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04
원래 유준은 후회하지 않겠냐고 물으려 했다.
너무 섣부른 결정은 아닌지, 윤사영이라는 사람이 본래 그렇듯 연인을 위해 자신이 아픔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긴 건 아닌지 걱정돼 정말로 후회하지 않겠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유준은 그렇게 묻는 대신 후회해도 된다고 말했다. 언제든 후회해서 멈춰도 된다고, 이 행위를 먼저 시작했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참을 필요는 없다고.
유준이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었다.
다소 긴장한 듯 보이는 사영의 얼굴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고, 유준이 말을 이었다.
“이깟 섹스가 뭐라고. 이거 못 하면 죽는 것도 아니고.”
그런 말을 하면서 유준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사영은 그 얼굴을 멍하니 올려다보다가 풉, 웃음을 터트렸다. 유준이 눈썹을 삐죽 올렸다.
“왜 웃습니까?”
“웃음이 나서요.”
대답하는 사영의 얼굴엔 여전히 미소가 어려 있었다. 유준은 저도 같이 웃고 있으면서 괜히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왜 웃음이 나?”
사영은 대답할 말이 많았다.
대한민국 최고 알파로 주저 없이 꼽히곤 하는 김유준이. 형질 상관없이 그에게 안기고 싶어 하는 이들이 차고도 넘친다는 바로 그 김유준이 연인을 위해 수절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게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하지만 사영은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는 대신 그보다 더 간단명료하게 솔직한 심정을 표현했다.
“…김유준 씨가 귀여워서.”
유준이 멍해졌다. 솔직히 사영의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귀여움을 떨게 되는 날이 많은 건 사실이다. 유준 본인 역시 인지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사영의 입으로 귀엽다는 말을 들으면 순간적으로 사고가 멈추는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당황스럽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고, 너무 좋아서.
잠시 멍한 표정으로 사영을 보던 유준은 곧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좋아요. 계속 날 귀여워해요.”
“그럴까요?”
“네. 나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생명체고, 너무 귀엽고 하찮아서 절대로, 절대로 윤사영 씨를 다치게 할 수 없어요.”
명백한 의도를 가진 말이었다. 사영은 그걸 알아차렸다.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약자가 되어본 적이 없는 김유준은 오로지 윤사영 앞에서만 한없이 약하고 여린 사내가 되어 버린다.
유준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김유준은 절대로 사영을 다치게 할 수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다. 유준은 사영이 그 사실을 늘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준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멈추고 싶으면 말해요. 억지로 참지 말아요.”
“…….”
“절대 참으면 안 돼, 절대. 제발 나를 그렇게 비참해지도록 하지는 말아 줘, 사영아.”
그러니 어떻게 용기를 내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사람에게 안기고 싶다는 열망을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내가 너를 아프게 하면,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비참한 사람이 되고 만다고 고백해 오는 남자를. 어떻게 안지 않을 수가 있을까.
사영은 손을 뻗었다. 얼굴을 감싸자 유준이 자연스럽게 사영의 손바닥 안에 뺨을 기대 왔다. 사랑스러웠다. 더없이 소중했다.
이 남자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고, 이 남자와 함께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영은 유준의 뺨을 감싼 손을 서서히 끌어당겼다.
“후회가 되면 말할게요, 유준 씨. 참지 않을게요. 무서우면 무섭다고 할 거예요.”
“…….”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말할 때까지는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나를 안아 주세요.”
그와 동시에 지금껏 참고 있던 유준의 페로몬이 폭발하듯 사영에게로 쏟아졌다.
***
“흐으… 아…! 그, 그만… 그만 좀….”
결국 사영의 입에서 그만 좀 하라는 애원이 흘러나왔다. 정말로 그만두길 바라서는 아니다. 오히려 너무 좋아서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 가까웠다.
김유준은 그야말로 집요하게 사영을 애무했다. 마치 사영이 전희만으로도 녹초가 되어 기절해 버리길 바라는 사람 같았다.
이미 발갛게 부어올라 뾰족하게 선 유두를 정성스럽게 빨아 대는 것도 미칠 것 같은데 그 와중에 유준의 손은 사영의 성기를 감싸 쥐고 위아래로 강하게 문질렀다.
위아래로 느껴지는 노골적인 자극에 그야말로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영의 전신은 유준의 끈적한 페로몬에 완전히 절여졌다. 페로몬이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닐진대 사영은 제 몸이 전부 다 젖은 듯한 착각을 느꼈다.
“으읏…!”
흥분을 참지 못한 사영의 뒷구멍이 또 한 번 울컥, 애액을 쏟아 냈다. 벌써 몇 번째인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얼마나 액을 흘렸는지 엉덩이가 다미끌미끌할 지경이었다.
“왜. 핥아 주는 거 좋아하잖아, 사영아.”
“거, 거기에 대고 말하지, 으윽! 아…!”
가슴을 입에 문 채로 유준이 속삭이는 바람에 고개를 젓던 사영은 갑자기 성기를 빠르게 자극하는 유준의 손길에 그대로 사정하고 말았다.
가느다란 사영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사영의 두 다리는 사정하면서 유준의 허리를 강하게 감쌌다가 힘이 빠졌는지 그대로 늘어져 더 적나라하게 벌어졌다.
