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뱀생-9화 (9/103)

-9-

에이든은 당장 버리라는 그녀의 반응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횡설수설하며 말했다.

“어……. 버리면 안 돼. 이 뱀…… 형님이 키우는 아이인 것 같던데…… 데려다주면서…….”

“네? 그걸 어떻게 아셨습…… 아니 설마 전하께 가셨습니까!!”

내가 무서워 주저앉아 있던 유모는 에이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에이든의 몸을 꽉 잡으면서 말했다. 그 표정이 어찌나 심각하던지 에이든은 깜짝 놀라 몸이 굳었다.

“제가 그리 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설마…… 궁에 직접 가신 겁니까?”

에이든은 그녀의 눈을 피하면서 우물쭈물했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머리가 다 아픈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에이든은 그녀의 눈치를 보며 괜히 나를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조곤조곤 말했다. 하지만 말투엔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저하. 대체 왜 가신 겁니까.”

“……그치만…… 나는 형님이랑 잘 지내고 싶은데…… 주위에서는 가지 말라고만 하고, 저번에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도망쳐 버려서 사과하려고 갔는데 마침 이 뱀이 하늘에서 떨어지잖아. 형님 애완동물 같은데 사라지면 슬프잖아. 그래서 데려다주면서 이야기도 하고…… 그러려고……. 나한테도 이제 형님이 생긴 건데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서…….”

사과한다고 하더니 에이든이 제르펠을 보고 도망친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것보다…… 처음부터 보고 있었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꼴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면 창피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에이든의 말이 좀 의아했다. 형님이 생긴 건데……? 어림잡아서 에이든의 나이는 10살 안팎인 것 같았고 그동안 떨어져 지냈던 것이 아니라면 이제 형님이 생겼다는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

에이든은 혼나는 아이처럼 풀이 죽어 있었다. 동생이 형을 만나는 게 유모의 입장에서 막을 일인가? 난 이때부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서 의아해했다. 그저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

제르펠이 황태자라고 하지만 그다지 환영을 받지 않는다는 것, 미묘한 위치인 것은 어렴풋이 눈치챘다. 이래 봬도 사회생활 8년 차였다. 대학 생활, 군대 생활 거기에 직장 한 달. 어디 가서 눈치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었다.

제르펠을 직접적으로 보좌하는 건 이안과 세드릭뿐이었다. 다른 시중 인들은 깍듯한 태도로 그를 존경하는 것 같긴 했지만, 알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심지어는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난 항상 제르펠의 옆에 있었고, 가끔 그가 혼자 집무실에 있을 때 한숨을 쉬며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것을 지켜보았다. 그때 제르펠의 얼굴에는 내가 알 수 없는 고민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에이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에이든 님.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전하는 친근한 존재가 아닙니다. 에이든 님과 서로 경쟁하는 사이입니다.”

“하지만…….”

“저하. 그리고 잊으셨습니까? 그때 전하의 눈빛을? 전쟁에서 돌아왔다더니 사람을 죽이는 것에 전혀 망설임이 없었죠. 하긴…… 죽이는 것밖에 배우지 못했을 테죠.”

그녀는 눈을 찌푸리고 혀를 차는 등 제르펠에 대한 혐오감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의 반응이 익숙한지 에이든은 반박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입을 닫았다. 그 행동으로 에이든에게 그녀가 얼마나 귀가 아프게 말했는지와 제르펠이 그녀에게 눈엣가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제르펠이 전쟁터에 갔다는 말에 놀랐다. 동시에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자잘한 흉터들이 어디서 생겼는지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중 인들이 보인 태도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어느 정도는. 제르펠이 지나갈 때마다 시중 인들은 숨을 죽이며 몸을 움츠렸다. 그들로서는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제르펠이 살가운 성격도 아니고, 혹시 모를 시한폭탄처럼 여기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유모의 말에 더 분개했다. 그녀는 전쟁터에서 사람 죽였다고 제르펠을 살인자 취급을 하고 있었다. 아니,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지 안 그러면 자기가 죽잖아? 보통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에 대부분 몸을 사리기 바쁘고 평민들을 징병시키는 일이 대부분이다. 황태자가 전쟁터에 갔다는 건 대단한 거지! 내가 주인은 잘 골랐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 돌아왔더니 받는 취급이 이렇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아줌마 그리 사는 거 아니다. 그러다 벌 받아요.

