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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하는 회귀자를 사랑하는 법-2화 (2/193)

#002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대고 유준이 카페로 들어가는 걸 지켜본 사영은 긴장된 얼굴로 심호흡했다.

유준은 바로 오늘, 카페에서 커피를 사 들고 나오다가 운전 미숙으로 인도를 덮친 바이크에 치여 다리를 다치게 된다. 심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액션이 많은 영화를 찍는 중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막바지에 다다른 촬영은 결국 유준의 부상이 나아질 때까지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을 두고 온갖 매체에서 소란스럽게 떠들었던 걸 사영은 분명히 기억했다.

김유준은 사영의 두 번째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사영의 전남편인 한재우가 속절없이 빠져들어 끝끝내 사영을 매몰차게 버리도록 만든 요인으로 작용한 존재가 바로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로 꼽히는 배우, 김유준이었다.

근처에 미리 도착해 아까부터 그를 기다리던 사영은 초조한 표정으로 핸들을 꽉 쥐었다.

갈림길이었다. 여기서 한 걸음을 내딛고 나면 되돌아오는 길을 찾는 건 더없이 어려워질 게 분명했다. 사영은 룸미러에 비친 자신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라도 모르는 척 되돌아가면 된다. 그냥 지독한 악몽을 꾸었다고 여기면서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면 사영은 새로운 삶을 여유롭고 즐겁게, 이전과는 다르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현명한 선택의 길이 바로 코앞에서 사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발… 재우 씨, 제발 나한테 이러지 말아요…. 하라는 대로… 뭐든 하라는 대로 다 할게요. 뭐든 잘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날 버리지 말아요, 재우 씨….’

하지만 그 비참한 눈물이, 그렇게 빌어서라도 사랑을 붙들고 싶었던 절박한 마음이 정말로 없던 것이 될 수 있을까.

이대로 눈 딱 감고 모르는 척을 하면 정말로 그게 다만 하룻밤 악몽으로 잊힐 수 있을까.

‘그래? 내가 바라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럼 이혼하자고. 내가 너한테 원하는 건 그것뿐이니까.’

끝까지 오로지 자신에게만 끔찍하게 모질었던 그 목소리를. 결혼 생활 내내 홀로 견뎌야만 했던 숱한 모욕과 멸시를. 정말로 다 잊고 괜찮아질 수가 있는 걸까.

사영은 천천히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차가운 초겨울의 바람이 뺨을 날카롭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제야 몽롱했던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사영의 걸음이 조금 전 유준이 들어갔던 카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령 잊을 수 있다고 해도 이제는 상관없었다. 이대로 돌아서면 남은 생을 정말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해도 사영이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사영이 바라는 건 위안조차 되지 않을 알량한 복수였다. 그가 적어도 한 번쯤은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무엇인지 알길 바랐다.

그리고 자신이 빌었던 것처럼.

사랑,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마음 한 자락을 얻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애원했던 것처럼.

한재우, 그도 자신의 앞에 무릎 꿇고 꼭 자신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빌길 원했다. 그 순간을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도, 지옥의 불구덩이에 몸을 던질 수도 있었다.

어쩌면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는지도 모른다. 죽음의 순간에 복수를 위해 악마와 계약한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살아 있는 걸지 누가 알겠느냔 말이다.

사영은 우스운 생각들을 연신 떠올리며 카페 문을 열고 나오는 유준을 향해 다가갔다. 때마침 유준의 뒤쪽에서 커다란 바이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사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유준을 향해 몸을 던졌다.

복수를 위한 첫 번째 걸음이었다.

***

“그 사람은 깨어났어?”

병실 앞에 도착한 유준은 곁에서 상황을 지켜보라고 먼저 보냈던 매니저 정민을 복도에서 만났다. 정민이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네. 오른쪽 발목 골절에 넘어지면서 이마가 조금 찢어졌고, 그 외에는 가벼운 타박상. 전치 4주래요. 다행히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네요.”

눈치 빠른 매니저답게 정민은 유준이 묻지 않은 것까지 전부 다 대답했다. 가만히 그의 말을 듣던 유준은 한숨을 깊이 내쉬며 손을 들어 제 머리카락을 헝클였다.

오늘 어떻게 촬영을 마쳤는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았다. 잠을 깰 커피 한 잔이 필요했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저 대신 바이크에 치인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가 미는 바람에 떨어트린 커피가 바닥을 적신 모습이 전부 피처럼 보여 정말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심지어 바닥에 쓰러진 상대는 유준도 이미 얼굴을 아는 사람이었다.

