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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생-6화 (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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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앞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만한 커다란 상이 차려졌다. 수프부터 시작해서 빵, 샐러드, 생선요리에 메인 요리까지 차려 있었다. 아침 식사로는 너무 과도한 양이었고 그걸 떠나 한 사람 몫이 아닌 어마한 양이었다. 상이 부서질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옆에는 시종들과 시녀들이 서 있었다. 주방장이 직접 나와서는 모자를 두 손에 꼭 쥐고는 제르펠이 먹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 이안. 집무실에서 간단히 먹겠다고 한 것 같은데…….”

그렇다. 분명 우리는 집무실에서 식사가 준비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식당에 가자는 이안의 말에 제르펠은 그를 못마땅하게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의 걱정하는 말에 결국 제르펠이 포기 선언을 했고 이안은 기어이 제르펠을 식당에 앉혔다.

애가 참 착하단 말이지. 싸늘하게 말해도 다 들어준단 말이야 무뚝뚝해 보여서 그렇지.

제르펠은 의자에 앉아 있었고 나는 그 식탁 위에 따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내 앞에 있는 고기는 나 비싸요. 말하듯이 색깔부터 빛깔이 평범하지 않았다. 내가 아주 가~끔 먹었던 1인분에 10만 원이 넘었던 그 고기 같았다. 아니 그것보다 좋은 게 분명했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 처량하게 느껴져 눈물이 앞을 가리는 듯했다. 다시 한번 돈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분명 입맛은 돌고 있지만, 선뜻 먹을 수가 없었다. 새빨간 피를 머금고 있는 고기에 입이 가지 않았다. 슬쩍 옆을 바라보니 제르펠의 앞에는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가 있었다. 스테이크의 향기로운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제르펠은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우아하게 썰더니 고기 한 점을 먹었다. 고기를 음미하는 제르펠의 모습에 주방장은 긴장감에 침을 삼키며 말했다.

“이, 입에는 맞으십니까?”

“괜찮군. 하지만 아침으로는 과한 감이 많군.”

“전하.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전하께서 아침을 계속 거르니 시간이 어긋나지 않습니까? 이 시간엔 충분히 점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서 드세요. 오랜만에 주방장도 실력을 보였답니다. 어느 음식이 가장 마음에 드십니까?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확실히 일어나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나도 잠시 낮잠을 잤을 정도였다. 제르펠도 아는지 변명을 하였다.

“일이 바쁘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럴수록 더 먹어야 하는 겁니다. 전하”

이안은 아예 이것저것 설명해 주면서 음식을 권했다. 그런 열정적인 반응에 제르펠은 어쩔 수 없이 모든 음식을 한 번씩 먹어 보았다.

나도 스테이크 먹을 수 있는데…….

제르펠은 기계적으로 음식을 섭취했다. 난 제르펠의 수저에 저절로 시선이 갔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고기보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스테이크가 더 먹고 싶었다. 혀가 계속 날름거렸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식사 중이던 제르펠이 내 시선을 느꼈는지 먹다 말고 옆을 돌아보았다. 나와 그의 눈이 마주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을 반짝이며 그를 쳐다보았다. 살짝 미간을 좁힌 제르펠은 나와 고기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고기를 휙휙 오른쪽 왼쪽 이동했고 내 머리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먹고 싶은 거냐?”

역시 우리 주인은 눈치도 빨라!

“너의 것은 여기 있다. 먹으렴.”

제르펠은 들고 있던 고기를 내려 두고 날고기를 나에게 권했지만 난 싫다고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본 이안은 날고기에 뭔가 문제가 있냐고 주방장에게 물었지만, 그는 갑작스러운 날벼락에 당황하며 신선한 고기를 준비했다고 호소했다.

“구운 고기라도 괜찮나?”

그는 의심스러워하면서도 내 열렬한 눈을 보고는 이내 고기 한 점을 접시 위에 올려 주었다. 기대감으로 차오르는 가슴을 느끼며 올려 준 고기를 한입에 먹었다. 헐…… 맛있어……. 고기가 그냥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처음 먹어 보는 고기의 맛에 더 달라고 눈을 반짝이며 계속 바라보았다. 제르펠은 내가 볼 때마다 한 점씩 올려 주었다.

