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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17화 (17/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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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원래라면 이안이 호통을 치며 사람들을 세웠을 테지만 그조차 빠른 걸음으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곳은 제르펠의 방으로 시종, 시녀들이 장신구들을 나르고 있었다. 제르펠과 나는 한창 꽃단장 중이었다. 신의 사자라 단단히 소문이 난 나는 기다란 몸에 금 체인을 걸쳤고 새파란 보석을 달고 있었다. 이건 레이스 천이야. 뭐야? 면포 비스름한 걸 몸에 걸친 채였다. 그리고 이마에 수신의 눈물이라는 가보가 있었다. 목욕 때는 향유를 듬뿍 바르더니 몸에서 윤기가 자르르 흘렸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정말 신의 사자처럼 고귀해 보였다.

옷이 날개야…….

“슈이렌.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구나.”

주인, 너도.

제르펠 또한 평소와는 다른 옷차림이었다. 이안은 아침에 미리 준비해 둔 복장을 제르펠에게 주었다. 제르펠이 받자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이안은 부릅뜬 눈으로 입으라고 종용했다. 한숨을 쉰 제르펠은 순순히 옷을 입었다. 날이 날이지 않은가. 이안이 손뼉을 치자 밖에서 대기했던 시녀들이 제르펠의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그는 한쪽으로 넘긴 머리에 화려한 어깨 장식을 달았고 준비한 망토에는 용이 승천하는 금색으로 놓인 수가 있었다. 시종이 들고 온 의식에 사용할 작은 단검조차 검집에 여러 보석이 박혀 있었다. 타이 가운데에는 내가 선물로 주었던 흑요석 브로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그 브로치는 다른 장식품에 비해 평범한 느낌이 들어 시종들이 떼어내려고 했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사나워지며 시종의 손을 탁 치며 건들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슈이렌이 자신에게 준 첫 선물이라며 귀중한 날에 착용한 것이다. 결국, 저 브로치는 당당하게 제르펠 타이 위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의 마음이 기뻐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자식. 이게 다 나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지. 주인은 옷이 더 외모를 빛나게 하는구나.

잘난 아들 보는 엄마처럼 위아래로 훑어보고 그의 완벽한 미모에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가 다 된 우리는 길을 나섰다. 밖에는 더욱더 장관이었다. 화려한 마차와 말, 수신님께 바칠 동물들과 기사단, 시중 인들이 서 있었다. 난 당연히 제르펠과 같이 가려고 했지만, 나의 자리는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아주 고급스러운 가마였다.

오히려 타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시종이 제르펠의 지시에 따랐고 가마 안에 쿠션이 깔았다. 그 쿠션에 덮인 커버마저 용의 수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나를 조심히 올려 주면서 말했다.

“얌전히 있어야 한다.”

그는 손을 뻗어 장식품을 피해 볼을 살살 쓸어주었다. 걱정도 팔자다.

“그나저나 햇빛이 더럽게 밝군.”

그의 표정을 보기 위해 얼굴을 올렸지만, 햇빛에 의해 보이지 않았다. 곧 그가 몸을 돌리자 망토가 펄럭였다. 뒤에 새긴 용의 수는 금방이라도 승천할 기세로 햇빛에 의해 반짝였다. 그는 카사에게 지시를 해 내 옆에 서게 했다.

