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복수하는 회귀자를 사랑하는 법-40화 (40/193)

#040

“…….”

이번에는 깊이 한숨을 내쉬려다가 참았다. 혹시나 그 소리에라도 사영이 깨어날까 봐 걱정이 된 탓이다.

집이 코앞인데. 그냥 깨워서 들어가 자라고 말을 하면 그만인데 도대체 뭘 망설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유준은 핸들에서 손을 떼고 등을 뒤로 편안하게 기댔다. 사영이 기댄 등받이를 조금 더 눕혀 주고 싶었지만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게 가능할 리 없었다.

차 안에 점점 더 깊은 고요가 스며들었다. 유준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창밖의 가로수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감상했다.

사영은 마치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 고요 속에 이따금 그가 깊이 내쉬는 숨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럴 때면 유준은 인형처럼 눈을 감은 사람의 숨소리가 신기해 괜히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곁눈질로 사영을 힐끔거렸다.

그 조용함이 좋아서. 서로를 잘 알지는 못해도 극단적으로 예민해 보이는 사영이, 알파인 유준이 제 페로몬을 맡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렇듯 무방비하게 잠들었다는 게 그만큼 유준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인 것 같아서.

그게 왜 좋은지도 모른 채 유준은 아주 느긋한 얼굴로 사영이 깨어날 때까지 숨소리만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침묵의 바다를 만끽했다.

***

안타깝게도 유준의 평화는 그다지 오래 가지 않았다. 사영이 채 십 분도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깨 버린 것이다. 유준은 아쉬움과 다행스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조금 더 이 시간을 만끽하고 싶기도 했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다면 왜 깨우지 않았느냐는 사영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별다른 이유도 없이, 집을 코앞에 두고 남의 차에서 자는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건 때에 따라서는 상당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으음….”

“일어났습니까?”

“……?”

“도착했어요.”

유준은 제 발 저린 도둑처럼 냉큼 선수를 치며 말했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눈을 몇 번 깜빡이던 사영은 별다른 의심 없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자신이 딱 맞춰 깨어났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다행이었지만 이상하게 유준은 여전히 미미한 아쉬움을 느꼈다.

자신이 잠든 사영을 힐끔거리며 그가 조금 더 잘 수 있도록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영영 알리고 싶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가 자신의 배려를 알아주었으면 했다. 모순적인 마음이었다.

그 사이 완전히 정신을 차린 사영이 유준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유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사영을 쳐다보았다. 잘 자고 일어나더니 왜 또 갑자기 사과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영은 말을 이었다.

“기껏 여기까지 바래다 주셨는데 조수석에서 잠들어 버려서… 그러면 안 되는데….”

그제야 사과의 뜻을 이해한 유준은 괜찮다고 대답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가 잠든 모습을 지켜봤던 것이 민망해 차라리 그가 미안해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유준은 괜찮다고 말해 주는 대신 다른 걸 말했다.

“요즘 잠을 잘 못 잡니까?”

“아니요. 잘 자고 있어요.”

사영은 안전벨트를 풀며 망설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유준은 미간을 확 찌푸리며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잘 잔다고?”

“네.”

사영은 왜 되묻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눈을 깜빡거리며 또 바로 대답했다. 자기가 지금 어떤 몰골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잘도 저런 대답을 한다 싶었다.

아주 잠시 평화로웠던 마음이 그가 깨어남과 동시에 다시 어지러워졌다.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는 것 정도는 솔직하게 말해 줘도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서로가 살가운 사이는 아니라고 해도 그 정도 말도 못 해 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순식간에 표정을 굳힌 유준이 짧게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곤 말했다.

“지난번에도 비슷한 말을 한 것 같지만 윤사영 씨 진짜 좀… 사람을 되게 기분 나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거 알아요?”

솔직히 말해서 유준은 차라리 사영이 화를 내거나 그렇게까지는 못해도 기분 나쁜 티 정도는 내 주길 바랐다. 어떤 감정이라도 상관없었다.

설령 그게 부정적인 거라도 사적인 감정이라면 뭐든 좋았다. 하지만 사영은 유준의 말을 듣고도 당황조차 하지 않은 듯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알고 있어요.”

“하, 진짜….”

결국 유준은 핸들을 두 손으로 꽉 쥔 채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모처럼 좋았던 분위기를 망쳐서 짜증이 났는데 사실 분위기가 좋았단 것도 오로지 유준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사영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게 어이없고 황당했다.

“내가 진짜 뭘 하는 건지 모르겠네….”

마지막 말은 사영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단 자신에게 하는 말에 더 가까웠다. 유준은 말 그대로 정말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엔 분명 이 미친 사람이 무얼 하려고 이러나 싶은 약간의 호기심이었는데 이제 그 호기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만이 어지럽게 섞여 기분 나쁜 색을 띠고 있다.