“형은 괜찮아요? 지나고 나니까 아픈 곳은 없고?”

“아프긴 무슨. 난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놀랐으니까 또 모르잖아요.”

유준은 달라붙어 어깨와 허리를 이리저리 짚어 대는 정민을 귀찮다는 듯 밀어 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가 누워 있을 병실 문이 보였다.

밖은 이미 큰 사고를 당할 뻔한 국민 배우와 그런 그를 구하고 대신 다친 남자의 이야기로 떠들썩한데,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VIP 병실은 고요하기만 했다.

“근데 형….”

그때, 조용히 목소리를 낮춘 정민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준은 대답 없이 정민을 쳐다보기만 했다. 정민 역시 유준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말을 이었다.

“좀 이상하지 않아요?”

“…….”

“그 아침에, 딱 그 타이밍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저 사람이 거기에 있다가 형을 구해 줬다는 게….”

촬영하는 내내 유준의 머릿속이 복잡했던 것도 사실 같은 이유에서였다.

단순히, 정말 우연히 지나가던 사람이 유준을 구해 줬다면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유준은 다치지 않아 좋은 일이고, 상대방 역시 치명적인 부상은 입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이었다.

게다가 유준이 적절한 보상과 함께 최선을 다해 상대의 치료를 돕는 모습을 보인다면 좋은 여론까지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어느 면으로 보아도 유준의 입장에서는 크게 손해 볼 게 없는 상황이었다.

유준을 대신해 다친 사람이 한재우의 배우자였던 윤사영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저 사람 한재우랑 이혼했다는 얘기, 형도 알죠?”

“…그래.”

“그거 생각하면 타이밍이 더 이상하잖아요. 한재우랑 이혼하자마자 갑자기 형이랑 이렇게 얽힌다고요…?”

정민은 영 찝찝하다는 듯 고래를 저으며 닫힌 병실 문을 노려보았다. 유준을 구해 준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영 의심스러운 마음을 거둘 수가 없었다.

저 사람과 이혼한 후 한재우가 꽤나 노골적으로 유준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본다면 상황은 더더욱 이상했다. 정민은 도무지 이 상황이 우연히, 자연스럽게 벌어진 일 같지가 않았다.

정민의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준이 입을 열었다.

“일단은 두고 보자. 무슨 수작이 있었다면 티가 나겠지. 나는 잠깐 들어가서 인사하고 나올 테니까 차에 가 있어.”

“굳이 형이 직접 인사를 해야 하나…?”

“어쨌든 큰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니까 인사는 해야지, 당연히. 혹시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거라면 더더욱 괜한 꼬투리 잡힐 필요 없잖아.”

“흐음….”

“나 어린애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연이은 유준의 설득에 정민은 결국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미심쩍긴 하지만 지금 정민이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더 없기도 했거니와 그의 말대로 유준은 절대로 만만하거나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럼 얼른 인사만 하고 내려와요. 이상한 거 있으면 바로 전화하시구요.”

“알았으니까 얼른 가.”

유준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어 정민을 보내고 다시 닫힌 병실 문 앞에 섰다.

윤사영.

언젠가 어느 시상식의 애프터 파티에서 짧은 인사를 나누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무서운 기세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배우자의 다정한 에스코트를 받으면서도 불안하리만큼 창백해 보이던 얼굴이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아 있었다.

꽤 오래전이었고 그때 짧은 인사를 나눈 이후 마주친 일이 없었지만 여전히 그날을 기억하고 있는 건, 그 후로 한재우가 제게 불편한 태도를 보일 때마다 그 얼굴이 자꾸만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날 자신은 사영에게 드리워진 기묘한 고독의 정체를 궁금해했던가, 아니었던가.

“…….”

유준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의 앞에서 괜히 책잡힐 만한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표정을 가다듬었다.

괜한 생각들을 떨치고, 옷매무새를 습관적으로 점검한 후 천천히 문을 열고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멀찍이 보이는 창가의 커다란 침대 위에,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을 한 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마치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존재처럼 흐릿한 모습이었다.

유준은 저도 모르게 잠시 걸음을 멈춘 채 그를 보고만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김유준 씨.”

그가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채로 먼저 말을 걸어올 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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