나는 그녀에게 달려들 듯이 쉭쉭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세상에 빠졌는지 아니면 내 위협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계속 이야기를 이어 갔다. 결국, 내가 먼저 지쳐 버렸다.

그것보다 이 자식 생각보다 안쓰러운 놈이었네. 황태자라 편할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더 잘해 줘야지. 그가 애틋해 애교나 떨어 주어야겠다며 생각했다.

우물쭈물하던 에이든이 입술을 깨물고는 반박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 시녀가…….”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하는 1초도 망설이지 않았어요. 저희가 보고 있음에도 그 시녀를 처단하셨죠. 그리고 전하가 하셨던 말이 전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 자는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저하를 해치실 수도 있어요.”

그녀는 단호하게 에이든에게 말했다. 내가 본 그는 딱히 지위에 연연하지 않았다. 시녀를 처단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이 좀 의심되기는 했지만 그가 아무 이유 없이 그랬을 리가 없었다.

주인은 착한 놈이거든? 나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동물에게도 세심한 배려를 해 주는 제르펠이었다. 솔직히 그들의 이야기가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나 딱히 황위에 관심 없는데…… 몸도 약하고…….”

“저하!! 황후 마마께서 그랬지 않습니까? 지금 먹는 약만 꼬박꼬박 드시면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좋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반쪽이 아닌 이 제국의 진정한 후계자는 저하입니다. 이 눈부신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그 상징입니다. 건강만 되찾으신다면 가뿐히 황태자 자리에 오르실 수 있습니다.”

그녀는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에이든은 잘못한 사람처럼 고개가 푹 숙였다. 그녀의 말은 핵심을 벗어나 있었다. 에이든은 딱 보기에도 황제 자리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강압적인 태도로 황제가 되기를 바라며 강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제르펠 전하는 저하가 몸이 약했기에 황태자의 자리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저하야말로 이 제국의 황제에 어울리십니다.”

그녀는 강압적으로 한 번 더 에이든의 말을 막으며 자신의 입장을 표출했다. 마지막 말투는 자상했지만, 가식적으로 보였다.

몸이 상당히 약했나……. 그녀는 계속 에이든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건강만 되찾는다면 황태자의 위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유모는 어릴 적부터 자신을 돌봐 주는 사람이다. 거기에 에이든 본인의 몸이 약해서 전적으로 유모에게 의지했을 가능성이 컸고 그렇기에 큰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너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

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사태를 파악하자면 에이든은 이복동생인 것 같았다. 황후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녀는 에이든을 지지하고 있는 것 같았고, 제르펠이 반쪽이고 에이든이 정통 후계자라는 말을 파악하자면 에이든은 황후 소생, 제르펠은 다른 부인 쪽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생각됐다. 그렇기에 황후는 제르펠이 아닌 에이든을 지지하고 있는 듯했지만, 에이든의 건강이 약해 황태자 자리에 오르지 못했던 것으로 추측됐다.

난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 없어 심기 불편한 티를 팍팍 냈다. 그래 봐야 꼬리를 휘두르는 정도였다. 어깨의 힘이 쭉 빠진 에이든은 암울 그 자체였다. 에이든은 괜스레 나를 보며 만지작거렸다. 우울한 그의 눈동자를 보고 힘을 내라며 손을 살짝 핥아 주었다.

이거 주인에게만 해 주는 서비스야. 알아?

그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경쟁하듯 그녀는 에이든을 달래기 위해 두 팔을 벌렸다. 하지만 난 고개를 팩 돌려 그녀를 향해 쉭쉭거렸다. 유모는 손을 움찔하며 거두었다. 그녀를 물리친 나는 뿌듯해하며 에이든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내가 자신의 손에 얼굴을 비비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에이든의 약간 붉게 충혈된 눈이 예쁘게 휘어졌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내 비늘을 쓰다듬었다. 에이든은 제르펠을 싫어하지는 않는 듯했다. 오히려 좋아하면 좋아했지.

근데……. 나 여기 있어도 되는 건가. 그녀는 누가 봐도 제르펠을 싫어하고 의도하던 그렇지 않던 제르펠과 에이든은 황위 쟁탈전을 하는 듯했다. 그리고 난 에이든의 손안에 있었다.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일종의 적의 손에 있으면서 애교를 부린 꼴이 되었다. 이때까지 투자한 내 노력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꼬마야 이제 기분도 좋아졌으니 나를 놓아주렴. 사정이 딱한 건 알겠는데 나도 급하다고! 그니까 이제 제발 이 손 좀 놓아라!

