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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하는 회귀자를 사랑하는 법-88화 (88/193)

#088

좀 더 그럴듯한 설명이 있는데. 사영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그걸 꺼내 놓지 못하니 서로 의견이 헛돌 수밖에 없었다.

답답한 건 그걸 알면서도 사영에게 제 생각을 솔직히 다 털어놓기가 망설여진다는 점이었다. 유준의 입술이 무의미하게 벙긋거리다 다물어지길 반복했다.

“사영 씨.”

한참 만에 유준이 입을 열었다. 사영은 그의 말을 더 듣지 않고 대답했다.

“…부탁하는 주제에 고집부려서 죄송합니다.”

이어진 말은 유준의 가슴을 더욱 미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한재우는 윤사영 당신을 되찾고 싶어 할 수도 있다고. 그렇게 된다면 내가 아니라 당신이 직접, 그를 무릎 꿇리고 그에게 비참한 끝을 선사해 줄 수도 있을 거라고.

그 말을 하면 사영 역시 이런 필요치 않은 사과 대신 조금 더 중요한 고민을 할 수 있을 텐데.

그걸 알면서도 유준은 단 한마디도 사영의 앞에 꺼내 놓을 수가 없었다. 유준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건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사영 씨, 나는….”

“…….”

“하… 그러면 일단 좀 더 두고 보죠.”

결국 유준은 내도록 입 안을 맴돌던 말을 꺼내는 대신 한발 물러섰다.

“내가 사영 씨랑 지금처럼 계속 친근하게 굴면 사영 씨 말대로 한재우의 질투심에 불을 붙일 수도 있을 겁니다.”

“아….”

“진짜로 사영 씨가 나를 꼬시기라도 할까 봐 나한테 더 매달릴 수도 있겠죠.”

유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확신했다.

재우가 유준과 사영 사이를 질투하고 신경 쓴다면 그건 자신이 아닌 윤사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유준은 그걸 굳이 사영에게 알려 주진 않았다.

“또 오늘처럼 제 일에 집중 못 하는 것도 재밌을 거고.”

유준이 그 말을 꺼낼 때가 되어서야 긴장해 잔뜩 굳어 있던 사영의 얼굴이 살짝 느슨해졌다.

재우가 그렇게 당황하는 걸 사영은 거의 처음 보았다. 오래전 언젠가에 보기야 했을 수도 있지만 사영에게 남아 있는 기억에 한해서는 처음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순간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속이 다 편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한재우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연기를 해냈고, 감독의 칭찬을 받았다.

한재우는 아무렇지 않은 척 능숙하게 표정을 관리했지만 노골적으로 표현되지는 않는 재우의 불편함을 눈치채는 데에 이미 도가 튼 사영은 그가 그 상황을 얼마나 언짢아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순히 사영이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못마땅했던 것이든 다른 이유가 있었든 중요한 건 그의 오늘이 예상만큼 편안하고 즐겁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오늘 같이 인터뷰한 거 알면 아마… 더 볼만해질걸요.”

유준은 장난기 가득한 악당 같은 얼굴을 하고 속삭이듯 말했다.

유준은 일부러 스태프들에게 괜히 재우가 신경 쓸 수 있으니 인터뷰를 같이 했다는 말을 전하지 말아 달라고 조심스럽게 요청했다.

누군가는 가볍게 입을 놀릴 수도 있겠지만 다들 재우와 사영의 사정을 아는 이들이니 어쩌면 정말로 비밀을 지켜 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금방 밝혀질, 별것도 아닌 일이었으니 말이다.

유준과 사영이 다정하게 찍은 영상을 확인하는 순간 한재우가 보일 반응을 직접 보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때였다. 그런 유준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사영이 풋, 하고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웃은 탓에 젖은 머리카락이 흰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기분 좋게 미소 짓던 유준의 표정이 단번에 굳었다.

“유준 씨…?”

갑자기 서늘해진 방 안 분위기에 사영이 덩달아 미소를 거두고 유준의 눈치를 봤다. 유준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경계의 색을 띤 눈으로 사영을 보고 있었다.

유준은 그때 사영을 보며 낯선 두려움을 느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이 나약한 사내가 한재우뿐만이 아니라 자신까지도 뒤흔들 수 있을 거란 터무니없는 예감이 유준을 덮쳐 왔다.

단순한 흥밋거리였는데. 적당히 어울려 주는 척하다가 지겨워지면 언제든지 돌아서서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믿지도 않았고, 그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유준은 한재우를 망가트리는 데에 누구보다 진심을 다하고 있었고, 지금 이 자리에서는 젖은 사영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고 있었다.

더는 단순한 호기심이라는 말로 외면할 수 없게 되어 버린 마음의 무게를 느끼며 유준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기에 사영과 단둘이 더 있어 봤자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유준은 덩달아 일어서는 사영을 보며 말했다.

“어쨌든, 당분간은 계속 이런 식으로 한재우를 자극해 볼 생각이니까 윤사영 씨도 나한테 맞춰요.”

“네. 그럴게요. 여러모로 신경 써 주셔서 고마워요.”

“신경은 무슨. 어쨌든 내가 윤사영 씨랑 엮였으니까 손해 보기 싫어서 하는 거지.”

“그래도요. 저에게는 과분해요.”

괜히 뜨끔한 유준은 일부러 더 냉정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사영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유준은 혼자 유난스럽게 반응한 듯한 기분에 헛기침을 하며 문을 향해 걸었다. 그런 유준을 배웅하려는 듯 사영이 뒤를 따랐다.

유준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 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막 손을 뻗었을 때였다. 사영은 갑자기 멈춰 선 유준을 의아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유준이 입을 열었다.

