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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7화 (7/103)

-7-

왜 이리되었을까…….

역시 스테이크를 먹은 게 잘못이었을까?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날고기와 스테이크 중 선택하라고 하면 대다수 스테이크가 아닐까? 물론 진짜 뱀이라면 날고기를 선택할 것이다. 나도 뱀이기는 하지만 학자의 말을 들으니 긴가민가했다. 아무튼 아무리 겉모습은 뱀일지라도 속은 사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안은 며칠 동안 나를 계속 주시하더니 이제는 그냥 아예 불신하며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냐? 라는 눈빛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렇다……. 지금 나는 감시를 당하고 있다!

난 지금 내 전용 자리인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몸을 말고 있다. 분명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에 부셔야 하지만 오히려 뒤가 뜨거워 죽을 지경이었다. 뒤에서 이안이 너의 정체를 까발리고 말 것이라는 의지가 담긴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탓이었다.

그 덕에 낮잠을 즐겨야 할 오후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뭐……. 솔직히 나 같아도 의심은 하겠는데…… 그 건으로 요즘 많이 고민했지만 그래도 나오지 않는 답에 진작에 포기했다. 차원 이동이라서 버프라도 받았나 싶었지만 숨기진 힘이나 그딴 건 전혀 없었고, 사람으로 다시 변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하루를 제르펠의 호감도를 높여 안락한 생활을 보내자는 마음에 사고도 안 치면서 제르펠의 곁에 딱 붙어서 열심히 아양을 떨고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주인아 쟤 좀 말려 봐…….

저 시선을 피하고 자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던 나는 제르펠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는 열심히 서류를 훑어보며 도장을 찍고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방해할 수 없어 그래도 버티자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 제르펠을 방패로 삼았다. 난 그의 무릎 쪽으로 내려가 몸을 말고 누웠다. 제르펠의 시선이 따라오는 게 느껴졌지만, 그는 제재하기보다 오히려 내가 편하도록 자세를 잡아 주었다.

그의 무릎 위는 햇빛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아늑하고 좋았다. 무엇보다 책상이 저 시선을 막아 줘서 다행이었다.

그는 내가 피신해 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시선으로는 서류를 검토하면서 이안에게 말했다.

“이안. 그만 쳐다보도록.”

“하지만 전하.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합니다. 처리하시는 것이…….”

“지금까지 아무 일 없었지 않았느냐.”

“무르십니다! 학자의 말처럼 저 뱀은 이상합니다. 대체 어느 뱀이 스테이크를 먹으며 낮잠도 눈을 감으며 잡니까? 혹시 전하를 노리고 온…….”

그 소리를 듣자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제르펠의 시선에 그는 잠시 움찔했지만 물러설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말을 물리지 않았다. 난 그 상황을 고개를 내밀고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데리고 왔으며 이름까지 지어 줬다. 슈이렌은 그럴 아이가 아니다. 더는 말하지 말거라.”

“……평상시에 안 그러시는 분이 더 그러니 이상하다는 거 아닙니까. 정말 홀리셨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이안은 이 상황을 비꼬는 어조로 말했지만, 오히려 제르펠은 웃으며 거기에 맞장구를 쳤다. 더욱 매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지만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결국, 백기를 든 것은 이안이었다.

잘한다! 내가 공을 들인 보람이 있다니까.

아무리 이안이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해도 증거는 없었다. 애초에 나조차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 리가 없었다. 속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그의 온기에 기대어 만족해했다.

* * *

제르펠도 이안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자신이 이 뱀을 왜 중하게 여기는지 모르지만, 마음에 든 걸 어찌하겠는가. 책임지기로 했으면 그저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을 뿐이다. 오기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싶은 걸지도. 이안은 갑자기 헛웃음을 짓는 제르펠을 이상한 듯이 보았지만 제르펠은 더는 이야기를 이어 가지 않고 서류에 대해 물어보았다.

제르펠은 자신의 무릎에 다소곳이 몸을 웅크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에 반응해 슈이렌도 고개를 들어 제르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한쪽으로 약간 기울이며 새빨간 루비 같은 눈동자가 제르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가 손을 뻗어 쓰다듬으려고 하자 오히려 스스로 얼굴을 손에 비볐다.

아마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이 눈에 빠진 게 아닐까.

* * *

어째서!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미안하구나. 너를 데려갈 수는 없단다.”

배신자를 보는 눈으로 제르펠을 바라보자.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도 내심 걱정은 되는지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안은 그런 제르펠의 걸음을 재촉했다.

“전하 빨리 가 보셔야 합니다.”

“그래. 슈이렌 잘 기다리고 있어.”

그렇다. 그는 황태자니 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그중 회의도 있었다. 중앙 귀족들이 모이는 회의라고 하는데 지금 나를 두고 가는 것이었다. 그동안 호감도를 위해 노력한 것이 무색하게 그는 나를 두고 회의에 참석하러 간다는 것이다. 난 배신감에 몸서리를 쳤다.

이안의 말로 유추해 보건대 중앙 귀족들이 모이는 회의는 처음인 것 같았다. 그리고 단단히 기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의문이 들었다. 황태자는 차기 황제가 아니던가. 귀족들과 모이는 회의가 처음이라는 말에도 놀랐지만 귀족들의 기를 잡아야 한다는 말에도 놀랐다.