꼬리로 나를 잡은 에이든의 손을 쿡쿡 찔렸다.

내가 잠잠해지자 그녀는 이제야 손을 뻗어 에이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가 알겠습니까? 라는 말에 에이든은 나를 두 손으로 꼭 쥔 채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딱 보아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 표가 났다. 그녀의 눈에 불만이 섞여 있었지만 더 이상의 입씨름은 하기 싫었는지 그 행동으로 만족했다.

“그러니 이제 그 뱀은 버리세요. 이런 지저분한 걸 만지시면 병에 걸려요.”

어이없는 발언에 화가 났다. 이래 봬도 주인이 깔끔하게 관리해 준다고! 물론 바닥에 떨어질 때 생긴 생채기도 좀 있고 흙도 좀 묻었지만 지저분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 말이 기폭제가 된 것처럼 난 그녀에게 물어뜯을 듯이 달려들며 쉭쉭거렸다. 에이든도 놀라고 그녀도 놀랐다. 유모는 그런 나를 보며 얼른 놓으라고 했고 에이든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유모가 용기를 내 손을 뻗어 나를 잡으려는 것을 내 꼬리로 찰싹 때렸다.

“앗!”

흥! 내 꼬리 스매싱 맛이 어떠냐? 그러게 말을 곱게 했어야지.

유모의 손등에는 맞은 부위가 뻘겋게 부어올랐다. 난 그걸 보고 연습한 보람을 느껴 만족스러워졌다. 꼬리로 의사 표현을 할 때가 많아 꼬리 운동을 좀 많이 했지. 유모는 겨우 뱀에게 맞은 것이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든 건인지는 몰라도 해서는 안 될 말을 하였다.

“하. 겨우 뱀 따위가 나를 건드려??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꼴이 똑같구나.”

뭐?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똑같다. 이 말은 제르펠을 말한 게 분명했다. 방금까지 말은 있는 사실을 듣기 안 좋은 쪽으로 과장되게 말한 거라면 뒤에 말한 이야기는 오로지 제르펠에 대한 제 생각을 대놓고 드러낸 거였다. 단지 대상을 직접적으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일 뿐.

자기가 말해 놓고도 흠칫 놀란 유모가 얼른 에이든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보였다. 에이든은 오히려 지금의 상황에 당황해해서 들은 눈치는 아니었다. 유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나도 지지 않고 째려보았다. 나도 너 마음에 안 들거든? 그녀는 에이든에게 상냥하게 말했지만, 입가는 부들부들 떨리고 눈은 살벌했다.

“자. 사나운 뱀이 저하께 해가 될까 걱정이 됩니다. 이리 주세요.”

에이든은 나를 주지 않고 살짝 뒤로 숨기려고 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유모가 나를 가져가려 했다.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던 나는 입을 크게 짝 벌리며 손을 물었다.

“악! 떨어져! 떨어지라고!”

그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이리저리 뛰면서 떨어지라며 손을 휘둘렸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결국, 힘이 부족했던 나는 공중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큰 충격에 머리가 띵했다.

유모는 이리저리 뛴다고 망가진 옷차림새를 정돈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지 피가 나는 손을 부여잡았다.

“이…… 이것 보세요! 위험합니다. 당장 처리해야 해요!”

그녀는 분에 겨워 씩씩거렸다. 피가 난다고 해도 작은 핏방울 몇 개였지만 마치 목숨의 위협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난리를 쳤다.

그녀는 분노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로 나에게 걸어왔다. 기필코 너를 죽이겠다는 살벌한 눈빛이었다. 그녀는 나를 발로 찰 생각이었는지 두 손으로 치맛자락을 조금 들어 올렸다. 그 사이로 굽이 높은 구두가 보였다. 내 몸집을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나를 죽이려는 의도가 다분한 몸짓이었다.

아, 씨발. 죽겠네.

“뭐 하는 거지?”

익숙한 저음이 내 귓가에 울렸다. 뒤를 휙 돌아보니 제르펠이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서 있었다. 뒤에는 이안과 세드릭이 같이 있었다. 제르펠은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이었지만 고요한 위압감이 돌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자 그녀는 기겁하며 곧바로 예의를 갖추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