평소라면 부끄러워할 자세였지만 지금 사영은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사실 지금도 유준이 온전히 페로몬을 다 쏟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의 강렬한 향은 사영의 몸은 물론이고 정신까지 젖어 들게 했다.
유준은 정액을 흘리는 사영의 성기를 몇 번 더 문지르다가 손을 떼곤 미끄러운 손을 그대로 아랫구멍에 가져갔다.
사영의 아래는 이미 질척거릴 정도로 젖어 있었다. 중지 끝을 슬쩍 가져다 대 문지르자 구멍이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기둥을 물고 싶어 안달 난 모습이었다.
그러나 유준은 곧장 손가락을 밀어 넣는 대신 몸을 살짝 일으키며 사영을 불렀다.
“…사영아.”
겁을 먹은 듯한 목소리였다. 사정의 여운에 그때까지 눈을 감고 있던 사영이 비로소 눈을 뜨고 유준을 보았다. 착각이 아니었다. 유준은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사영과 자신의 처음이 과거의 기억으로 뒤덮일까 봐. 훗날 사영이 이날을 아프고 고통스러운 순간으로 기억할까 봐 겁이 났다.
그게 사영의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 그래서 사영은 유준이 말을 더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유준 씨.”
“…….”
“사랑하는 사람을 안고 싶은 욕구가 김유준 씨한테만 있는 줄 알아요?”
사영의 손이 단단한 유준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떻게 보아도 성적인 의도가 짙게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사영이 말했다.
“나한테 이런 건… 너무 오랫동안 아프고 두려운 행위였어요. 폭력이나 다름없었고, 흥분은커녕 비참하고 모욕적인… 그건 관계가 아니고 강간이었어요. 유준 씨도 알다시피.”
“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건 다르다는 걸 알고 싶어요. 고통뿐인 기억을 지우고 싶어요.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이에게 안기는 게 얼마나 좋은지, 흥분되는지, 자극적인지.”
“…….”
“내게 그걸 알려 줄 사람은 김유준 씨뿐이잖아요.”
유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칫 잘못하면 꼴사납게 발가벗은 채로 울음을 터트릴 판이다. 그래서 유준은 잠시 눈을 감고 감정을 다스렸다.
평소에는 청아하기만 했던 사영의 향이 노골적으로 유준을 자극하며 아랫배를 묵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유준이 다시 눈을 떴을 때.
“헉…!”
사영은 저도 모르게 목을 젖히며 숨을 들이마셨다. 자제하는 것을 멈춘 유준의 향이 그야말로 폭우처럼 사영에게 쏟아져 내렸다.
그건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떨어지는 수천, 수만 개의 꽃잎을 맞는 기분 같기도 했고, 그만큼 많이 쏟아지는 화살에 온몸을 내던진 것도 같은 감각이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향이 사영의 살갗을 뚫고 안쪽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아직 그 무엇도 삽입하지 않은 구멍이 절로 벌어졌다.
강압적으로 찍어누르는 것과는 달랐다. 전신으로 파고드는 화살촉은 그러나 아프지 않고 오로지 사영의 성감을 자극하기만 했다.
구멍이 다시 한번 액을 쏟아 냈고 유준의 손가락이 젖은 사영의 입구를 느리게 문지르다가 이내 안으로 곧장 파고들었다.
고작 손가락 하나뿐인데도 벌어진 사영의 허벅지가 파르르 떨렸다. 버거워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느껴서였다.
온몸의 감각이 너무도 예민해져 손가락의 굴곡을 따라 입구가 벌어졌다 조여지길 반복했다.
유준은 더 들어갈 수 없을 때까지 손가락을 밀어 넣다가 곧 작은 원을 그리며 구멍을 벌렸다. 손바닥으로 사영이 쏟은 액이 흘렀다.
“왜 이렇게 젖었어, 사영아.”
“흐으….”
유준은 몸을 숙여 사영의 목을 핥으며 속삭였다. 사영은 유준의 어깨를 겨우 붙든 채로 끙끙거렸다.
유준은 원래도 내킬 때면 반말을 섞어 써 왔고 사영은 내심 그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이런 때에, 이런 목소리로 반말하고 이름을 불러 오는 건 반칙인 것 같았다.
그러나 말로 따질 수는 없었다. 그럴 정신이 없었던 탓이다. 벌려지는 아랫구멍이나 애무 당하는 목은 말할 것도 없고 유준의 살결이 닿은 모든 곳이 성감대를 자극당한 것처럼 들떴다.
자신이 이렇게 액을 많이 흘리는 사람이라는 것도 사영은 처음 알았다.
사영이 딱히 버거워하거나 얼어붙는 기색이 없자 유준은 손가락을 하나 더 밀어 넣었다. 작고 미끌미끌한 구멍이 제 손가락을 삼키고 있다고 생각하자 머리까지 열이 올랐다.
마치 손가락이 좆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사영의 안을 쑤실 때마다 쾌감이 아랫배를 울렸다.
손가락의 움직임을 따라 사영이 허리를 움찔거리고 나서야 유준은 손가락을 세 개로 늘렸다. 정적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느린 진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