주인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다마는.

그는 옆에 있는 시종에게 잘 보살피라며 명령을 내리고는 나를 등지고 걸어갔다. 혼자 남은 나는 망연자실한 채로 떠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있던 시종은 제르펠이 있을 때만 해도 바짝 긴장한 채로 서 있더니 그가 사라지자 마음이 놓인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내가 왜 이 뱀을 지키고 있어야 하냐는 둥 구시렁거렸다.

서럽다. 서러워. 제르펠이 떠난 뒤 난 무슨 신줏단지 모셔지듯 쿠션 위에 놓였다. 가만히 있기에도 지쳐 심심함에 온몸으로 뒹굴고 꼬리로 난리를 쳐도 시종은 눈도 꼼짝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주인이었다면 심심하냐고 놀아 줬을 텐데…….

나는 제르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밖이 어수선한 것이 느껴졌다. 발소리는 절대 크지 않았지만 여러 명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듯 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집무실 앞에서 조용히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더니 답이 없자. 끼익 소리와 함께 조심히 누군가가 들어왔다.

들어온 시종과 내 곁에 서 있는 시종은 서로 아는 사이인 듯 서로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기에는 무슨 일이야? 그것보다 함부로 들어오다니 전하한테 죽고 싶어?”

“너야말로 왜 여기에……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 황자님이 사라졌다고 난리라고!! 황후마마께서는 혼절하셨지. 폐하께서 모든 인원을 동원해서 황궁 내를 찾아보라고 하셨어. 그래서 지금 찾고 있어. 전하한테 죽기 전에 폐하한테 죽게 생겼다고! 너도 찾아.”

시종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져 있었다. 황자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닌 게 보였다. 그 말을 들은 내 옆에 서 있던 시종도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나를 힐끔 보며 걱정했다.

“하지만…… 뱀이…….”

“뱀이 가면 어딜 간다고, 어차피 집무실 안에 있겠지.”

내 옆에 서 있던 시종은 어쩔 줄 몰라 하더니 결국은 자리를 박차고 황자를 찾으러 나갔다. 솔직히 시종이 있든 말든 나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황자라면 동생인가?? 뭐, 이상한 건 아니지.

이때의 나는 당연히 제르펠의 친동생이라고 생각했다.

계속 뻘쭘하게 쿠션 위에서 있기도 지루했고 아무도 없으니 잠시 산책하러 갈까 싶어 몸을 움직였다. 제르펠에게 주워지고 내가 가는 곳은 방, 식당, 아니면 항상 집무실이었다. 아무리 호감도 작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바깥 공기도 쐬어 줘야 몸이 건강해진다. 솔직히 나를 두고 간 제르펠에 대해 앙심을 품었기에 홧김에 정한 것이기도 했다.

쳇. 누구는 할 일 없어서 붙어 다닌 줄 알아? 나의 소중함을 느껴 보라지!

제르펠도 나가는데 나도 못 나갈 건 없지 않는가? 그리고 내 보금자리 근처의 지리 정도는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 결심한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음……. 가능할까? 사실 항상 제르펠이 옮겨 주지 직접 넘어간 적은 없었다. 눈대중으로 내 몸길이와 거리를 비교해 보았다. 탁자와 창문 사이의 거리는 내 몸의 길이 3배 정도 되어 보였다. 마침 중간쯤에 의자가 놓여 있어 거쳐 간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난 마치 준비 시동을 걸듯 몸을 쭉쭉 늘리거나 말면서 준비를 했다. 다행히 시도는 성공적이었고 순조롭게 창문에 도착했다.

좋았어! 그래도 나름 많이 자랐어. 잘 먹고 잘 잔 보람이 있다며 혼자 뿌듯해했다. 익숙지 않는 몸으로 기어다는 것이 버거웠던 게 엊그제 같았다. 창문도 열려 있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고난 끝에 누가 행복이 있다. 그랬던가.

어찌 내려가지…….

산 넘어 산이라더니 창문까지 간 거는 좋았지만 그 앞은 낭떠러지와 다름없었다. 다행히 밑에 화단과 풀숲이 있다는 것 정도였다. 겨울인데 보통 저리 꽃이 피어 있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렴 어떠하리.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보통 책에서 보면 풀숲 같은 게 완충제 역할을 해 주었다. 나는 뭐 죽기라도 하겠어 하는 마음으로 뛰어내렸다.

화단과 풀숲은 훌륭한 완충제 역할은 하였다. 하지만 나에게 충격이 오지 않는 건 아니었다.

멍청하기 짝이 없었던 조금 전의 나를 한 대 쥐어박고 싶어졌다.

아씨 겁나 아프잖아!! 무식하면 용감하더니…… 내가 그 꼴일 줄이야.

몸에 풀숲과 화단에 떨어지면서 생긴 생채기 때문에 따끔거렸다. 하지만 상쾌한 공기와 향기로운 꽃향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이런 건 침만 발라도 낫는다며 밖에 나왔다는 기쁨에 따가움조차 무시하고 꽃들을 헤치며 기어갔다.

그때 나의 움직임을 따라오는 황금색 눈동자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로 인해 험난한 하루가 시작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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