옆에 있던 시종이 눈치 좋게 한 접시 더 식탁에 올려 주었고 제르펠은 그걸 받아 썰어서 또 한 점씩 나에게 주었다. 만족하게 먹은 난 혀로 입 주위를 싹 닦고는 벌러덩 누웠다. 아…… 뱀생 좋네. 배가 부르니 행복했다.

“맛있었니?”

그는 튀어나온 배를 찌르면서 말했다.

에잇! 귀찮게 건드리지 마!

귀찮게 건드리는 그의 손길을 피해 부른 배를 잡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러다가 그래도 감사하는 맘은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맛있는 고기를 계속 주지 않을까 하는 철저한 계산에서 나온 답이었다. 몸을 돌려 그의 손가락을 핥는다는 게 마침 찌르는 타이밍과 같아서 내 입으로 쏙 들어와 버렸다.

주위에서 헉 소리가 들려왔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만히 있었는데 그는 손가락으로 내 앞니를 건드렸다. 뭐 하는 거야! 이상한 기분이 들어 바로 빼내 쉭쉭거리면서 화를 냈다. 그는 손으로 입가를 가렸지만 내 눈은 속일 수 없었다. 그의 눈가가 미묘하게 휘어진 것이 보였다. 그때 시종이 이안 옆으로 와서는 말을 전하더니 이안이 말했다.

“전하. 학자가 오셨다고 합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집무실로 오라고 하거라. 자 슈이렌 우리도 가자.”

집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난 낮잠 자기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배도 부르겠다. 햇빛 근처에서 낮잠이나 즐기려고 한순간 집무실에 손님이 찾아왔다. 아까 말한 학자인가? 근데 무슨 학자지? 하는 생각으로 문 쪽을 바라보니 곧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이안이 그를 소개했고, 그는 무슨 두꺼운 책을 들고는 안경을 치켜세우며 인사를 했다.

“저, 전하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뱀에 대해 잘 안다고 하지?”

“예. 어떤 물음이라도 답할 자신이 있습니다.”

뱀? 나요? 왜 뭐가 궁금하기에? 학자와 제르펠을 번갈아 보았다.

“종류가 어떻게 되지? 독사는 아니더군. 이를 자극해도 독샘이 분출되지 않더군.”

뭐야? 아까 앞니를 만진 이유가 그거였어? 조금 전 앞니를 만지작거린 이유가 드러났다. 독을 확인하기 위해서라지만 혹시 독이 있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입을 떡 벌리고 경악했지만 그는 태연했다.

제르펠은 나를 가리키며 이야기했고 그 학자는 창가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왠지 눈동자에 기이한 열기가 느껴졌다. 눈빛이 이상하다고 느낄 새도 없이 순식간에 달려들어서는 비늘을 만져 보거나 앞니를 보는 둥 이곳저곳을 만져대었다. 야 인마! 어딜 만지는 거야! 뒤에서 이안이 학자에게 눈치를 주었지만 그는 눈치를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 참 보기 힘든 비늘이네요. 이렇게 새하얀 비늘은 본 적이 없습니다!! 흠. 흠. 저도 처음 보는 종입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종일 수도 있습니다!! 웬만한 서적은 통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제가 알지 못하는 뱀이 존재할 줄이야. 연구할 가치가…….”

그는 학구열에 그만 전하의 앞이라는 것도 잊은 듯 혼자 북 치고 장구를 쳤다. 무척이나 흥분했는지 나를 앞에 두고 이래라저래라 떠들어 대는데…… 솔직히 너무 빨라서 잘 못 들었다. 그의 손길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어찌나 잘 다루던지 도통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 꼴이 제르펠의 눈에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지금 뭘 하는 거지?”

열심히 떠들고 있던 그는 살기가 느껴졌는지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제르펠의 황금색 눈동자가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학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조심스럽게 나를 놓아주고는 물러갔다. 제르펠은 나에게 손을 뻗었고 거기로 기어갔다.

주인아. 쟤 뭐야? 이상해…….

그는 나를 품에 안았다. 무슨 문제라도 없는지 눈으로 꼼꼼히 나를 살펴보았다. 확인이 끝났는지 학자에게 말했다.

“방금 먹이를 안 먹어서 구운 고기를 주었는데 괜찮나?”

“예? 구운 고기를 먹었나요??”

“문제라도 있나?”