멀리서 교황이 탄 새하얀 마차들이 도착하고 행렬이 출발하기 시작했다. 맨 앞에는 제르펠이 위엄 있게 말을 타고 있었고 그 옆에 세드릭과 이안이 그 뒤에 나와 카사가 있었다.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은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성역으로 말 그대로 수신의 호수였다. 그 호수는 황실 뒤편에 존재하고 있었다. 황실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수신의 호수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었다. 그곳은 수신이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 호수로 평소라면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불가침 영역이었다. 사태가 사태인 만큼 그곳에서 기우제를 치르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가마라도 가마는 가마였다. 위아래로 요동치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다. 멀미에 약한 체질인 내가 싫다……. 바람이라도 쐬면 나아질까 봐 머리를 쭉 내밀고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오는 이질적인 물체가 있었다. 가마 주위에 하얀 구처럼 보이는 게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마 주위뿐만 아니라 전 행렬에 구가 둥둥 떠다니며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이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중력의 법칙을 무시했는데?? 어떤 물건인지 궁금했지만 알려 줄 사람도 없었다. 신기함도 잠시 울렁이는 속이 말이 아니었다. 옛날 사람들은 가마를 어떻게 탔데……. 나 같은 뱀은 죽어 나가라는 건가.

드디어 도착했는지 행렬이 멈추었다. 이제 끝인가? 기대했던 나는 이제 입구라는 소식을 듣고 좌절했다. 신관이 앞으로 나서더니 주문을 외우자 푸른 막이 어렴풋이 보이고, 위에서부터 안개가 걷히듯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들어가자 방금 걸어왔던 길과는 전혀 다른 생태계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울창한 숲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이 왜 성역이고, 수신이 산다는 말이 전해지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한 걸음 차이에 경계가 나누어진 듯 주위에서 떠도는 공기조차 달랐다. 마치 그 숲은 우리의 목적을 안다는 듯이 일직선으로 길이 나 있었다.

난 이상하게도 들어온 순간부터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본래의 집에 온 건 같은 편안함이었다. 신기함에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속삭임에 가까웠다.

[아이다. 아이가 왔다!]

[어찌 저리 아름다우실까…….]

작게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차가 굴러가는 소리 때문에 묻힐 만도 한데 나에게 희미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는 또렷했고, 이질적이었다. 아이는 무슨 아이야? 멀미가 너무 심해서 환청이 들리나 하고 무시를 했고, 어느 순간부터 들리지 않았다.

역시 환청이었네.

곧 행렬은 큰 호수에 도착했다.

“시작하도록 하지.”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제사를 지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또 이상한 목소리가 내 귀가 아닌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드디어 왔구나. 내 아이야. 일어나 보거라.]

이거…… 환청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3번이나 무시했지만 계속 들려오는 목소리에 결국 답을 하고 말았다.

아이는 무슨 아이! 저리 꺼져!

계속 아이를 타령하니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멀미나 죽겠는데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리니 죽을 맛이었다. 들리던 목소리는 내가 답을 하자 기쁘면서도 슬픈 듯한 오묘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답해 줬구나! 너의 힘이 필요하단다. 아이야…….]

생뚱맞은 소리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귀를 막았던 꼬리를 풀고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들었다.

[너의 기도는 잘 들었지. 소원이 이루어졌지 않았니? 나의 힘이 부족해 말까지는 잘 전달해지지 않았나 보구나. 어쩐지 찾아오지 않더구나.]

설마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우연이 아닌 정말로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기도를…… 아, 딱 한 번 기도를 했었다. 주방장의 이야기를 듣고 기도했었다. 이상하게 잠이 쏟아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내가 진짜 신의 사자라고???

[이제 눈치챘구나. 그렇단다. 이제 나의 힘을 받아 비를 내려 이 제국을 구해 주렴. 고통받으며 기도를 올리는 아이들을 보기가 안쓰럽구나. 내가 하면 좋겠지만…….]

……. 그래…… 너였구나. 나의 원수가! 나를 이런 뱀의 몸으로 환생시키다니!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그리고 그 말투 뭐야?? 누가 힘 필요하데? 필요 없어!

뱀으로 환생하고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어 다녔던 날…… 뱀으로서 아양을 떨어 가며 목숨을 부지했던 나날들…… 그 나날들이 떠오르면서 목소리에 화를 냈다.

[그……그게 무슨…….]

목소리의 주인이 당황한 것이 나에게 느껴졌다.

딱 봐도 힘을 줄 테니 세상을 구원해라 이런 거 같은데. 개나 줘 버리라지. 난 지금 생활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거든?

