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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10화 (10/103)

-10-

주인아!!! 저 아줌마 아주 나쁜 사람이야! 아니 나를 이렇게 막 대했다니까.

제르펠이 나타나자 나는 당장 발치에 기어가 매달렸다. 억울함을 표현하기 위해 생채기 난 몸을 돌려 보여 주었다. 그는 내 몸에 난 생채기에 눈살을 찌푸리더니 그들을 노려보았다. 에이든은 말을 걸려 하다가 그의 눈빛이 두려웠는지 유모의 옷자락을 꼭 잡고는 몸을 숨겼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냉큼 그 손 위에 올라갔다. 제르펠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을 어찌 이해하면 될까……. 말해 볼 수 있나?”

“전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글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일까? 그래서 내 질문의 답은?”

숨 막힐 듯한 고요함이 지속되었다. 제르펠은 내 몸에 생긴 상처가 안쓰러운지 그 부위를 조심스럽게 만져주었다. 그의 온기에 안심이 되었던 나는 몸을 늘어뜨리고 그의 가슴에 기대고 있었다. 그의 심장 소리는 아주 느리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살벌한 눈빛에 움찔했다. 하지만 자신도 억울하다며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의 손에는 아주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피는 이미 멎어 있었다.

“그 뱀이 저를 물었습니다.”

뻔뻔스러운 말에 할 말을 잃게 했다. 앞뒤 사정을 다 잘라 버리고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말했다.

우와~ 내가 말 못 한다고 내 잘못으로 몰아가는 거야?

그는 그 작은 구멍이 난 손을 보고 나를 한번 보았다. 나는 아무런 잘못 없다는 듯이 시선을 마주했다. 상처를 낸 건 맞기에 아주 살짝 뜨끔했지만 과정을 본다면 난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당당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든 건 너였어. 지그시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두 개의 송곳니 자국은 내가 만들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그는 내 머리를 손가락으로 탁 치고는 말했다. 살짝 쳤지만 머리가 띵 울렸다.

내가 너 욕하는 거 혼내줬더니. 물론 개인적인 것도 있었지만…… 나는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억울함을 표출했다.

“아무 이유 없이 널 물었을 것 같지 않은데……. 그리고 이 상처들은 누가 낸 것이냐? 애초에 여기까지 슈이렌 혼자서 올 수 없을 터.”

그래, 잘한다!

그는 막상 행동으로는 나를 꾸짖는 듯했지만, 말로는 그녀를 타박했다. 나는 꼴좋다며 그녀를 보면서 혀를 날름 날름거렸다. 유모는 내가 조롱한다는 걸 알았는지 나를 노려보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시선이 느껴지자 제르펠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찔렸던 나는 또 혼내는 줄 알고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시선이 좀 이상했다. 슬쩍 본 그는 나를 미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스럽다는 듯이?

갑작스러운 태도 돌변에 고개가 갸웃거렸다. 평소와는 사뭇 다른 눈빛이었다. 내가 그를 위해 물었다는 것을 알 리는 없었고, 이유가 짐작되지 않았다. 왠지 계속 시선을 마주치기가 부담스러워 고개를 숙였다. 그때 에이든이 그의 눈치를 보며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계기를 이야기했다.

“그게…… 제가 형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그 뱀을 보았어요……. 그 상처는 아마 떨어졌을 때 생긴 것 같아요.”

“떨어져?”

그 말에 시선이 따가웠지만, 무시했다. 그의 눈매가 찡그려지자 에이든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제가 형님께 사과드리고 싶어서 궁에 찾아갔는데 그때 위에서 떨어졌어요. 아마 발을 헛디딘 것 같아요.”

에이든이 나를 변호했지만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실수가 아니란 걸 안 듯했다. 그에 대해서는 나도 불만스러웠다. 아니 애초에 날 데려갔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내 궁에 찾아왔었나?”

“네…… 사실 사과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그때는 정말 죄송했어요. 좀…… 당황스러워서…… 절대 형님이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숙이고 있는 에이든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에이든은 시선을 맞추기 어려운지 절대 위를 바라보지 않았다. 심지어 제르펠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답답해 무슨 말이라도 하라며 꼬리로 가슴을 콕콕 찔렸다.

애가 너랑 화해하고 싶다잖아. 뭐라도 좀 말해.

그제야 제르펠의 입이 열렸다.

“그 일인가…… 신경 안 쓴다. 사라졌다고 하더니 내 궁에 왔었나.”

“아, 네! 형님이랑 저번에 이야기도 자세히 못 했잖아요. 바깥 이야기도 듣고 싶고……. 검 실력도 뛰어나시다고 들었는데……. 혹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기대감이 설린 표정으로 에이든이 말했다. 제르펠은 에이든의 상태를 눈으로 훑었다. 목검만 들어도 휘청거릴 것 같은 에이든의 몸과 손목을 보며 이야기했다.

“……우선 체력을 키우는 것부터 해라. 그 손목으로는 검조차 들 수 없을 것 같으니. 폐하께서 사라진 널 무척이나 걱정하시더군. 얼굴이라도 비추어 주거라. 그리고 함부로 사라지지 말아라. 주위에 폐가 되니.”

