필요 전혀 없이 평소처럼 있으면 된다.”
그는 불안을 집어삼킨 슈이렌의 눈동자를 보았다. 다정하게 속삭인 목소리와 달리 그를 안고 있는 팔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이.
제르펠의 마음속에서는 슈이렌은 자신의 것이었다.
오랫동안 그는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전쟁에서는 오늘의 동료가 배신하거나 전쟁으로 죽는 자들이 많았다. 제르펠은 자연스럽게 누구와도 거리감을 두었다.
그전에 그는 한순간에 돌변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괴리감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제르펠은 태어날 때부터 후계자로서 태어난 아이였다. 황제는 당연히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황비도 거리를 두었다. 황태자로서 가진 것은 많지만 애정은 받지 못하며 자랐다. 그리고 에이든이 태어남으로 자신의 근본이 흔들렸다. 더는 누구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슈이렌을 보았고, 흥미를 느꼈고, 데리고 왔다. 처음에는 그저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도구였지만 점차 달라졌다. 맹목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슈이렌이 에이든의 유모에게 자신을 위해 몸을 던졌을 때. 가슴 깊이 끓어오르는 충족감을 느꼈다. 작디작은 몸으로 자신을 위해 제 몸을 던진 것이었다.
내가 전부라는 슈이렌의 눈동자…… 그의 눈길이 다른 자를 향한다고 하면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슈이렌을 다른 자에게 빼앗길 수 없지. 겨우 찾은 나만의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더불어 슈이렌을 노리는 세력들이 많았다. 허울 좋은 말로 그를 꾀어낼 수 있었다. 아무 데도 가지 못하도록 수를 써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제르펠의 품 안에 안겨 있었던 슈이렌은 집착으로 범벅된 그의 눈을 보지 못했다.
‘내 곁에 있으면 돼.’
슈이렌은 그의 옷깃을 꼭 잡고는 손길과 목소리를 들으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의 품은 아늑했고 기분 좋은 향기가 떠돌고 있었다.
* * *
교황은 서둘러 황후의 궁으로 향했다. 우아한 외관과 달리 궁 안에는 여자의 히스테릭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마! 진정하시지요! 이러다 쓰러지십니다!!”
“마마!”
“아아악!!”
옆에 있던 시녀들은 황후를 막으려고 했는지 얼굴에는 그녀가 휘두른 손에 의해 생긴 생채기를 하나씩 달고 있었다. 방 안에 있는 물건이란 물건은 모두 부서지거나 깨져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녀의 상태도 말도 아니었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손톱을 어찌나 물어뜯었는지 손톱 밑에 숨겨져 있었던 속살이 다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들어온 이를 보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
“마마…….”
교황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의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필 전하께서 데리고 다니는 동물이 신의 사자인 것을 누구도 알지 못했다. 궁에서 신의 사자라는 소문은 자자했지만 쓸데없는 발버둥이라고 무시했다. 특히 일에 관련된 자들은.
“신이라는 자는 나에게 축복을 주지는 못할망정 저주를 퍼붓는구나! 황태자에게 날개를 달아 준 꼴이니 얼마나 우스울까.”
“진정하시지요. 저희의 편으로 돌리면 됩니다.”
황후는 교황의 말에 흉흉한 눈으로 쏘아보았다. 확신했던 일도 보기 좋게 무산된 마당에 교황의 말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녀는 비꼬는 말투로 교황에게 물었다.
“네가 어떻게?”
“신의 사자는 신전에 있어야 할 존재 아닙니까. 조사해 본 바로는 어린 새끼일 때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으로 변했지만, 내면은 어린애와 다름이 없겠죠. 제가 한번 만나 포섭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황은 황후에게 계획을 말했다. 사납게 노려보던 황후는 교황의 계획을 듣더니 혀를 차고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시녀들은 일사불란하게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와 손톱 손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신의 사자가 에이든의 편이 된다면 좋은 일이지.”
황후는 음산하게 말했다. 꿍꿍이가 있는 말투였다. 황후는 손짓으로 시녀를 부르더니 조용히 귓속말로 무언가를 말했다. 그 시녀는 공손히 허리를 숙이더니 황후의 명을 이행하러 갔다. 교황은 신의 사자를 자연스럽게 황실과 엮는 황후의 태도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굳이 표정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래서 약은 어디 있지?”
교황은 황후의 말에 자루를 건넸다. 들고 온 자루 안에는 뱀의 사체들이 서로 엉켜 있었다. 그녀는 그런 뱀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면서 좋은 약이 되겠다며 즐거워했다. 그녀는 그 자루를 시녀에게 주었다. 상쾌한 웃음을 지은 그녀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며 손뼉을 치며 교황에게 말했다. 황후에게는 신의 사자도 에이든이 황제가 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신의 사자라면 효능도 보통 뱀보다 좋은 것이 아닌가? 만약에 우리 쪽으로 섭외하지 못한다면 죽여서 약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군.”
“마마. 그것은…….”
“왜 그러지?”
교황은 생각지 못한 생각에 동공이 잘게 떨렸다. 그는 신의 사자를 최대한 이용하여 신전과 자신의 지위를 상승시킬 계획이었다. 지금만 해도 신의 사자의 출현으로 인해 신전으로 오는 기부금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교황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황후 또한 그 사실을 무엇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교황을 훑어보았다. 이미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왔다. 교황의 계획에 신의 사자의 출현은 예상외였다. 잘 설득 시키면 되지 않는가. 섭외한다면 기부금도 챙길 수 있었다. 교황은 자신만만했다. 만에 하나 실패할 시 기부금은 아쉽지만, 훗날을 생각한다면 포기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계산이 끝난 교황은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마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녀의 눈을 웃고 있었지만 얼음같이 차가운 눈으로 교황의 얼굴색을 파악하고 있었다. 교황과 황후는 자신의 표정을 숨기며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