학자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그는 걱정이 되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잘못하면 아까 먹은 맛있는 스테이크는 절대 먹지 못할 분위기였다. 다음부터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고기를 먹게 될 것 같아 몸을 펄쩍 뛰며 온몸으로 난 건강해요를 외쳤다.

“보통…… 살아 있는 날짐승을 먹습니다. 열에 예민한 동물이기에 죽은 동물을 줄 때도 온기가 있어야 먹이로 인식을 할 텐데…….”

그는 혼자서 중얼중얼거렸다.

“하. 도움이 안 되는군.”

확실한 대답을 내지 않는 학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제르펠은 내내 학자에게 싸늘했다. 그래 잘한다! 더 혼내 줘! 감히 나에게 맛없는 걸 먹이려고 한 학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앙탈 부리듯 그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말을 건네듯 쉭쉭거렸다. 내가 애교를 부리자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아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조심히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좋아 눈을 감고 가슴에 기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학자는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 아니 눈을 감습니까??!!”

“그게 무슨 문제라도?”

“아니…… 뱀은 원래 눈을 감지 않습니다. 잠을 잘 때도 눈을 뜬 채로 잠을 잡니다.”

그는 이례적인 일이라며 말도 안 된다며 들고 오던 책을 뒤적뒤적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계속 말도 안 된다며 반복하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정말로 놀라워했다.

잠을 잘 때는 눈을 감지 않나? 대체 어떻게 눈을 뜨고 잔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학자의 말에 속으로 구시렁댔다. 시선이 느껴져 위를 바라보니 제르펠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괜찮다는 뜻으로 꼬리로 가슴을 탁탁 쳤다.

학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내로 설명을 해 주었다. 뱀은 작은 짐승을 잡아먹고 일주일에 한 번만 먹는다. 너무 과식하거나 큰 동물을 먹게 되는 경우 다 소화하지 못해 게워낸다고 한다. 유지해 줘야 하는 온도와 습도, 잘 때는 눈을 감지 않고 시력 청력이 안 좋아 후각에 의지한다는 등 떠들어 댔다.

저번에 친구가 이와 똑같은 말을 나에게 한 것이 기억났다. 그때는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려서 잘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좀…… 이상했다. 어떻게 살지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내 몸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학자의 말을 들어 본다면 해당하는 게 거의 없었다. 시력, 청각, 후각, 미각 안 좋은 것 없이 그대로였다.

음…… 왜지?

허점을 정확히 찌르는 그의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전하의 말씀을 들어 보면 정말 뱀이 아닌 것 같습니다……. 종류도 종류지만 평범한 뱀이 아닌 건 확실합니다. 한번 알아볼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잠시 맡겨 주신다면…….”

슬쩍 눈치를 보며 이야기하던 학자는 제르펠을 보더니 말이 쏙 들어갔다.

톡. 톡.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어찌나 살벌하던지. 마치 경고장과 같았다. 그는 이 상황이 짜증 나기만 한지 머리를 쓸어 넘겼다. 무감각한 눈빛과 마주친 학자는 잔뜩 긴장하며 몸을 똑바로 섰다. 짧게 혀를 차던 제르펠은 학자에게 물었다.

“그럼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가?”

“네! 몸에 문제가 없는 걸 보아 괜찮을 거라 생각……. 확실합니다!”

“그 말에 책임지거라.”

제르펠이 살벌한 눈으로 노려보자 학자는 확답을 했다. 하지만 이리저리 돌아가는 눈동자 때문에 믿음이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그는 손짓으로 학자에게 나가 보라고 하였고 학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쓸모없군.”

“죄송합니다. 그 분야에서는 최고라 칭하던데…… 하지만 확실히 슈이렌 님이 이상하긴 합니다.”

학자의 말을 들은 이안이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의 입장은 이해가 갔다. 학자의 말대로라면 내가 보여 준 행동은 평범한 뱀과는 많이 달랐다. 학자의 말을 듣고 있었던 나도 나 뱀은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 다 했다. 머리를 굴렸지만 나도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뱀생 이틀 차였다. 이상하긴 하지만 몸에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괜찮겠지. 품에 얼굴을 숨기고 있었는데도 뒤에서 찌릿한 시선이 느껴졌다.

“착각이겠지.”

“그건 그렇지만…… 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내가 의심되는 건 알겠지만 너무 뚫어져라 보지 마!

“아니면…… 정말 신의 사자일 수도 있지.”

“……네?”

그는 농담이었는지 말하고는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안은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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