왠지 끝말은 오히려 나에게 말하는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일까? 에이든은 그제야 우울했던 표정은 어디 가고 제르펠을 바라보면서 화사하게 웃었다. 반드시 체력을 기르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눈빛이었다.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웃는 모습이 나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줌마는 에이든이 너와 사이좋아 보이니 싫어하지만…….

그녀는 불경한 눈초리로 제르펠을 보고 있었다. 조금 전만 해도 제르펠을 싫어하는 티를 팍팍 냈으니 에이든과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 주는 그가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제르펠은 그걸 뻔히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완벽하게 무시했다. 아예 시선조차 주지를 않았다. 그녀는 더 있어 봐야 상황이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에이든을 이끌고 돌아가려고 했다.

“전하.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난 좀 더 있고 싶은데…….”

“폐하께 얼굴을 비추러 가야지요.”

에이든은 기껏 만난 제르펠과 이야기하고 싶어 했지만, 유모는 황제를 들먹이며 가기 싫어하는 에이든의 등을 알게 모르게 밀면서 자리를 떴다. 에이든은 아쉬운지 뒤를 계속 돌아보았고 아이가 마음에 들었던 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잘 가라고 인사를 했다.

그들이 멀어지자 제르펠은 두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잡고는 위아래로 흔들었다.

“슈이렌. 말썽을 피우다니 혼나야겠구나.”

으…… 말썽이라니. 그저 산책하려고 했던 것뿐이라고!

그의 손을 꼬리로 찰싹찰싹 때리면서 불만을 표했지만, 그는 그저 가려운 수준인지 반응조차 없었다. 에이든과 유모가 떠나자 이안이 말했다.

“전하. 이제 그만 가시죠.”

“아. 그래.”

제르펠의 검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렸다. 빨리 가자. 힘들다. 산책 한번 나왔다가 잡히질 않나. 바닥에 내리꽂히질 않나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쿠션 위가 제일 안전해.

* * *

에이든은 멀어지는 제르펠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옆에서 유모가 씩씩대며 분을 참지 못하는 것을 알았다. 유모는 언제나 그랬다. 그녀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변 사람들은 전부 제르펠을 싫어했다. 제르펠이 전쟁터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 누구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에이든에게 해 주지 않았다. 주위에서 오죽 이러는데 에이든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심지어 어머니도 아버지도 형님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

에이든은 자신을 항상 옆에서 보살펴 주는 유모도 소중했고 자신에게 다정한 주변 사람들 모두 소중했다. 이제 한번 보았을 뿐이지만 자신의 형님도 좋아했다. 그렇기에 애매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에이든은 처음에 제르펠에 대해 딱히 관심이 없었다.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오히려 친밀감이 생기는 게 이상했다. 에이든은 몸은 약해 침대에 무료하게 누워 있는 날이 많았다. 에이든은 그러다 우연히 하인과 하녀들이 모여서 하는 제르펠의 전승담 이야기를 들었다. 전쟁에서 연승하는 이야기와 그에 따른 전략, 뛰어난 검술 실력은 자신이 동화책으로 보았던 영웅과 다름이 없었다. 에이든이 그에게 동경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인과 하녀들에게 전쟁은 재미있는 소재거리였지만 제르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금지였다. 특히 전쟁에서 제르펠의 평판이 좋아지고 난 후로 더욱 그랬다. 황후와 유모는 제르펠에 대한 이야기는 에이든에게 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그와 동시에 대항이라도 하듯 오히려 안 좋은 이야기만 주야장천 하였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그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다. 그 때문에 몰래 숨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유모의 이야기에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던 에이든은 없었다. 에이든은 제르펠에 대해 동경을 품었다. 유모와 황후가 하는 이야기에 반박을 하기도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몰래 숨어서 제르펠의 이야기를 엿듣는 게 취미가 되었다. 작은 몸집의 아이였기에 숨으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에이든은 우연히 제르펠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쟁이 드디어 종결이 난 것이다. 에이든은 들뜬 마음을 참지 못하고 은근슬쩍 유모에게 물었다.

“저…… 형님이 온다고 하던데…… 진짜야?”

유모는 미간을 좁혔다.

“대체 누구입니까? 그런 허황한 이야기를 저하께 불어 놓은 자는.”

“아니야……?”

“그럴 리는 전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유모의 얼굴은 무척이나 불안해 보였다. 단호하게 말하는 유모의 말에 풀이 죽었다. 하지만 그 소문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전쟁 승리의 나팔이 울렸다. 백성들은 전쟁이 끝났음에 기뻐하지만, 황궁에서는 미묘했다. 제르펠은 자신의 부대와 말을 타고 궁으로 돌아왔다. 추운 겨울이었기에 에이든은 열 감기에 걸려 소식을 미처 알지 못했다. 유모가 단단히 입단속을 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그 사실을 안 에이든은 안달이 났다. 제르펠을 보겠다고 단식 투쟁을 벌였다.

“저하…… 안 그래도 몸이 아프신 분이 음식도 가리시면 어찌합니까? 골고루 잘 먹어야 나을 병도 빨리 낫습니다.”