사영의 비위를 맞춰 주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상처받길 원하지도 않았다.

굳이 그에게 살갑게 대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지금처럼 못된 말을 하고 나면 마음이 영 불편했다.

처음에는 그가 자신에게 요구한 연기를 해 주는 것 말고 굳이 그와 사적인 감정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그가 먼저 선을 그어 오면 화가 났다.

막말로 사춘기 때도 이렇게 감정 기복이 심하진 않았을 것 같았다.

“…내려요.”

결국 유준은 지친 사람처럼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더 무슨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충수도 이런 자충수가 또 없다. 어떤 말을 해도 결국 혼란스러워지는 건 자신뿐이었다.

“네. 그럼 가 볼게요….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유준 씨.”

사영은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유준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 왔다. 유준은 분명 앞을 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런 사영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

차에서 내리려고 천천히 문을 연 사영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입을 연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예상치 못한 음성에 유준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사영을 쳐다보았다. 애매하게 시선을 내린 채로, 사영이 말했다.

“제가 견디기 힘든 사람인 거 잘 알고 있어요.”

“…….”

“귀찮고, 이기적이고, 오래 함께할수록 지긋지긋한 사람인 거. 알아요.”

유준은 지나치게 담담한 사영의 음성 너머로 한재우의 목소리를 들었다.

너 같은 거 지긋지긋하다고. 내가 너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전부 다 네가 이기적이고, 불쾌하고, 견뎌 줄 수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사랑을 원하는 사영을 앞에 두고 폭력적으로 쏟아지던 한재우의 수많은 말들이 두 사람이 있는 차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아픈 단어들을 갑옷처럼 두르고, 사영은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래도 저를 조금만 더 불쌍하게 여겨 주세요.”

그때 김유준은 저도 모르게 간절히 바랐다. 차라리 울어 주기를. 윤사영이 지금 자신의 앞에서 동정과 연민을 호소하며 차라리 펑펑 울기라도 해 주기를.

“눈 내리는 날 아스팔트 바닥에서 차갑게 죽어 간 저를 조금만… 조금만 더 가엽게 여기고 참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그 눈물을 핑계 삼아서라도 품에 당겨 안아 등을 쓸어 줄 수 있을 텐데.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끝끝내 유준에게 눈물 한 방울도 허락해 주지 않은 사영은 그대로 대답조차 기다리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불쌍하긴 씨발….”

차 안에 혼자 남은 유준은 벌써 저만치 미련도 없이 멀어진 사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욕을 뱉었다.

말로만 불쌍하게 여겨 달라 할 뿐이지 정작 단 한 뼘의 틈도 제게 보이지 않는 사람 따위 불쌍하게 여겨야 할 이유가 없었다.

“…….”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호기심은 지나갔고 동정도 아니라면. 굳이 유준이 아직도 그의 미친 소리에 이렇듯 맞장구를 쳐 주고 있는 이유는 뭘까.

유준은 왜 사영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한재우의 개소리에 화를 내며, 불청객이 될 게 뻔한 그가 제 기대작에 들어오려는 걸 막지 않고 있을까.

사영을 만난 이후로 도무지 속 시원하게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유준은 그렇게 한참이나 사영이 이미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

- 한재우가 윤사영 다쳤다고 선물보냇다가 까였다매?ㅋㅋㅋ

걔도 존나 호구팔자인듯 그 꼴 당하고 이혼한 마당에 오지랖 머선일?

└ 가스라이팅이 그래서 무서운거잔아 이혼하면 다신 저 꼴 안 볼줄알았는데 어휴ㅜㅜ

└└ ㅇㄱㄹㅇ 한재우 개불쌍.... 돈도 많은데 상담이라도 받음 좋을듯

└ 불쌍은 무슨 걍 노답 끼리끼리 만난거지 헐리웃쿨병도 아니고 전남편 다쳤다고 선물보내고 ㅇㅈㄹ

└└ 피해자한테 끼리끼리하는 인성 오지고요? ㅋㅋㅋㅋㅋ

└└ 노답은 니 인생이 노답이고 한재우팬도 아닌데 걍 안타깝다 얼른 다 잊고 행복했음 좋겠음ㅇㅇ

└ 하필 이혼한 직후 우연히 김유준 위험한거 구해서 김유준이랑 엮이고 한재우한테 쾌차기원선물받고 윤사영 인생이 찐이다 한번 사는 인생 저렇게 살아야되는데 대한민국 탑배우 둘 양옆에 끼고 ㅋ......

└└ 내말이.. 사주에 뭐가 있나 남자가 ㅈㄴ꼬이네

└└ 사주에 있는 게 아니라 얼굴에 있는 거 아닐까 윤사영 불호긴 한데 얼굴은.... 내가 알파라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