나는 아예 듣지 않으려고 가마 안으로 들어가 머리를 몸에 파묻었다. 목소리는 당황해하며 나를 설득하기 위해 열심히 애를 썼다.

아니, 애초에 내가 왜 그래야 해? 유감스럽게도 내가 그럴 이유는 없네요.

[그, 그러지 말고 내 이야기를 들어 보렴. 스스로 언급하기는 그렇지만…… 난 이곳을 수호하는 수신이란다. 그리고 내 힘은 무척이나 쓸모가 있단다. 물을 다루는 건 기본이고 상처 치유도 할 수 있지. 지금 비를 내릴 수 있는 존재는 너뿐이란다…… 부탁한다. 아이야.]

그 목소리는 한탄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비라는 말에 귀가 쫑긋했다. 다시 내가 슬쩍 나오자 수신이 좋아했다. 난 고개를 돌려 기우제를 치르고 있는 제르펠을 보았다. 그가 기우제 때문에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더불어 수신의 말을 들으니 이 기우제를 치른다고 해서 비는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미동 없이 호수를 바라보는 제르펠을 보던 난 수신에게 물었다.

내가 힘을 받으면 정말 비가 내려??

열심히 나를 설득하던 수신은 내가 긍정의 말을 뱉자. 그렇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고는 슬프게 말했다.

[사실 내가 본래의 힘을 쓴다면 좋겠지만, 그건 제약이 걸려 있단다. 원래라면 비를 내릴 수 있지만 사악한 자들이 우리들의 힘을 빼앗고 있지. 그렇기에 너를 부른 것이다. 인간들에게 직접 힘을 행세할 수 있는 너를. 몸은 이곳에 속해 있지만, 영혼은 이 세계의 질서에 구속되지 않는 너를.]

그 목소리는 통탄하게 말했다. 뭐?? 내가 구속당하지 않아? 사악한 자들? 수신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나는 이 세계의 사람…… 뱀이 아니었다.

왜 나야?

수신은 얼버무리듯이 말했다. 마치 말하기 껄끄럽다는 듯이,

[어…… 그건 말이다. 우연이란다.]

바로 이해가 갔다. 나라도 껄끄럽지 딱히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따지고 싶었지만 이제 와서 무얼 하겠는가. 솔직히 죽었는데 살아서 환생한 거라도 감사하지.

위를 바라보니 하늘은 정말 더럽게도 맑았다.

사악한 자들은 내가 알 바가 아니야. 하지만 비는 내려 줄게. 비는 주인이 원하니까. 애초에 공짜로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저 아이가 무척이나 소중한가 보구나…….]

그렇게 직접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던 나는 쑥스러움에 횡설수설 설명하기 시작했다.

뭐, 주인으로서 말이지. 내 의식주를 책임져 주는 거니까!! 당연히 소중하지…….

말을 하면 할수록 구렁텅이에 빠지는 느낌이라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다. 머릿속으로 직접적으로 들리는 후후후하는 소리에 기분이 나빠졌다.

……그만 웃고 줄 거면 빨리 줘.

[그래. 난 한동안 호수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을 거란다. 언제든지 오렴. 여기가 너의 고향이나 다름없으니.]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대화는 없었다. 힘을 준다는 말에 어떻게 줄지 기대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응? 힘 준다며??

그 순간이었다. 몸이 한없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몸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숨이 거칠어졌다. 고통을 느낀 순간 괜히 받았나 싶었지만 이미 나에게 힘이 들어오고 있었다.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 도중에 가마에 부딪혔고, 옆에 서 있던 카사는 가마 안에서 쿵쿵거리는 소리에 의아해하며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내가 있었다. 그 순간 이마에 있는 보석이 감응하듯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마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목격했고 뒤에서 느껴지는 소란에 제르펠이 뒤를 돌아보았다.

“슈이렌?”

주인아…… 나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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