“싫어! 안 먹을 거야.”

에이든은 침대에 누운 채로 이불을 확 들어 올려 몸을 숨겼다.

“이 유모가 어찌하면 먹겠습니까?”

눈을 번뜩인 에이든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나…… 형님…….”

“제가 아니 된다 하지 않았습니까.”

유모는 단호하게 말했고 삐친 에이든도 강경하게 나왔다. 결국, 두 손 두 발을 든 것은 유모였다. 에이든은 빨리 낫겠다는 일념으로 약도 밥도 꼬박 챙겨 먹었고 드디어 제르펠을 보는 날이었다. 들뜬 마음에 유모를 재촉했고 머지않아 제르펠이 도착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지만 에이든의 눈에는 과묵하고 멋있어 보였다. 에이든은 끊임없이 조잘거렸다. 그때 옆에 있던 시녀가 찻잔에 차를 따랐다. 평소 에이든이 애용하는 차였다.

“제, 제가 좋아하는 차인데 한번 드셔 보세요!”

에이든은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지.”

제르펠이 차를 마시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독이 있음을 감지한 제르펠이 습관처럼 시녀를 처단한 것이었다. 자신이 먼저 치지 않으면 당한다는 생각에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당연히 에이든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목격한 죽음에 당연히 몸이 떨릴 수밖에 없었고 뒷걸음질 치며 도망쳐 버렸다. 시녀의 방을 뒤지니 독이 발견되었지만 제르펠을 향한 손가락질은 멈추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두려워 도망쳤지만 이상했다. 잘못한 건 시녀였지만 자신의 주위의 모두가 제르펠을 욕했다. 다수의 말을 이길 수는 없었고 자연스럽게 목소리는 작아졌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에이든은 말없이 유모의 손에 이끌려갔다.

* * *

난 다시 포근한 쿠션 위로 돌아왔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진리를 다시 깨달았다. 푹신한 촉감에 몸이 나른해지고 잠이 쏟아졌다. 오늘 하루는 힘든 일이 많았다.

“전하.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다. 내가 하지.”

결국 이안은 옆에서 약을 들며 대기하고 있었다. 제르펠은 만지면 깨질 듯한 도자기를 다루는 듯이 조심하면서 약을 묻힌 솜을 내 상처에 톡톡 발라 주고 있었다. 약이 닿자 상처 난 부위가 따끔거렸다. 살살해 줘 나 따갑다고. 하지만 진지한 얼굴로 발라 주니 따갑지만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가만히 있었다.

“음.”

그는 자신이 한 작품을 감상하듯이 작은 감탄을 내뱉더니 들고 있던 솜을 이안에게 넘겨주었다. 당연하게 내 몸을 쓰다듬으려고 했지만 약이 묻어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함부로 사라지지 말고, 그리고……. 이 작은 몸으로 사람들한테 덤벼들지도 말고.”

쳇. 내가 기껏 편들어 줬더니.

이안은 약을 정리했다. 약간 고민하는 투로 이안이 넌지시 말을 던졌다.

“전하. 혹여 걱정되어 말씀드립니다. 제위를 위해서라면 에이든 님과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같이 저하께 상냥하게 대하시는 건…….”

이안을 힐끗 보던 제르펠이 말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겠나. 잘못은 어른들이 했지. 그 아이도 나랑 같은 존재나 마찬가지다.”

그래. 애가 참 착하고 순해.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르펠의 생각이 기특했던 나는 꼬리로 그를 콕콕 찔렸다. 내가 찌르는 게 느껴졌는지 제르펠은 나를 보았다. 그리고 나의 눈동자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그의 반응에 당황에 눈동자를 굴리며 은근슬쩍 피했다.

아까부터 왜 이런다냐…….

“단지…… 눈동자가 슈이렌이랑 닮았더군.”

응. 나?

갑자기 내 이야기가 나온 건지 이해를 못 해 아리송한 얼굴로 제르펠을 바라보았다. 제르펠은 잇새로 나오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의 웃음에 점점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그러고는 제르펠은 손가락으로 상처를 피해 쭉 따라 쓸었다. 그게 간지러웠던 나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피했다.

“고맙구나. 유모를 문 건 내 편을 들어준 것이겠지.”

곧 내 칭찬인 걸 알고 당당하게 몸을 치켜들었다. 그럼! 영광의 상처인 마냥 다시 상처들을 보여 주며 뿌듯하게 웃었다. 제르펠은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손에 약이 묻는 것도 마다하고 쓰다듬어 주었다.

이게 바로 이때까지의 행실의 결과지.

“앞으로 다치지 않게 수를 써야겠군.”

나지막이 중얼거린 제르펠은 이안을 손짓으로 부르더니 귓가에 속삭였다. 이안은 상당히 놀랐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나를 슬쩍 보고는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끄덕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 고개를 내밀고 기웃거렸지만 나에게는 안 들려줄 심상인지. 누가 듣지도 않을 텐데 둘이서 조용히 이야기했다.

아니 왜 속닥속닥 이야기해? 나 좀 듣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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