“한재우가 단순히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넘어 더 비참해져야 한다는 데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

“사영 씨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이 한재우에게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타격이 될 수도 있어요.”

“그게 무슨….”

사영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유준을 올려다보았다.

유준은 어떻게 하면 제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면서도 혹시나 남아 있을지 모를 사영의 미련을 자극하지 않을 수 있을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말을 이었다.

“사영 씨에게서 연기를 빼앗는 건… 한재우에게도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예요.”

연기하는 사영을 가까이에서 본 순간 유준은 느낄 수 있었다. 사영이 얼마나 연기를 사랑하고 그리워했는지 말이다.

처음 유준은 사영이 연기에 그다지 애정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연기를 좋아했다면 고작 사랑 따위를 위해 포기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영이 연기를 포기한 건 그의 자의가 아니었다. 다만 사영은 한재우를 너무 사랑한 것뿐만이 아니라 그를 지나치게 믿었다.

자신이 그런 악의를 가져 본 적이 없어서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악독해질 수 있는지를 몰랐던 거다.

“사영 씨를 연기에서 밀어내기 위해 그 역시 가진 모든 걸 쏟아 필사적으로 매달렸을 겁니다.”

사영이 연기를 포기한 게 아니다. 한재우는 사영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도록 만들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까지 고립시킨다는 게 결코 쉬웠을 리 없다.

“그렇게 수년을 공들이고 힘쓰고 온갖 졸렬한 짓거리를 다 해 가며 겨우 사영 씨를 연기에서 떨어트려 놨는데. 윤사영은 이제 다시 재기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하며 제 뜻대로 모든 게 다 이루어졌다고 안심하며 편안하게 남은 날들을 즐기려고 들떠 있었는데.”

유준의 얼굴은 어느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사영 씨가 여기에 버젓이 나타난 거잖아요. 한재우가 한 그간의 노력을 전부 다 물거품을 만들어 버릴 태세로. 모르긴 몰라도 한재우 그 새끼 지금 진짜 돌아 버리기 직전일걸?”

사영은 그제야 한재우가 지금 느끼고 있을 감정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돌이켜 보면 김유준은 나중 문제였다. 유준에게 호감을 느끼기 전부터 재우는 이미 사영을 망가트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 왔다.

유준은 최후의 통첩을 위한 작은 빌미에 불과했다. 유준이 없었다고 해도 사영의 마지막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깨닫자 사영은 갑자기 제가 서 있는 곳이 다르게 보였다.

자신이 지금 여기에, 한재우와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게 그에게 어떤 의미일지, 그리고 또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인지가 새롭게 다가왔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꼭 내가 아니어도… 윤사영 씨는 지금 제대로 복수하고 있는 거예요. 오로지 윤사영 씨의 힘으로.”

“…….”

“그러니까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해 봅시다. 알겠어요? 그럼 갈게요.”

조금씩 그늘이 걷히고 반짝거리기 시작하는 사영의 눈동자를 똑바로 보며 말을 이어 가던 유준이 말을 마치고 인사를 건네며 돌아섰다.

유준은 진심으로 윤사영이 죽음을 겪고 나서야 이루어 낸 이 날들의 끝이, 사영에게 지옥을 선사해 준 사람에게 다시 돌아가는 결말로 마무리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게 단순히 사영을 위한 바람인지, 아니면 제 안에 다른 마음이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알고 싶지 않았다.

***

오늘 뜬 하지 출연진 인사 영상 본 사람????

김유준이랑 윤사영 둘이 같이 인사한 거 실화? 미쳐따 도라따 존나 잘어울려ㅋㅋㅋㅋㅋ

근데 김유준이 윤사영 합류한 거 별로 안 반긴다는 소문 잇지 않았어? 인터뷰 영상만보면 존나 꿀떨어지는디?

둘 다 의상도 찰떡이어서 개발린다 진짜 강무준 서단우 벌써 맛집이다 아 시바 영화 언재 개봉해!!

└ 존나 잘어울려2222 김유준은 개당당한데 윤사영은 좀 주저하는 것까지 갓벽... 야 진짜 영국도 여왕있는데 우리나라도 왕세자 있으면 웨않뒈? 김유준 당장 세자책봉해

└ 배우 극한직업이다 걍 둘이 영화에서 엮이는 캐릭터고 홍보때문에 시키니까 같이 인사했겠지 ㅋㅋㅋㅋㅋ 딱봐도 김유준은 비지니스하고 있는데 꿀떨어지니 뭐니 윤사영한줌단 물타기 열심이쥬? 애잔하쥬?

└└ 그니까 ㅋㅋ 어떻게든 김유준한테 비벼서 이때싶 윤사영 올려치기 하려고 하는 거 존나 티나 ㅋㅋㅋ

└└ 여기서 보는 나도 이렇게 속터지는데 진짜 한재우는 오죽할까 내 배우 아닌데도 열불난다.. 그래도 같이 산 세월이 있다고 걔는 마지막까지 나쁜 소리 안 하고 참아줬더니 결과가 이거야 ㅋㅋㅋㅋ 그걸 또 좋다고 얼굴 잘하니 뭐니 윤사영 빨아 주고 있으니 인류애 상실된다 진심..

└ 아니 걍 영화 좀 보는데 뭐 남의 가정사까지 다 따져가며 봐야돼? 잘 어울린다고 말도 못하나 입막음 오지네

└└ 2차 가해 할 거 다하면서 뭘 입막음을 당했다고 ㅋㅋㅋㅋ 님 주둥이 지금 다 터져이써여~ 아무도 안 막아써여~

└ 서단우 캐릭터 진자 기대된다

└└ 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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